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9
베어진 머리가 굴러떨어진다·
오로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관찰할 수 있을 만한 장면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뇌리에 박혀버린 장면들은 눈을 감으니 도리어 선명하게 떠오른다·
장면 속의 친인척은 일말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다· 단도를 역수로 쥔 채 오로라의 몸이 경련하지 않을 때까지 검날을 박아넣었다·
“오로라?”
현실의 목소리가 소녀를 상념에서 끄집어낸다·
이모가 다시 한번 오로라를 재촉했다·
“우리 얼굴 좀 봐보렴· 좀 미래가 보이니?”
“네 네?”
“네가 미래를 본다는 소문이 있어서 말이야· 보인다면 우리 미래를 좀 알려주었으면 하는데·”
이모와 삼촌의 얼굴에 어느덧 걱정 따위는 없었다· 진위를 가리겠다는 듯한 표정만이 맴돌 뿐·
“···저는 그런 거 몰라요·”
오로라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미래 같은 건 보이지 않아요· 정말이에요·”
이모와 삼촌은 서로를 잠시간 바라보았다·
자신의 생사가 매초 뒤바뀌고 있었기에 오로라는 등허리에 식은땀을 흘려가며 침묵했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난 후 이모가 침묵을 깼다·
“그랬구나·”
삼촌과 이모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목숨을 부지했다는 사실에 몇 번이고 안도했다·
“잘 지내렴· 오로라·”
삼촌과 이모가 떠난 후·
오로라는 부모님께 허겁지겁 달려가서 사실을 알렸다· 물론 그들은 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뭐···?”
그러나 오로라의 다급함을 이겨내지 못해 조사는 시작되었고 친인척은 모조리 검거되었다· 반역을 꾀했던 증거들이 남아있던 덕택이었다·
“오로라 덕을 봤네요·”
“큰일 날 뻔했어·”
오로라는 비로소 내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졌다·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 고급스러운 다과 평생 다 입어보지도 못할 정도로 다양한 의류····
소녀는 기뻤다· 평생 이렇게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네···?”
“자 어서· 오로라· 평소처럼 해보라니까·”
부모님이 어느 날부턴가 주변의 관료들을 살피도록 지시했다· 사람들은 이를 ‘심판’이라 불렀다·
“오로라· 이 중에서 황실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 이가 있느냐? 있다면 알려다오·”
권좌에 앉은 아버지 도열해있는 병사들· 끌려온 관료들은 가운데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
아무리 나이가 어렸어도 자기 말 한 마디에 관료의 목숨이 달렸다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녀에게는 본인의 의지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었다· 손에 쥐어진 종이를 살피는 것이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바···· 반역자예요·”
[X]
손에 쥐어진 종이에는 그리 적혀있었다· 소녀는 이미 통치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당장 끌어내라!”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정말로 억울···· 커헉!”
끌려 나가는 관료들의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그들의 미래에는 어떠한 반역도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이리 행동하는 것이 옳다 믿었다·
지금처럼만 하면 예쁨받을 수 있으리라 사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으리라 반드시 그럴 터였는데····
쩅그랑─!
어느 날 오로라는 찻잔을 떨어트리고야 말았다· 차마 믿을 수 없는 미래가 보였기 때문이다·
“왜···?”
소녀가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두컴컴한 공간 아버지의 호통 경멸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어머니···· 엿보이는 미래라는 것이 온통 그러했다·
쿵─!
그와 동시에 병사들이 오로라의 내실로 들이닥쳤다· 억센 손이 소녀의 가냘픈 손을 휘어잡는다·
“오로라·”
아버지는 병사들 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오로라는 무엇을 물어야 할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아무 말이나 가까스로 중얼거려야 했다·
“이게 무슨···?”
“제국은 마침내 평화를 맞이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네 치료에 집중할까 싶구나·”
“치 치료요?”
“그래· 그동안 황제의 무게를 견디느라 부모로서는 소홀했었지· 이제는 비로소 네게 신경을 써줄 때가 온 것 같다·”
“저는 저는 멀쩡해요! 아주 멀쩡하다고요!”
