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ㅡ이만 가볼게· 너도 좋은 사람 만나·
그 말을 끝으로 여자는 가버렸다·
잠시 멍하니 서있는 내 귀를 웬 사내가 잡아당겨 끌었다·
내가 청소당번이라나 뭐래나· 복장을 보아하니 아마 청소부인 것 같은데·
결국 화장실까지 끌려왔지만 그따위 것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당장은 혼란스러운 사고를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호흡이 정상적인 것을 보아하니 사망한 것은 아니다· 감각에 위화감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환각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고·
“뭐해 학생· 받아·”
나이가 지긋한 청소부가 양동이와 밀걸레를 이쪽으로 건네준다·
아까 그 여자애는 학생인 것 같고· 이 사람은 청소부인 것 같은데·
“여긴 어디지·”
“화장실·”
“화장실인건 안다· 내가 묻는 것은 기관·”
“메르헨 아카데미잖아· 아니 근데 이놈이··· 왜 반말이야?”
메르헨 아카데미? 내가 아는 아카데미중에서 그런 아카데미는 없는데·
꽁 하는 소리와 함께 꿀밤이 머리에 내려앉는다·
“!”
누군가에게 맞았다는 감각이 나를 놀라게 한 것이 아니다· 다만 재빨리 팔을 뻗었는데 막지 못했다는 점이 충격이다·
‘팔이 짧아·’
그래서 올바르게 뻗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지 못했다·
목소리 뿐만이 아니라 육체도 다르다·
본인이 인지하던 스스로의 목소리보다 얇으며 신체는 짧다· 심지어 입고있는 의상은 제복에 가깝지 않나·
“거울·”
“거울부터 닦게?”
사내가 턱으로 거울을 가리키자 곧장 그 앞으로 달려갔다·
“이건···”
내가 아니다·
‘어려졌다’ 정도가 그가 생각했던 부작용의 최대치였다· 허나 이건 말 그대로 아예 카플란이 아니다·
자랑이었던 백색의 머리카락은 흑색이 되어있었으며 눈동자는 붉었다·
외에도 얼굴의 윤곽이나 체형 자체가 겪어왔던 삶에 한 번도 없었던 모습이었다·
기품과 격조· 그리고 자신을 향한 확신이 가득하던 날카로운 얼굴은 온데간데 없다·
아무리 심각한 표정을 지어도 그냥 투정부리는 걸로만 보이는 너무나도 앳되어보이는 소년의 얼굴· 어리고 희다·
턱선과 코가 날카로운데 말라서 살짝 어딘가 병약해보이기도 했다·
“학생· 이만 책 내려놓고 청소해야지· 빨리해야 그만큼 집에 빠르게 갈 거 아니야·”
“청소?”
마지막으로 청소를 해본게 언제더라·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인데 청소를 하라니 받아들이기가 영 쉽지가 않다·
“이쪽은 학생이 맡아· 난 건너편 화장실 청소하고 올 테니까·”
“흐음·”
소통은 그게 끝· 그는 자신의 일에 충실하려는 듯 다른 화장실로 가버렸다·
주어진 정보를 조합한다·
여긴 아카데미· 아까 나를 차버린 여자는 학생· 지금 내게 지시하는 것은 청소부·
그리고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은···
‘나 역시 이 아카데미의 학생이고 기초마법 하나 못했기 때문에?’
시선이 손에 꽉 쥐어져있는 『 기초 마법 』을 향한다·
‘심지어 이런 것도 모르는 학생이라고?’
위화감이 크다·
신체의 내부를 흐르는 마나는 정순한 편에 속했다· 다듬어지지 않았으나 바꾸어 말하자면 그 어떤 것에도 때묻지 않았다·
이렇게나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서 왜 고작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해 교수를 찾았는가·
흥미가 솟아오른다·
물론 내가 신체의 원 주인은 아니지만 새로운 것을 증명하는 일은 늘 즐겁다·
그게 남들이 겪어보지 못할 일이라면 더더욱·
“어느 부분이 어려웠는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책을 펼쳤다·
◈
‘또 지뢰인가·’
크레이그는 표정을 구겼다· 밀걸레를 쥔 손에 신경질적으로 힘이 들어간다·
이 세계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축복받은 일부를 가리키는 이야기다·
그는 축복을 받지못한 쪽에 속했고 아카데미에서 청소부로 근무한다·
메르헨 아카데미에서는 학생들에게 수치심을 주기 위해서 종종 이렇게 청소를 도우라고 크레이그에게 붙여주는데···
“귀하게 자란 애들이 청소를 해봤자 얼마나 잘하겠냐고·”
첫 번째로 청소를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녀석들이고·
두 번째로 청소를 하기 싫어하는 녀석들이다·
결국 오늘도 크레이그가 전부 청소하고 돌아가게 되겠지·
그래도 다행히 남학생이라 화장실에서 울고있지는 않겠네·
축복받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학생들이 우는걸 달래주고 있노라면 크레이그는 가끔 혀를 깨물고 싶었다·
귀하게 자란 애들이 밉다·
저 저 저 싸가지 없는 놈· 아카데미에서 청소를 한다는 이유로 그를 향해 대뜸 반말이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슈르르륵 하고 물이 흐르는 소리· 방금 걸레를 다 빨고나서 분명 수도꼭지를 잠갔을 텐데· 확인해보니 역시 잠겨있다·
그러나 여전히 소리는 들린다· 아 그래· 건너편 화장실에서·
생각해보니 수도꼭지에서 물이 흐른다면 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워낙 특이한 소리였기에 크레이그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그 소리는 귀에 선명해진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뭐···”
