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4
오로라는 상황을 침착하게 살피려 애썼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검붉은 결계가 생성됨과 동시에 사방에서 폭발이 발생하더니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전쟁터로 변해버렸으니까·
챙─! 챙─!
혈견의 송곳니와 병장기가 부딪히며 커다란 소리를 낸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오로라를 통째로 덮쳤다·
삐이─·
엄청난 이명과 함께 고통이 급습했다·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감각 머리가 터져버릴 듯한 감각· 이는 오로라의 재능이 지닌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주변인들의 미래가 변화하는 족족 실시간으로 그 결괏값이 오로라의 눈앞에서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아주 사소한 변화라도 오로라는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오로라는 현재 머리를 붙잡고 신음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빌어처먹을····”
느껴지는 것은 온통 불쾌함이었다·
오로라가 관측하는 미래에 예외는 존재하지 않았다· 병사들의 미래 또한 계속해서 살피고 있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사전에 인지했어야만 옳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오로라는 줄곧 병사들의 부정적인 미래를 관측하지 못했다·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이 능력이 제대로 발동하지 않은 적은 없었으니까·
유례가 없었던 일에 두통이 더 심해지는 듯했다·
오로라와 병사들을 가둔 검붉은 경계는 그다지 넓지 못했다· 기껏해야 마법 학부에 있는 경기장의 크기 안에서 병사들의 배가 하나둘 갈라지며 혈견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황녀님이 우선이다!”
“뒤로 물러나십시오!”
물론 병사들은 충성을 다했다· 황녀인 자신을 위해 기꺼이 몸을 내던지고 또 적과 맞서 싸웠다· 이들이 없었다면 분명 위험에 빠졌으리라·
오로라는 지금이라도 그들의 미래를 확실하게 관측하고 싶었다· 이 사투의 끝은 생존인가 사망인가· 하나 그것조차 점점 검게 물들어 보이지 않게 된다·
“보여라····”
오로라가 왼쪽 눈에 손을 얹은 뒤 중얼거렸다· 두통이 극심하여 이제 왼쪽 눈은 뜨는 것조차도 불가했다·
생각해보면 그녀의 삶에는 ‘미래를 짐작해본다’는 개념이 부재했다·
매번 보였기에 매번 그것을 토대로 판단했다·
항상 그래왔었는데·
“보이란 말이다····”
기도하듯 같은 말을 중얼거리던 그녀의 뇌리에 문득 어떤 이의 잔상이 떠올랐다· 감히 이곳까지 오로라를 행차하게 만든 건방진 인물 말이다·
마법사 플란·
돌이켜보면 그가 엮인 늘 관측되지 않았다· 애초에 오로라가 플란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이유 역시 그 때문 아니었나·
“그렇다면····”
현재 오로라가 어떠한 미래도 관측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상황의 끝에도 결국 플란이 있기 때문이란 말인가·
처음에는 잠깐 떠오른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그 추측은 힘을 얻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
그 짧은 사실만으로도 오로라는 복잡한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품속에서 손거울을 꺼내 살폈지만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놈이 기어코 자신의 미래에도 보란 듯이 있다는 말일 터·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 또 다른 생각이 뇌리에서 치솟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능력 없이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숨이 턱 막혔다·
추락한 천재는 일반인보다도 밑인 법이다· 평범한 이들은 미래를 짐작하며 사는 것에 익숙하겠지만 오로라에는 그러한 경험이 아예 전무했다·
낭패였다·
지하를 벗어난 뒤 오로라는 타인을 신뢰하지 않았다· 미래는 거짓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그것을 토대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게 된다면 불투명한 미래를 오로지 예측하며 나아가야 한다면····
갑작스레 팔과 다리를 잃게 되더라도 이만큼 어색하고 불편하지는 않으리라·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 오로라를 끄집어낸 것은 반의 외침이었다·
“황녀님 당장 이동하셔야 합니다!”
반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다급하고 진중했다· 오로라의 질문에 쩔쩔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로라는 우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검붉은 결계로 인해 활동 반경이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그런데도 최적의 위치는 있으리라·
“최대한 결계와 가까운 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결계가 해독되는 즉시 아군과 조우할 수 있을 겁니다·”
“····”
오로라의 시선이 한순간 결계 너머 레헬른 언덕의 중심부로 향했다· 아직 수접제의 참가자들이 전부 그곳에 있었다·
“황녀님!”
하지만 반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황녀님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제국의 백성들은 주인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어서···!”
