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
마법학부 도서관에서 한참 시간을 보낸 후에야 나는 단련실을 방문했다· 어느덧 새벽이었다·
지금 이 신체로는 초급 마법을 열 번정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전부다·
중급 마법은 두 번 정도 사용할 수 있고 고급 마법은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코웃음을 쳤다· 내게는 아주 좋은 계획이 있으니까· 머지않아 해결될 것이다·
단련실에 들어서자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는 공간이 나를 반긴다·
희고도 넓은 이 공간은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자랑처럼 여기는 최첨단 시설로 여기서 꾸준히 훈련한다면 마나의 흐름과 총량 면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라는 식으로 입구에 적혀있었는데 실제로 어떤지는 직접 확인해보아야겠지·
이전 세계에서는 명상을 통해 마나의 총량을 늘려가는 식으로 훈련했었다· 이 공간에서의 훈련이 명상보다는 더 좋은 효율을 가지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우선 마음가는대로 해볼까·’
단련실을 새벽에 방문한 학생은 내가 유일했다· 덕분에 이 공간을 양껏 활용할 수 있으리라·
공간 한 가운데에 툭 솟아올라있는 기둥에 손을 올린 순간 마나와 기둥이 감응한다·
[ 플란· 1학년· ]
[ 훈련 종목을 선택해주세요· ]
[ 난이도를 선택해주세요· ]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정화를 선택했다·
총량을 늘려 난잡한 마나를 잔뜩 모아봐야 악순환의 시작이다· 우선은 정순함의 농도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자 정석이겠지·
지금의 내게는 남는게 시간이니 여유롭다· 허나 게을리하지도 않을 것이다·
“!”
희던 공간이 새하얗게 암전되며 훈련이 시작됐다·
바람처럼 일렁이는 기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내 그것들이 격류처럼 치밀어오르며 나의 마나를 흩뜨려드린다·
“······이런 식인가·”
방식을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이것을 이겨내는 매 순간마다 마나가 정순해질 터·
눈을 감고 격류 속에서도 마나를 다잡기 위해 애썼다· 파고드는 기류의 파도를 방어해내고 나만의 흐름을 생성하여 잇는다·
톱날에 검을 갈듯 기류에 마나를 갈아낸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공간의 훈련 방식은 제법 마음에 들었으나 아직 미천한 자신의 흐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격렬한 기류로 인 해 한 번씩 마나가 튈 때마다 자존심이 죽죽 긁혔다· 한낱 장비따위가····
‘그래도···· 효율이 명상보다는 낫겠군·’
극히 미세하지만 마나의 정순함이 다듬어지는 것이 체감될 정도다·
명상하고 명상하고 또 명상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늘어있던 이전 세계에 비하면 훨씬 빠르다·
‘슬슬 기류에 올라타볼까·’
꺾이지 않는 무언가는 흔히들 장점으로 평가되지만 마나의 정화가 기준점이라면 또 그렇지만은 않다·
목표하는 것은 그 어떤 주변 상황도 품을 수 있는 정순함· 힘을 잃지 않는 맑음· 마법사의 극의·
나는 곧바로 기류에 내 마나를 조금씩 섞어넣었다·
기류가 마나에 파고들던 초반의 형세를 서서히 역전시킨다· 역으로 기류에 마나를 끼워넣는 것이다·
미간을 찡그릴 정도의 고통이 동반되었으나 감내한다·
숱하게 겪어왔던 통증이다· 또한 고통이야말로 훈련이 순항하고 있음의 반증이다·
그리고 충분히 내 마나가 스며들었다는 확신이 서는 순간이 오면·
‘바로 여기다·’
한 번에 흐름을 부려 기류를 집어삼킨다·
이 공간의 모든 것을 나의 ‘흐름’으로 만들어내고 정화하는 기적적인 성취가 이제 코앞이다·
여기부터는 이제 순수히 정신력과 힘의 싸움이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을 쥐어짜낸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견딘다· 그 다음 순간도 고통이고 그 다음의 순간도 고통이지만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터져버릴 것 같은 혈관· 과열되는 신체· 코 끝에서 희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탄내·
몸의 모든 부위가 포기를 부르짖지만 정신은 포기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지 않는다·
‘앞으로 조금이다·’
모든 고통의 순간이 나를 강하게 담금질하고 있었다· 마나의 기운이 정순해진다·
이 과정을 즐길 수는 없겠지만 어차피 피할 수도 없다·
증명·
버티는 것 하나하나가 증명이다· 이 순간에도 마나는 계속해서 정순해지고 있다·
마침내 그 작은 증명이 내 눈앞에 목도하려는 순간····
“······?”
