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2
창문을 투과한 햇빛이 육각형으로 쪼개진다· 더없이 선선한 이 날씨에 마법 학부의 총장 코네트는 말없이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달력에는 일정이 빼곡히 표기되어있는 채다·
하지만 오늘을 가리키는 숫자에는 유난히 강조가 심했다· 동그라미가 세 개나 쳐져있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다른 날과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중요한 날이었다·
‘마침내 때가 왔구나·’
영웅의 자리에 등극하기 위해 벌어질 사투와 그것을 위한 사전모임· 마침내 마법 학부의 대표들도 그곳을 향해 출발할 때가 된 것이다·
원래부터 치장에 관심이 많은 편이긴 했으나 오늘은 특히나 신경쓸 필요가 있었다· 총장은 거울을 이리저리 살피며 자신의 몰골을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후····”
당연한 일이었다·
경기를 치루는 것은 대표들이지만 마법 학부의 얼굴이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따라서 신체의 어느 부분에도 작은 흐트러짐을 남겨둘 수 없었다·
한참 후·
또 한참 후·
우아하고 격식에 맞는 것들을 전부 걸친 뒤에야 코네트는 바깥으로 나섰다· 숙소 밖 입구에서는 비서가 이미 대기하고 있는 채였다·
그녀가 고개를 꾸벅 숙인다·
“총장님 준비는 모두 마치셨습니까·”
“예·”
아니나다를까 비서의 얼굴 위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옳게 써진 안경을 몇 번이고 고쳐쓰더니 말을 이었다·
“대표들도 이미 전부 모여있는 상황입니다·”
“아하 다들 상태가 괜찮을지 모르겠군요·”
“혹독하게 수련한 것은 확실합니다· 다만 컨디션이 걱정이네요· 근래 잠을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이런 수면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데····”
비서가 안내하겠다는 듯 발걸음을 떼자 코네트는 조용히 뒤를 따랐다· 날씨는 여전히 새삼 좋았다·
걷고 또 걸었다·
교정 내를 걸으며 둘 사이에 별다른 대화가 없을 듯 했지만 정말이지 웬일로 비서가 입을 열었다·
“총장님·”
“예·”
“혼자서만 고민하려고 했었는데 마음이 너무 싱숭생숭해서 말입니다· 누구에게 이야기를 털어두어야만 편할 것 같아요·”
“무슨 말씀이든 편히 하시지요·”
그러자 비서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코네트는 짧게 고민한 뒤 답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마시지요· 참여하는 것 자체가 기념할만한 일이고 결과를 떠나 대표들에게는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역시 그렇죠?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하지만 이건 총장으로서 내뱉은 말일 뿐·”
코네트가 비서의 말을 툭 끊었다·
“마법사로서의 저는 우승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승이요?”
“가능하다고 본다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겠군요· 우승하리라 믿는다는 것· 이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비서는 무언가를 되묻기 위해서 고개를 휙 돌렸지만 총장의 얼굴이 너무나도 진지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오롯이 담긴 진심만이 엿보인다·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훈련장에 발이 닿았다· 문이 열리자 그토록 고대했던 대표들의 모습이 보인다·
“···!”
흐트러진 표정을 짓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코네트와 비서는 대표들의 모습을 마주하자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마치 불가항력처럼 말이다·
“어···?”
의문을 먼저 표한 것은 비서쪽이었다·
눈을 몇 번이고 깜빡였지만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진정 환혹이 아닌 실제인 듯 했다·
‘예상이랑은 너무 다른데?’
눈밑까지 다크서클이 가득한 모습 주눅들어있는 모습···· 그러한 것을 상상했지만 전혀 없었다·
오히려 느껴지는 것은 깊게 가라앉은 마나· 거대한 호수같은 잔잔함· 평온하고 또 피로하지 않은 모습·
“아하·”
코네트가 저만의 방식으로 감탄을 표했다·
이젠 ‘학생’보다도 ‘마법사’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지 않는가· 이러한 감상을 느낄 날이 왔다는 것이 미묘하고 또 이들의 성장이 흐뭇하기도 했다·
각자의 수련에 집중하고 있었던 대표들이 하나 둘 코네트의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중요한 날이 밝아왔으니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기다리는 눈치다·
“일단····”
코네트가 미소를 살짝 머금고서 말을 이었다·
“대표 여러분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보다도 여러분 스스로가 더더욱 잘 알고 있겠지요·”
이건 총장으로서 뱉는 말이니까 비서에게 했던 말을 한 차례 더 해야할 때였다· 이들은 플란과 함께 정말 힘든 훈련을 이겨냈다· 그러니 부담을 주진 말자·
그런 생각으로 차분히 뱉는다·
“이번 자리는 참여만으로도 의미가 크지요· 이중에서 영웅이 탄생하지 않아도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코네트는 거기까지 내뱉은 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던 대표들이 도리어 생글생글 미소를 짓기 시작해서였다·
기묘한 역안이 잠시 상황을 살피는 사이 루이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총장님· 저희는 우승만이 목표에요· 진심으로요·”
“····”
“그리고 우승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이제는·”
코네트의 역안이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대표들의 생각도 이와 같은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얼굴에 착잡함이 없었다· 오히려 즐거운 일을 하러간다는 듯한 미소가 만연해있을 뿐·
코네트도 그제야 입꼬리를 올렸다·
“좋습니다· 그럼 목표를 꼭 성취하길 바라지요·”
이후 코네트의 시선은 루이스의 어깨 너머로 향했다· 훈련장의 저 멀리 한 사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플란·
코네트 뿐 아니라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한다· 그는 늘 그러했듯 혼자만의 사색에 잠긴 채였다·
모두의 시선을 느낀 플란이 명상을 갈무리했다· 그는 뭘 쳐다보냐는 듯 도리어 눈빛으로 묻는다·
베키가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본격적으로 출발하기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야· 플란 너는 뭐 할 말 없어?”
