EP·167
다행히 최종 점검은 스칼렛과 함께하는 형태가 아니었다· 아니 ‘다행’이라는 표현은 붙이면 안 될지도 모르겠다· 플란의 최종점검은 그만큼 힘들었으니까·
그리고 현재 새벽·
모두가 각자의 숙소에서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유시아만큼은 예외였다· 소녀는 수면 대신 업무를 살피는 것을 택했다·
유시아는 자신이 손수 만든 비밀 조직 ‘광야’의 업무를 결코 게을리 수행하지 않았다· 현재는 조직원에게 보고를 받는 참이었다·
“예· 고생하셨습니다·”
유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오늘까지도 광야는 별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조직원이 머뭇거렸다·
“저기····”
“예·”
“사족입니다만·”
“괜찮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조직원이 그제서야 편히 말을 이었다·
“정보 중 플란님과 관련된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직접 처리하시겠습니까?”
“그건 사족이 아닙니다· 당장 주세요·”
유시아는 직원에게서 곧장 트리비아를 건네받았다· 광야의 업무 연락용 트리비아였다·
직원은 예의바른 인사 후 자리를 비웠다·
트리비아를 열어보니 의뢰는 단순했다· 최근 화제를 일으키는 마법사 플란 그가 트리비아에서 마법 과외를 개설했는지 알아봐달라는 것이다·
“으음·”
유시아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플란에 대해 나름대로 잘 안다고 자부하는 자신이었지만 지금 듣는 건 꽤 생소한 이야기였다·
[▷한 번 조사해보겠습니다·]
[▶아마 맞을거에요·]
한데 질문자의 태도도 조금 이상했다· 순수한 궁금증으로 정보를 구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이미 알고있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기 위한 뉘앙스가 강하지 않은가·
[▷예?]
[▶아마 맞을거라고요·]
이외에도 의뢰인은 플란에 관한 잡다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아니 확인받았다· 유시아는 그러한 대화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레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다·
과연 의뢰인은 누구일까· 플란과는 어떠한 사이길래 이토록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원한을 지니고 있다면 적당히 쳐낼 생각이었고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바로잡아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놓고 무슨 관계냐고 질문하는 것은 하수· 유시아는 눈을 감고서 잠시간 머리를 굴렸다·
내려지는 결론은 하나였다·
[▷추가로 혜택도 받아보시겠습니까?]
낚싯바늘을 드리웠고 곧 입질이 왔다·
[▶혜택이요?]
[▷예· 원하신다면 대상에 관한 여러가지 정보를 맞춤형으로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 단····]
유시아는 조심스레 손가락을 움직였다·
[▷대상과 어떤 관계인지 알려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그 뒤로 잘 오던 답장이 툭 끊겼다·
유시아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만약 의뢰인이 플란과 껄끄러운 관계를 가진 인물이라면 유시아도 그런 의뢰인에게 정보를 넘기고 싶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바로 그때·
[▶입맞춤·]
답장이 왔다·
[▶입맞춤 정도만 했는데요·]
“···!”
유시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각을 거치기도 전에 손가락이 절로 움직여 답장을 작성했다·
[▷진정성 있게 답해주십시오·]
[▶사실입니다·]
툭 트리비아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뭐라고 형언할 수가 없는 감각· 잘 정돈되어있던 머릿속은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뒤바뀌었다·
이후 몇 번 정도 트리비아가 울렸지만 유시아는 많은 생각들을 퍼즐 조각처럼 끼워맞추느라 바빴다· 트리비아를 볼 틈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코앞까지 다가온 수접제 성공적인 마무리 아카데미에 재학하는 황녀 마법 학계의 발전 플란 플란 플란····
···잠들기는 글렀다·
◈
태양조차도 졸음에서 깨어나지 못했을 시각· 스칼렛은 일찍부터 트릭시와 유시아를 호출했다· 두 소녀는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스칼렛을 마주했다·
‘잘 잤나’따위의 인사는 없었다· 잔불의 기사는 읽을 수 없는 무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어색한 재회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플란은 스칼렛을 조원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었고 원래라면 이 조합은 함께하는 일이 없었으니까·
이름 모를 창고 앞 침묵을 깬 것은 트릭시였다·
“볼일이 있으신가요·”
“아침은 먹었나·”
“아직이에요·”
유시아와 트릭시는 스칼렛의 미묘한 변화에 위화감을 느꼈다· 여전히 위엄있지만 고압적인 태도로 두 소녀를 누르려고 하는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플란이 행동 강령을 작성했던데·”
“그건 이미 전부 살폈어요·”
그럼 됐다는 듯 스칼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건은 그게 끝이신가요·”
“잠깐·”
사실 트릭시와 유시아는 이 어색한 자리를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스칼렛이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우선 들어와라·”
스칼렛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먼저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두 소녀는 서로 미묘한 눈빛을 교환했다· 다크 서클이 짙은 유시아가 아주 작게 귓속말했다·
“···트릭시 양· 뭘까요?”
“글쎄· 우릴 창고에 묻어버릴 생각인가·”
“설마 그렇겠습니까?”
