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8
여명 나비를 채집하던 어느 순간·
“···!”
유시아가 일행들에게 다가와서 표정으로 소리를 쳤다· 소녀는 숨소리까지도 죽이고 손으로 막 날갯짓하더니 검지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일행들 역시 곧바로 만전을 기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설명하는 유시아 덕분에 여명 나비를 발견했다는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유시아의 표현은 사실이었다·
멸지(滅地)에 가까운 레헬른 언덕에 겨우겨우 피어난 꽃 한 송이· 그 위에는 절대 평범하지 않은 나비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
트릭시의 눈이 커다래졌다·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몸체· 그것의 날개가 새벽빛을 품고 있었다· 주변으로 흩날리는 가루는 보석의 파편인 듯 반짝인다·
나는 조용히 검지를 펼쳐 보였다·
사전에 숙지시켰던 행동강령 중 첫 번째 항목· ‘여명 나비를 발견할 시 자유로이 포획을 시도하라·’였다·
유시아와 트릭시가 시선을 교환했다· 둘에게는 나름대로 미리 정해둔 작전이 있는 모양이었다·
먼저 마나를 끌어올린 것은 유시아였다·
쿠구구구─
그녀의 재능은 「연성」계열에서 특출난 힘을 발휘한다·
꽃 주변의 흙이 전조도 없이 솟아오른다· 그것이 일정한 형태를 이루며 여명 나비를 노렸다·
“트릭시 양!”
“알아·”
트릭시가 곧바로 연계에 나선다· 최종 점검의 때까지 맞춰보았던 합을 확인해볼 시간이었다·
흙이 정육면체의 형태를 이루며 나비를 가두었다· 그리고 눈 한 번 깜빡할 찰나 그것이 푸른 화염 막에 온통 둘러싸인다·
지켜보던 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마력 차단인가·”
“맞아· 순간 이동 자체를 막을 생각이야·”
순간 이동을 사용할 수 있기에 여명 나비는 엄연히 마나를 보유한 생명체다· 그리고 트릭시는 그것을 원천 봉쇄할 계획인 듯했다·
완성도가 제법 괜찮았다·
“용케도 저런 걸 익혔군·”
“네가 가르쳐 준 거니까·”
트릭시는 별생각 없이 중얼거렸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데 방금은 사실관계를 말했을 뿐이야· 다른 의미는 없고····”
“됐다· 여명 나비는 잡았다고 생각하나·”
“흠흠·”
트릭시는 두어번 헛기침하더니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차단 마법에 제대로 걸렸으니까·”
하지만 트릭시의 단호함에 균열이 생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라?”
먼저 의문을 표한 것은 유시아였다· 그녀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흙으로 빚어진 정육면체를 이리저리 회전시켰다·
“이상하다? 내부의 기운이 사라졌습니다·”
“나비가 기척도 숨길 수 있나?”
하지만 이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보란 듯이 큐브 바깥을 여명 나비가 비행하고 있었으니까·
“설마 다른 한 마리겠지·”
“하지만····”
유시아가 정육면체의 흙을 허물었다· 내부에는 어떠한 여명 나비도 갇히지 않은 채였다·
“내 차단이 촘촘하지 못했다는 거야?”
트릭시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여명 나비가 자유를 되찾아 활공하는 모습 자체가 하나의 대답이었으니까·
마력 차단의 원리는 단순하다·
술자의 마나를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짠 뒤 타인의 마나가 유통되지 않게 만든다· 그뿐인 이야기였다·
“단순히 나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여명 나비의 순간 이동은 보다 고차원이다· 잘 숙련된 마법사 이상이라 생각해야 할 터다·
“그런데 플란 경 나비가 떠나질 않습니다·”
“···약 올리는 거야 뭐야·”
여명 나비는 우리 근처를 떠나지 않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날갯짓을 하며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유시아와 트릭시가 화풀이를 하듯 마법을 몇 번 더 발현했지만 역시 나비가 잡히는 일은 없었다·
“····”
내가 미간을 좁힌 것은 그때쯤이었다·
처음에는 여명 나비를 보고도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심장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활공 궤도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저건····”
나비가 허공에 그려내는 것은 고대 룬어·
그러나 이 세계에 있어서는 안 될 룬어·
바꾸어 말해 이전 세계에만 있던 문자였다·
◈
같은 시각 황궁의 내실·
오로라의 호위 기사 반은 굉장히 바쁘게 움직였다· 수접제가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나 본질적으로 그의 임무는 둘째 황녀의 호위였으니까 말이다·
밤하늘을 도려내어 엮은 듯 검은 머리카락· 그믐달의 모양을 띤 신묘한 동공· 제국의 둘째 황녀 오로라가 물었다·
“수접제는 잘 진행되어가느냐·”
“지금까지는 수집에 성공한 조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테지·”
오늘의 오로라는 어쩐지 평소와 달랐다·
턱을 괴고 있지도 않았고 잠든 듯 나른하게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손바닥 위에 올려진 나비의 여명 빛 날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
물론 그 여명 나비는 모형에 불과했다·
“반 이것은 모형에 불과하니라·”
문득 오로라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동공이 평소와는 다르게 사뭇 진지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황녀님·”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이니라· 반 네놈에게도 있겠지·”
