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9
“하·”
여기저기 흉하게 구멍 나버린 신체를 복원하며 더스크는 웃음이 뒤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확실히 플란은 예상을 벗어나는 인간이었다·
“복구에 생명력을 쓰게 만드는군요·”
인간이 마법을 발현하기 위해 마나를 소모하듯 혈귀들은 생명력을 사용한다· 더스크는 본래 복구보다는 위장에 생명력을 할애하는 성향이었다·
그렇기에 플란이 흥미로웠다·
더스크가 복구에 생명력을 소모하게 만든다는 건 플란이 강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여타 인간들과 유사한 점을 지니지도 않았다·
감정은 거세당한 듯 없었고 굳이 따지자면 인간보다는 혈귀를 마주한 느낌이다· 요컨대 인재였다·
다만·
‘동기화가 되어있을 텐데?’
오로라의 모습을 하고있는데 어째서 황녀는 멀쩡한가· 단순하고도 큰 의문이었다만 이내 더스크는 그것을 떨쳐버렸다·
회의 당시 소녀 혈귀의 말이 떠올라서였다·
─아니 인간을 상대로 어떻게 방심을 안 해?
더스크는 조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저도 방심해버린 모양이군요·”
오차가 존재한다면 본인 탓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길고 긴 세월간 「동기화」가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으니 다시 한 번 정교한 흑마법을 발현한다·
콰앙─!
적어도 머리가 폭발할 때까지는 그리 생각했다·
“····”
안구를 복구한 뒤 더스크는 미간을 좁혔다· 역시 이번에도 오로라의 신체가 멀쩡했기 때문이다·
쾅─! 콰앙─!
더스크의 신체 폭발은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사실 위력 자체는 대단하지 않았다· 말단 부위만을 살짝씩 터뜨리는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더스크의 심기는 더더욱 불편해져갔다·
의미는 명확했다·
한번 또 한 번·
더스크에게 플란은 동기화가 되어있지 않음을 깨달으라는 듯 약소한 폭발만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더스크는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반격이고 방어고 전부 제쳐둔 뒤 동기화의 여부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동기화에는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
“왜?”
시선을 내려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폭발하여 사라진 손이 보인다· 원래라면 본체인 황녀의 몸도 폭발했어야만 정상이었다·
“간파했단 말입니까?”
황당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눈 앞에 있는 사내는 「동기화」의 원리를 꿰뚫어 오로지 더스크에게만 유효타를 입히고 있는것이다·
“분명 말했을 텐데· 얼굴에 쓰여있다고·”
플란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네 하찮은 마법을 포함해서 내뱉은 말이었다·”
더스크는 문득 자신의 이마에 무언가가 맺히는 것을 느꼈다· 땀이었다· 이 신체가 실로 오랜만에 ‘긴장’이라는 감각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인정하겠습니다· 제가 너무 쉽게만 가려 했군요·”
더스크가 오묘한 눈으로 플란을 응시했다· 이내 혈귀의 신체가 뒤틀리며 또 한 번 새로운 모습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오래 지켜봐왔는지 얼마나 깊게 탐구했는지 이 애정과 관심을···! 정성을···! 지금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뼈가 재조립되고 근육이 찢어졌다 이어붙는 광경은 재창조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플란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내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칠흑처럼 검은 장발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 스칼렛을 얼핏 닮은 것 같으면서도 훨씬 강인한 여기사·
플란이 외형의 정체를 차분히 짐작하던 그때· 바닥으로부터 희미한 목소리가 올라왔다·
“작열의 기사···?”
목소리의 주인은 오로라였다·
쓰러진 채 자신의 몸조차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오로라는 눈을 부릅뜨고 중얼거렸다·
“부모 부모의 외형을 하다니· 네놈이 정녕 그따위 방법으로···!”
“하하하 하하!”
황녀의 생경한 반응을 보자마자 더스크는 웃음을 터뜨렸다· 누구라도 자신을 창조해낸 존재에게 존중을 품는 법이었고 인간은 그러한 점이 특히 강했다·
빠악─!
“욱···!”
그리고 그 머리를 보기좋게 차버렸다·
“입 다무십시오· 제가 치졸한 수를 쓰는 게 아니니까· 인간이 심각할 정도로 나약한 것 아니겠습니까?”
각기 개성과 성향의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큰 틀로 놓고 보면 다르지 않다· 그게 인간 아니겠는가·
심지어 더스크를 향해 쇄도하던 공격들이 지금은 아예 멎은 상태다· 효과가 있다는 증거일 터· 그는 서서히 여유를 되찾아갔다·
“플란 이건 ‘힘든 과정’의 맛보기일 뿐입니다· 인간을 향한 제 연구는 아주 오묘하고도 깊어요·”
안아주겠다는 것처럼 더스크가 자애로운 표정으로 양 팔을 활짝 벌렸다·
“어떻습니까? 그냥 달콤한 결과로 넘어가는 것은·”
“더스크·”
여전히 서늘한 음색·
그 목소리에 담겨있는 감정도 의중도 읽어낼 수가 없다· 그것이 아마 ‘분노’일 것이라고 더스크는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짐작이 이내 산산조각난다·
플란은 더스크를 비웃고 있었다·
“생각해냈다는 게· 고작····”
동시에 더스크의 몸이 휘청였다·
“···!”