별안간 장비가 정지했다·
나를 옥죄던 고통이 사라진다· 허나 눈앞까지 다가왔던 증명 역시 사라져버렸다·
도대체 왜· 나는 오랜만에 분노를 느낀다·
어느덧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있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원인을 살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
바다를 머금은 듯 푸른 머리카락과 태양처럼 빛나는 순금색의 눈동자· 트릭시였다·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는다·
유려하고 매혹적인 외모로 느꼈을 것 같다· 그녀가 내 훈련을 방해하지만 않았더라면·
“있는지 몰랐어·”
트릭시의 말은 그게 전부였다· 사과는 커녕 미안하다는 기색조차 없다·
나는 내가 이전 생에 이런 녀석들을 마주하면 어떤 행동을 보였었는지 잠시 되짚었다· 그녀를 소멸시키고싶다·
천 번 양보해서 허공에 뒤집어 매달아버리고싶다·
그럴만한 마나가 남아있나 잔량을 체크하는데 돌연 트릭시가 추가로 몇마디 붙였다·
“······너무 피곤했어·”
그제서야 그녀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소녀는 피로한 기색이었다· 눈 밑의 다크서클이 그새 더 짙어져 있었다·
어깨에 멘 가방에는 구겨진 발레복이 삐죽 튀어나와있었고 종이가 수북히 구겨져 박혀있었다·
그 중 한 장이 팔랑거리며 바닥에 떨어진다·
척 보니 아고라 보드에 적힌 문제에 접근하기 위한 필기들이었다· 다른 종이들도 마찬가지겠지·
화가 조금은 누그러든다·
내 문제를 풀기위해 골몰하는 모습이 조금은 기특했으니 말이다·
하아 한숨 한 번 내쉬는 것으로 털어냈다· 그대로 훈련실을 빠져나가려는데·
“너·”
그녀가 나를 불러세웠다·
무시할까 했지만 내가 출제한 문제에 하루종일 시달리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져서 발을 멈췄다·
“술 깼냐고 물었었지· 무슨 뜻이야·”
“그런 말을 했었나·”
“스크롤 관련해서 이야기했던건· 진심이야·”
그녀의 말투는 그저 서늘할 뿐이다· 심지어 질문을 해오면서도 억양에 고저가 없었다·
술에 취했을 땐 안 그랬었는데· 여러모로 적응이 어렵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당연하지·”
“잘했어· 쓸모가 있네·”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워낙 뜬금없는 칭찬이었으니· 사실 칭찬이라기에도 조금 논란이 있다·
트릭시는 특유의 얼음같은 말투로 말을 잇는다·
“덕분에 필기시험을 면제할 기회가 생겼어· 탐험때는 뭐 하려고 하지마· 내가 전부 알아서 할거야·”
그제야 트릭시의 생각을 이해했다·
내 생각에 동의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그저 필기고사를 면제받을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 흡족해하고 있었다·
그것을 뒤따라오는 것은 탐험 과제를 본인 혼자의 기량만으로 승리까지 이끌 수 있다는 자기확신·
그 오만한 태도가 어쩐지 밉지만은 않다· 과거의 내 모습이 얼핏 보여서·
“알아서하지·”
그 말을 끝으로 그녀를 지나쳤다·
“너·”
그런데 그녀가 또 한 번 나를 붙잡는다·
“······상급 난이도로 하고있었네·”
그녀가 검지 끝으로 기둥을 툭 툭 두드렸다· 아직 기둥에 내 정보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너 내가 안 멈췄으면 죽었어· 상급은 학생 난이도가 아니야·”
지금이라도 허공에 매달까· 고민했다·
“너·”
트릭시의 질문이 이어졌다·
“F등급으로 입학했잖아· A등급은 어떻게 받았어·”
“네가 알 바 아니다·”
“말해·”
그냥 무시하려 했으나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있었다· 나름 묘안이었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트릭시를 향해서 품속에 있던 허름한 표지의 트리비아를 꺼냈다·
“경매 게시판에 가르침 경매가 있다· 애용한다·”
“······?”
트릭시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진다·
“너·”
그녀가 재차 나를 불렀지만 무시하고 자리를 떴다· 남은 새벽은 명상으로 수련이다·
◈
다음날 오전·
이 세계에서 활동한 이래 나는 처음으로 감탄했다· 마법학부 상점의 도서구역에서였다·
“이럴 수가·”
『 치유 마법은 어떻게 논란의 중심에 섰는가 』
내 시선을 사로잡은 단 한 권의 책·
가장 화려한 조명과 함께 최상단에 자리잡은 그 도서는 내 흥미를 잡아끌기에는 충분했다·
치유 마법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논란과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장본인이었기에 이전 세계에서도 화두였다·
다만 그 과도기적 단계를 이겨내면서 훌륭하게 자리잡았지·
이 세계에서는 과연 어떠한 논란과 사고들이 발생하고있을까 이전 세계와 유사성을 띌까 어디까지 발전했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의 박동이 빨라진다· 나도 모르게 그 책을 향해서 손을 뻗은 그 순간·
“치유 분야에 관심있어요?”
