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4
다음날·
플란을 필두로 내세운 마법 학부가 어떠한 방식으로 협상했는가· 그와 관련된 사실이 무엇보다도 빠른 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그 결과 황궁의 정원은 오늘도 요란스러웠다·
샤타가 세무관 비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플란은 이미 협상을 마쳤단 말이죠?”
“그래·”
“마법 학부의 다른 대표들은요? 여기까지 구경만 하러 왔을 것 같진 않은데···· 설마 참여하는 건가?”
“똑같이 참여하지· 플란과 동일하게 협상했고·”
“와 실제로 참여하는 거였구나· 그럼 수도 기사를 상대로 맞붙는다는 소리가 되는데· 이해가 안 가네·”
수도 기사들의 입지가 얼마나 드높은지 아는 사람들· 이들은 이러한 사실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천체처럼 늘 높은 위치를 지켰던 수도 기사· 그리고 지하로부터 급격히 솟구쳐오는 마법 학부·
두 세력의 대치는 누가 보더라도 흥미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구도였다·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건간에 판도를 두고 전력으로 부딪혀야만 하니 말이다·
그 부딪힘의 울림은 얼마나 클까· 파장은 또 얼마나 클까· 정원에 모인 이들은 그것에 설레하며 바쁘게 입을 움직이는 중이었다·
샤타가 세무관 비서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협상을 마친 거에요?”
“네가 한 번 예상해봐· 어떻게 됐을 것 같아?”
“반려당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무작위로 선정했나? 제 머리로는 도무지 예측이 안 되는걸요·”
“기사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하게 됐어·”
“네에?”
키가 조그만 샤타가 개구리처럼 펄쩍 뛰었다·
“아이 진짜! 지금 저 놀리시는 거죠!”
꼬맹이가 소리를 버럭 쳤지만 세무관 비서는 샴페인이 들어있는 잔을 여유롭게 흔들 뿐이었다·
“정말이야· 비올라 측에서 공표했으니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결과가 어떻게 나왔든간에 수도 기사쪽에서 플란의 요구를 들어준 건 틀림없어·”
“아니 무슨····”
백번을 황당해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시간 장소 무기···· 영웅을 가리는 자리에서 세가지 요소중 무엇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 승부는 매우 근소한 차이에 따라 승부가 갈리게 되는데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저 세가지 요소란 말이다· 마법 학부는 그걸 대뜸 양보하고 기사 학부는 그걸 또 들어주었다니·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런데 그때였다·
“뭐 그렇게 쉬운 이야기로 고민하고 있어?”
옆에 있던 노인이 끼어들었다·
“어느 장소와 시간을 고르더라도 마법 학부가 이길 확률은 희박하지 않겠나· 그러니까 창피를 좀 적게 감수하기 위해서 양보한 것이겠지·”
“음·”
“그렇지 않겠나? 기사들이 유리한 조건에서 승부를 했다고 하면 마법사들은 져도 덜 창피하니까 말이지·”
하지만 세무관 비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게···· 그 부분은 또 애매하네요·”
“이보게 세무관 비서 애매하다니?”
“기사들에게 유리한 카드들이 골라진 건 사실이지만 플란이 마지막에 강조했다네요· 마법사가 패배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요·”
“···수도 기사에게 유리한 카드들을 주면서 본인의 승리를 장담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뭐 그렇다는 걸 어떡해요·”
세무관 비서가 대충대충 대답하자 끼어든 노인은 황당하다는 듯한 눈을 깜빡였는데 이내 그의 고개가 천천히 모로 기울어진다·
“아니 어디보자 그러면····”
노인이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물었다·
“마법 학부가 플란이 수도 기사 비올라를 상대로 강자의 여유를 부렸다는 말이 되는 거 아니오?”
“그렇게밖에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긴 해요·”
“말도 안 돼!”
노인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패배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을 도대체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게야? 대책이 없는 놈들이야 대책이· 에잉!”
“대책이 필요없는 거 아니에요?”
이렇듯 대답하는 목소리는 샤타의 것이었다·
세무관 비서와 노인의 고개가 옆으로 휙 돌았다· 키가 자신들의 허리춤정도밖에 안 되는 꼬마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했다·
당사자인 샤타가 순수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그냥 승리할 자신이 있어서 패배에 관한 대책같은 게 전혀 없는 거 아닐까 싶어서요·”
세무관 비서가 샤타의 어깨를 툭 쳤다·
“샤타 그게 무슨 소리야·”
“에휴·”
노인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 자리를 떴다· 세무관 비서가 샤타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 사람 쫓아내려고 일부러 그런거야?”
“아뇨· 진심으로 내뱉은 말이에요·”
“진심?”
