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1
‘봐주지 않는다·’
수도 기사 클로트의 호위기사 브라인이 검을 똑바로 고쳐쥐었다·
이곳은 영웅을 가려내는 자리· 지켜보는 눈동자 수가 많기도 했고 심지어 직속 수도기사인 클로트에게 명령받은 것이니 절대로 패배해서는 안 되었다·
브라인에게 있어 따라야할 것은 오직 클로트의 명령· 그리고 휘둘러야하는 것은 손에 쥐어진 검이다·
“후·”
브라인이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루이스를 둘러싼 마나가 황금빛을 머금고 있었다면 기사 브라인을 둘러싼 분위기는 굉장히 무겁고 차분했다· 마치 무엇에도 밀리지 않을 암벽처럼·
‘기사의 자존심을 걸고·’
자신에게는 크나큰 각오가 되어있었다· 심지어 클로트가 본인의 검을 건네주기지했다· 어느 것을 생각해도 자신이 이겨야하는 이유 뿐이었다·
클로트가 본인의 검을 건네주는 건 이번이 생전 청므이었다· 어쩌면 이번에 무언가를 해낸다면 자신도 비로소 수도 기사의 반열에 오르게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반드시 이긴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브라인이 지면을 박찼다·
“흡!”
검을 휘두르자 휘두른 궤적을 따라서 일순간 그 부분의 공간이 왜곡된 듯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클로트의 검 초침· 이 검에는 다른 기사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신묘한 힘이 담겨있었다·
지나친 공간의 시간을 붙잡아두는 힘· 일순간 정지했던 공간의 궤적이 한 박자 늦게 되감기며 원래의 상태를 되찾는다·
심지어 검의 주인인 클로트가 아닌 브라인이 휘둘렀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 위력이다· 검이 머금고있는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새삼 실감할 정도였다·
‘괜찮네·’
수도기사 클로트· 그는 자신의 호위기사인 브라인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호위기사라 하면···· 사실 기사의 직함을 가지고 있더라도 비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만 브라인의 검술은 자세가 제법 훌륭했다·
‘쉽다·’
클로트는 조용히 되뇌었다·
지금 상황이라면 적어도 마법사를 상대로 패배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역시 자신이 나서도 충분했다· 만일 클로트님이 나섰더라면 얼마나 모양새가 안 맞았을까?
짤막한 감상을 떠올린 그때였다·
“하앗!”
루이스가 기합을 넣는 소리가 들렸다·
또한 루이스는 브라인의 검격을 피해서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몸을 살짝씩 비틀어 궤적을 피할지언정 브라인과의 거리는 도리어 좁히고있었다·
베키가 눈을 휘둥그레떴다·
“어 설마···?”
베키는 그 모습이 꽤 익숙해서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플란이 여느날 기사를 상대하면서 보여주었던 움직임 그게 현재 루이스에게서 보였다·
“그걸 따라할 때가 있고 안 따라할 때가 있지···!”
베키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런 움직임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플란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후 모두가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이 눈앞에서 차근차근 펼쳐지기 시작했다·
카앙!
브라인이 세로로 내려친 검을 루이스가 빛으로 창을 빚어 받아냈다· 물론 ‘받아쳤다’는 행위만으로도 눈이 거대해지는 사람 역시 존재했다·
“저 일격을 받아쳤어?”
클로트의 검으로 내리쳐진 일격인데?
“받아치면 지옥은 거기부터 시작되는 거야·”
한 기사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루이스의 행동이 일순간 아주 조금이지만 느려졌으니까·
기다란 초침은 닿은 것의 시간을 제멋대로 왜곡시켰다· 그것에 닿은 루이스는 힘에 눌려서 느려진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현상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브라인은 공격이 튕겨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확신했다·
루이스의 행동이 왜곡되어 둔해진다· 그곳을 향해 브라인의 연격이 가차없이 쏟아졌다·
하지만·
“역시·”
루이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지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이 나설 것을 계획했었고 클로트를 조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니까 그의 검과 맞닿게 된다면 시간이 왜곡된다는 것 따위는 진작에 알고있었다· 그것이 자신에게 높은 확률로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 역시도·
그렇다 하더라도·
‘위기가 곧 기회가 되는 법이지·’
비장의 한 발이라는 건 위기 상황에서 발휘할때 진정 비장이라는 의미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허를 찌르기 위해서 밤을 며칠간이나 지새웠던가· 또한 마침내 정답을 찾아낸 루이스에게 있어 이 상황은 그렇게 불리하지만도 않았다·
그저 하나·
또 하나·
느려진 시간속에 자신의 빛 쐐기를 심어둔다·
그리고 또 한 걸음 브라인을 향해 다가갔다·
“뭐야!”
“왜 다가가는 거야 도대체? 기권?”
