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6
플란·
오로라는 하녀들의 속삭임을 들으며 몸 위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것을 알 턱이 없는 하녀들은 바쁘게 이야기를 이어갈 뿐이었다·
“하긴···· 당연한 일이네·”
“그렇지? 상황이 상황이잖아·”
오로라는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어쩔 줄 모르는 마음에 엄지손톱을 짓씹었지만 그녀가 감내하기 힘든 풍경들이 이후로도 이어졌다·
마법 학부의 교수들은 물론이고 총장인 코네트조차도 프리츠의 영지를 이따금 방문했다· 그들의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오로라는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방문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굳어있는 메르틸을 매만지면서 한숨을 내쉰다든가 플란에 관한 걱정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비수가 되어 오로라를 찔렀다·
결국 오로라는 언제부턴가 고개를 푹 숙이게 되었다· 타인의 표정을 관측하는 것이 두려워진 탓이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들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드디어···!”
[마탑의 건설에 문제가 전혀 없었음을 뒤늦게 확인했다· 이는 명백히 황실의 실수이며 따라서 책임을 지고 남은 작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하는바····]
드디어 황실로부터 공사를 재개하겠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비록 자신이 아닌 셋째 황녀 유시아가 내린 명령이라 하더라도 오로라는 그저 기뻤다·
공사를 재개할 수 있는 상황과 재개할 수 없는 상황은 차이가 크다· 현장으로 복귀한 플란의 마음이 그래도 조금 풀어지리라·
이는 단순히 오로라의 호들갑이 아니며 실제로도 큰 성과였다· 영지의 가주인 트릭시마저도 안도하는 표정을 지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트릭시의 평정심에는 금이 생겼다· 마음이 급했던 오로라가 자꾸만 재촉한 탓이었다·
“황실의 공문을 확인해 보았느냐?”
“네· 곧바로 작업에 착수할 생각이에요·”
“인력은 충분한가? 새로 들어오는 자재들을 보관할 장소도 필요할 테고 메르틸을 치울 기술이 필요하겠구나· 이건 궁중 마법사를 동원한다면····”
의례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트릭시의 얼굴이 차근차근 싸늘해졌다· 엄밀히 따져보면 트릭시는 이미 황녀에게 많은 것을 양보한 상황이었다·
애초에 플란이 수접제에 참여하게 된 것부터가 오로라의 고집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것까지는 괜찮았다· 어느 상황에서도 플란은 실력을 증명할 사내였으니·
하지만 마법 학부가 마비된 것 마탑의 건설이 중지된 것 플란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 이는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영지민들은 온종일 고생하고 자신은 플란을 기다리며 온종일 애태운다 마법 학부의 생도들은 하루하루 방황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들떠있는 모습을 보니 꾹꾹 눌러두었던 분노가 다시금 차올랐다·
오로라를 투명 인간 취급하고 싶었지만 신분이 황녀라서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심지어 황녀는 종종 눈에 띌 때마다 황폐해진 영지를 매만지며 한숨을 푹 내쉬곤 했다·
트릭시는 어이가 없었다·
···오로라 모두 당신이 벌인 일 아닌가·
매 순간 평정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트릭시조차도 이제는 슬슬 한계였다· 플란 가르침 씨의 열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그만큼의 화가 치밀었다·
결국 트릭시의 이마에 핏줄이 세로로 섰다·
한편 오로라는 트릭시의 표정을 전혀 살피지 못한 채로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보아하니 저쪽에 창고 하나를 두면 좋을 것 같구나· 지금 당장 만들기 시작한다면 오늘 내로도····”
“···뭐라는 거야·”
서늘한 음색에 오로라의 몸이 굳었다·
오로라는 눈동자만을 슬쩍 굴려서 트릭시를 바라보았다· 눈빛에 당혹감이 잔뜩 묻은 채였다·
‘뭐라는 거야?’
오로라의 당혹감은 더할 나위 없이 컸다· 트릭시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중얼거렸기 때문이다· 즉 인지부조화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황녀인 자신을 앞에 두고서 그런 말을 내뱉었을까·
상대방의 지위가 높은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막말을 내뱉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상대가 죽을 만큼 밉거나 신분조차 망각할 정도로 분노했거나·
하지만 현재의 트릭시는 둘 다였다·
트릭시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데 이제는 훈수까지 두시는군요· 어쩌면 영지를 이렇게 쥐락펴락하는 것이 목표였던 건가요?”
“아니 아니···?”
