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5
마법 학부 대표들이 영웅전에 참가하는 것이 확정된 이후 코네트는 잠시 감상에 젖은 채로 총장실의 창밖을 바라보았다·
돌연히 예전 마법 학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낙후된 시설 기사들로부터 당연하다는 듯 받았던 모멸과 핍박···· 사실 ‘예전’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최근의 일이다·
그러한 풍경들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앞으로의 나날은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는 이유는 왜일까·
똑똑─
그때 누군가가 총장실 문을 두드렸다·
특유의 힘없는 노크 소리 코네트는 어렴풋이 바이올렛이 찾아왔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들어오시지요·”
문이 소리 없이 열린 뒤 방문객이 모습을 드러낸다· 예상대로 마법 학부의 교수 바이올렛이었다·
“바이올렛 교수 무슨 일입니까?”
사실 바이올렛이 먼저 총장실을 방문한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애당초 그녀의 별명이 왜 마녀겠는가 늘 피로해 보이고 또 자신만의 연구에 몰두해있는 기색이 있기 때문이다·
“저기 총장님·”
바이올렛이 조심스레 입술을 떼었다·
“예·”
“대표들이 이번 영웅전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담당 교수다 보니 이것저것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요·”
“굉장히 좋은 마음가짐이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바이올렛이 말꼬리를 흐리며 말을 이었다·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라···· 어떤 점에서 그렇지요?”
“학습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할지가 어려워요· 어떤 자료가 어울리는지부터를 모르겠으니까요·”
코네트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군요·”
“단순히 다음 학년의 것을 제공하기엔····”
“고작 그걸로 수도 기사를 상대하기엔 애매하고 더 대단한 것을 주자니 무엇을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만· 맞을는지요?”
“네 총장님· 정확합니다·”
바이올렛의 수긍에 코네트도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되는 고민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교수니까요· 아무래도 학습 방면으로 지원을 해주고 싶은데 말이죠····”
바이올렛이 말끝을 흐렸다·
아카데미에 ‘커리큘럼’이라 칭해지는 학습 과정이 도대체 왜 존재하겠는가· 학생들이 한 계단을 밟으면 다음 계단을 밟는 식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란은 예외 중에서도 예외라고 할 수 있는 사내였다·
무엇을 학습하는지 알 수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감히 알 수 없다· 이따금 놀라운 결과를 내놓으면 감탄하는 것만이 플란의 주변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나 기특하게 나서주는데 교수로서 가만히 있고 싶지는 않아요· 각자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는 법이니까 저도 제 역할에 충실해지고 싶거든요·”
코네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바이올렛으로부터는 학생들을 향한 애정이 느껴졌다· 대표들의 성공에 어깨를 단순히 나란히 하겠다는 것이 아닌 충실하고 싶다는 열정도 느껴졌다·
그 마음을 이해한 코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어려운 일이로군요·”
차라리 플란이 코네트의 수제자였다면 어땠을까· 코네트가 가장 자신 있고 또 좋아하는 마법들을 하나하나 가르치는 것으로 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의 수제자로 남아있을 이가 아니다· 누구보다도 독자적이고 타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코네트가 자신의 턱을 문질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름 중요한 문제라고 사료됩니다·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니까 말이지요·”
“저도 그래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올렛 나름대로 떠올린 바가 있었기 때문에 총장실을 방문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허공에서 코네트와 바이올렛의 시선이 마주쳤다· 교수를 바라보는 총장의 기묘한 역안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아····”
결국 바이올렛이 마녀 같은 고깔모자를 주섬주섬 벗었다· 그것을 자신의 배 앞으로 위치시켜 예의 바른 자세를 취한 후 다시 말을 잇는다·
“총장님 고서(古書)들을 좀 보여주면 어떨까요? 수도 기사를 상대하기 위해서 적어도 그 정도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반응하는 것은 다름 아닌 비서였다· 여태껏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바이올렛 교수 그건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이요?”
“고서에는 정말 온갖 내용이 담겨있어요· 무언가에 현혹당하기 쉬운 나이인데 갑자기 안 좋은 무언가에 눈이라도 떠버리면 꽤 곤란해집니다·”
코네트는 가만히 둘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비서가 염려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되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마법사들은 하나둘 성공을 향해서 나아가지만 모든 마법사의 삶이 천편일률적으로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차마 말하지 못할 끔찍한 일을 겪은 이들 아카데미의 문턱에서 좌절한 이들 세상을 증오하게 된 이들····
그들 대부분은 뒷세계의 조직으로 눈을 돌린다· 고서에는 그만큼 위험천만한 내용도 적나라하게 실려있기에 비서는 그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비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바이올렛 교수· 저는 고서까지 보여주는 게 너무나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분명 다른 부분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예요·”
“비서님 그건 대표들을 무시하는 발언이에요·”
하지만 바이올렛도 비서를 상대로 물러서는 기색이 없었다· 비서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제가 대표들을 무시한다고요?”
“네· 대표들을 믿지 못하기에 고서를 두고 망설이는 거잖아요· 도대체 뭘 걱정하시는 건가요·”
“····”
바이올렛이 진지하게 말을 이어간다·
“이제 와서 걱정하고 의심할 게 뭐 있어요· 아니 의심할 자격조차도 없을걸요· 스스로 이런 말 하기 부끄럽긴 하지만 솔직히 우리가 해준 것도 없잖아요·”
“으음·”
“그러니까 비서님 지금부터라도 뭐 좀 해줍시다· 그냥 고서 몇 개만 주자고요· 누가 보면 엄청난 거 해주면서 생색내는 줄 알겠어요·”
이야기를 듣던 비서가 헛기침했다·
“뭐 무조건 안 된다는 취지에서 말한 게 아니고····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제 말은 그거죠·”
비서가 뭐라고 말을 잇기는 했지만 이내 말끝이 점점 흐려진다· 바이올렛의 태도가 너무나도 결연했고 또 구구절절 틀린 말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 편 바이올렛이 자신감을 얻어 말했다·
“한 다섯 권 정도면 적당할까요?”
