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7
콰아앙─!
마이에브가 가까스로 펼쳐 낸 보호막에 셀펜의 공격들이 격렬하게 부딪힌다· 팔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버거워하며 마이에브는 생각했다·
마음을 가지지 않은 무생물은 무언가에 홀리지도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기호나 취향이라는 게 없는데 어떻게 홀릴 수 있겠는가·
‘엄밀히 따지자면 매혹이라기보단····’
주인을 바꿔치기하는 힘에 가깝다· 또한 주변을 잠시 속이는 힘이다· 마법을 발동시킨 술자를 셀펜 자신이라고 세상에 알려 두는 능력인 것이다·
‘사실 이와 비슷한 능력은 마법에도 꽤 있지만····’
어색해·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위화감이 있다·
마이에브는 그 차이점에 대해서 골몰하다가·
“···!”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이해!’
특정 기술의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어떤 마법을 사용하는지 꿰고 있어야 한다· 자기 것처럼 다룬다는 건 그런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상대방이 어떤 마법을 사용하는지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이 주도권을 홀라당 빼앗아 사용하는 행위가 가능한 이가 있었으니 눈앞의 셀펜이었다·
역시 고유 능력은 흑마법과 마법을 두루 겸비한 마이에브에게조차도 신묘한 무언가였다·
스스스스─
마이에브가 인간의 마법 술식으로 펼쳐 낸 푸른 방어막· 그 위로 셀펜의 공격이 닿자 금이 가는 대신 장막이 분홍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셀펜의 기운은 마이에브의 마법 술식을 ‘이해하거나 납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사실 자체를 왜곡시켜 주인의 이름을 셀펜으로 버젓이 바꿔놓는다·
퍽─!
결국 주도권을 빼앗긴 장막을 뚫고 셀펜의 검격이 날아들었다·
“윽!”
바닥을 몇 번 구른 마이에브는 다시 최대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양손바닥을 붙이고 또 한 번 집중한다·
스윽─!
그러자 허공에 푸른색의 물감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고유 결계를 있는 그대로 펼치는 것은 대놓고 흑마법을 사용하는 것과도 다름없기에 화중세계를 나름 인간의 푸른 마나로 비슷하게 펼쳐본 것이다·
원본 고유 결계만큼 정교하진 않지만 얼추 틀을 갖춘 형상으로 푸른 물감이 칠해진다·
슥─! 스윽─!
여러 번 찔러 들어오는 셀펜의 검 궤적을 허공에서 지워 버린다·
마이에브의 이마에서 땀방울 하나가 흘러내린다· 일격중 하나라도 허락했더라면 관절이 꿰뚫렸으리라·
하지만 다음 순간·
마이에브는 잠시 움찔 몸을 떠는 수밖에 없었다· 펼친지 채 십초도 지나지 않은 자기 마법이 어느덧 셀펜의 손아귀에 쥐어지게 된 것이다·
“망할····”
까득 하는 소리와 함께 마이에브의 이가 갈렸다·
‘흑마법만 사용할 수 있었더라도!’
마법 사용을 멈춘 마이에브는 마나로 신체를 보조시킨 뒤 직접 움직여 공격을 피해냈다·
푹!
육안이 쫓아가지 못한 일격 하나가 마이에브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격통을 겨우겨우 참아낸채 어깨를 빠르게 빼낸 마이에브는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쿵! 쿵! 쿵─!
마이에브의 발이 닿는 지면마다 셀펜의 검격이 닿아 구덩이가 파였다· 아직는 공격을 고양이처럼 잽싸게 피해내는 마이에브였지만····
“후우·”
“뭐야 벌써 지쳐 버린 거야?”
셀펜이 비웃음 섞인 얼굴로 조소했다·
마이에브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들이 수도 없이 흘러내렸다· 셀펜이 공격을 멈추고 비웃었기에 망정이지 공격을 계속 이어갔다면 방금 아마도 결판이 났을 것이다·
“···이해도 없이 무작정 주도권을 가져간다니·”
“오? 바로 그거야·”
셀펜이 반갑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하겠다는 듯한 손으로 조용히 벽을 만들어서 말을 이어간다·
“사실 ‘매혹’이라는 단어야말로 하나의 함정이자 유혹인 셈이지· 그것과는 꽤 다른 힘이거든· 막상 상대해 보니까 어떤 느낌이야? 난 그게 듣고 싶은데·”
“어떤 느낌이냐면····”
대답을 하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몇 버 정도 호흡을 고르고 얼굴에서 비처럼 흘러내리는 땀을 팔로 닦아낸 뒤 마이에브의 입술이 벌어졌다·
셀펜의 힘은 분명 대단한 것이지만 그녀가 어떻게 수도 기사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불쌍한데?”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마이에브는 그리 말했다·
“음?”
