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9
프리츠 영지의 임시 대책 회의실·
“이제야 겨우 한시름 놨네····”
베키가 안도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소녀 앞에는 많은 수의 신문이 놓여있었는데 하나같이 마법 학부를 정상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듯 일주일간의 공백은 여러 방면에서 빠르게 수습되었다·
“돌아와서 다행이다· 걱정했잖아·”
“쓸데없는 걱정이다·”
“···쓸데없는 걱정 아니거든?”
베키가 볼을 부풀리면서 볼멘소리를 했다·
“앞으로는 사라지기 전에 말이라도 해줘·”
“그게 꼭 필요한 절차인가·”
“나한테는 필요해· 그것도 엄청·”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았다· 베키도 그제야 만족스러워졌는지 고개를 휙 돌렸다·
“좋아· 이제 그건 됐고 이제 메르틸만 어떻게 할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베키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나는 굳어있는 메르틸 파편을 살폈다·
이 세계는 메르틸을 녹이는 기술이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듯했기에 나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메르틸을 입자 단위로 분해하는 등 세세한 분석에 들어갔다·
“저기 이것 좀 봐줄래?”
트릭시가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일주일 동안 굳어있는 메르틸을 가지고 이것저것 시도해봤어· 연구 결과를 정리해 둔 거야·”
나는 그것을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 녹이는 데에는 실패했어도·”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 듯했다· 메르틸은 어떠한 특성을 지닌 원료인지 딱딱하게 굳으면서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지· 정성이 여실히 느껴질 정도로 요약이 잘 되어있었다·
‘이 정도까지는 접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트릭시의 역량을 기준으로 생각해볼 때 다른 마법사들도 메르틸에 대해 이 정도 접근했을 터·
그렇다면 어느 부분에서 막혔는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어서 가르쳐야 할지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전구에 불이 켜지듯 생각이 떠오른다·
“융해·”
얼음을 녹이듯 메르틸을 녹이는 것·
사실 ‘복구’라는 건 다소 어려운 개념이다· 특정한 물건의 시간을 되감는 것과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르틸을 녹이는 데에만 치중한다면 액체 메르틸을 주조하는 것 따위는 제쳐둔다면····
“오래 걸리더라도 난도 자체는 낮아질 것이다·”
절차가 복잡해지겠지만 난이도가 낮아진다· 메르틸을 어렵게 여기는 이들도 지금보다는 쉽게 접근할 수 있으리라·
“음? 뭐가 오래 걸려· 뭐가 쉽고·”
트릭시가 되물었다·
“복원이 아닌 융해에 집중할 것이다· 절차를 세분화한 다음 필요하지 않은 것은 미루지·”
“융해? 그런 게 가능해?”
“그건 너무 어리석은 질문인데·”
마법사의 세계에서 가능의 여부를 묻는 건 꽤 어리석은 일 아니겠는가· 충분히 실현하게 할 자신이 있었다·
나는 종이를 펼치지도 필기구를 염동으로 띄워 올리지도 않았다· 어쩌면 이 작업은 머릿속으로도 가볍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벌컥─!
그때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마법 학부의 익숙한 얼굴들이 서 있었다· 우선 바이올렛 교수와 편집부의 부장 세피아였다·
재회해서 반갑다거나 하는 인사 따윈 오가지 않았다·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세피아는 어떠한 사족도 없이 본론을 꺼내 들었다·
“플란 지금부터는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꽤 마음에 드는 질문이었다· 내가 결정한다면 말릴 방법이 없고 무엇을 강요해도 통하질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렇게 묻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담담하게 답했다·
“우선 메르틸을 융해시킬 생각이다·”
“융해?”
“그래· 빠르게 치우려면 그게 좋겠지·”
이번에는 옆의 바이올렛이 입을 열었다·
“플란 메르틸의 처리에 관해 고민하고 있었다니 마침 다행이네요· 하지만 조금 문제가 있어요·”
바이올렛이 걱정스레 말을 잇는다·
“기간은 어느 정도를 예상하나요? 일정을 확인해보니 마법 학부가 이상적으로 피해를 수복하기 위해서는 삼 일 내로 전부 치워야 하는데····”
“삼일이라·”
내 계산과는 너무나도 어긋난다·
“하루도 걸리지 않을 것 같다만·”
“음?”
바이올렛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진다· 상황을 일일이 설명할 시간조차 없었기에 나는 지시부터 내렸다·
“영지는 내가 책임지고 정리하지· 다들 아카데미의 일을 처리해주었으면 하는데·”
“좋아요· 집중에 방해가 된다면 돌아가죠·”
하지만 바이올렛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조심스레 한 손을 내민다·
“대신···· 메르틸을 융해시킨다는 술식좀 볼 수 있을까요? 아카데미에 복귀한 후에라도 꼭 확인해보고 싶어서요·”
나는 조용히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다·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은 그녀 역시도 한 명의 마법사였다· 메르틸을 융해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당장 보고 싶겠지·
“····”
하지만 전부 알면서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좀 곤란하군·”
“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했다·
“기록이 없다· 암산이면 충분해서·”
◈
마이에브는 하릴없이 공허를 방황했다· 자유를 되찾고 다시 방문한 이곳은 반갑기도 그렇지 않기도 했다· 정말 아무런 변화도 없었기 때문이다·
간부를 위한 공간 인간계로 치면 매우 큰 저택에 있을 법한 응접실에서 마이에브가 차를 홀짝이던 때· 별안간 간부 두 명이 나타나서 근처에 자리했다·
가면 혈귀 더스트와 소녀 혈귀 릴리에·
둘 다 표정이 밝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두운 것도 아니었다· 얼굴에 맴도는 기운을 굳이 읽어낸다면 의문에 가까운 것 같았다·
마이에브는 그들과 접촉하지 않으려 했지만 릴리에가 아는 체를 하며 입을 열었다·
“야· 마이에브·”
“····”
마이에브는 말없이 릴리에를 돌아보기만 했다· 릴리에는 불퉁한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돌아왔네? 이번에는 두 팔 멀쩡하게·”
“그래·”
“흐으음·”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인사는 어색하게 마무리되었다· 애초에 릴리에는 다른 고민에 푹 빠져있는 상태였다·
“마이에브 너도 알지? 나랑 더스트가 이번에 레헬른 언덕에 다녀온 거·”
“알지·”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마이에브는 최대한 모르는 척을 했다·
“그래서 말인데· 마이에브 내가 너한테 궁금한 게 좀 있거든·”
“뭔데·”
또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거나 시비겠지· 마이에브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너 플란 알지?”