소년이 자유자재로 물을 다루는 풍경·
그는 한 손으로는 책을 펼치고 한 손으로는 턱을 붙잡고 있었다·
허공을 향해서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데 마치 칠판에 글자가 적히듯 물방울들이 글자를 이루며 붙박인다·
크레이그는 마법을 다룰 줄 모른다· 그건 태어나면서 정해지는거다·
하여 그는 술식을 보더라도 이해할 수 없다· 당연한 수순이다·
허나 그럼에도·
‘아름다워·’
단지 아름다워서 크레이그는 이해도 못할 광경을 그저 바라보았다·
◈
“기초는 무슨·”
『 기초 마법 』 이라는 것은 나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기초 수준이 절대로 아니건만 제목에는 뻔뻔하게 ‘기초’라고 적혀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아카데미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꽤 훌륭한 수재들이 모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책을 더럽게 쓰는건 내 취향은 아니다만·”
그래도 너덜너덜할 정도로 밑줄이 그어져있는 책은 나름대로 가산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법의 계열을 분류할 때에는 파란색으로 세모를·
반드시 지켜져야하는 비율인 마나의 배합에는 붉은 동그라미를 마나를 순환하는 경로인 ‘회로’에는 노란색 밑줄을·
“네게 어려운 내용이기는 했겠구나·”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신체가 어리다·
조화 계열은 굉장한 섬세를 요하기에 어린 나이에는 추구하기가 힘들지·
나는 이걸 몇 살에 익혔더라· 옛날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종이가 이렇게 너덜너덜해져있는 것을 보아하니 그는 누구보다도 이를 이해한 자신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도와주지·”
조화라는 것은 쉽게 말해 마법을 연결하는 방법이고 연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개 이상의 마법이 필요하다·
준비된 마법 두가지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연결하는 방법은 궤를 달리할 정도로 달라진다·
거의 다른 분야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불과 물·
허공에 불꽃의 술식을 그려낸다· 이 신체로 처음 발동하는 마법이었으나 결코 실패따위를 염려하지는 않는다·
왜 카플란은 결국 카플란이며 대마법사는 결국 대마법사기에·
아니나다를까 불씨가 허공에 피어오른다·
화력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만 연결하기에는 역시 충분하다·
이 다음은 물이다·
벌써부터 마력의 잔량이 위태위태했기에 이건 생성하는 대신 근처의 물을 빌리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두 마법이 준비되었다면 교재에 적혀있는 술식에 대입한다·
신체의 원 주인이 별을 열 개 넘게 쳐두고도 이해하지 못했을 그 술식 말이다·
이윽고 절대로 합쳐질 수 없을 두 원소가 접합한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본격적인 조화의 시작을 알린다·
마력의 소모가 어마어마하다·
당연히 교재에도 이를 ‘시도’하기 보다는 ‘이해’만 해두라고 설명되어있다·
허나 나는 증명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타입인지라·
비루한 신체 안에서 새로운 증명을 향해 나아가는 이 순간만큼은 마탑의 마법사들을 내려다볼때보다도 행복하다고 칭할 수 있는 것이다·
화아악—!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리는 안개· 주변의 흐름을 휘저어 순식간에 그것들을 거둔다·
눈 앞에 남아있는 것은 물방울들로 쓰여진 술식·
···아니 정확히는 그것들이 남아있어야하는데 남아있지를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물방울 위에서 불타오르는 불꽃을 현현하려 했으나 아주 보기좋게 실패해서 수증기가 되어버렸다·
그저 한 방울·
한 방울의 물방울 위에서 불꽃이 조금 타오르다가 이내 불협화음을 내며 수증기로 변해버린다·
‘정말 완벽하게 실패했군·’
말 그대로다·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할 정도로 수치스럽게 실패했다·
이해했으나 체득하지는 못했다·
지금의 신체가 너무나도 비루하여 압도적인 이론을 쫓아오지 못하는 탓이다·
책을 탁 소리가 나게 덮었다·
역시 아직은 나약하다·
눈을 휘둥그레 뜬 청소부와 눈을 마주친 것은 그때쯤이었다·
“그쪽 청소는 벌써 끝났는가·”
언제부터 지켜본걸까 사실 언제부터 지켜봤든지간에 상관없다·
수분을 가득 머금은 안개가 화장실을 가득 채우고 빠져나갔다·
마나의 흐름을 잔뜩 담은 그 행위에 먼지나 때따위가 저항할 수 있을 리 없다·
따라서 지금의 화장실은 그 어느때보다도 청결하다·
하여· 해야 할 일은 한 셈이니까·
“이쪽도 마침 끝난 참인데·”
여유로이 웃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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