외침을 듣는 주변 병사들의 얼굴도 다르지 않았다· 모두 오로라에게 충성하는 이들이었기에 그들에게 있어 둘째 황녀의 목숨 외에 중요한 것은 없었다·
크르르르─!
그떄 혈견 한 마리가 오로라의 목을 노리고 날카롭게 달려들었다· 반이 재빠르게 그것을 막아내고 또다시 여기저기서 마구 찔리고 피가 튀긴다·
수접제를 연 것도 자신 보란 듯이 결계를 해제한 것도 자신 미래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도 자신이었다·
그러나 어느 병사 하나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게 너무나도 혼란스러워서· 당혹감 공포···· 느끼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것들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
“빌어 처먹을····”
오로라는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
플란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혈견들은 표현 그대로 ‘해체’되었다· 플란의 마법은 일개 괴수를 상대로 자비를 베풀지 않았고 적들은 공포를 삼켜 회복할 틈도 없이 가루가 되었다·
황실의 인물들을 가둔 결계 근처 이번에 플란의 도움을 받은 이들은 엘프들이었다· 그들은 사슴 같은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플란을 바라보았다·
사내의 서늘한 눈빛이 엘프들에게로 향했다·
“너희들은 뭐지·”
“···읏·”
엘프 마법사 셋은 어깨를 움찔 떨었다·
“우리는 엘프야· 엘프! 혈귀가 아니라!”
그리고 다급하게 자신들의 종을 설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플란의 마법에 휘말린다면 자신들조차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크르르르─·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급박하다·
황실 인물들을 가둔 결계 안으로부터 나오는 공포로 인해 혈견들의 수는 지금도 늘어나는 중이었다·
“····”
엘프 중 하나는 일어나서 지팡이를 쥐었다· 하지만 모습이 멀쩡하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물리고 긁힌 부위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몰골이었다·
날카로운 눈매의 엘프· 플란은 어쩐지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테리· 그런 이름이었나·”
오리엔테이션 직후 찾아와서 사과를 요구했던 엘프· 영 예의가 없었던 엘프· 바로 그녀였다·
플란은 짧게만 말했다·
“여길 떠나라· 방해되니까·”
테리는 우물쭈물했지만 결국 납득했다· 상황이 상황이었고 플란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뭐라고 토를 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
테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선 그때· 다른 엘프 하나가 플란에게 다가와서 작게 속삭였다·
“이해해주세요· 테리 쟤 페리엔님한테 진짜 온종일 혼났거든요· 진짜 아주 제대로 온종일····”
페리엔이라면 입에 곰방대를 물고 다니는 그 엘프였을 터· 그러고 보니 페리엔에게 테리의 이야기했었지·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엘프들을 보낸 뒤·
플란은 황실의 인물들을 가둔 결계를 향해 또 한 번 나아갔다· 이제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붉은 기운이 선명하게 일었다· 결계를 지키듯 인간의 형태를 지닌 혈귀 하나가 손에 목줄을 쥐고 나타났다·
“드디어 또 만났네~”
소녀의 형상을 지닌 녀석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었다· 무도회장에서 마주쳤던 그 녀석이었다·
“너 내가 그때 분명히 말했지? 두고 보자고·”
소녀는 비아냥대며 목줄을 휙휙 잡아당겼다· 목줄이 채워진 것은 웬 기괴한 사내였는데 공포의 기운을 삼킨 뒤 입으로 혈견을 뱉어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분신을 사용하지 않고 본체로 왔어·”
소녀 혈귀가 웃었다·
“그러니까 저번처럼 되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야· 무슨 방법을 동원해도 나를 죽일 수는 없다고·”
그녀의 말대로 현재 눈앞에 있는 본체는 이전에 마주쳤던 분신보다 훨씬 대단한 듯 보였다·
불사의 존재처럼 여겨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생명력이었다· 다시 말해 흔히 칭하는 ‘죽음’의 수준으로는 저 혈귀를 쓰러트릴 수 없었다·
그리고 당사자도 그 사실을 제대로 아는 듯했다·
“죽일 수 없다라·”
플란이 조용히 정신을 집중했다·
다음 순간·
펑─!
소녀 혈귀의 머리통이 폭발했다· 머리를 잃은 몸이 비틀거리는 앞에 두고서 사내는 중얼거렸었다·
“너무 염려할 것 없다·”
이윽고 그에게서 안광이 번뜩거린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해줄 수 있으니까·”
애당초 오로라와의 만남만이 그의 관심사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주인공· 카플란의 일러스트 러프가 나왔습니다! 공지에 올려두었으니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전적으로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zakuti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행복한 일만 생기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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