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0
루이스가 경기장에 발을 막 딛은 순간·
“아 잠깐만· 이건 아니지·”
수도 기사 클로트가 손바닥 하나를 내밀었다· 루이스가 경기장 위로 올라오려는 것을 제지하려는 듯한 손동작이었다·
클로트의 외양은 상당히 특이했다· 한 쪽 동공에서는 눈동자 대신 초침과 분침이 돌아가고 있었고 검 역시 아주 기다란 초침의 형상이었으니·
···마치 시계를 인간으로 빚은듯한 모습이었다·
클로트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나는 플란을 상대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루이스···· 라고 했나? 이건 아니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야·”
클로트는 루이스에게 관심조차 없는 듯 했다· 루이스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보내서 마법 학부 대표들의 중심에 서있는 플란을 바라본다·
“이봐 플란· 네가 직접 나서야하는 거 아니야?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마법 학부는 한 명만 패배해도 탈락이라며·”
“····”
마법 학부의 다른 대표들도 말없이 플란을 바라보았다· 정답을 갈구하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클로트는 그러거나말거나 팔짱을 꼈다·
플란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나는·”
다들 안절부절 못하는 것에 비해서 플란의 얼굴은 너무나도 태연했다· 불안한 기색이 소거된 것처럼·
“루이스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그러자 클로트의 초침이 한 순간 째깍이며 회전했다· 그가 안구 위로 손가락을 올리더니 회전한 초침을 원위치시킨다·
평범한 일반인은 상상할 수조차 없고 흉내낼 수도 없는 행동이었다· 클로트가 말했다·
“내 시간에 방금 그 발언 기록해뒀어· 상당히 재미있네 이건 심심할 때마다 챙겨봐야겠다·”
클로트는 진심으로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호위기사도 관중들도 일단은 주의깊게 이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물론 대다수의 기사들은 참지 못하고 분노를 표했다·
수도기사 클로트·
시간을 베는 기예를 지녔다고 알려지는 인물· 그는 영웅의 후보로도 충분히 거론되는 인물이었다·
플란의 발언에 클로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루이스?”
클로트는 사실 루이스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었다· 원체 세간에 관심이 없는 편이기도 했지만 관심이 있더라도 굳이 플란이 아닌 대표의 이름을 구구절절 기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니 다른건 다 제쳐두더라도·
이름값없는 마법사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클로트를 상대하겠다면서 나설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래· 뭐 다 좋은데·”
클로트의 시선이 비로소 루이스에게로 향했다·
“루이스라고 했지?”
“그래·”
“네가 날 상대할 수 있겠어?”
노골적이고 또 직설적인 질문이 루이스를 향해 날아든다· 루이스는 조용히 클로트의 시선을 마주보았다·
루이스는 조용히 클로트의 시선을 마주보았다· 놀랍게도 수도기사를 마주하는 소년의 눈빛에는 거리낌이나 두려움이라고 칭할 것이 조금도 없었다·
“····”
클로트는 잠시 그 눈빛의 의미를 이해하려 했다·
자신을 향하는 시선은 늘 거기서 거기였다·
경외심이나 존경 그리고 클로트를 마주해서 전투해야하는 사람으로부터는 공포심· 물론 가장 많은 경우의 수는 존경 없이 공포심만 가득한 이들이었다·
그런데 루이스는 반대였다·
존경은 있을지언정 공포심은 없다· 그것이 참 특이하다·
“대답이 없네· 루이스 널 무시하는 건 아니야· 다만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충분히 들어보고 싶거든·”
“자신있어요·”
루이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소년의 말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도리어 클로트를 두 눈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그런데 수도 기사님께서는 괜찮으시겠어요? 제게 패배하게 된다면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을 거에요·”
“···!”