오로라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상대방이 분노한다면 오로라는 더 분노했다· 대상이 무력을 발휘한다면 더 큰 힘을 발휘하여 꺾었다· 삶을 매 순간 그런 방식으로 살았기에 갑자기 다른 방식을 찾으려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현재에 집중한다는 건 이토록 어려웠다· 오로라가 대처법을 고민하는 사이에도 트릭시의 말은 이어졌다·
“영지의 일에 관여하지 않아 주시면 안 될까요· 솔직히 말해서 다들 황녀님을 불편해하고 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오로라의 마음에 비수처럼 박혀 든다· 오로라는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방금의 발언으로 인해 처벌받게 된다면 기꺼이 받을게요· 그러니까····”
허가를 따내서 좋았던 마음이 순식간에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떠나주시죠· 제발요·”
오로라는 그 한마디가 너무나도 아팠다·
사형선고만큼· 아니 단두대의 날만큼·
“····”
황녀는 자기 가슴을 움켜쥐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서였다·
눈앞의 소녀도 몸을 떨고 있었다· 트릭시 역시 황녀인 자신을 상대하면서 꽤 많이 떨리는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트릭시는 소중한 것을 지키는 충견처럼 물러나지 않았다· 그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오로라는 더더욱 숨이 막혔다·
그래 자신은 플란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불과했다·
“그만하시지요·”
그때 끼어드는 목소리가 하나·
트릭시를 진정시킨 이는 총장 코네트였다·
◈
코네트가 끼어들면서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후우·”
코네트는 손바닥으로 자기 얼굴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하지만 와중에도 트릭시에게 몇 번 시선을 던질 뿐 오로라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그녀가 기묘한 역안을 깜빡이며 말했다·
“트릭시· 가주로서의 체통이 있을 겁니다·”
“····”
트릭시가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코네트의 얼굴을 마주 보았지만 그 대치는 역시나 길지 못했다·
한숨을 푹푹 내쉬던 트릭시는 결국 오로라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자중할게요·”
그 말을 끝으로 트릭시는 어두운 표정을 머금은 채 자리를 벗어났다· 오로라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코네트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법 학부의 총장이 자신의 편을 들어준 것인가 하는 생각을 아주 잠시 했지만 그러한 기대는 곧 산산이 조각나고야 말았다·
두통과 함께 코네트의 몇몇 미래가 설핏 보인다·
그리고 관측되는 장면들은 하나같이 오로라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것들 뿐이었다·
집무실에서 한숨을 푹 내쉬는 모습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분노를 삭이는 모습 더없이 싸늘한 눈빛으로 황실의 문양을 응시하는 모습····
이번에도 역시 오로라를 향한 원망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법 학부를 마비시킨 장본인이 자신이었으니까·
코네트는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황녀님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예민했던 모양인데 제가 징계하지요·”
달래주는 듯한 말이었지만 황녀는 느꼈다· 이 공간에서 본인은 아이처럼 달램을 받아야만 하는 불순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코네트가 오로라에게 지도 하나를 내밀었다·
“황녀님께서 격식에 맞게 지내실 수 있도록 따로 거처가 마련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불상사를 겪는 일이 없을 거예요·”
오로라는 조용히 지도를 눈으로 살폈다·
이게 진정한 배려가 아니라는 것쯤은 곧장 알아챌 수 있었다· 거처의 위치가 영지의 끄트머리 경계선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
사실상 친절한 축객령이었다· 총장인 코네트가 나서서 오로라를 합법적으로 쫓아내고 있었다·
“영지 내부의 상황이 변화하는 족족 보고문을 작성해서 올릴게요· 우선 그곳에 머무르시면서····”
“알았다·”
수락하는 것만이 오로라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거처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겠느니라·”
결국 오로라는 또다시 혼자였다·
그러자 코네트가 옆의 수행인들을 곁눈질했다·
“하녀장·”
“네· 가주님·”
불린 것은 하녀장 뿐이었지만 하녀 세 명 정도가 추가로 재빠르게 와서 도열했다·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편의도 봐주시고·”
“알겠습니다·”
오로라에게는 그 말이 어떠한 편의를 봐줘서라도 영지를 돌아다니게 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다·
아마 실제로도 그런 의미일 터였다·
하녀들을 붙이는 이유 역시도 자신이 거처에 틀어박히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다음 보고받겠다는 것이겠지·
하녀들이 조심스레 오로라 곁으로 붙었다·
“출발하시죠· 황녀님·”
“그래·”
자신의 곁에는 온통 분노와 거짓뿐이었다·
“총장님 플란이 복귀했습니다···!”
“현재 응접실 상태가 어떻지요·”
플란이 프리츠의 영지로 복귀하는 그 순간·
오로라는 되레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 사실을 인지하니 온 장기가 뒤틀리는 듯했다·
“우욱····”
오로라는 몇 번 비틀거리더니 구웨엑 하는 소리와 함께 속을 게워냈다· 하녀들이 등을 토닥이며 다급하게 중얼거렸지만 이명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
그녀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거처를 향해 걸었다·
“전부 내 탓이다· 나 같은 건···· 나 같은 건 그냥····”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리는 황녀의 눈동자는 탁하게 가라앉아있었다·
마치 이미 죽은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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