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8
“어?”
경기장의 분위기가 일변하자 곁에서 지켜보던 대표들의 눈동자가 조금 휘둥그레졌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베키였다·
“뭔가를 하려는 모양인데?”
“너희는 늘 마법을 배워왔지·”
늘 심드렁한 것처럼 느껴지던 플란도 지금만큼은 경기장의 마이에브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말에 모두가 집중했다·
“그러나 마법은 배우기만 하는 학문이 아니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모두가 그것을 알면서도 망각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지·”
플란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마법이 빚어지는 순간은 이토록 아름답다·”
◈
“후우 하아·”
손바닥이 타오르는 듯 하다· 아직 자신에게는 영 어색한 푸른 기운· 마이에브는 몇 번이고 심호흡을하며 이것을 갈무리했다·
“····”
셀펜은 말없이 자신을 지켜보는 중이다·
너의 최선조차도 나는 쉽게 꺾을 수 있다는 듯한 표정· 그것이 허세가 아니라는 듯 실제로 셀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어마어마했다·
‘기사로서의 기본기도 어마어마해·’
셀펜은 자신의 고유 능력을 향한 사랑과 신뢰가 가득했지만 사실 검술의 기본기도 탄탄하게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움직임과 검을 휘두르는 경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전황의 요소 하나 하나를 이해할수록 마이에브에게 유리하게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더이상 꼭두각시가 아니야·’
문득 플란과 겨루었을 때가 떠오른다·
절대로 오를 수 없는 높이의 산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차원이 다르다’라고 느꼈던 감상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생각해보면 패배가 아니었다·
자신을 속박하던 인형실을 전부 끊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돌이켜보면 그것이야말로 하나의 축복이었고 승리였다·
‘지금도 그때랑 마찬가지야·’
마이에브 자신의 육체가 부서져도 상관없다·
혈귀의 태생을 버리고 다시 태어난 그녀에게 있어서 더이상 목숨으로 가리는 승패같은 건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건 무엇을 깨닫느냐다·
“화중대마경·”
마이에브는 그 이름을 한 번 더 중얼거렸다·
화중대마경· 화중 세계를 고차원으로 풀어냈던 술식· 흑마법으로도 실패했던 것을 그녀는 지금 푸른 마나로 풀어낼 셈이었다·
셀펜이 소리가 나게 목을 꺾으며 입을 열었다·
“잘 되어가는 거 맞아? 불안정해보이는데?”
마이에브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라 당연히 불안정하다· 이는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성공하려고 쓰는 기술이 아니야·”
마이에브가 그렇게 읊조리자 셀펜은 한 쪽 눈썹을 꿈틀거린다·
“성공하기 위해서 쓰는 기술이 아니라고? 그럼?”
마이에브는 줄곧 붙이고 있었던 손바닥을 떼고 천천히 감고 있었던 눈을 떴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쓰는 기술이지·”
마이에브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셀펜의 흉흉한 기운이 아주 살짝 가라앉았다·
‘···아무 생각이 없는 바보는 아니잖아·’
셀펜은 마이에브를 바라보며 문득 그녀가 기사로 태어났어도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다·
후회하지 않겠다는 의도· 모종의 기사도라고 부르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플란에 관한 생각이 조금 지워지고 마이에브에게 집중하게 된다·
‘부딪혀보자· 네 최선과 내 최선을·’
팟─!
마침내 셀펜이 지면을 박찼다·
마이에브의 푸른 기운 호수같은 그곳에 셀펜이 풍덩 뛰어든다· 이내 호수 전체가 격렬하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
인간의 마나로 펼쳐진 화중대마경·
마이에브의 푸른 마나가 물감처럼 펼쳐진 하나의 고유한 세계·
그녀의 푸른 마나가 물감처럼 퍼지면 칙칙하던 경기장은 쇠퇴한다· 술자인 마이에브는 그것이 꼭 성공해야한다고만은 말하지 않는다· 그저 후회하지 않고싶다고 이야기 할 뿐·
콰드드드득─!
셀펜이 보기좋게 내부로 돌진해서 파고든다· 날카롭게 세워진 검날이 향하는 목적지는 마이에브의 심장이었다·
스르륵─!
화중대마경 내부에서 푸른 선들이 수없이 그어진다· 그것들은 곧 기다란 팔과 손의 형상을 띄게되어 셀펜의 사지를 결박한다·
휙─!
