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1
강점만을 가진 인간도 존재하는가·
물론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르나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은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 강점을 기른다·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오로라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오로라는 어릴 적부터 지옥과도 같은 나날을 보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보이는 남의 미래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미래란 세세한 차이는 있어도 멀리서 보면 결국 비슷했다·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부터 온갖 장면들을 보아왔으니 정신이 피폐해져 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남들에게 미움받는다는 미래라는 게 참 두려웠다·
되갚아주겠다는 원한을 품기에는 소녀가 너무나도 어렸고 ‘어떻게 해야 예쁨받을 수 있을까’를 자연스레 고민하고 또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녀의 노력을 철저하게 이용했다· 부모부터가 나서서 오로라를 도구처럼 활용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마지막에는 철저하게 버림받게 되었으니 소녀가 인간을 불신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한테 뭐 좀 안 떨어지나?
─그러게· 눈치가 없어· 눈치가····
보이는 미래에는 자신을 향한 뒷이야기가 늘 있었다· 하나하나가 오로라가 인간을 믿지 않는 데에 힘을 실어주는 장면들이었다·
출세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오로라의 핏줄이 목표였다· 미(美)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질투를 품고 많은 남성은 성적인 희롱도 아끼지 않았다·
똑같다·
모두가 똑같았다·
오로라는 ‘예외’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믿지도 않게 되었다· 남들이 볼 수 없는 저 너머의 장면들을 숱하게 관측했기 때문이다·
지하에서 8년을 보낸 뒤에도 오로라는 변했지만 인간은 그대로였다· 외로움을 느낀 적은 있었으나 그들의 모습을 다시 보자마자 경멸이 다시 차올랐다·
그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오로라를 지상으로 꺼낸 이들은 저마다의 목적이 있었을 뿐이다· 한없이 충성하는 이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다른 목표가 있으니 그리 충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로라는 그 ‘목표’를 정해주기로 했다·
─사 살려만 주십시오!
─황녀님! 제발!
그건 바로 ‘생존’ 이었다· 오로라는 그들에게 목숨을 건 공포를 심어주었다· 누구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충성을 바치도록 말이다·
그렇게 살아가던 와중 한 사내를 마주쳤다·
플란 마법사였다·
처음에는 흥미로우면서도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미래가 아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간 어떠한 인간을 마주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았던 적은 없는데·
물론 굳이 볼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늘 그래왔듯 인간에게 ‘예외’는 없었다· 겉으로는 태연해 보여도 필시 속으로는 떨고 있으리라· 뒤에서는 오로라에 관한 험담을 했으리라·
자신의 결정을 의심하지 않았고 근거는 충분했다·
하지만 플란을 향한 관심이 커질수록 더더욱 꺾고 싶어졌다· 일종의 방어기제였다· 꿇지 않는 인간을 보고 있노라면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버리니까·
춥고 어두운 시절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지하실에 웅크리고 있기 싫다· 남들에게 도구처럼 부려지기 싫다· 그런 마음을 되새길 때마다 남의 미래조차 지배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그래서 더더욱 플란을 꺾어놓아야만 했다·
적은 도리어 가까이 두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화병에 꽂아두는 꽃처럼 굴하지 않는 그를 기어코 자신의 곁에 전시해둘 셈이었다·
─당신은 만들어진 인형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레헬른에서 더스크의 말을 들은 순간 오로라의 모든 생각은 새하얗게 지워지고야 말았다·
자신의 태생이 혈귀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인간의 혈통 중에서도 가장 고귀하다 칭해지는 황실의 핏줄을 지녔는데 오로라가 어찌 혈귀일 수 있겠는가·
믿지 않았다· 오로라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모략에 불과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오로라는 멍청하지 않았다· 오로라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정황들이 하나둘 말해주었다·
호위 기사 반은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때 이후 자기 송곳니가 유난히 날카로워진 것 같았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이었다· 사소한 단서 하나하나가 그녀가 혈귀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다만 오로라가 납득하지 못할 뿐이었다·
이미 너무나도 멀리 와버렸다·
태생이 혈귀였다면 자신의 고생은 도대체 무엇으로 보상받아야 하는가·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인간에도 속할 수 없고 혈귀에도 속할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만큼 저주받은 태생은 없었다·
“···플란·”
그때 오로라를 구해낸 것은 플란이었다·
그는 오로라에게 화를 낼 자격이 있었다· 못난 황녀의 잘못을 꾸짖으며 조목조목 따져도 절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사내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약속이 있는 한·
약속을 지켜달라는 한 마디· 고작 그게 끝이었다·
플란의 말과 눈빛에는 한 치의 거짓도 담겨있지 않았다· 오로라는 상식을 건너뛰어 본능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심이라는 것을·
“그것이···· 현재····”
굳이 미래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확신할 수 있는 현재가 있구나· 오로라는 그제야 깨달았다·
“또한 이것이···· 여명(黎明)····”
한낱 나비의 날개에 묻어있는 것이 아니며 세상 전체를 비추는 것이 아니며 오직 오로라만을 따스하게 감싸고 도는 새벽빛· 여명·
자신이 그토록 찾아다녔던 빛이라는 게 이런 것일지 모르겠다고· 오로라는 저도 모르게 그리 생각했다·
그 따스함만큼은 아직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덜컹─!
