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3
경기장을 향해 나아가던 수도기사 클로트· 그는 루이스의 지척에 멈추어서서 살갑게 미소를지었다·
“결국 네가 원하는대로 된 것 같은데 말이야·”
그가 천천히 자신의 기다란 초침을 들어올린다·
“어때 이제는 만족하겠어 애송이?”
“말씀드렸듯 아직 아니에요· 수도 기사와 겨루어본다는 건 그 자체로 영광이지만 목표는 승리라서·”
“승리라····”
전혀 와닿지 않는 말임에도 클로트는 되뇌었다·
경기장에 올라오라면서 도발하던 모습과는 꽤 상반되게 지금의 루이스는 매우 진지해보였기 때문이다·
클로트가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승리할 자신이 있어서 그런 말을 내뱉는 건가?”
“자신이 있지만···· 이미 만족스러운 것도 있어요·”
“승패 여부 외에도 신경쓰는 것이 있다?”
“네·”
루이스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승리하는 것도 당연히 목표지만 누구도 수도 기사를 상대로 이길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요· 그 생각 지금 제가 가졌거든요·”
이야기를 듣던 클로트도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냥 별 생각 없는 꼬맹이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어린 외양의 소년이었기에 생각이 깊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루이스라는 소년은 의외로 원대한 목표를 지닌채 살아가고 있었다·
“하나만 묻자 꼬맹아·”
“얼마든지·”
“그 생각은 네 스스로 해낸 생각이냐?”
“그건 아니에요·”
루이스가 고개를 반쯤 돌려 뒤편을 바라보았다· 경기장을 애타게 바라보는 마법 학부 대표들 사이 플란의 얼굴에 소년의 시선이 꽂힌다·
“플란 저 녀석 덕분에 그런 생각을 하게된거죠·”
“플란 플란 플란···· 어딜 가나 그 이름이 들리는군·”
클로트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플란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 알았어 좋아· 빠르게 상대하고 저 녀석과 검을 겨누어봐야겠는데·”
“빠르게일지는 모르겠네요·”
루이스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어느샌가 그를 둘러싼 마나가 찬란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정말 최선을 다할거거든요· 저·”
“암 그래야지·”
다음 순간 둘의 승부가 시작되었다·
◈
쾅─!
경기장을 짓누를만한 폭음이 울려퍼졌다·
같은 검을 휘두른다고 하더라도 누가 쥐었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현재 초침을 쥐고 있는 것은 본 주인 클로트였으니 위력이 당연히 막대했다·
콰앙─!
세로로 내리쳐진 검에 바닥에 원형으로 거대하게 파인다· 하지만 지면의 파편 따위가 사방으로 흩날리며 튀어나가는 일은 없었다·
닿은 곳의 시간이 정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이스는 공격을 쳐내기보다는 피하는 것을 선택했고 각자 허공으로 떠오른 두 명의 눈동자가 마주치는 순간이 있었다·
‘시간이 멈춘다고?’
‘피했네·’
서로가 예상했던 서로의 힘 이상인지라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예상 밖이라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루이스의 이마에서 땀방울 하나가 흘러내렸다·
‘강하다·’
짧지만 동시에 굉장히 강렬한 감상이었다· 수도 기사의 힘이라는 것은 루이스가 그동안 마주했던 어떤 적수와도 쉽게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호위 기사인 브라인을 상대하면서도 검격이 굉장히 올곧고 정제되어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 것조차도 클로트의 검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쾅─!
콰앙─!
주변 공간의 시간이 하나 둘 멎어갈때마다 루이스는 수도 기사라는 이름에 달려있는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휘말려서는 절대 안 되는 재앙을 마주한 듯 하다·
고난과 시련이라는 것은 맞부딪혀서 극복하겠다는 목표라도 세울 수 있지 않나· 그러나 이것은 표현 그대로 ‘재해’에 가까웠다· 모든 면에서 말이다·
‘수도기사····’
왜 영웅의 후보로 수도 기사를 거론하는가·
왜 수도 기사 이외에는 논외라고 생각했을까 왜 그들에게만 초대장을 돌렸을까···· 그 모든 이야기가 거의 단번에 머릿속으로 이해되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파악한다거나 맞추어 휘두른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상대가 누구든지간에 그냥 박살내버릴 수 있기에 편안히 휘두르는 검이었다·
‘자신의 힘이 말도 안 되게 강하고 그렇다는 것을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는 거지·’
전혀 마주하지 못했던 경지를 눈으로 확인한 느낌· 루이스는 호흡을 한 번 한 번 내뱉는 매초마다 몸에 소름이 돋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여러가지 적을 상대했었다· 같은 학생들끼리 경쟁하기도 했으며 위험 지역인 베르켈에 발을 딛어 마수들을 처치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눈앞에·
정말 어쩌면 전설의 일부가 될지 모르는 검술이 있다·
닿는 곳의 시간을 정지시키며 그 시간이 다시 흐를 때쯤엔 모든 것이 반드시 반토막으로 동강 나있을 것이다·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진리처럼 말이다·
‘하지만·’
재해를 이겨낼 수 있는 힘도 존재한다·
‘기적’이라는 명칭으로 말이다·
“하앗!”