예상과는 전혀 말을 들었다는 듯 셀펜의 고개가 모로 기울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셀펜은 살면서 방금같은 반응을 겪어본 적이 전혀 없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못 들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들었기 때문에 되묻는 한 마디· 하지만 마이에브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불쌍해· 불쌍하다고· 안 들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의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마이에브는 이제 이해하고 있었다·
마이에브는 그간 의존하며 살아왔다·
자기 강점이었던 위장은 바꾸어말해 타인의 모습에 의존하는 능력이었고 또 혈귀라는 태생과 공허라는 뒷배에 늘 의존한 채로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의존이 아닌 믿음을 갖게 되었다·
플란 덕분에 말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그것을 한 차례 삼켜낸 후 마이에브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고유 능력 없어도 날 상대할 수 있겠어?”
마이에브의 목소리는 한 층 진지해졌지만 셀펜은 워낙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데?”
셀펜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유 능력을 잃을 필요가 없는데 그런 가정을 하는 것조차 멍청한 시간 낭비야· 애초에 너희들도 부러우니까 그따위 트집 밖에 못 잡는 거고· 안 그래?”
“응· 안 그래·”
마이에브도 셀펜을 따라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한 힘만 평생 쓰니까 그것에만 의존하게 되니까 다른 발전을 고민할 수 없는 네가 진심으로 불쌍해·”
“···무슨·”
셀펜은 순간적으로 치밀어오른 살기를 거의 강제로 찍어눌렀다·
고유 능력·
얻게 되는 순간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축복을 받았다며 칭송하게 되는 신묘한 힘· 이것을 얻기 전후로 셀펜의 삶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눈앞의 마법사는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셀펜이 조용히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수도 기사는 마침내 결정을 내린 듯 보였고 강제로 찍어눌렀던 살기가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투명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기운 위로 천천히 색이 입혀졌다· 보랏빛의 그것은 천사 혹은 악마와도 비슷한 형상을 띠고있었다·
“야 건방진 마법사·”
그녀가 검을 역수로 쥔 뒤 말했다·
“이게 어떤 힘인지 몸으로 느껴봐· 그럼 네가 내뱉은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알게 될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경기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러나 마이에브의 표정은 태연했다·
마치 큰 결심을 내린 것처럼 말이다·
◈
“위험한데·”
경기장을 줄곧 지켜보던 트릭시의 감상은 짧고도 단순했다·
셀펜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보랏빛을 머금은 채로 일파만파 퍼지고 있었기에 그것에 담겨 있는 살기와 의도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마이에브···· 이거 괜찮나?”
베키는 경기 시작때부터 줄곧 걱정이 가득했다·
원래라면 플란이 출전해야만 하는 경기였지만 굳이 마이에브가 출전했다· 마이에브와 알고 지낸 기간이 오래되진 않았지만 같은 마법 학부의 대표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결국 무언가를 질문하려면 플란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저기 플란·”
“무엇이지·”
“마이에브 말이야· 괜찮은 거야?”
플란은 고민도 없이 대답할 뿐이었다·
“마이에브의 표정을 보면 알지 않나·”
“····”
베키는 눈에 힘을 잔뜩 주고서 경기장에 우뚝 서 있는 마이에브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는 어떠한결정을 내린 것처럼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베키는 도리어 마음이 다급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히려 죽음을 각오해서 태연해진 거면 어떡해? 바보 같은 말인 건 알지만 난 다들 다치지 않았으면····”
“멍청한 소리·”
플란이 베키의 말을 단호하게 잘라 냈다·
“새는 알을 깨고 다른 세상에 나가는 법이지·”
“응?”
“그건 흔치 않은 순간이니까 똑똑히 지켜보도록·”
◈
마이에브는 정신을 집중했다·
‘처음에는 억울하고 증오했어·’
인간의 태생을 흉내 내며 살아간다는 것이 참 부조리하고 바보 같은 일이라 여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혈귀로서 살아왔던 자기 시간과 삶을 전부 버려야 하는 일 아닌가· 게다가 인간의 마법을 다시 배우려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주체성·
조금 힘들지라도 더 오래 걸릴지라도 지금의 자신에게는 주체성이 확실히 있다· 누군가의 계획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 철저히 자기 뜻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플란 덕분에 자신은 바뀔 수 있었다·
이 경기장에 굳이 새치기를 해서 발을 올린 이유다·
“후우우우·”
마이에브가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며 양손바닥을 붙였다· 놀랍게도 그녀의 몸에서 천천히 피어오르는 것은 붉은색이 아닌 푸른색을 띤 기운이었다·
그러한 꼴을 바라본 셀펜이 읊조렸다·
“뭐야 그건? 마지막 발악?”
하지만 마이에브의 귀에는 그러한 중얼거림이 들리지 않았다· 이 순간 그녀는 오롯이 자신이 푸른 마나를 이용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착잡하지 않다·
두렵지 않다·
자신이 살 길을 스스로 모색하고 자기 한계를 뛰어넘을 방안을 통찰하는 일련의 과정이 도리어 기쁘다·
이 순간 자신은 고뇌하기에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마이에브가 천천히 눈을 뜨고서 읊조렸다·
“화중대마경(畵中大魔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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