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6
마법 학부의 어느 자습실 앞·
트릭시는 베키를 목전에 두고서 고개를 기울였다·
“우리 자습실을 사용하고 있다고?”
“그렇다니까·”
베키와 대화를 나누던 트릭시의 눈이 가늘어졌다· 두 소녀의 얼굴 위로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기색이 어렸다·
트릭시는 까치발을 들었다· 창문을 통해 비쳐보이는 자습실 내부의 인물을 확인한다·
고혹적인 여인이었다·
고급스러운 남색빛 단발은 앞머리를 비스듬하게 흘리고 드러나있는 한 쪽 눈은 더없이 날카로웠다· 그런 인물이 종일 무언가를 적어내리고 있었다·
트릭시가 창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물었다·
“저 사람 누구야·”
“나도 몰라·”
“뭐하고있는건데·”
“그것도 모르지? 물어보질 않았으니까·”
“···너는 아는 게 뭐야·”
“너도 몰라서 나한테 물어보는 거잖아·”
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에도 자습실 내부의 여인은 할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집중도가 워낙 깊어보였기에 직접 들어가서 물어보기도 뭐하다·
애초에 이유를 묻는다 하더라도 쫓아내기에는 애매했다· 사람은 옮긴다 치더라도 자습실 내부를 가득 채운 종이들을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중을 해치는 것만큼 나쁜 짓도 없지·’
트릭시는 늘 최선을 다해서 집중하려 했기에 집중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었다· 또한 집중이 방해받았을 때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도·
결국 트릭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우리가 장소를 바꾸자· 어차피 자습실에 오래있을 것도 아니고 곧 훈련장으로 갈 거니까·”
그렇게 두 명이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꽝─!
자습실 안에서 충돌음이 울려퍼졌다·
“···!”
트릭시와 베키의 시선이 동시에 그곳으로 향했다·
“내가 이따위 짓을· 이따위 짓을· 이따위 짓을····”
의문의 여성이 종이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누가 보아도 분노한 사람이 할 법한 행동인데 정작 억양에는 감정이 실려있지 않아 듣는 입장에서 기괴했다·
“····”
두 소녀가 말없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트릭시 그냥 우리가 옮기자·”
“그래·”
◈
이틀 후·
“하아·”
187번 보좌관은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한숨이 절로 나오고 눈을 꾹 감으니 피로함때문에 쓰라린 감각이 느껴진다·
현재 그녀의 몰골은 상당히 추했다· 코에 휴지를 꽂아놓은 것만 해도 그렇다· 힘들어서 흘린 것은 아니고 하기 싫은걸 억지로 하니까 피가 역류했다·
그런데 보좌관은 단순히 일이 많아서 힘든 것이 아니었다·
“기억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자신의 첨삭을 늘 정답이라 여기고 수정해왔기에 원본의 내용을 굳이 기억하거나 남겨두지 않았다·
“···일단 다 지워놓고 생각해야겠군·”
원본의 내용이 떠오르지 않아도 본인이 어느 부분에 첨삭을 가했는지 정도는 전부 알아볼 수 있다· 그러니 우선 그것부터 전부 지울 셈이었다·
“답답하군· 하필 고서라서·”
인류가 살아왔던 거대한 흐름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필자 개개인들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생각을 가졌는지까지는 당연히 모른다·
숲의 형태는 알아도 나무는 모르는 상황이랄까·
문제는 고서에 필자의 주관이 잔뜩 들어간다는 점이다· 원본의 내용을 살려내기 위해서 보좌관은 그 ‘주관’들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야만 했다·
“하아····”
열등하고 생각해서 머릿속의 쓰레기통에 박아넣었던 견해들 그걸 이제와서 끄집어내라니· 이것보다 잔인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안 할 수도 없는 일·
플란이 고대 룬어를 빌미로 협박했기에 선택지가 없었다· 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 결과 자습실에는 쓰다 버려진 종이들이 수북히 쌓여갔다·
한 시간·
두 시간·
그래도 보좌관은 무능하지 않았다· 기억을 되짚고 또 되짚으니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조작 소환 원소···· 다양한 분야에서 나름대로 인기를 끌었던 견해들 유행을 탔던 이론들· 첨삭을 지우고 생긴 공백에 그것들을 다시 써내렸다·
“····”
다시 복원된 것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자신은 인간의 역사를 늘 정답으로 이끌었다 생각했거늘 인간들이 나름대로 파생시킨 것도 이렇게나 다양했다·
만일 자신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인간은 어떤식으로 마법을 연구하고 발전시켰을까· 그것을 생각하니 조금 호기심이 동했다·
바로 그때였다·
“직접 다시 적어보니 어떤가· 인간들이 스스로 발전시킨 마법과 직접 덧붙인 견해라는 게·”
사내의 음색이 갑자기 들려와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간다· 어느샌가 플란이 자습실에 들어온 채였다·
“글쎄·”
187번 보좌관은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흥미롭다고 답한다는 건 그간 자신이 걸어왔던 길이 잘못되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도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보좌관이 손을 휘이 저었다·
“플란 감시나 조롱이 목적이라면 물러가라· 나는 어차피 맡은 일은 꼼꼼히 하는 성격이야·”
“둘 다 아니다· 수정의 방향성을 알려주지·”
그러나 보좌관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플란이 무심하게 내려놓는 책 한 권이 증거였다·
보좌관이 플란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게 뭔데·”
“몇몇 주요한 수정점을 짚어두었다·”
“내용을 추가했다는 말이잖아· 그러니까 플란 너의 주관이 들어갔다는 뜻 아닌가?”