망망대해처럼 넓은 마나의 흐름을 인지했을 때쯤· 자신의 배에는 이미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다·
“쿨럭─!”
다시 삼킬 수도 없을 만큼 많은 혈액을 토해낸다·
인간은 뇌리에 ‘소중한 존재’로 각인되어있는 이를 처치하며 죄의식과 망설임을 느낄 터인데 예외라는 건 존재할 수 없을 터인데· 더스크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득한 이해력을 동원해야만 했다·
“그럴 리가 이 이렇게까지 망설임 없이···?”
“재미가 없다· 더스크·”
서걱─
짧은 소리와 함께 더스크의 목이 베어진다·
하늘 높이 붕 떠버린 더스크의 머리를 오로라는 얼떨떨한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
더스크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외형을 바꾸었다· 부모 친구 하녀장···· 아마 신체의 뇌리에 각인된 이들을 마구잡이로 흉내내는 듯 했다·
하지만 무엇 하나 위협적이지 못했다·
내가 유대를 느끼는 인간은 그 중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란 이러하다·
“거울 세계·”
문득 더스크가 중얼거렸다·
···동시에 세상이 일변했다·
온 세상이 거울로 젖어들었다·
쿠구구구─
천지를 뒤흔드는 충격· 바닥도 천장도 벽면도 거울로 이루어져있는 어지로운 미로·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모든 사물이 거울에 잡아먹히며 잦아든다·
소리따위 존재하지 않는 적막·
눈 앞에 또다른 내가 서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짧게 중얼거렸다·
“고유 영역인가·”
고유 영역이라면 나름 익숙했다· 마이에브의 「화중 세계」를 통해 경험한 바가 있었으니·
그러나 더스크가 나의 모습을 하더라도 염려되지는 않았다· 애초에 우리는 동기화 상태가 아니다· 아니 동기화 자체가 속임수에 불과하다·
상대의 외형을 본뜬 뒤 기척을 아예 숨긴 공격으로 자신과 대상의 신체에 동시에 상해를 입힌다· 바꾸어 말해 초고난도의 환혹인 셈·
정신력이라면 이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너도 알 텐데· 결코 나를 흉내낼 수는 없다·”
따라서 나는 거울에 못을 박듯 말했다·
“동기화를 외치지만 흉내에 불과하지· 정작 본질에는 한 순간도 다가서지 못한 가짜가 네 정체성 아닌가·”
내 발언에 더스크는 격노했다· 거울 너머로부터 혈귀 특유의 검붉은 마나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
그는 한동안 나를 응시하더니·
“가짜와 진짜는 저로 인해 새로 정해집니다·”
그 말을 끝으로 거울 세계가 진동했다·
콰과과과─!
수많은 거울면이 나를 비추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가 서서히 공간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 정신을 통째로 잠식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직접 당신이 되어 공주님을 찾아뵙지요·”
거울면의 스스로가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있었던 더스크가 흉내냈던 인물들과 관련하여 기억들이 허공을 부유한다·
“플란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현실과 타협한다면 당신은 진짜로 남을 수 있단 말입니다·”
더스크가 헤집어놓은 생각들을 갈무리한다·
내 감정과 기억들을 지배하려는 시도를 단호히 쳐내며 나는 중얼거렸다·
“과연 할 수 있겠나·”
더스크는 목소리를 내어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간 전체의 진동이 커졌다· 녀석에게는 적지 않은 도발이었던 모양이다·
하나 그럴수록 나는 차분함을 찾았다·
“잠식은 커녕 흉내조차 불가능할 것인데·”
“···!”
거울 속에 있는 더스크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명백히 동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을 돌리려는 녀석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내 눈을 마주보고 말해라· 더스크·”
같잖은 간섭은 애들 장난에 불과하다·
완전무결한 마나가 나의 체내를 달려 마법을 펼친다· 나는 거울 세계를 천천히 내 서재로 바꾸어 나갔다·
상대의 공간을 내 공간으로 바꾸는 단순한 기적을 구현한다·
나는 거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말하란 말이다·”
“싫 싫어· 싫어· 싫어─!”
녀석이 도리어 내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나를 복제하겠다던 오만한 계획이 틀어진 모양이었다·
“네게는 정녕 본체가 될 자격이 있는가·”
호기심도 있었다·
정말 그럴 자신이 있었던 것인지·
“으─! 으으으으─!”
거울에 쩌저적 금이 가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본질이 없음을 탓해라·”
거미줄같은 금이 생기기 시작하자 비춰지는 가짜들의 모습도 많아진다· 하나같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몇 년을 살았건 의미없는 생이었음을 기억해라·”
쨍그랑─!
결국 거울은 박살나버렸다·
아마 복원되는 일도 없을 터였다·
더스크는 자아의 주도권 싸움에서 패배했다·
스스스─
그의 고유 영역이 흩어져버린 후 나는 문득 나에게로 향하는 진한 시선을 느꼈다·
턱 끝에 맺혀있는 눈물 방울 부어있는 눈 그리고 헐떡이는 숨· 절대 황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몰골로·
오로라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뒤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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