“음? 모르진 않아·”
내심 당황했지만 표정에 변화가 생기지는 않도록 조절했다· 마이에브가 태연하게 되물었다·
“갑자기 그건 왜?”
“아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인간이라서·”
“아아·”
마이에브는 안도했다· 다행히 릴리에는 그녀가 우려하는 부분을 캐묻지는 않았다· 하긴 플란은 정상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지·
“릴리에·”
그때 더스크가 릴리에를 불렀다·
“그래서 플란은 왜 우리를 살려 준겁니까· 이걸 알지 못하면 평생 답답할 것 같은데요·”
“···?”
곁에서 듣던 마이에브의 얼굴이 살짝 벙쪘다·
두 혈귀가 당연히 자력으로 복귀한 것일 줄 알았다· 한데 그런 뒷배경이 있었다니···· 플란의 능력에 놀란 것이 아니라 왜 살려주었는지 마이에브도 궁금했다·
릴리에는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나라고 알겠냐? 진짜 이만큼도 모르겠다고·”
“속셈이 있을 텐데 말입니다····”
“속셈이야 있겠지· 근데 덕분에 우리가 본 이득 하나만큼은 확실해·”
릴리에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더스트 너랑 나중에 한 명이라도 사망했다면 공주님께서는 간부 전원을 대체하셨을 거야· 하지만 이렇게 살아남은 덕분에···· 그건 피한 거지·”
대체·
공주가 온 간부들을 소멸시켜 버린 뒤 새 간부들을 빚어낸다는 것· 콧대 높은 간부들조차도 대체라는 말에는 늘 벌벌 떠는 것이 실상이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싶단 말입니다·”
더스트가 진지한 표정으로 가면을 매만졌다·
“플란 입장에서는 우리를 놓아줘서 볼 이득이 없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 몰라! 다시 마주치면 죽여버릴 거야· 너도 일단은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어· 다른 건 필요 없잖아·”
마이에브는 손에 들린 찻잔만 만지작거렸다·
‘설마···?’
설마 자기가 생각하는 그 이유일까 싶어서·
◈
공허에는 당연히 마이에브의 거처도 있었다·
하나의 요새 하나의 성···· 그렇게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휘황찬란한 건물에서 마이에브는 자신의 업무를 보았다· 이 집무실 역시 자신의 것이었다·
“····”
문득 방에 한가득 쌓여있는 업무의 양을 살폈다· 어림잡아 살피기에도 한 달· 어쩌면 그 이상을 철야로 매달려야만 수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간부·”
마이에브는 문득 자신의 직책을 중얼거렸다·
노예를 벗어나 간부의 자리로 되돌아온 것인데 오히려 더더욱 노예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노예·”
생각해보면 플란과 있을 땐 노예라 불리면서도 정작 그러한 취급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플란을 상대하는 것 외에 딱히 어렵다고 할만한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냈다·
인간계에서 이상한 일을 워낙 많이 겪었더니 머리가 이상해진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자신의 숙명이었고 또 해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언니·”
그 이유가 자신을 소리 내 불렀다·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어린 여동생이 집무실을 찾아온 것이었다·
“언니· 언니이·”
“····”
“언니 언니야 언니야아앙·”
“왜 그래 자꾸·”
“으응 보고시퍼써·”
순수한 목소리에 잠시 생각이 많아졌다·
혈귀와 인간의 성장은 다르다· 인간은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성장하지만 혈귀는 흑마법의 경지가 올라야만 비로소 나이가 찬다·
그 결과 마이에브의 동생 마이비는 아직도 고작 여섯살이었다· 생명력이 늘어나지 않는 희귀병을 앓고있는 탓이다·
마이에브는 동생의 폐기를 막았다· 아니 유보해 두었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 듯 하다·
인간계의 정보를 바치는 조건으로 동생의 목숨을 유보했다· 마이에브만큼 인간계를 잘 유랑하는 혈귀는 없었기에 가능한 계약이었다·
“보고싶을게 뭐가 있다고· 가서 자·”
“나 언니 있어서 살아있는거자나·”
마이비가 눈을 초롱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 몸 안 좋은데 언니가 일해서 살아있는 거자나· 그래서 언니 보고시퍼써·”
“네가 아프긴 뭐가 아파· 쓸데없는 소리를····”
“나도 다 아라· 모르는 거 업써·”
그런데 그때 마이에브의 얼굴이 바짝 굳었다·
일순간에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기운· 정신을 차려보니 비서가 집무실 구석에 서 있었다·
비서가 입을 열자 냉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마이에브· 공주님의 호출이다·”
“····”
마이에브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서를 따라가는 길 등 뒤에서 동생의 시선이 느껴지는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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