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2
클로트는 저 멀리까지 밀려난 브라인을 바라보았다·
수도기사가 짧게 중얼거린 말은 다음과 같았다·
“졌네?”
수도 기사보다 급이 낮은 호위 기사라고는 해도 브라인은 클로트가 직접 엄선해서 선발한 인물이었다· 한데 그런 그가 지금 보란듯이 패배했단 말인가·
‘이상하다?’
클로트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 여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 한 쪽이 패배하거나 사망에 이른다는 것은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루이스가 브라인에게 일격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상하다는 점을 뛰어넘어 기이했다· 심지어 브라인은 클로트의 기다란 초침을 들고서 전투했는데 말이다·
“흐음····”
클로트가 불쾌하다는 듯 자신의 각막에 새겨져있는 분침을 반시계 방향으로 계속 회전시켰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로 가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루이스를 훑는다·
아직 한참이나 어린 소년이었다· 심지어 직업도 마법사였으니 호위기사인 브라인이 이렇게까지 제압당해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큰 사고였다·
클로트가 그런 것들을 계산하는 사이·
“어떻게 하실건가요?”
소년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당연히 루이스였다· 그는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여유로운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내 생각엔 이대로 몰수패당하면 아쉬울 것 같은데·”
클로트의 얼굴이 차츰차츰 무표정으로 변했다·
길거리에서 이런 시비가 붙었더라면 어땠을까· 무시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영웅의 자리를 놓고서 탈락하느냐 잔존하느냐가 걸려있었기에 이 도발을 무시할래야 무시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소년은 이러한 것까지도 전부 설계한 것이겠지·
클로트가 입을 열었다·
“어려보이는데···· 머리가 제법 잘 돌아가네·”
“굴릴 것도 없었어요· 그냥 선심 써드린 겁니다·”
“하아·”
클로트가 얼굴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어느샌가 자신의 얼굴 위로는 딱딱하게 굳은 미소가 떠올라있었다·
‘계산에서는 내가 져버린 셈인가·’
클로트는 가만히 생각을 곱씹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클로트가 출전했을 것이다·
압도적이고 기대감 없는 승부가 이루어졌다고는 하더라도 일개 소년 마법사를 상대했다는 지탄을 받는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호위기사가 완패한 상황보다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나을 테니까·
마법 학부의 대표들은 자격을 의심받고 사람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호위 기사를 상대로 완승을 가져가버리다니·
···클로트는 문득 관중들의 얼굴을 천천히 살폈다·
쥐죽은 듯 조용해진 분위기·
아직까지는 다들 당황스러운 얼굴로 눈동자를 바쁘게 굴릴 뿐이었으나 클로트는 그들의 얼굴 이면에서 어떤 감정이 싹트고 있는지도 어렵지 않게 짐작해낼 수 있었다·
기대·
기대감·
모두 플란을 제외한 마법 학부 대표들을 향해서 기대를 갖기 시작했다· 호위 기사를 상대로 승리했으니 과연 그 기량이 어느정도일지 슬슬 기대하게 된 것이다·
‘이러면 좀 복잡해지는데·’
몇십년만에 영웅을 선발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몰수패를 당해 물러서는 건 아쉬운 일이다· 그러한 고민들이 뇌리를 스치고 또 스치는 사이 루이스의 재촉이 또 한 번 울려퍼졌다·
“계속해서 올라오지 않으신다면 몰수패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그 말에 클로트 주변에 서있던 기사들의 이마에 핏줄이 세로로 섰다·
◈
수군거림이 그치지 않는건 마법 학부의 진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이에브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설마했는데···· 이겨버렸네요· 심지어 완벽하게·”
곁의 베키가 곧바로 마이에브의 팔을 붙잡았다·
“루이스 저거 말려야하는 거 아니야? 그냥 이대로 가면 우린 이득이잖아· 상대는 몰수패고·”
“글쎄요···· 우리 말을 들을지·”
“지금은 못말릴 것 같긴 하네· 루이스가 원래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언제 이렇게 변해버렸나?”