“네· 저 플란 실제로 봤는데· 진짜 엄청 남달랐어요· 말로는 표현 못하는 거 있잖아요· 뭐라고 해야할까····”
“됐어·”
세무관 비서가 손을 휘이 저었다·
“그냥 경기를 눈으로 보고 확인하자고·”
샤타와 세무관 비서 뿐만 아니라 정원에 있는 모든 이들이 협상에 관한 이야기로 불타오르는 중이었다·
아무개는 수도 기사를 무시하는 듯한 플란의 태도를 무례하다고 칭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런 플란이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 궁금해했다·
많은 의견이 뒤섞였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이 경기만큼은 절대로 놓쳐서 안 되겠구만·”
“높이 솟구치던 마법사들의 기세가 꺾이느냐···· 수도 기사들의 입지가 달라지느냐···· 직접 봐야지·”
모두가 이런 양상으로 대화하고 있었으니 흥미를 크게 불러 일으켰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런데 그때·
샤타가 세무관 비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런데 누나는 어느쪽 응원해요?”
“뭐?”
“세무관님이 마법 학부에 관심이 엄청나시던데요· 돈도 많이 지원하시고· 누나가 세무관님 비서잖아요· 마법 학부를 응원하는 건가 싶어서요·”
샤타는 바쁘게 말을 이었다·
“누나 마음에 들면 대수림으로도 갈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쪽으로 통하는 돈 누나가 쥐고있잖아요·”
“아···· 몰라· 조용히 좀 해봐·”
세무관 비서가 아주 작은 생크림 케이크를 한 입에 집어넣었다· 도톰하고 매력적인 입술 위 생크림이 잔뜩 묻는다·
“잘생기고 돈 많이 가져다주는 쪽· 그게 내 편이야·”
“와····”
“내가 원래 좀 속물이거든· 뭐 불만있어?”
◈
“어렵다·”
베키가 삶을 다 산 것처럼 중얼거렸다·
눈 뜨고 코베일 장소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자고 결심했거늘 정말로 눈 뜨고 코를 베였다· 자신들의 협상 카드조차도 플란이 정해버린 것이다·
물론 플란에게는 계획이 있을 테니까 책망할 수만은 없지만·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렵다· 어렵다· 어렵다···· 미쳐버리겠네·”
무려 수도 기사를 상대로 싸워야하는데 심지어 수도 기사가 더 유리한 환경에서 전투해야한다면 애써 잡은 평정심이 달아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 아니겠는가·
결국 베키가 벌떡 일어나면서 외쳤다·
“아악─! 미쳐버리겠다고─!”
그러자 옆에서 명상을 하던 대표들이 동시에 눈을 떴다· 마냥 곱지만은 않은 시선으로 베키를 바라본다·
“····”
“····”
하지만 그 시선들을 마주하고도 베키는 진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술을 더 떠서 외친다·
“망했어!”
베키가 팔까지 휘적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플란은 늘 생각이 있고 계획이 있지· 잘 할 거야! 근데 우리는 어떡해? 아무리 생각해도 불리한 조건까지 감수하면서는 수도 기사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은데!”
트릭시가 한쪽 눈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왜 우리한테 소리치는 거야· 짜증나게·”
“플란한테 따질 수는 없잖아· 너희라도 공감을 해줘·”
“····”
트릭시 루이스 마이에브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긴 했지만 무언가를 내뱉진 않는다· 그냥 말없이 한숨을 푹 내쉴 뿐이다·
잠시 후 마이에브가 입을 열었다·
“저희한테 이러셔도 소용없어요·”
“왜?”
“말씀하셨듯 플란님이····”
“아·”
플란·
그 두글자만으로도 이해와 납득이 동시에 되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사내는 이미 하나의 불가항력이었으니·
역시 명상에나 집중하자고 생각하려던 찰나· 베키는 문득 신경쓰이는 것이 있어 물었다·
“근데 마이에브랑 트릭시는 왜 그러고 있어?”
그게 무엇인가하니····
“생각해보니까 둘 다 항상 명상을 할 때 그렇네· 트릭시는 장갑을 만지작거리고 마이에브는 웬 찻잔을 만지작거리고· 그러는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러자·
“···!”
놀랍게도 트릭시와 마이에브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난데없이 등 뒤로 물건을 휙 감추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얼굴을 붉히며 내뱉는 외침도 동일했다·
“소중한 거야·”
“소중한 거에요!”
그리고 그것을 다시 매만지면서 명상하는 것 아닌가·
트릭시가 한 마디를 했다·
“너도 명상이나 해· 피할 수 없는 경기니까·”
“어어· 어···· 그렇지·”
그 태도가 워낙 단호했기에 베키는 순간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했을 정도다·
베키는 주변을 잠시 멀뚱거리다가 고민했다· 자신에게 소중한 물건이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음·”
플란이 사준 고깔모자를 꼭 안은채 명상을 시작했다·
정확히 십 분 후 경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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