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
차분한 시선으로 아리아를 훑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과 후들거리는 다리가 시야에 스친다·
문득 그 꼴이 비에 젖은 생쥐처럼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잠시 여유로운 태도로 겁에 질린 그녀를 관망했다·
“뭐··· 뭘한거야· 내 골렘인데···”
아리아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녀가 건방진 태도를 하고서 내게 귀찮게 굴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느 정도의 벌을 내려주어야 합당할지 잠시 고민했다·
경고는 확실하게 해야겠지·
적어도 다시는 기어오르지 않을 만큼· 아니 못할 만큼·
가장 쉽고 간편한 수단은 역시 공포였다· 내가 턱짓하자 골렘이 그 거대한 주먹을 하늘로 짓쳐들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주먹이 지면에 꽂힌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운석과 다름 없을 터· 주먹과 눈을 맞춘 아리아가 털썩 주저앉았다·
스스로가 예측한 다음 상황은 너무나도 끔찍하다는 듯 아리아가 나와 골렘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뭐하 뭐하려는건데· 아 아니지?”
나는 다만 침묵할 뿐이다· 그녀를 향해 그 어떠한 연민이나 동정도 느끼지 않는다·
죽음에 상응하는 고통을 느끼기야 하겠지·
그러나 바이올렛이 학생들에게 보조 마법을 걸어두었으니 그녀가 죽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마나의 잔량을 체크했다· 골렘의 주먹을 한 번 휘두르고 나면 거의 바닥날 수준의 잔량이다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골렘이 아리아를 향해 주먹을 내려치도록 조종했다· 기기기긱 골렘이 칠판을 긁는 듯한 기괴한 소리를 냈다·
“야···· 야! 자 잠깐만···· 잠깐만· 야 이 개새끼야!”
아리아는 거의 절규하고 있었다·
그러거나말거나 나는 강의가 끝난 후 남은 하루에 어떻게 시간을 안배해야 좋을지를 고민한다·
“너 너 너 씨발 살인자 되는거야! 이 미친새끼야! 살려달라고!”
식사를 마치면 훈련을 할 생각이다·
그 다음 트리비아 고객에게 가르침을 주고 도서관에 있는 마법 도서들을 읽으며 이 세계에서 어떤 논문들을 발표해나갈지 미리미리 정리하고····
“꺄아아아아악!”
아리아의 비명에 의해 상념이 깨진다· 골렘의 주먹이 아리아의 몸체에 닿으려는 그 찰나의 순간·
탁 나는 손가락을 튕겨서 골렘을 부숴버렸다·
정교하게 맞물리며 기동하던 소환수는 한낱 돌덩어리로 변모해 사방으로 비산한다·
“······흐으윽! 으으윽!”
여전히 아리아는 눈을 질끈 감고서 양손으로 제 머리를 감싼채였다· 입술을 떼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리아·”
“······?”
아리아가 서서히 눈을 떴다· 나는 산산히 부서진 골렘의 모습을 턱으로 가리켰다·
1초· 2초· 3초·
아리아의 얼굴이 서서히 경악으로 물든다· 나는 그녀를 내버려둔채 관중석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승부는 이미 판가름났다· 교수들은 반드시 내게 승을 줄 터·
“너 너···· 너! 이새끼···!”
악에 받친 아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러다 문득 뒤쪽으로부터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가 않아서·
촤르륵ㅡ!
급속 빙결 스크롤을 펼쳤다· 그 즉시 주변 일대가 얼어붙으며 냉랭한 한기에 휩싸였다·
딱히 얼어붙을만한 것도 주변에 없기는 했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얼어버린 아리아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녀는 웬 새빨간 스크롤을 내게 투척하려는 자세로 얼어붙었다·
내게 던지려했던 모양인데 바이올렛이 지급해준 스크롤과는 색이 전혀 달랐다·
애초에 그녀는 세 개의 스크롤을 이미 소모하지 않았던가· 출처를 알 수 없는 스크롤이었다·
허공에 들어올려진 그녀의 손에는 스크롤이 어중간하게 얼어붙어있고 그것이 스르륵 흘러내리며 효과를 발동한다·
종이로부터 쏟아져나온 보라색 액체는 무지막지했다·
“······!”