“그야 가르치는 분이 저 분이니까요·”
마이에브의 고개가 한 사내를 향해서 돌아가고 베키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것을 쫓는다·
“····”
눈빛이 도착한 곳은 마법 학부 대표들의 수장이라고 칭할 수 있는 플란· 그것만으로도 둘에게는 아주 훌륭한 대답이 되었다·
베키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플란에게 배웠으니까 닮아가는건가·”
“좋은 거죠 뭐· 능력이 뒷받침되면서 소신이 점점 강해진다는 건 말이에요·”
“그래도 이번엔 상대가 수도기사인데····”
“책임 역시 본인이 안고가야 할 몫이구요·”
대표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와중 마법 학부의 교수들과 총장이라고해서 반응이 다르진 않았다·
“루이스가 호위 기사인 브라인을····”
“너무나도 쉽게 이겨버렸는데요?”
바이올렛 교수와 총장 비서· 두 명이 신기하다는 듯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기본적으로 둘은 소속이 마법 학부이니 당연히 루이스를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상대가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상한데 호위 기사가 몸이 안 좋았나?”
바이올렛 교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눈 밑의 다크서클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말이다·
비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몸이 안 좋긴 뭐가 안 좋아요· 더없이 상태가 좋아보였고 심지어 수도 기사 클로트의 검을 들고서 싸우기까지 했는데·”
“그렇죠? 아니 저도 그렇게 보긴 했는데····”
바이올렛과 비서 그리고 여기까지 따라온 마법 학부의 교수들이 바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지만 정작 총장인 코네트는 아주 천천히 턱을 괴었다·
‘예상했어·’
이곳에 출발하기 전부터 이렇게 될 것이라는 점을 코네트는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실제로 보는 것은 좀 다른 느낌이지만 말이다·
기사들의 하루하루도 분명 부지런했겠지· 그러나·
‘역시 플란·’
마법사들의 부지런한 하루에는 플란이 있었다· 그가 있었기에 차이가 너무나도 확연히 달라진다·
사실 코네트는 종종 플란에게서 자신과 닮은 여러가지를 보았다· 나아가는 방식에서 말이다·
“어느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수없이 단내하기·”
그게 코네트와 플란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것은·
플란에게만 있는 그것은·
“···그로 인해 타인들도 자신을 믿게 만들기·”
그게 플란만의 강점이었다·
코네트가 자신에게만 적용하던 방식을 그는 타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 결과란 이토록 위대하다· 마법 학부 전체가 바뀌지 않았는가·
‘마법 학부는 이제 더 나아지겠지·’
벌써 호위 기사를 상대로 승리를 쟁취했고 이제부터는 수도 기사를 상대하게 된다·
그러니까 어쩌면·
정말 어쩌면····
◈
콱!
루이스가 빛으로 벼려낸 창을 바닥에 수직으로 꽂았다· 그가 손을 탈탈 털면서 말한다·
“결정이 됐나요? 몰수패인지 승부인지·”
루이스가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발 하나가 경기장 위로 천천히 얹어졌다·
툭·
그렇게 위력적인 발걸음은 아니었지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될 정도는 되었다· 그러니까 기사로서의 무게감이라는 것이 가득 묻어있는 동작이었다·
기사들이 입을 모아 그의 이름을 불렀다·
“클로트님···!”
“클로트님?”
정작 이름을 불린 당사자· 클로트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주 당연한 일을 한다는 것처럼·
“내가 직접 해야지· 몰수패는 안 되니까·”
그 말에 브라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클로트님···· 죄송합니다·”
그는 패배를 가져온 장본인이었기에 누구보다도 참담한 심정이었다· 초라한 몰골로 검을 반납할 뿐이었다·
“관중들이 이미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내가 과하게 반응하는 것 같겠지만 이렇게라도 꺾어놓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겉잡을 수가 없게 되겠지·”
“직접 나서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차라리 재경기를 하게 된다면 다른 호위기사를 불러서···!”
이들이 염려하는 바는 클로트도 이해하고 있었다·
수도 기사중에서도 위명이 꽤 있는 클로트였다· 그런데 루이스를 상대하는 것이 격에 맞는가·
어쨌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소용 없다·”
이미 훌륭하게 말려든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미 호위기사가 마법사에게 패배했다는 선례가 생겨버렸으니 다른 호위 기사가 승리를 쟁취한다고 한들 크나큰 효과가 있지는 않으리라·
또한 클로트에게도 눈이 있다·
압승은 압승으로 꺾어야만 의미를 가지는 것일진대 루이스의 기량은 이미 호위 기사들이 압승으로 눌러둘만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하는 수밖에 없지· 싹을 자르려면·”
클로트는 검을 든 뒤 경기장에 올랐다·
루이스 역시 가만히 호흡을 골랐다·
수도기사와의 결판을 내기 위해서·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