“그렇지·”
“····”
한동안 책 표지를 말없이 매만지던 보좌관은 어느순간 아주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그녀가 가소롭다는 듯 플란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늘 궁금했었는데···· 플란 결국 고서관의 서적들을 네 주관으로 채우겠다는 것과 같은 말 아니야?”
“정확하다·”
“어이가 없군· 내가 멋대로 첨삭을 가한 것을 지적하지 않았나? 내가 했던 짓과 별로 다를 바 없잖아·”
“우선 읽어보지그래·”
보좌관이 코웃음을 쳤다·
“알았다· 우선 읽어보지· 그런데 고작 한 권? 이 내용을 추가한다 하더라도 티가 날지는 모를 일이다·”
그녀는 플란의 책을 집어들어서 대충 살폈다·
그리고 잠시 뒤 ‘고작 한 권’이라는 말을 철회하기까지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뭐야·”
몇 백권에 필적하는 내용이 오밀조밀 압축되어있는 것을 보니 중요한 건 두께가 아니라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다·
“누구를 위한 첨삭···· 아니 읽는 이를 위해서?”
글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쓰는 사람을 위한 글 읽는 사람을 위한 글·
중도지점에서 타협한 글은 평범한 글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글은 으레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플란의 책은 굳이 따지자면 읽는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아니 치우쳐진 수준을 넘어서 읽는 사람만을 상정하고 쓴 글이다· 작성자가 느껴지지 않았다·
글을 현학적으로 작성하여 잘난 체 하려는 듯한 뉘앙스도 없다 그저 읽는 이의 학습만을 추구하는 쉬운 글이었다·
‘쉬운 글이라는 게 가장 어려운건데····’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쓰는건 누구나 가능하다· 하지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쓰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플란이 지금 그것을 가능케 만든 것이다·
“플란 신기하구나·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내 주관이 곧 마법의 발전이다·”
플란의 말은 그게 고작이었다·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여길법도하고 건방진 허세라는 생각이 들 법도한데 플란이 건네준 내용을 확인한 뒤에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플란은 문장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지 않았다· 강한 주관을 관철시키는 법도 없었으니 가장 「정석」에 가까운 정리가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의 주관이 곧 마법의 발전·
그 말이 이제는 제법 일리있게 들린다·
“신기하구나· 참으로 신기해· 오로지 마법계의 발전을 자신의 목표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마법을 좋아하니까· 다른 이유는 없다·”
보좌관에게는 꽤 울림이 큰 단어였다·
마법에 편승하여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다른 것을 편승시켜 마법을 남기는 느낌·
적어도 평범한 마음가짐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는 할 수가 없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그는 이미 무언가를 한 단계 초월해있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점점 생각해보아야겠지·
여튼 결론은 단순했다· 이런 존재와 교류한다는 것은 앞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운 일일터·
그녀는 결국 마음을 다잡았다·
“알았다·”
자신이 첨삭했던 것들을 지운 뒤 보좌관은 플란이 건네준 내용들을 차근차근 덧입히기 시작했다·
“네가 그리는 미래가 무엇일지 더욱 궁금해졌다·”
싫은 행위를 억지로 하는 기색이 이젠 없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다시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플란이 떠난 뒤에도 보좌관의 수정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23시간·
“흐음·”
진척이 있었다· 고서관 전체를 수정하지는 못했지만 우선적으로 쓰이는 도서들의 내용은 전부 수정을 마쳤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수정된 것들을 어떻게 고서관 안에 배치한단말인가? 양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대놓고 할 수 있는 짓은 절대로 아니었다·
플란과 약속한 시간은 단 한 시간·
조언을 구하고 싶지만 플란은 이미 떠난 상황·
···그렇다면 선택지가 얼마 없었다·
◈
“흐아암····”
기숙사로 향하는 길· 마이에브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녀의 양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있었고 그곳에는 각종 차의 원료가 가득했다· 요즈음 이런저런 차를 끓여보는 것이 자신의 취미이자 낙이었다·
‘이건 좀 마음에 들어하시려나·’
처음에는 잘 믿기지 않아 얼떨떨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플란에게는 고마운 마음 뿐이다·
이렇게 자유를 갖게 된 것도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것도 전부 그의 덕분 아니겠는가·
“그러니 오늘은 맛있는 차를···· 음?”
마이에브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혈귀라면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특정 기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척 보기에도 수상한 거동으로 고서관 앞을 알짱거린다· 단신으로 있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가 잔뜩 담긴 보따리를 염동으로 들어올린 채였다·
‘테러?’
어쨌든 좋은 쪽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다·
고서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러 왔다면 괜히 수상하게 기웃거리고 있진 않겠지 당당하게 입구로 들어가야 맞지 않겠는가?
“···아무래도 수상해·”
장바구니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은 뒤 마이에브는 인물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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