기합을 외친 루이스가 허공으로 높이 뛰어오른다· 한 번에 열 개가 넘는 광선을 클로트에게 쏘아냈다·
후웅─!
클로트가 허공을 크게 베었다· 그러자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광선들이 일제히 진행되지 못하고 중지된다·
“하····”
수도 기사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에 담겨있는 것은 루이스를 향한 비웃음이 아니었다· 기사는 도리어 자신이 기대했던 것 이상의 기량을 보여주는 루이스에게 놀라고 있었다·
‘무슨 마법사가····’
루이스는 클로트의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는 마법사의 모습과 너무나도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물론 브라인이 경기장 밖으로 튕겨나며 패배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그것을 납득하는 과정에는 브라인이 방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아주 많이 섞여있었다·
그러나 루이스의 움직임을 보니 느낄 수 있었다·
‘승부가 길어졌어도 브라인이 졌겠는데·’
브라인이 이미 몇 번의 패배를 겪은뒤 전력을 다해 재경기를 요청했다 하더라도 루이스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속하다·
그리고 움직임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
‘이게 마법·’
고유 능력과는 확연히 다른 힘· 미천한 인간이 마나를 활용하여 기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원동력·
영웅을 향한 목표도 목표지만 클로트에게 어찌 호승심이라는 게 없을 수 있겠는가· 전력을 다해 자신을 불태우는 루이스를 보고나니 자신도 꽤 타올랐다·
“꼬맹이· 이것도 받아볼래?”
클로트의 검이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점 멈추어가는 공간과 아직 그렇지 않은 공간· 그것들이 하나 둘 셋···· 어지럽게 수를 늘려가자 마치 세상 자체가 달라진 듯한 착각이 일었다·
클로트는 공간과 시간을 이미 다루고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덫으로 루이스를 밀어넣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시간을 다루는 고유능력이라니·”
베키가 허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옆에 있는 마이에브를 돌아보면서 말한다·
“공간을 다루는 마법은 있어도 시간을 다루는 마법은 아직 없지 않아?”
“그렇죠· 흑마법에는 시간과 관련된 것들이 더러 있지만···· 그냥 마법에는 없어요· 연구도 안 됐고·”
“그만큼 터무니없는 힘이잖아···· 저건···· 프 플란! 어떡하지? 우리 이대로 지는 거 아니야?”
베키의 요란한 반응에도 플란은 딱히 어떠한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냥 경기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플란을 제외하고 경기장을 바라보는 마법사들의 심정은 복잡해졌다· 영웅의 위치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저런 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는 수도기사를 뛰어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인정하지 않는 자가 없고 이 세상에서 오랜 시간 최고라고 통용되어왔던 저것을 바꾸어야만 하는것이다·
후웅─!
또 한 번 클로트가 검을 휘둘렀다· 옷자락 일부가 정지당해 붙잡힌 루이스가 비틀거렸고 보기좋게 왼쪽 어깨를 깊게 베였다·
“플란···!”
“플란!”
주변에서 플란을 외치는 일이 잦아졌다· 루이스가 죽는것보단 차라리 어떻게든 개입해서 실격패 당하는 것이 나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강하군·”
플란은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강해졌다· 그리고 강해· 앞으로는 더 강해지겠지·”
플란의 말을 들은 대표들의 얼굴이 더더욱 창백해졌다· 베키가 플란과 경기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럼 지금이라도····”
“클로트 말고·”
플란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루이스에게 한 말이다·”
“어?”
당황스러운 말에 대표들의 얼굴 위로 물음표가 하나씩 떠올랐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경기장으로부터 휘몰아쳐오는 정순한 기운을·
동시에·
루이스의 눈이 머리카락이 황금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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