하지만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아버지는 오로라에게 같은 대답만을 돌려줄 뿐이었다·
처음에는 해명하려 했다· 어떻게든 이해시키려 했다· 자신이 멀쩡하고 그를 위해 힘썼다는 것을 어떻게든 설명하고자 했지만·
“····”
아버지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생각이 지워졌다·
냉담한 눈빛· 그의 눈동자에 담겨있는 것은 이미 딸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었다·
오로라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황제의 미래 어느 부분을 엿보려 해도 자신을 딸로 여겨주는 장면은 존재하지 않았다·
“너무 염려할 것 없다· 상태가 호전되면 언제라도 함께할 수 있어· 네 정신이 맑아질 때까지만 홀로 지내는 거다·”
“···두려워서인가요?”
오로라가 허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제야 황제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어렸다·
“뭐라?”
“최근 아바마마를 향한 의문이 많아졌잖아요· 그게 두려우셨던 건가요? 제가 아바마마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할까 봐?”
공포 정치에는 으레 반발과 의구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로라는 아버지가 왜 ‘치료’라는 말을 들먹이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치료는 핑계에 불과하다· 그는 자신을 지하에 처박아두고 싶을 뿐인 것이다·
“이거 봐라· 또 헛소리를 하는구나·”
“저는 뭐였던 건가요·”
오로라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예쁨받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는데 고작 불안함 때문에 저를 가둔다고요? 저를 실오라기만큼도 믿지 않으시는군요· 저는 도대체 뭐였던 건가요!”
“입 닥쳐라!”
황제가 호통을 쳤다·
이미 딸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래 오로라는 이러한 표정을 이미 접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죄 없는 관료들을 처분할 때마다 짓던 표정이었다·
“큭····”
오로라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네 혈통을 생각하여 기꺼이 내치지 않고 경과를 살피겠다는데 어찌 그리 철없는 소리만 내뱉을 수 있느냐! 이 우둔하고 한심한 것아!”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로 변해 심장에 박힌다·
매번 아버지를 위한 화살이 되었건만 그는 기어코 오로라의 심장에도 화살을 꽂아 넣었다·
“첫째가 감정을 잃은 것도 막내가 쓰러진 것도 전부 네 눈과 입 때문이다! 내가 모를 줄 알았느냐!”
병사들이 억센 손으로 오로라의 양 팔을 붙잡았다· 조그만 소녀의 몸은 허공에 들려있는 채였다·
“킥···· 하하하····”
오로라는 계속해서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남들에게 없는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순간 이미 그때부터 타인을 이해할 수 없고 자신도 이해받을 수 없었다· 감정의 교류 같은 건 허상에 불과했다·
“하하 하하하하····”
겉껍데기에 불과한 애정은 이제 필요하지 않았다· 분노를 제외한 감정은 인간을 나약하게만 할 뿐이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스스로가 우스웠다·
한낱 도구로 전락하여 부려졌던 자신의 꼴이 추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얻을 수 없는 것을 갈구한 본인은 한심한 몽상가와 다를 바 없었다·
“8년 뒤에 뵐게요· 아바마마·”
그 말을 끝으로 어두컴컴한 지하에 처박혔다·
정확히 8년·
소녀가 지하에서 보낸 기간이었다·
◈
현재 레헬른 언덕·
“예·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별이 반짝이는 늦은 밤 우리는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은 채다· 경계를 위해 잠들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양상이 되었다·
가만히 듣던 트릭시가 물었다·
“지하에서는 어떻게 나올 수 있었던 거야·”
“그건····”
유시아가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황후께서는 급사하셨고 황제 역시 뇌사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건 아는데 첫째 황녀가 우선 아니야?”
“첫째 황녀는 그냥 없다고 생각해라·”
나무 둥치에 기대고 있던 스칼렛이 끼어들었다·
“첫째 황녀에겐 감정이라는 게 없다· 애초에 인간이라고 부르기에도 모호한 존재야·”
“예· 스칼렛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유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친인척들은 모조리 숙청당해 죽은 상황이었고 셋째 황녀조차도 식물인간이었으니···· 적통이라 할만한 것이 오로라 황녀밖에 없었습니다·”
트릭시는 여전히 의문이 남은 듯했다·
“막상 지상에 올라와도 반대가 많았을 텐데·”
“그걸 전부 꺾어버린 것이죠·”
“꺾어?”
“예· 오로라 황녀께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올라오셨다고 합니다· 정적은 모조리 제거하고 오로지 충신만을 곁에 두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입지를 다져나갔으니까요·”
“8년이면···· 그럴 만도 한가·”
트릭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그런데 그런 정보는 다 어디서 구한거야?·”
“저 저 말입니까?”