마차가 한 차례 심하게 요동쳤다· 오로라가 목적지까지 향하는 길을 워낙 재촉한 탓이다·
“더 빨리···· 더 빠르게는 안 되겠느냐?”
황녀는 마부를 재촉했다·
더스크를 만난 후 미래를 보는 능력이 사라졌다· 하지만 아마 있었더라도 수도 없이 되물었을 것이다· 현재 그녀는 시간을 1초라도 단축하고 싶었다·
유리 파편처럼 날카로운 후회가 그녀의 마음을 헤집어놓았다·
조금만 덜 오만했더라면 조금만 더 평범했더라면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속도를 더 높여보거라· 제발·”
오로라의 목소리는 이미 명령조가 아니었다· 그녀는 일개 마부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더 이상 늦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황녀님 죄송합니다· 이 이상으로 속도를 올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그럼 다른 길은· 더 빠른 길은 없느냐?”
“있지만 워낙 좁아서 마차가 들어갈 수는····”
마부가 그리 대답한 찰나 오로라는 무작정 문을 연 뒤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여파는 컸다· 태풍이라도 맞은 듯 흙바닥을 몇차례나 굴러야 했으니까·
“황녀님! 황녀님─!”
뒤에서 마부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오로라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에게는 현재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 있었고 그건 신체적인 괴로움이 결코 아니었다·
“가야 하느니라····”
오로라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멍한 표정으로 험한 길을 직접 내달리기 시작했다·
오로라가 쓰러져있었던 일주일은 어마어마한 간극이었다· 제국의 백성들 사이에서 황녀가 쓰러진 것은 당연히 큰일이었기에 플란이 현재 입은 피해는 막대하리라·
모든 것이 오로라의 책임이었다·
황실의 인물들이 목숨을 잃은 것도 플란이 피해를 본 것도 혈귀가 나타난 것도· 전부 오로라 탓이었다·
“가야 하느니라···· 꼭 가야 해····”
그래서 오로라는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본인의 부족함을 탓하기 위해서 또 해야 할 일을 반드시 잊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오로라가 도착한 곳은 프리츠의 영지·
마탑의 건설이 예정되었던 그 장소였다·
◈
오로라는 프리츠의 영지를 바쁘게 돌아다녔다·
오로라를 알아본 이들은 맨발에 상처투성이인 오로라를 보고 기절할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고 담담한 무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래 예지가 발동되지 않는 지금도 느낄 수 있었다· 이 공간에 있는 모두가 오로라를 고깝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
하지만 지금의 오로라에게 그 무례를 탓할 자격은 없었다·
“황녀님 아니에요···?”
“놔둬· 황녀든 뭐든····”
“황녀라 좋으시겠어· 여긴 다 망했는데·”
보이는 게 있어도 보이지 않는 척했고 들리는 게 있어도 들리지 않는 척했다· 오로라가 반성했건 그렇지 않았건 엄청난 적의가 그림자처럼 달라붙었다·
“····”
오로라는 도망치듯 걸었다·
울고 싶어도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았기에 우선 프리츠 영지의 관리자를 만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황녀는 겨우겨우 프리츠의 저택에 들어섰다·
올 것을 알았다는 듯 누군가가 대기 중이었다·
뒤돌아있는 여성이었지만 가주인 것은 확실했다· 프리츠의 상징인 재스민 그것이 새겨진 견장을 보란 듯이 두르고 있었으니까·
트릭시 폰 프리츠·
“이제야 방문하셨군요·”
트릭시는 천천히 오로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푸른 화염의 주인인 그녀는·
“···기다렸습니다· 무려 일주일을·”
얼음의 주인이라 해도 믿을 만큼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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