반은 고개를 들어 올려 오로라의 얼굴을 살폈다· 황녀는 답지 않게 진중한 눈빛이었고 하여 반도 나름대로 진지하게 답했다·
“황녀님의 목숨입니다·”
호위 기사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호위 기사의 직책에 걸맞게 제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황녀님의 안전을 지켜낼 것입니다·”
“에휴·”
타인이라면 으레 감동받았을 법한 발언에도 오로라는 미간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녀가 퉁명스러운 태도로 답했다·
“또 재미없는 대답만 늘어놓는구나· 내가 스스로 죽음이라도 택하면 어쩌려고·”
“그 또한 막아 보이겠습니다· 막지 못한다면 자결할 것입니다·”
“됐다· 됐어·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쯤하고·”
오로라가 나비 모형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그것을 살피는 황녀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
“···나는 여명이라는 것이 참 좋구나·”
삭 초승 상현 보름 하현 그믐·
모든 것을 품은 오로라에게 없는 단 한 가지·
품어본 적 없기에 양보하기 싫은 하나·
언젠가 꼭 품어보고 싶은 것·
여명(黎明)이었다·
◈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건 저주다·
오로라가 고작 8살 때 그것을 깨달았다·
고귀한 미모를 지닌 소녀의 등장에 모두가 경사가 났다며 한 마음으로 기뻐했다· 소녀는 간혹 사람들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는데 황실 사람들은 그 시선을 받을 떄마다 축복이라 칭하곤 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갈 수 없었다·
“죽어?”
짧고도 의아한 질문이 도화선이었다·
오로라는 한 관료에게 그리 질문했고 관료는 당연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너 죽는 것 같아·”
사망한다는 악담을 불현듯 들으면 누구라도 기분이 그렇겠지만 관료가 오싹함을 느낀 것은 비단 발언의 내용 때문만이 아니었다·
오로라의 눈·
기울어짐과 채워짐을 반복하는 신묘한 동공이 관료의 영혼을 꿰뚫는 듯했다· 관료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죽지 말아주라·”
그때 누군가가 주변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나이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나? 어린 황녀님 눈에는 산 송장이나 다름없겠지·”
“아하하 그런 의미였나·”
관료는 그제야 안도하며 오로라에게 웃어주었다·
“황녀님 괜찮습니다· 이리 늙어 보여도 아직 한참이나 남았습니다· 곁에서 황녀님을 오래도록 보필할 것입니다·”
그 관료는 고작 삼일 후 사망했다·
“죽어?”
“죽지 말아주라·”
“꼭 가야 해?”
이후로도 같은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제멋대로 보이는 장면들은 가끔 소녀에게 너무나도 잔혹한 것을 보여주었고 그래서 그것을 털어놓을 뿐이었지만 오로라를 마주하는 관료들의 낯빛은 하루하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미래를 알기 위해 발악하지만 모르는 게 약인 사람들 역시도 존재하는 법이었다·
결국 오로라와 엮이면 사망한다는 소문도 퍼지기 시작했다·
“····”
해맑던 소녀가 폐인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린 오로라는 내실을 벗어나지 않게 되었다·
아니 벗어날 수 없었다·
“무 무서워···· 왜 왜 왜····”
이슬 같은 눈물이 볼을 타고 수도 없이 흘러내렸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자신을 원망하고 기피하는 미래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오로라는 모든 장면이 훤히 보이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인을 마주한다는 것 자체를 기피하게 되었다·
타인의 만남은 곧 미움을 동반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친인척들은 오로라의 편을 지켜주었다·
어느 날 삼촌과 이모가 내실을 방문했다· 그들이 오로라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오로라· 요새 이상한 소문이 너를 괴롭히는구나·”
“이상한 소문····”
오로라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다행히 삼촌과 이모는 ‘소문’이라고 생각해주는 모양이었다·
“감사해요·”
일단 그렇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벌써 너무나도 많은 미움을 샀고 지금부터라도 미움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모든 이가 오로라를 마주하자마자 창백해지는 지금 삼촌과 이모의 표정은 진심인 듯 보였다·
이모가 눈물을 훔쳤다·
“내가 다 눈물이 나는구나···· 어린 나이에 무슨 죄가 있다고· 네가 너무 잘난 탓이다· 너무 잘난 탓이야···· 모두가 시기하고 질투하는 거야····”
하지만 그때·
“그런데 오로라·”
눈물을 훔쳐낸 이모가 오로라에게 물었다·
“혹시 정말로 미래가 보이니?”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오로라는 이모의 얼굴에 아주 잠깐 미묘한 것이 스쳐 가는 것을 포착했다·
“···그렇다면 우리 미래도 보이니?”
오로라는 조용히 마른침을 삼켰다·
눈에 보이는 장면이란·
삼촌이 자신과 부모님의 목을 베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플란 표지가 거의 완성되어 가네요·
zakuti님 기대해주세요!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