유시아가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
“사전 조사는 필수 아니겠습니까· 수접제에 참여하는 기념으로 이것저것 찾아봤습니다· 아주 최근에 풀린 정보라고는 하더군요····”
“흐음·”
다행히 트릭시는 그 이상을 캐묻지 않았다·
나는 그때쯤 탁 소리가 나게 읽던 책을 덮었다· 모닥불 앞에 의자를 연성해내서 앉은 채였다·
“평범한 이야기군·”
특출나다는 건 원래 외로움을 동반한다·
오로라는 심지어 특정 분야에서 특출난 것이 아니라 아예 미래를 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감당해야 할 외로움의 크기가 크기는 했을 터·
공감과 연민을 품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조금 짐작은 되었다·
어둠뿐이던 삶이 여명을 갈구하는 것·
역시 내게는 평범한 이야기에 불과했다·
나는 차분하게 다음 지시를 내렸다·
“너희는 수면을 취해라· 경계는 홀로 하지·”
그러나 트릭시도 유시아도 곧바로 그 말에 따르지 않았다· 대신 걱정된다는 듯한 눈을 할 뿐이었다·
“플란 경 저희 나비는 어떡합니까?”
유시아가 걱정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에 어린 염려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오늘 무려 8마리의 여명 나비를 마주쳤고 한 마리도 빠짐없이 놓쳐버렸으니까·
하지만·
“잘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렇게만 대답할 뿐이었다·
“내일부터는 기척도 숨기지 마라· 오히려 레헬른 언덕의 모든 나비를 쫓아낼 것이다·”
“예?”
“그게 나비를 잡는 길이다· 나머진 묻지 말도록·”
여명 나비와 이전 세계 사이에는 분명 연관성이 존재한다· 어쩌면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것이 단순한 기현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겠지·
그러나 지금 가장 최우선적인 것은····
나는 고개를 들어 결계를 응시했다·
이전보다는 훨씬 연해진 듯한 그 결계를·
“내일부터는 살아남을 걱정이나 해라·”
◈
이른 아침·
오로라는 온통 식은땀에 젖은 몸을 침상에서 들어 올렸다· 팔로 이마를 훑어보니 엄청나다· 비를 맞았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후우····”
헐떡이는 호흡은 고귀하지 못하다· 그녀는 우선 호흡부터 차분하게 골랐다·
어린 시절의 꿈을 꾸었다·
밖이 낮인지 어둠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던 아무 소리도 존재하지 않고 늘 생각에 잠겨있고 잠만을 자다가 식사가 들어오면 해야 했던·
“하····”
오로라는 자신을 비웃었다·
“너는 아직도 그때를 두려워하느냐····”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건 저주였다·
어릴 적 오로라를 마주치는 이들의 감상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무언가를 들킬까 봐 오로라를 두려워했고 매번 분노로 변모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모두 오로라를 두려워하고 있었으며 머리를 조아렸으며 명예와 권력을 위해서라도 충성했다·
“아니·”
아직 ‘모두’라고 할 수는 없을까· 예외가 보란 듯이 두 눈을 뜨고 활동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플란·
오로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내를 떠올리자 머릿속에서 왜인지 모를 이물감이 느껴졌다· 본능적인 방어기제였다·
절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어둡고 춥지 않았는가·
같은 피를 타고난 혈육조차도 오로라를 내팽개쳤다· 인간을 믿으면 그리된다· 힘이 주어졌다면 타인을 지배하는 것만이 숙명이었다·
그러니까·
“반·”
오로라가 낮은 음색으로 읊조렸다· 얼마 뒤 그녀의 호위 기사가 각을 맞추어 그녀 앞에 당도했다·
“수접제는 여전히 진행 중인가·”
“예· 다들 여명 나비를 열심히 쫓고있습니다·”
“잡을 수 없을 것이니라· 애초에 여명 나비는 전부를 불러 모으기 위한 핑계에 불과해·”
제아무리 훌륭하다 한들 오로라에게 굴종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었다· 꺾이지 않는 이를 꺾어두고 길들이는 것이 오로라의 길이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테니까·
오로라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결계는 현재 두 가지가 있을 테지·”
“예· 혈귀를 막는 결계가 있고 수접제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경계가 있습니다·”
“혈귀를 막는 결계를 제거해라·”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예···· 제거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애초부터 여명 나비를 잡을 생각은 없었다·
꺾이지 않는 이를 굴종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로라 나름의 ‘여명 나비’일 터·
오로라의 눈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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