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1
“····”
비올라는 물끄러미 눈 앞을 바라보았다·
뜬금없는 요구와 함께 놓인 단 한 장의 초대장·
심지어 상대방이 손으로 들고 내민 것도 아니었다· 플란은 비올라에게 초대장을 염동으로 내밀고 있었다·
‘뭐지?’
차라리 대놓고 자신을 적대하는 것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은 마법 학부의 심장부였고 기사와 마법사가 서로를 고깝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으니·
하지만 자신을 향한 플란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오히려 악감정이 전혀 뒤섞이지 않은 얼굴· 그러니까 플란은 아랫사람에게 일을 하달하듯이 너무나도 쉽고 당당하게 비올라에게 요구를 하고 있었다·
겪어본 적 없는 일에 분노보다도 황당함이 앞선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건가?
어떠한 방식으로 응수해야 좋을지를 고민하는 사이 플란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아무래도 찬성과 반대 표시같다만 맞나·”
“맞아요·”
“전부 찬성으로 바꾸도록· 이는 나를 위한 제안이 아니다·”
비올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쪽을 위한 제안이 아니라면···· 우리의 체면을 위하는 무언가라도 된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네가 보기엔 누가 우승을 차지할 것 같나·”
질문을 내뱉자 질문이 되돌아온다· 이러한 말하기 방식은 상급자가 하급자를 대할 때에나 사용하는 것인데 비올라의 미간이 자연스레 좁아졌다·
“그건 궁금해서 묻는 말처럼 들리지가 않네요· 누가 우승할지를 미리 알고있다는 듯한 어투인데·”
“물론이지·”
“누군가요?”
“네 눈 앞에 있지 않나·”
비올라는 말 없이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사내는 다른 경쟁자들을 전부 제치고서 자신이 영웅의 자리에 서겠노라 말하는 것인가·
비올라는 고개를 돌려서 코네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플란을 지켜보기만 할 뿐 말리는 법이 없다· 위계질서 예절 상식···· 알고있는 모든 것이 예상대로 되는 법이 없었다·
마치 저 사내를 중심으로 모든 규율이 정해진 것처럼 말이다·
“···플란·”
비올라는 사내의 이름을 조용히 읊조렸다·
수도 기사 중에서는 세간의 일에 무지한 기사들이 꽤 있다· 검을 수련할 시간도 부족한 탓이다·
하지만 비올라는 세간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좋아했고 하여 플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들은 바가 있었다· 동그라미를 친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한데····’
실제로 본 플란은 예상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이제 막 성공가도를 걷기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 성공의 끝에 서있는 인물같달까· 밤이 되면 어두워지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듯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굉장히 익숙한 것 같은 사람이었다·
‘태도의 근거를 당장 확인해볼 수도 없고·’
수도 기사가 되기 직전 오만과 방심으로 인해 꺾어벼린 이들을 비올라는 얼마나 보아왔던가· 플란은 그곳에 속하는 인물일수도 실제로 강함이라는 근거가 있는 인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경기 당일 확인 가능하다·
무언가를 더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싸움을 이어간다면 그건 피로한 일일 뿐· 노련하게 판단을 마친 그녀는 허공의 초대장을 집어든 뒤 말했다·
“남의 찬반여부를 제가 멋대로 바꿀 수는 없죠· 또한 이미 내려진 결정을 번복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그냥 거절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그건····”
코네트는 잠시 플란을 바라보았다·
“비올라씨와 플란이 결정할 일이죠· 그래도 저는 플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일리?”
“예· 플란이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면 반대를 표했던 수도 기사들은 꽤 머쓱해지겠지요·”
“····”
마법 학부가 언제부터 이리 고자세였던 것일까· 언제부터 이리 당당했을까· 비올라는 계속해서 차오르는 의문을 그저 의문으로만 남겼다· 감정에 치우쳐 일을 그르치는 건 안 될 일이었으니까·
그냥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마법 학부의 뜻을 잘 이해했습니다·”
또한 선율같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떠오르는 신예가 나은 대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해가 가요· 하지만 저 역시 원탁의 규율을 어길 수는 없는 입장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 비올라씨· 그렇지요·”
“어느 한 쪽도 굽힐 생각이 없으니 실력으로 겨루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한 쪽이 꺾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 알고 있을 테니 모임 당일에 뵙죠·”
“알겠습니다·”
비올라는 말을 마친 뒤 곧바로 돌아섰다· 코네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차를 입에 대지 않으셨군요· 한 잔 정도는 하고 가셔도 괜찮을 듯 합니다· 아니면 새로 내어드릴까요?”
