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8
이후 네 번의 경기가 이어졌다·
마이에브의 승리를 깊게 분석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마법 학부 다른 대표들의 승리가 빠르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한 번 한 번을···· 아직까지 한 번도 안 진거지?”
경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마법 학부를 향한 관심은 배로 커졌다· 처음에는 ‘마법 학부가 잘해봐야 얼마나 잘할까’에 관한 심리였지만 이제는 ‘설마 또 이기는걸까’의 생각을 갖게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베키의 차례였다·
“아 음····”
경기장의 한가운데에 선 베키는 눈앞의 상대에 집중하려했다· 관중석이 굉장히 요란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집중력은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애초에 관중의 반응은 뒤로 제쳐두고서·
‘음?’
소녀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상대방을 유심히 살폈다·
이름은 모르겠고 나름 유명한 검객이라는 건 전해들었다· 실제로 보더라도 그런 기운이 꽤 느껴졌다· 위협적으로 휘어있는 검 그리고 장대한 덩치만 봐도 말이다·
“마법 학부가 이번에도 승리할까?”
“어째 이번 대표는 좀 약해보이는데·”
“···그건 다른 대표들도 그랬었잖아·”
관중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여실히 꽂힌다· 그래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베키를 제외한 대표들은 이미 승리하고서 돌아갔으니까·
그러니까 자신도 더더욱 패배할 수 없었다·
펑─!
신호탄이 폭발하며 승부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휘어있는 상대방의 검이 초승달처럼 베키에게 날아들었다·
멀지않은 과거·
플란이 아이반을 처음 상대할 때 보았던 검· 그것보다도 수준높은 검이다· 바꾸어말해 이전의 베키는 이런 검을 상대하기는 커녕 보는 엄두조차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도 많이 달라졌구나·’
예전에는 이런 상황에 처하면 공격이 온다· 피해야한다· 이러한 생각을 하느라 바빴었는데 말이지·
‘이제는 하나하나 전부 보이거든·’
상대방이 약하다는 건 아니다· 하찮다는 것이 당연히 아니며 그가 했던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베키가 이 순간 자신있게 내뱉을 수 있는 한마디·
“···나만큼 열심히 하지는 않았네·”
플란이 해왔던건 ‘지옥’이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았던 훈련들· 그것과 비교해보았을 때 지금 상황은 천국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지옥에서 살아남았기에 베키가 지금 이렇게 서있는 것 아니겠는가· 지옥에서 살아돌아온 이에게 있어서 천국의 시련따위는 너무나도 가벼웠다·
촤악─!
얼음을 비단처럼 펼쳐낸다· 가로로 베어지는 검로를 따라 얼음길을 교묘하게 만들어 검이 베키를 자연스레 빗겨가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반격·
퍽─!
깔끔하다·
상대방이 검을 모조리 휘두른 직후 베키는 얼음으로 둔기 모양을 소환하여 가격했다·
쿠당탕탕─!
뒤통수를 얻어맞은 상대방이 저 멀리 날아간다·
“···!”
정작 공격을 가한 베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격이 들어가는 것까지는 예상했는데 위력이 이토록 강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도···· 이겼네?”
베키의 중얼거림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관중석에서 터져나온 함성 소리 때문이었다·
“또···· 또 마법 학부가 승리했다!”
“결국 전승했어!”
베키는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서 경기장 밖으로 걸어나갔다·
환호성이라는 것은 늘 빛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는데 지금 자신이 그러한 당사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자꾸만 기분이 묘했다·
◈
대기실·
대기실로 복귀해보니 다른 대표들도 자신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이겨서 다행이라는 듯한 안도감과 본인의 강함을 신기해하는 감정이 그대로 섞여있었다·
침묵이 머쓱해서 베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내가 느낀거 너희들도 다 느꼈어?”
“뭘 느꼈는데?”
“그냥···· 생각보다 많이 쉽다는 생각? 그리고 하나 더· 우리가 엄청 열심히 했구나 하는걸 새삼 느끼기?”
다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느끼는 바가 베키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 모두의 시선이 플란에게로 향했다· 원래부터 플란을 믿고는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는데 경험해보니 엄청났다·
“····”
플란은 여유로이 신문을 읽고있었다· 한 손으로는 마이에브가 타준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말이다·
트릭시는 조용히 장갑으로 이마를 닦았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베키가 조용히 말했다·
“그건 손수건이 아니라 장갑인데·”
“나도 알아·”
“···?”
베키는 더이상 트릭시를 지적하지 않았다· 푸른 소녀가 이해못할 행동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라·
트릭시가 말을 이었다·
“이기면 좋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네· 이제부터는 진짜 수도 기사들을 상대해야 하는거지?”