사내는 귀찮은 듯 머리를 쓸어넘길 뿐이었다·
“출발하지·”
◈
모임은 황궁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사계절이 동시에 공존하기에 이곳은 모순과 예술미를 동시에 품고있다만 그래야만 하지만· 현재 정원 내부의 분위기는 어느 해의 여름보다도 뜨거웠다·
‘마침내 영웅이 결정된다·’
바로 이 사실 때문이었다·
대륙에 영웅이 정해지지 않았던 공백기가 얼마나 길었던가? 길고긴 시간을 지나 이제서야 마침내 선발된다고 하니 많은 관심이 쏠리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정원에는 사전 모임에 참여할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몸 뿐만 아니라 입도 조금도 쉬지 않았다·
관료중에서 유난히 어린 소년이 있었다·
이름은 샤타· 부모 덕분에 빠르게 황실에 발을 담그게된 아이였다· 소위 말하는 낙하산이랄까·
옆에는 세무관의 비서가 나란히 서있었는데 샤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검성이라는 거 잘 와닿지가 않네요· 엄청 어렸을 때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어본 적은 있는데·”
“넌 지금도 어려· 그리고 그게 정상이지· 내가 엄청 어렸을 때도 검성은 없었으니까 말이야·”
“그냥 엄청 강한 사람 아니에요?”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만 아는 건 심하지·”
세무관 비서가 혀를 쯧 찼다·
“인간이 다른 종족이랑 교류를 할 때 말이야· 검성을 필두로 세워놓고 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음···· 아뇨·”
“어느 종족이 우리의 영웅을 인정해주고 또 어느 종족이 친하게 대해주고 이런 사소한 거 하나하나에 따라서 대륙의 세력 균형도가 달라진다고·”
“그렇게 말씀하셔도 모르겠어요·”
샤타가 머리를 긁적거리자 결국 세무비서가 소리를 쳤다·
“영웅 잘못 만나면 너도 쫓겨나는 거야· 다 망한다고!”
“뭐라고요? 아니 진짜로 중요한 거였구나·”
지금까지 설렁설렁 대답하던 샤타가 갑자기 눈동자에 불을 켰다· 진지해진 얼굴로 다시 묻는다·
“지금 영웅 후보들은 다 괜찮은 사람들이에요? 누가 될 것 같다고 예상하시는데요?”
“그 질문은 좀 어렵네····”
세무관 비서가 턱을 문질렀다·
“어렵다고요? 누나한테 어려운 것도 있어요?”
“지금은 좀 어렵지· 그러니까···· 난 지금 굉장히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상황이거든····”
샤타의 몸이 곧바로 회전했다· 손님에게 내줘야할 디저트와 음료를 슬그머니 빼온다·
세무관 비서가 그것을 받아들었다·
“먹다 들키면···· 알지?”
“제가 손댄걸로 할게요· 이야기나 마저 해주세요·”
“그래그래·”
세무관 비서가 디저트를 크게 베어문 다음 우물거렸다· 정말 극상의 맛을 지닌 에그타르트였다·
샤타는 침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재차 중얼거렸다·
“비올라님이 제일 유력했던 거 아니에요?”
“맞는 말이지만 또 틀린 말이지· 아 잠깐만· 나 크루아상도 먹을래· 저거· 저거· 지나가기 전에 빨리·”
샤타는 곧바로 딸기와 생크림이 얹어진 크루아상을 집어왔다· 세무관 비서가 그것을 우적거리며 말한다·
“장소 시간 무기의 제약이 추가되잖아· 특정 경기를 딱 장담한다는건 사실상 어려운 일이지·”
“마법사한테도 해당되는 이야기에요?”
“마법사?”
“네· 이번에 마법 학부도 참여하잖아요· 누나 말대로라면 마법학부랑 수도 기사의 승부도 장담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에휴·”
세무관의 비서가 샤타의 이마를 탁 때렸다·
“아얏!”
“이 멍청아·”
“아니 왜 때려요?”
“상대가 수도기사인데····”
“플란은 엄청 유명하잖아요· 저 플란 알아요·”
세무관 비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플란 대단한 걸 요즘 누가 모르냐? 문제는 플란만 대단하다는 거야· 다른 대표들이 안 따라주잖아·”
“아 그런가····”
“게다가 플란은 가문이 없어 가문이· 기사들은 몇 백년된 검술 가문 출신이라면 멋진데 그런게 없잖아·”
“가문이라····”
어른들의 사정에 샤타는 고개를 저었다·
바로 그때·
한 일행이 정원에 발을 들였다·
일행이긴 했지만 샤타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 한 명이었다· 말도 안 되게 기다란 사람· 더없이 날카롭고 맹수같이 안광을 지닌듯한 사내·
“····”
샤타는 방금까지 했던 대화를 전부 잊어버렸다·
그냥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지금 나타난 저 사람이 영웅이 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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