“검을 휘두를 시간도 부족해서 양해 바랍니다·”
“어쩔 수 없지요·”
코네트가 턱짓하자 비서가 비올라를 뒤쫓았다· 수도 기사에게 예의를 갖추어 배웅하기 위함이었다·
두 명이 떠나자 총장실 내부에는 플란과 코네트만이 남게 되었다· 코네트가 먼저 입술을 떼었다·
“이런 초대장을 거절한 꼴이 되어버렸군요·”
코네트의 시선이 자연스레 플란에게로 향했다· 플란 역시 고개를 돌려 총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총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냐라···· 그건 말이지요·”
코네트는 찻잔을 집어들었다· 사실 그녀 또한 아직 차를 한 모금도 하지 않은 채였다· 물을 들이키듯 단번에 비운 후 총장이 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속이 다 시원하네요· 예·”
◈
“흐읍·”
베키가 긴장감에 숨을 삼켰다·
마법 학부의 대표들이 훈련장에 전부 모인 상황· 비단 베키만이 긴장해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최종 점검·
거창한 대회의 이름이 아니다· 표현 그대로 훈련의 성과를 점검하겠다는 것 뿐이지만···· 주어가 플란이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기에 다들 겁먹은 표정이었다·
그 생각을 어렵지않게 읽은 플란이 혀를 쯧 찼다·
“너희는 언제쯤 긴장을 버릴 생각이지·”
“아니 최종 점검이 힘들다기보다도····”
베키가 조금 주눅든 목소리로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플란은 그런 베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선 끝까지 이야기해보라는 의미였다·
“음 그러니까·”
베키가 옆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최종 점검을 한다는건 결투하는 순간이 임박했다는 거잖아· 그게 실감 안 나고 수도 기사들이랑 겨룬다는 것도 신기하고 겨루면 이길 수 있나 신기하고····”
“쓸데없는 고민 뿐이군·”
“쓸데없는 고민이라니····”
베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름 진지한 고민이야· 우리 기량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겠단 말이야· 과연 수도 기사를 상대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질문하는 것은 베키지만 다른 이들의 표정도 나름 진지했다· 모두들 이 점을 궁금해하고 있었거 누군가가 질문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한 눈치다·
“나도 조금 신경쓰이긴 해·”
트릭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네가 대단한거지 우리 대표들이 대단한 게 아니잖아· 고민하는게 당연해· 맘같아서는 우리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지만····”
그녀가 말꼬리를 흐렸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플란은 대표들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쭈욱 훑었다· 대부분 긴장해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침내 루이스도 입을 열었다·
“플란 너를 믿지 못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네가 나타나기 전까지 매일을 패배하며 살았기 때문에 그래·”
그가 차분하게 말을 잇는다·
“물론 검마태제에서 승리를 거머쥐긴했지만 그것도 다 네 덕분이었어· 우린 주역 아닌 조역이었잖아·”
베키가 옆에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맞아· 이전에는 패배해도 내 패배라서 상관이 없었는데 이제는 너와 함께 다닌다고 생각하니까 신경이 많이 쓰여· 절대로 민폐가 되고싶진 않으니까!”
이들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플란이 곧바로 답변을 내놓지 않자 분위기가 더더욱 싸늘해졌는데 그나마 마이에브가 침묵을 깼다·
“플란님에게 다 계획이 있지 않을까요? 저는 뭐든 어련히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네가 편입생이라서 뭘 모르는 모양인데 수도기사면 검성을 눈앞에 둔 경지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아 음····”
베키의 말에 마이에브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인간들 사이에서 으레 오가는 격려를 해주려고 했건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참 쉽지가 않다·
플란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결론은 단순하다·”
제각기 방황하던 시선들이 단 한 명의 사내를 향해 집중된다· 그는 여느때처럼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너희는 모두 수도 기사 이상의 실력이 돼·”
모두의 눈이 일시에 휘둥그레졌다·
“우리가?”
“···!”
이후 플란에게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좋은 말을 해줘도 나쁜 말을 해줘도 요란하니 짜증이 치밀었다·
“그래·”
그냥 짧게 일축할 뿐이었다·
“최종점검을 시작하지·”
·
·
·
지옥같은 점검의 끝·
정신을 차려보니 모임 당일이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