“아무래도 그렇지·”
다들 대기실 밖의 창문을 내다보았다· 수도 기사들이 머무는 성처럼 생긴 거처가 시야에 들어온다·
“루이스 네가 상대한 건 누구였어?”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되게 유명한 집안인데 서자였대· 핏줄은 그대로 물려받았다는건지 검 하나는 진짜 잘 휘두르더라·”
“결국 네가 이겼잖아·”
“그거야 그렇지·”
베키 트릭시 마이에브 모두가 상대한 적수들이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그런 적수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울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한다면 당연히····
플란· 그밖에 없었다·
베키가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훈련했는지를 새삼 알 것 같아· 화중 세계 안에서 정말 죽을 뻔 했잖아····”
“이제와서는 말해도 괜찮을까요? 숨참고 마나 끌어올렸던 훈련···· 중간에 몇 번이나 기절했어요·”
“질식하지 않고 살아있는게 용한거야····”
원망하듯이 말하지만 안에 담겨있는 것은 플란을 향한 감탄이었다· 그 덕분에 자신들이 이러한 경지에 오를 수 있었고 성과를 거두는 것도 명백했으니 말이다·
“이제는 정말 믿을 수밖에 없네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의 주인은 마이에브였다· 대표들의 얼굴이 모두 그쪽으로 향했다·
“플란님 덕분에 우리는 이전보다 확실히 강해졌고 앞으로는 더더욱 강해질거라는 거· 안 그래요?”
“어····”
“그 한계가 어디까지일지는 몰라도 우린 계속 강해질 거에요· 수도기사도 이제 해볼만 한 것 같은데요·”
무려 수도기사를 상대할만하다니·
예전에 이런 말을 들었더라면 황급히 놀라하며 주변을 돌아보았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대표들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이런 말을 어떻게 내뱉지? 따위의 고민이 아니다· 너희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가의 시선일 뿐·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살필때 쯤이었다·
쾅─!
대기실 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열렸다·
◈
“···후!”
대기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은 다름아닌 바이올렛· 그녀는 숨을 고르며 대표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바이올렛은 문득 대기실에 걸려있는 거울의 모습을 보았다· 흥분해서 어깨가 떨리고 입꼬리는 자꾸만 말려 올라가는 중이었다·
자신이 아이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바이올렛 교수님?”
“교수님?”
대표들이 자신을 알아보았다· 바이올렛은 그제서야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뒤 대기실 안으로 들어섰다·
“일단 이것들좀 받으세요·”
바이올렛이 몸을 반쯤 돌렸다· 그러자 아직 열려있는 대기실 문을 통해서 사람들이 줄줄이 입장한다·
들어오는 사람마다 빈 손이 없었다· 손에 노골적인 재물이 들어있기도 했고 예쁘게 포장된 바구니에서는 맛있는 식재료의 냄새가 났다·
플란이 조용히 물었다·
“···뭐지·”
“응원차 온거라고는 하는데 사실상 협찬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아요·”
“협찬?”
“그래요· 마법 학부도 이제 그런걸 받는다니까요?”
바이올렛이 흥분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제 마법 학부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단순히 응원으로 그치지 않아요· 진심을 피력하기 위해 이런저런 물질적인 것까지도 동원하기 시작했으니까요!”
플란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조금도 필요하지 않다만·”
“아직 마탑도 완공되지 않았고 고대 룬어를 연구하려면 자금도 많이 필요하잖아요? 그러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요· 아니 필요해요!”
바이올렛이 대기실에 막무가내로 이것저것 쌓기 시작했다·
“이건 몸에 좋다는 영양제고···· 포션도 몇 개 있어요· 나머지도 편하게 사용하면 될 것 같고···· 아 무엇보다도·”
바이올렛이 바구니 하나를 들어올린다·
“저희가 그동안 식사를 잘 챙겨드리지 못했었는데···· 다행히 여기 들어있어요· 든든하게 챙겨드셔야죠·”
“와!”
“냄새가 너무 좋은데·”
트릭시는 본인이 먹을 샐러드를 챙겨다니기 때문에 별 반응이 없었지만 루이스와 베키는 곧바로 바구니로 달려가 맛있는 음식들을 즐기기 시작했다·
“····”
하지만 마이에브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마이에브의 조예가 비단 커피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법 학부의 식단이 실제로 부실하긴 했어서 오늘 식사의 경우 마이에브가 샌드위치를 준비해왔었다·
마이에브는 자신의 바구니를 조용히 구석으로 감추었다· 본인이 보기에도 선물받은 바구니의 샌드위치가 더 맛있어보이긴 했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그걸 혼자서 다 먹나·”
“엇·”
기다란 손이 쑥 뻗어나오더니 바구니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가져간다· 손의 주인은 플란이었고 마이에브가 놀랐다는 듯 플란을 바라보았다·
“아 그건 별로 맛없는····”
“나름 먹을만하군·”
“예?”
플란의 말에 마이에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샌드위치에는 독이 없군·”
“아 저기····”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도 못했고 이런 반응도 처음이었기에 마이에브는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잠깐 버벅거리다가 다시 입을 연다·
“왜 저거 안 드시고···· 읍·”
하지만 마이에브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플란이 염동으로 그녀의 입가에 샌드위치 하나를 가져다댔기 때문이다· 입으로 한가득 들어온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면서 마이에브가 눈빛으로 물었다·
“든든하게 먹어라· 바쁠 테니까·”
“····”
마이에브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볼이 이전과는 다르게 꽤 붉어진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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