루이스는 느리더라도 브라인의 일격을 한 번 한 번 필사적으로 받아친다· 한 번이라도 막아내지 못하는 순간 몸이 동강나게 될 텐데 거리낌이 없다·
타인의 눈에는 그것이 말도 안 되는 결심으로 보였으나 루이스에게 있어서는 이미 고뇌한 결과물일 뿐이었다· 동작이 느려지더라도 계산을 마쳐 다가간다·
“···?”
브라인은 위화감과 당황감을 동시에 느꼈다· 세 번 넘게 합을 겨루었는데도 루이스가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으로 거리를 좁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리가····’
머릿속의 물음표가 거대해졌지만 브라인 역시 공격을 멈추지는 않았다· 숙련된 검수였기 때문이다·
머릿속의 복잡한 계산보다는 손목과 발목이 더 빠르게 반응한다· 정말 이번에야말로 루이스의 목을 확실히 베어낼 수 있는 궤적으로 검이 휘둘러진다·
카가가각!
하지만 루이스가 만들어낸 창살들이 그것을 보란듯이 막아낸다· 초침 검으로 인해 왜곡되어진 공간 루이스가 느릿느릿 미소를 띄우면서 말했다·
“왜 이렇게 느려?”
또박또박 뱉어지는 발음에는 숨길 수 없는 여유가 묻어난다· 자신이 다루는 원소처럼 빛나는 미소였다·
“····”
브라인의 표정은 굳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왜곡되어 느려진 건 루이스였으니 그런 말은 브라인이 뱉어야 맞는 것 아닌가·
짧은 찰나 허공에서 서로의 눈이 맞부딪혔다·
루이스가 말했다·
“빛이라는 건 말이야 잘 봐·”
동시에 왜곡된 시간들이 정상을 찾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쐐기· 노란 빛·
무언가가 반짝인다 싶더니 그 개체수를 말도 안 되게 증식한다· 그게 빛의 화살이라는 걸 브라인이 깨달은 동시에 엄청나게 쏘아진다·
파앙─!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력·
하나를 튕겨냈지만 끝이 아니었다· 결국 브라인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팡─!
하나가 미처 완전히 피하지 못하며 볼을 스쳤다· 살갗이 갈라지는 감각이 말도 안 되게 따가웠지만 현재 그런 것을 신경쓸 겨를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팡─! 파앙─!
오로지 직선으로 뻗은 광선이 모조리 브라인의 급소를 노린다· 브라인은 어느덧 방어에만 치중해야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왜곡된 시간에 빛을 하나하나 심었어·”
“뭐···!”
왜곡된 시간이 정지하거나 느려지는 것을 훌륭히 역이용했다는 셈이 된다·
누가보아도 불리했던 상황을 도리어 자신의 발판으로 만들어내다니 도대체 어떻게 그런 배짱을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예측하지 못했던 비장의 한발·
그것이 상대방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브라인은 머릿속에 위험한 생각이 스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패배한다는 생각 말이다·
‘클로트님이 보고 계신다···!’
패배를 상정한 적 없었고 패배해서도 안 되었다·
비록 지금은 호위기사에 위치에 있지만 자신이 모시는 클로트가 영웅이 된 이후엔 자신이 수도 기사의 반열에 오르고 싶노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토록 오래 꿈꾸었던 목표와 꿈이 현재 자신의 눈앞에서 보란듯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일은 절대로─!”
브라인이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패배할 바에는 차라리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겠다는 각오· 나의 목숨을 내어놓는 대신 상대방의 숨통을 악착같이 끊어놓겠다는 듯한 검술·
동시에 어마어마한 살기가 경기장을 덮쳤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저 침착하게·
“느려·”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브라인이 가진 간절함은 사실 루이스에게도 있는 것이었으니까·
팡─!
브라인은 동작이 커져 루이스의 광선을 피해내지 못했다· 검을 쥐고 휘둘러야할 손목이 우드득 소리를 내며 힘없이 아작난다·
동시에 정해진 결말·
퍽─!
루이스가 어깨로 브라인을 들이받아 경기장 밖으로 밀쳐내버렸다· 한참 전에 중심을 잃었던 브라인의 신체는 정말 힘없이 저 바깥까지 밀려났다·
“브라인!”
“말도 안 돼!‘
지켜보단 기사들이 바닥에 곤두박질치려던 그를 겨우겨우 받아냈다·
“····”
브라인은 크게 다친 것도 아니었고 의식을 잃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충격이 더더욱 커서 눈을 그저 멍하니 뜬 채로 한동안 끔뻑거렸다·
한참 뒤 브라인이 겨우겨우 고개를 들어올렸을 때·
루이스의 시선은 브라인에게 향해있지조차 않았다·
“몰수패 조건을 없애드릴까요?”
그리 중얼거리는 루이스의 시선은 오로지 클로트에게로 향해있었다·
“그냥 몸 푼걸로 생각할게요· 검의 진짜 주인과 꼭 맞붙어보고 싶거든요· 수도기사 클로트 당신이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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