정작 클로트는 괜찮았지만 둘의 대화를 듣던 주변 사람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베키와 트릭시가 쏜살같이 튀어나가려 했지만 플란이 그들을 가로막는다·
베키가 말했다·
“저거 괜찮은 거야? 승부에서 기선제압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괜찮다·”
플란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베키와 트릭시는 하는 수 없이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루이스가 대뜸 수도기사에게 먼저 한 손을 내밀었다·
“마법사 루이스입니다·”
“그래·”
결국 클로트는 마음에 든다는 듯 그 손을 맞잡았다· 소년과 사내가 악수를 나누고 수도 기사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한다·
“플란이 당당하다는 이야기는 꽤 들어본 것 같아· 근데 다른 대표들도 그런 줄은 몰랐네·”
“처음엔 안 이랬어요· 점점 닮게 되었달까·”
루이스가 여유로운 미소로 말을 이었다·
수도기사·
예전에 수도기사라고 하면 눈조차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눈부신 것이었다· 그 뿐인가 기사라는 명칭만 듣더라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루이스는 더이상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크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플란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믿을 것이며 또 자기 자신을 믿는다·
루이스가 말했다·
“수도기사를 상대해보는 경험은 물론 좋죠·”
“경험이 경험으로만 남았을 때의 이야기야· 각서 내용은 확인했지? 여긴 까딱하면 죽는 곳이거든·”
“괜찮아요· 또 걱정해주실 필요도 없어요· 제 목숨 정도는 스스로 신경쓸 수 있으니까요·”
클로트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다가 멈칫했다·
‘일개 마법사의 도발을 신경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클로트는 최대한 빠르게 자신을 진정시킨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마법사 친구들· 이렇게 하자고·”
클로트가 뒤편의 다른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돌고 돌다가 자신의 호위기사에게로 머무른다·
“나도 내 호위기사를 내보내는 것으로 할게· 대신 조건은 똑같이 하자· 지면 몰수패를 당하는 걸로·”
다른 기사들의 표정도 그제서야 옳게 되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베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러면 수도 기사 클로트랑 맞붙는건 피한 셈이네· 이러면 기뻐해야하나? 마냥 나쁜 상황은 아닌거지?”
“누구든 이기기만 하면 될 일이다·”
플란은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클로트와 루이스의 변덕에 양측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다름이 아닌 황실 관료였다·
“양측의 신경전을 보는 것에는 늘 묘미가 있구만· 중립인 내가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군·”
관료가 양 측의 각서를 한 번에 펼친 다음 동시에 수정하기 시작했다·
“양 측 다 대리인을 내보내기로 했고 대리인이 패배한다면 그냥 몰수패로 간주하여 이 장소를 벗어나기· 이렇게 확정해야 할 것 같은데 맞나?”
관료가 클로트와 루이스를 번갈아가면서 바라보았고 당사자 두 명은 고개를 끄덕여다· 루이스는 마나를 조그만 공 모양으로 빚어 차분하게 던졌다 쥐었다했다·
“네· 번복할 생각은 없습니다·”
“좋아· 클로트 쪽은?”
“그렇게 하지·”
클로트는 곧바로 뒤를 돌아서 호위기사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기다란 초침같은 검을 내어준다·
“브라인·”
브라인 클로트 호위기사의 이름이었다·
“네· 브라인입니다·”
“최선 다해서· 알지?”
“대충 임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겁니다·”
양손으로 검을 받아든 뒤 브라인이 비장한 얼굴로 경기장 위에 올라섰다· 당사자가 아니라 호위기사가 올라섰음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상당했다·
“클로트가 검을 넘겨줬어!”
“호위기사와 마법 학부의 싸움이라···· 궁금하구만·”
아까보다는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승부라고 여겼는지 관중들의 반응도 아까보다 훨씬 뜨거워졌다·
브라인이 루이스를 마주본채로 말했다·
“차라리 플란이 클로트님에게 패배했다면 어땠을까· 나름 명예로운 패배로 남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굳이 상황을 이렇게까지 끌고왔어야 했나?”
“그건 그쪽이 바라는 그림이었겠죠·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겁니다· 피하지 않고 직접 나서는 거·”
“좋다· 그게 용기인지 오만인지 확인시켜주마·”
클로트가 검을 고쳐쥐자 루이스도 자신을 빛으로 두르며 전투 준비를 했다·
“입이 아니라 검으로 확인시켜주세요·”
“건방지긴·”
브라인이 검을 가볍게 휘두르려던 그때·
‘···?’
브라인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루이스의 빛이 황금빛을 머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선제압을 위해 여유를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루이스의 빛에서 꽤 정순함을 느낄 수 있었다·
1초·
2초·
3초·
“····”
둘은 한동안 말없이 대치했는데 매 초마다 루이스를 바라보는 브라인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브라인이 검을 고쳐쥐었다·
“좋다·”
그가 고개 끄덕이며 말했다·
“전력으로 상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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