“다섯 권이나?”
“얼마나 학습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학습하는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겠어요? 제 생각에는 다섯 권 정도가 딱 좋을 것 같은데····”
비서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고서까진 그렇다 쳐도 다섯 권은···· 영웅전까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괜히 방대한 양의 정보 때문에 더 헷갈리는 거 아닐까 걱정됩니다·”
“플란이 혼란스러워하는 거 보신 적 있으세요?”
“···아뇨· 없습니다· 그건 그렇죠·”
그때였다·
“그만·”
비서와 바이올렛을 지켜보던 코네트가 조용히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단순한 동작 하나만으로도 총장실 내부에 고요함이 찾아들었다·
총장의 입술이 자그맣게 벌어졌다·
“크게 고민할 일은 아닌 것으로 사료됩니다· 대표들에게는 도서관을 통째로 공개하지요·”
“어···?”
너무나도 쉽게 큰 결단을 내리는 코네트의 모습에 비서도 바이올렛도 동시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 꽤 살아보니 누군가를 알아보고 믿어줄 수 있는 것 또한 실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녀의 역안이 천천히 감았다 떠진다·
“믿어볼까요· 이번에도·”
◈
“고서관?”
“네· 고서관이요·”
영웅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나를 갑작스레 찾아온 바이올렛은 고서관 방문을 권유했다·
‘고서관과 도서관의 차이는 크다·’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정형화되어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읽는 이가 담겨있는 정보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고서에는 글쓴이의 주관이 가득하다·
그들은 독자의 눈치 따위 보지 않고 마법을 향한 자신들의 견해를 잔뜩 담아두었다· 다양한 해석을 접하는 것이 대표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터·
바이올렛이 내게 조그만 무언가를 내밀었다·
“고서관 출입을 가능하게 만드는 징표에요· 모쪼록 도움이 되길 바라고···· 아 한 가지만 더·”
그녀가 조심스레 덧붙인다·
“혹시 고서관에 괜찮은 내용이 있다면 언질을 줄 수 있을까요? 다른 학생들이 학습하기에도 괜찮은 내용이 있다면 사용하고 싶어서요·”
“여유가 된다면·”
“고마워요·”
우리는 짧은 인사를 마쳤다· 바이올렛이 떠나간 뒤 나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고서관으로 향했다·
“뭐 이 정도인가·”
도착하니 예상 그대로의 풍경이 나를 반긴다· 더없이 넓고 깔끔하지만 오래된 서적들 특유의 종이 냄새가 코끝에서 아른거렸다·
미로처럼 뻗어있는 고서관을 한동안 거닐었다· 서재에 꽂혀있는 이것저것을 살폈는데 기대했던 만큼 다양한 내용들이 있기는 했다·
흥미로운 것도 있었고 선구안이 느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구식이라고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참으로 다양했지만····
“흐음·”
이내 불쾌한 기색으로 서적을 덮어버렸다·
다름 아닌 혈귀들의 첨삭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세뇌가 이곳에도 영향을 미친 채였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
187번 보좌관· 공허 공주의 비서·
그녀가 나를 찾아 아카데미의 고서관을 방문했다· 주변을 살핀 그녀가 무심하게 말했다·
“마법으로 아무리 관리해도 말이야· 오래된 종이의 향은 어쩔 수가 없지· 플란 나는 이런 냄새를 참으로 좋아한다·”
“그런가·”
“그래 공허에 있는 서재 있지? 그곳에서도 일부러 이런 향이 나도록 의도할 정도니까·”
그녀가 감상에 젖은 듯한 눈으로 책을 하나 빼 든다·
“임신하고 아이를 낳은 모체가 이런 기분일까· 나는 책 한 권 한 권을 볼 때마다 흐뭇하다· 무엇을 보든 간에 언제 배포했는지도 전부 기억나·”
“역시 이 고서들에도 네 손길이 미쳐있었군·”
“그래· 플란 내 입지를 아직도 모르겠나?”
어깨를 으쓱이던 보좌관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플란 그래서 나를 호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대 룬어에 관한 연구가 벌써 진척이 있었던 것이야?”
“전혀·”
“전혀? 그게 뭐야 아니라는 뜻인가?”
보좌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이해할 수 없는 말이군· 그럼 이렇다 할 용건도 없으면서 나를 불러냈다는 것인가?”
“용건은 있다·”
“무엇인데?”
“이 고서관 전체를 학습 공간으로 바꿀 것이다·”
“바꾸면 되지· 왜?”
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선 대표들이 학습을 온전히 하기 위해서는 교묘하게 첨삭된 내용들이 전부 사라져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바이올렛이 원했던 대로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이것을 교보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정교한 수정이 이루어져야 하겠지·
“보좌관·”
“왜·”
“고서들의 내용을 전부 수정할 것이다·”
“그것도 하면 되지· 왜·”
보좌관은 무심하게 대답하고 서재들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휙 돌려서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나더러 하라는 거냐···?”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
그녀의 얼굴 위로 낭패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