망설이는 소녀들을 향해 스칼렛이 몸을 돌렸다·
“뭐하는 거지· 들어와·”
결국 붉은 눈빛을 이겨내지 못해 유시아와 트릭시는 등을 떠밀리듯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창고 안은 걱정만큼 음산하고 어둑한 곳이 아니었다·
스칼렛이 조용히 창고의 문을 닫았다·
“몇 가지만 짧게 묻지·”
혼자서 팔짱을 끼는 스칼렛의 태도는 척 보기에도 근엄했다· 유시아와 트릭시는 기사의 질문을 기다리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너희는 플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있나·”
하지만 첫 질문부터가 소녀들의 예상을 살짝 벗어나는 것이었다· 트릭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응했다·
“음?”
“표현 그대로다· 다른 의미는 없어·”
“알만큼은 알아요·”
“그렇다면····”
스칼렛은 아주 커다란 가방 하나를 가져왔다· 서류 가방을 여러 개 이어붙인 듯한 일반인이라면 결코 들어올리지도 못할 것 같은 가방이었다·
그것이 계단 형태로 펼쳐지며 안에 담겨있던 물건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자 망토 지팡이···· 그것들 하나하나가 마법에 관한 아티팩트였다·
“우와·”
“음·”
트릭시와 유시아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우선 질이 아니라 양 자체에 감탄했다· 가방이 거대해서인지 쏟아지는 아티팩트들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이게 다 무슨····”
“내가 우연히 주운 것들이다·”
하지만 유시아와 트릭시는 스칼렛의 말에 의구심을 품었다· 주워왔다기엔 상태가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플란이 마음에 들어할만한 게 있나·”
두 소녀가 눈을 깜빡였다·
“플란?”
“플란···?”
“그래·”
트릭시와 유시아가 조용히 서로를 마주보았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닌데 상황은 이해되지 않았다·
“분명 알만큼은 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했지만?”
“음····”
트릭시와 유시아는 하는 수 없이 아티팩트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늉에 불과하다· 솔직히 플란의 의중은 조금도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다들 여기에 있었나·”
익숙한 음색·
“수접제가 코앞이다· 노닥거릴 시간이 없을 텐데·”
플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줄곧 무표정이던 스칼렛의 얼굴에 표정이 생겼다· 쉽사리 눈치챌만큼 큰 변화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분명 당황한 듯 했다·
스칼렛은 이내 플란의 모습과 책상 위에 가득 올려진 아티팩트들을 번갈아 보았다· 플란도 조용히 상황을 살폈다·
“뭘 하고 있었지·”
“아·”
유시아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스칼렛님께서····”
“아니다·”
스칼렛이 가방을 탁 소리나게 덮으며 유시아의 말을 토막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오후·
레헬른 언덕·
워낙 험해 원래라면 인기척이 잘 느껴지지 않는 이곳이 실로 오랜만에 사람의 기운으로 북적거렸다·
황실에서 개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기 인원들은 꽤나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아마 수정구를 통해 중계하지 않는다는 점이 클 터였다· 수접제는 사실상 오로라를 위해 개최되는 행사였으니까·
“플란 경 안 덥습니까? 너무 덥습니다····”
“품위를 지키기가 힘든 곳이네·”
유시아와 트릭시가 번갈아가며 싫은 소리를 냈다· 두 명은 내게 꼭 붙어있었고 스칼렛은 조금 거리를 두고 가만히 서있는 채였다·
나는 다른 조의 모습도 살폈다·
귀가 뾰족한 엘프들의 조도 있었고 기사들로만 이루어진 조도 있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따로 있었다·
‘수도 기사’
그들은 굳이 스스로를 소개하지 않아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느껴지는 기운 부터가 대단했으니 말이다· 스칼렛의 불꽃이 여흥을 주었던 기억이 있기에 나는 그들의 고유 능력에도 관심이 컸다·
그러한 와중·
“드디어 왔네·”
“반인가?”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함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둘째 황녀 오로라의 호위 기사 반이었다·
“수접제의 규칙을 설명하지·”
그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에 나섰다·
“마침내 여명 나비가 출현할 시기가 되었다· 우승을 위한 조건은 단 두가지·”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여명 나비를 생포하고 있을 것· 모든 조원이 생존해 있을 것· 여명 나비에는 어떠한 손상도 없어야 한다·”
동시에 허공을 주먹으로 두드린다· 그러자 마치 투명한 유리벽이 존재하는 듯 탕탕 하는 소리가 났다·
“현재 인간의 출입을 제한하는 결계가 쳐져있다· 바꾸어 말해 이곳을 밖으로까지 여명 나비를 뒤쫓는 건 허용하지 않는다·”
유시아가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플란 경 여명 나비를 한 번 놓치는 순간 그 한 마리는 영원히 끝· 그런 의미인 걸까요?”
“그런 셈이지·”
“난이도가 더더욱 올랐군요····”
많은 소란을 전부 무시하며·
“그럼 수접제를 시작한다·”
반이 담담하게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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