아리아가 눈으로 비명을 질렀다· 머리 위로 줄줄이 쏟아지는 보라색 액체에 아리아의 눈이 거의 뒤집히다시피했다·
나는 그것을 그저 관망한다·
‘마비인가·’
액체가 닿는 면적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그녀의 마나가 희미해져간다· 척 보아도 마비 효과를 가진 액체였다·
골든 타임 내에 조치를 받으면 재활하는거고 못 받으면 마법은 그만두는거고·
그녀를 향해 어떤 분노도 연민도 느끼지 않는다· 그저 이제서야 본인 수준에 맞는 몰골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한편 바이올렛과 레너드 교수가 나타나서 아리아를 붙잡았다·
“아리아 학생 제 말 들려요? 아리아 학생·”
교수들이 황급히 조치를 취하고 아리아가 검게 물들였던 결계는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
동시에 관중석에 앉은 다른 학생들의 수군거림이 내 귀에 와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리아···! 뭐야 뭐가 어떻게 된거야?”
“진거야? 설마?”
“진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저거··· 뭐야?!”
아리아가 게거품을 물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억··· 어걱··· 컥··· 커헉!”
온 몸의 핏줄이 보랏빛으로 변하며 아리아는 고통스러워했다· 레너드가 아리아의 어깨를 두들기는 사이 바이올렛은 새빨간 스크롤을 펼쳐 꼼꼼히 살폈다·
어느 순간 바이올렛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
바이올렛이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레너드 교수가 바이올렛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내 그의 눈도 똑같이 휘둥그레진다·
바이올렛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아리아 폰타인은 부정행위로 실격·”
그리고 잊을뻔 했다는 듯 급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늘 강의는 여기서 중지· 아니 끝! 다들 당장 나가요!”
그 간단한 결과 발표가 진정한 급속 빙결이었다· 넓은 훈련장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나는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경기장에 들어갈 때와는 다르게 내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동안은 그 어떤 수군거림도 없었다·
그나마 베키가 말을 붙여온다·
“야 프 프 플란· 뭐야? 어떻게 된거야?”
“이겼지·”
“그러니까 어떻게? 아리아는 상태가 왜 저래?”
어떻게 이겼는지를 설명하기는 귀찮았다·
아리아의 마법에 간섭했던 것부터 스크롤 활용까지···· 세세한 것을 설명하기는 입도 아프고 시간도 아깝다·
그래서 아리아가 왜 불려나갔는지에 대해서만 대답하기로 했다·
“본인이 지참해온 스크롤이다· 자업자득이지·”
“어···?! 그럼 부정행위구나! 생각해보니까 스크롤 색깔도 달랐고···· 징계받겠네?”
아마 그렇겠지·
나는 차근차근 바이올렛의 말을 되짚었다· 오늘 강의는 여기서 끝이랬으니 당장 이 곳을 벗어나도 문제는 없을 터·
할 일이 많다·
훈련을 해야하고 탐독을 해야하고 시간이 남으면 트리비아의 개조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생각이다·
발걸음을 떼었다· 베키가 급하게 따라붙는다·
“야 플란· 어디가? 아니···· 좀 같이가!”
