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3
도서관을 나선 직후 마이에브와 플란은 나란히 마차에 탑승하였다· 다음 행선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보다는 어색한 분위기가 더 문제였다·
원인은 바로····
─오늘은 곤란하다· 소중한 일정이 있어서·
플란이 총장 비서에게 내뱉은 말 때문이었다·
대충 거절하는 정도만 되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토록 단호하게 말해줄 줄은 몰랐다·
─저랑 보내기로 했잖아요·
게다가 본인은 분명 그리 내뱉지 않았던가· 수치스러움으로 뒤늦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
그 결과 좌석의 양 끝에 앉은 둘 사이에서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물론 정확히는 마이에브 혼자서 어색함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에 가까웠다·
플란은 덜컹거리는 마차 내부에서도 흔들림 없는 태도로 독서에 열중했다· 자신은 창밖의 풍경에 집중하려 해도 집중이 잘 안되건만 그래서 얄미웠다·
결국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마이에브였다·
“의외로 마차를 타고 이동하시네요·”
“마차정도면 평범한 탈것이지·”
“그건 그렇죠· 그걸 모르는 게 아니라····”
괜히 말을 붙였다가 더 어색해지고 말았· 어색함에 짓눌리던 마이에브는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마차를 자주 타셨나요? 시간 낭비를 싫어하시잖아요· 가까운 곳이라면 단거리 순간 이동을 사용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확실히 그렇겠지· 하지만 마차를 타는 만큼 너와 공유하는 시간도 길어질 것이다·”
“시간을···· 공유한다고요?”
마이에브가 순수한 호기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간 살아오면서 타인과 시간을 공유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자기 삶과 타인의 삶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네요· 시간은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아니고 공유한다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는데·”
추가로 무언가를 묻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나·
끼익─·
마차가 바퀴가 노면에 긁히는 소리를 내며 정차했다·
“내리지·”
[향긋한 선율]
내리자마자 시야에 들어오는 간판에는 그리 적혀있었다· 대충 살펴보니 각종 주전자와 찻잔을 판매하는 다도방이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네·’
도서관으로 향할 때도 그랬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플란의 의중을 짐작할 수 없었다· 마이에브는 결국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해 물었다·
“여긴 왜 방문하는 건가요?”
“시간을 공유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방금 네 입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네·”
“나는 오늘 너에게 그 개념을 생각해볼 여지를 줄 것이다·”
“····”
플란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마이에브는 오히려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반항심도 품었다· 자신은 무슨 경험을 하든 ‘시간을 타인과 공유한다’는 말을 납득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 알아서 하세요·”
“그럼 따라와라·”
플란이 앞장서서 다도방의 문을 열었다·
이름을 알 수 없지만 굉장히 고급스러운 차향· 그것들이 다양하게 뒤섞여 마이에브의 코를 찔렀다· 인상이 온화해 보이는 직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악기들이 합주를 이루듯 조화로운 인사들이 이어진다· 점장으로 보이는 이가 예의를 갖추어 물었다·
“혹시 예약자분 성함이···?”
“플란이다·”
“하하하 사실 알고 있습니다· 마법 학부의 영웅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리가요· 절차 때문에 부득이하게 물은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환영합니다·”
점장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또한 방문에 감사드립니다· 어떤 풍미의 차를 원하실까요· 집중도를 높여주는 것? 긴장을 풀어주는 편안한 것?”
“됐다·”
플란이 가볍게 점장의 접근을 쳐낸다·
“나는 오늘 차가 아니라 찻잔을 보러 온 것이다·”
“아 찻잔 말씀이십니까?”
“그래· 스스로 살필 수 있으니 보조는 필요 없다·”
“확인했습니다· 가격대 상관없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플란님인데 제가 감히 값을 받을 수는 없죠·”
점장이 손바닥을 조심스레 비볐다·
“대신 저희 딸아이가 마법 학부에 재학 중인데 언제 한 번···· 회장직에 있는 에밀리라는 아이입니다·”
“본 적이 있는 것 같군· 팔에는 완장을 차고 늘 메모장에 무언가를 적고 다녔던 것 같은데·”
“맞습니다! 바로 그 아이에요! 정말 착한─”
점장의 딸 자랑은 이후로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마이에브가 정색하자 그제야 말이 멈추었다·
“흠흠 사족이 길어 죄송했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구경 되십시오·”
“잠시 가게에 손 좀 대지·”
딱─!