이제는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연둣빛의 요정이 나타나 코앞을 비행했다·
“아무래도 요새 화제긴하죠~ 시끄럽더라구요·”
그녀가 내 코앞을 비행하는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조그만 몸체의 가슴팍에는 명찰이 붙어있었다·
적혀있는 이름은 실프· 나는 입술을 떼었다·
“화제인 이유가 있나·”
“아직 뭐가 정립이 안 되어있으니 악용하고 난리도 아니잖아요· 정신은 이미 피폐해졌는데 강제로 신체를 치유해서 일 시킨다든가·”
이 세계에서도 논란이 되는 일들은 비슷한 모양이다·
다만 이러한 일들이 이제야 논란이 된 것을 보면 아직 과도기적 단계를 이겨낼 특이점은 오지 않았다는 소리다·
‘그렇다는건·’
이전 세계의 지식을 토대로 이 세계의 치유마법을 빠르게 연구해나간다면 내가 그 특이점을 불러일으켜 크나큰 족적을 남길 수도 있다는 것인가·
그건 꽤 좋은 증명인데· 책을 읽고싶은 마음이 더더욱 커졌다·
“당장 읽고싶다만·”
“아니 근데 반말좀 하지 마시라니까요· 저번부터 왜 이래? 그리고 F등급 학생은 이거 못봐요· 엄청 비싸·”
“지금은 A등급이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에요~?”
나는 실프를 그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실프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제 몸만한 트리비아를 뒤적거린다·
“왜 이러실까~ 마법학부 상점 트리비아는 학생 등급 열람 다 되거든요~ 거짓말하면 바로 들통···· 엥?”
실프가 사뭇 당황해하며 트리비아와 나를 번갈아가며 한 번씩 쳐다보았다· 이내 헛기침을 하며 트리비아를 닫는다·
“진짜 신기하네 이렇게 빠르고 크게 승급하는 학생은 본 적이 없는데· 아무튼 좋아요~ A등급 기준이면 이게 감면해서····”
실프가 그러다 문득 화들짝 놀라했다·
“어 뭐야· 이거 예약이 걸려있었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다른 요정에게 포르르 날아가서 몇마디를 나눈 후 다시 이쪽으로 돌아온다·
“미안해요~ 이게 아직 한 권 밖에 없는건데 예약이 걸려있어요· 프리츠 가문 알죠?”
프리츠· 그 세글자를 두 번 정도 되뇌고 나니 자연스레 트릭시 폰 프리츠의 이름이 떠올랐다·
실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프리츠 가문 몰라요? 검은 유디트 마법은 프리츠· 그런 말 안 들어보셨나?”
“어쨌든 지금 당장 읽어볼 수 없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죠~”
“나중에 다시 방문하지·”
실프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고서 등을 돌렸다·
“아니 다 좋은데 반말좀 하지 말라니까요!”
뒤에서 실프가 소리쳤다·
◈
점심 식사 후 바이올렛의 강의 시간이 찾아왔다· 오늘은 사전에 공지했던 모의 전투가 있을 예정이다·
바이올렛과 레너드 교수는 평소와는 다른 모양의 훈련장으로 학생들을 모았다·
중앙에는 원형의 넓은 전투장이 있고 그 주위를 거대한 관중석이 빙 두른 형태였다·
나는 구석 자리에 앉고 내 옆자리에는 트리비아를 두었다· 관중석이 굉장히 넓으니 옆에는 앉지 말라는 뜻이었다·
“야 플란!”
그런데 누군가가 보기좋게 내 트리비아를 깔고 앉아버렸다· 진한 향수 향· 아니나다를까 베키였다·
“으···· 오늘 모의전투 떨린다· 그렇지?”
“일어나라·”
“응? 아·”
엉덩이에 무언가가 깔려있다는 것을 인지한 베키가 튀어오르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미안해· 몰랐어· 정말 몰랐어·”
나중에 새걸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가 내미는 트리비아를 받아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베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라···· 야 플란· 너도 의외로 트리비아에 글 쓰나봐?”
“그게 무슨 소리지·”
“이거 봐봐·”
그러자 베키가 검지로 표지를 가리킨다· 빗자루 문양에 푸른색의 불이 들어와있었다·
“이렇게 빛나면 알람이 있다는 거거든· 진짜 의외네· 관심도 없는 줄 알았더니·”
오늘 기숙사에 돌아가면 불이 안 들어오도록 개조해야겠다· 나는 그녀에게서 트리비아를 휙 낚아채 내용을 살폈다·
과연 가르침 경매에 드디어 입질이 와있었다·
[ ▶ 혹시 어디까지 가르치시나용? 8ㅅ8 ]
······다소 해괴한 말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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