경기장 밖으로 내 발을 딛은 그 순간·
마치 그제서야 최면에서 깨어난듯 온 학생들이 일제히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
메르헨 아카데미의 마법학부가 제공하는 공평함은 ‘학습’에 국한되어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지내는 공간에는 차별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카데미에서 나서서 차별을 권장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만 귀족들이 가져오는 것을 평민들은 가져올 수 없기에 자연스레 이런저런 차이가 생긴다·
일례로 프리츠 가문에서 아카데미 기숙사 인근에 지어둔 개인 건물이 그러하다·
주황색 조명이 햇살처럼 쏟아지는 발레실은 밤에도 밝다· 공예품이라고 칭해도 손색없을 소녀 한 명이 차분히 몸을 풀었다·
순백색의 발레복과 호수를 머금은 듯 푸른 머리카락은 그 자체가 예술품이다· 신이 만든 조형물이 살아 호흡하고 있었다·
작품명은 트릭시 폰 프리츠·
그녀는 모의 전투 이후로 마음이 심란하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어 좋은 성적을 얻어냈음에도 그렇다·
이유는 다름 아닌 플란·
정체를 알 수 없는 평민 남학생때문에 트릭시는 때아닌 혼란을 겪고있었다·
연모하는 감정을 품었다거나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며 단순히 그가 모의전투때 보여주었던 모습 때문이었다·
폴 드 브라·
손을 모으는 첫 동작으로 발레의 시작을 알리며 트릭시는 자신이 보았던 광경을 되짚는다·
그건 어느순간 트릭시가 바라보던 결계의 정면에 박힌 무언가로부터 시작되었다·
구석에 홀로 앉아있던 트릭시의 정면에서 금이 생겼고 거미줄처럼 퍼져나간 금은 이내 안을 엿볼 수 있을만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그녀는 다른 학생들은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을 오롯이 보았다· 또한 기억하고 있었다·
드미 플리에 그랑플리에·
다리를 이용한 발레 동작들을 이어가며 떠올리는 그때의 풍경· 트릭시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압도·’
그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다·
막다른 구석에 몰려 생쥐처럼 파들파들 떨던 아리아 마치 자신이 소환해낸 것처럼 골렘을 다루던 플란·
‘그리고 여유·’
아리아는 지옥에 붙잡힌 영혼처럼 절규했다· 플란의 의지를 쫓는 골렘이 벼락처럼 주먹을 내리치는 그 순간·
플란은 그저 손가락을 튕겨 골렘을 분쇄했다·
분을 이기지 못한 아리아가 스크롤을 꺼내들었지만 곧바로 플란에게 제압당했다· 그렇게 모의 전투는 종료·
탄듀 데가제 롱드잠···· 이어지는 동작마다 트릭시의 다리가 우아한 곡선을 그려낸다· 그녀의 생각은 이어진다·
‘도대체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트릭시의 의문은 그저 그 뿐이었다·
F급으로 입학했으면서 어떻게 그런 실력이 평민이 어떻게 그런 기백을 새내기가 어떻게 간섭 계열을····
피케·
한 쪽 발 끝으로 우아하게 서면서 트릭시는 머릿속을 잔류하는 퍼즐을 끼워맞추기 시작했다·
아리아가 마나 결정을 출력에 연달아 실패하던 당시 플란에게서 느껴졌던 오묘한 기감·
또한 그는 훈련장에서 상급 난이도로 훈련하고 있었다· 지금생각해보면 그것 역시 실수로 선택한 난이도 따위가 아니었다·
플란 그는 도대체 뭐하는····
“읏!”
일순간 발목이 꺾이며 트릭시는 주저앉았다·
당황스럽다· 근래 들어 처음으로 해보는 실수였다·
“······”
고통보다는 본인이 실수를 했다는 더 충격이 컸다· 주저앉은 그녀의 시야에 고급진 리본이 감긴 트리비아가 들어온다·
“가르침 경매·”
동시에 그녀는 저도 모르는 사이 중얼거렸다·
플란은 가르침 경매를 애용한다고 했었지·
‘···혹시·’
급속도로 F등급을 벗어나 A등급의 귀재가 되고 상급 훈련을 할 수 있게 된 이유가 가르침 경매 덕분이라면?
모든 퍼즐이 들어맞는다· 트릭시는 염동을 사용해 트리비아를 제 손아귀에 넣었다·
“후우·”
심호흡을 하며 날짜를 센다·
그녀가 먼저 제안했던 아고라 보드의 승부 가리기는 이제 이틀밖에 남지않았다· 이대로라면 그녀는 패배하게 될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엎드려 빌게 될 것이다·
트릭시는 초조하게 트리비아를 만지작거렸다· 이 ‘가르침 경매’라면 아고라 보드의 문제의 답을 알지도 모른다·
그러나 까불지 말라는 실언에 의가 상했을까· 답장이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연락을 해볼까· 그러나 그건 그녀의 자존심이 아직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순간·
“······!
마침내 표지가 푸른 빛을 발했다·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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