플란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마땅한 준비도 없이 움직이는 선반· 일목요연하게 계단식으로 펼쳐지는 물건들· 당황스러울 만큼 달라지는 내부의 형태·
제멋대로 가게 구조를 뒤바꾼 것이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
아니 탓할 수가 없었고 모두 감탄만 했다· 가게가 모든 방면에서 이전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마이에브도 내심 감탄하며 찻잔 몇 개를 만지작거렸다· 보석이 군데군데 박혀있는 화려한 찻잔이었다·
플란이 물었다·
“그게 마음에 들었나·”
“별로네요·”
마이에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치에는 원래 관심이 없는 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이 찻잔은 실용성이 떨어진다· 차를 마시기 위해서라기보단 관상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플란이 옆에서 다른걸 집어 들었다·
아무런 무늬도 없는 새하얀 찻잔· 특출난 부분이 없으며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찻잔이었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평범한 축에도 낄 수 없었다· 이곳저곳에 흉하게 뭉개진 부분이 있었으니 말이다·
점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플란님 죄송하지만 그건 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비매품이란 말인가·”
“예· 사실은···· 저희가 특수한 찻잔을 만드려다 실패했습니다· 보시면 재질이 메르틸이에요·”
“그래· 단번에 알아보았다·”
“저희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정말 거액을 들여서 시도한 제작인데····”
그러나 플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게 마음에 드는군·”
“저희가 야심차게 준비한 다른 것들을···· 예?”
점장의 눈이 한 박자 늦게 휘둥그레진다·
“이걸 원한다· 두 개 부탁하지·”
“정말로 이걸 원하십니까···?”
“그래·”
“아 예· 확인했습니다·”
점장이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장이 마쳐진 뒤 둘은 가게 밖으로 나섰다·
세상은 이제야 해가 저물고 있었다· 따스하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풍경 마이에브는 마차에 나란히 올라타며 중얼거렸다·
“저는 결국 어떠한 의문도 해소하지 못했어요·”
무심하게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을 잇는다·
“이 찻집에 방문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고 시간을 공유한다는 개념도 아직 이해하지 못했어요· 소중한 관계라는 건 원래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인가요·”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부터 설명하지·”
플란이 메르틸 재질의 찻잔을 꺼내 든다·
“점장은 이를 실패작이라 칭했지만 내 눈에는 결코 그렇게 보이지 않는군·”
“이게요?”
“그래· 메르틸은 술자의 마력을 품을 수 있기에 매력적인 원료다· 이를테면····”
플란이 잠시 눈을 감고서 집중한다·
“···이런 것도 가능하다·”
여기저기 엉망이었던 메르틸 찻잔이 유리 공예품처럼 정갈한 모습을 갖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하나는 푸르게 하나는 붉게 빛을 발한다·
플란과 마이에브의 마력이 담긴 것이었다·
마이에브에게 푸른 찻잔이 건네진다· 플란이 나지막이 물었다·
“기억하고 있나 마이에브· 너는 매일 아침 동일한 시각에 차를 만들었다·”
“늘 같은 시간에 기상하셨으니까요·”
“너는 공허에 돌아간 뒤로도 그리 해라·”
플란의 시선이 문득 마이에브에게 닿았다·
“무슨 차인지는 상관없다· 다만 같은 시각에 차를 만들어 네가 마시는 것이 핵심이다·”
“왜인가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만····”
“우리가 시간을 공유하기 위함이다·”
플란이 마이에브의 말을 툭 잘랐다·
“하루 주기가 아니어도 괜찮다· 일주일이라도 한 달이라도 아니···· 설령 몇 년 후일지라도 네가 문득 그 시간에 차를 마신다면·”
마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그것도 빠르게·
“나 또한 이 찻잔으로 차를 마시고 있을 터이니 우리는 분명 짧지만 같은 시간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짧지만 같은 시간?”
“그래· 네가 어느 날에 나를 떠올리든 우리가 아침에 같은 행위를 한다는 것· 서로를 떠올린다는 것·”
하지만 어느 순간 덜컹대는 소음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 소리가 사라진 듯한 세상에서 유일한 것은 오직 플란의 목소리·
그의 붉은 눈동자가 진심으로 일렁였다·
“···그게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오로지 이러한 관계만이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다·”
갑자기 아득할 정도로 넓게 느껴지는 마차 안·
“아····”
자신의 건너편에는 플란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던 풍경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넓은 시야에 오로지 플란의 모습만 보이게 되었다·
그의 목소리가 물결처럼 밀려든다·
“마이에브· 이제 나도 하나만 묻지·”
그 음색이 잔잔하게 이어진다·
“나를 찾아온 진정한 이유가 있지 않나·”
소중한 관계·
단 하루의 체험일 뿐인데 허상일 뿐인데····
거짓말을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보 같은 심장이· 더 바보같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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