하지만 셀펜이 몸을 한 번 비틀자 그것들이 너무나도 쉽게 끊어진다· 그럴때마다 마이에브는 격통을 느껴야만 했다·
뭉개지는 듯 하다·
전신이 커다란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찌그러드는 듯한 느낌· 셀펜이 자신의 고유 결계에 손대기만 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마이에브는 오히려 고유 결계와 자신의 동기화 정도를 높였다· 그녀의 몸을 매개로 하여 푸른 마나가 계속해서 뿜어지고 대마경이 점점 짙어진다·
생명력과 피로 만들어졌던 미약한 시작이·
지금 푸르고 창대한 결과를 낳는다·
콰아아아아악!
마나를 뱀의 형상으로 엮어내어 셀펜의 일격을 겨우겨우 막아냈다· 발이 지면으로 파고든다 몸 전체가 지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 같았다·
“으····”
부담이 상당해서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댐에 크게 뚫린 구멍을 벽돌 하나로 막는듯한 기분· 그래 이건 불가능한 시도였다·
‘플란 플란님이라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싶었다· 표정을 보고 힌트를 얻고싶었지만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볼 필요도 없었다· 플란이 어떤 표정을 짓고있을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너무나도 뻔하고 당연했기 때문이다·
시도 했겠지·
그리고 성공했겠지·
불가능이 가능이 되는 기적이 발현되었겠지·
쿠구구구─!
셀펜의 내려치기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게다가 이 순간에도 마이에브의 다리는 온통 긁히며 지면으로 움푹 가라앉고 있었다·
플란의 천재성과 냉철함이 자신에게는 없다·
“나는····”
인간으로 살아가게 되면서 그러한 점을 수도 없이 원망하게 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
“마이에브·”
남이 지어준 이름이다· 그러나 이 안에 어떠한 의미를 넣는가는 지금부터 자신이 정할 수 있다· 그렇기에 피를 토해내며 힘을 끌어올렸다·
평범함·
마이에브는 한 때 평범함을 증오했다·
따라서 늘 본인이 특별하다고 생각했고 평범한 이들만큼 한심한 것은 없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평범하면 그걸로 족해·’
모나지 않고 튀지 않으며 모두의 이목을 끌지도 못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이· 자신의 삶을 소소하게 채워나가는 이·
평범한 인간이 되고싶다· 정녕!
자신이 지금부터 선보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본에 충실해보이는 ‘최선의 평범함’이었다·
“쿨럭─!”
이상한 일이다· 다리가 뒤틀리는 듯하고 피를 토해내는 와중에도 집중은 점점 더해지고 있었으니·
뚝─!
외마디 단말마와 함께 결국 왼쪽 어깨가 부러졌다· 낙엽이 낙하하듯 마이에브의 팔 하나가 아래로 힘없이 축 늘어진다·
하지만 포기하지않는다· 흑마법에 의존하지 않는다·
정말 목숨을 걸고 마지막 호흡을 내뱉는 그 순간까지 푸른 마나를 내뱉으면서 나아가리라·
으득!
남은 팔의 손목마저 부러진 것 같았다·
시체가 우뚝 서있는 듯한 몰골이었지만 마이에브는 같은 말을 또 한 번 읊조릴 뿐이었다·
나의 색을 펼치리라·
펼치고· 펼치고· 또 펼치리라·
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그때까지·
“···화중대마경·”
그 이름을 세 번째 부르짖은 지금· 마침내·
화산의 마그마가 지면 밖으로 분출해 오르듯 여기저기서 푸른 물감들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
서걱─! 서걱─!
셀펜의 현재 몸상태는 최상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최선의 기량을 선보이겠다고 마음 먹었고 실제로 그리 전투하고 있었으니까·
상황은 더없이 자신에게 유리했고 자신이 휘두르는 검에는 아주 미미한 흔들림조차 없었다·
심지어 마이에브가 펼치는 마법조차도 그녀에게는 어떠한 위해도 입히지 못했다· 거미줄의 실을 끊는 것처럼 그냥 툭 건드리면 끊어지니까·
그런데·
셀펜의 머릿속에서 의문 하나가 머리를 들었다·
‘왜 승부가 끝나질 않는거지?’
단순하지만 또 커다란 의문이었다· 마이에브는 한 쪽 팔은 불구 상태에 다른 한 팔도 꺾인 꽃처럼 위태로웠는데 여전히 서서 버티고 있었다·
승리가 확신되는 상황과 승리한 상황· 이 두가지 사이에는 아주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확신되는 상황에서 진행되질 않는다· 셀펜이 품은 물음표가 점점 커져간다·
쿨럭─!
그때 마이에브가 한 번 더 피를 토해냈다· 동시에 아래에서 푸른 액체가 용암처럼 치솟는다·
‘이만한 힘이 남아있었다고?’
셀펜이 잠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빠르게 평정을 되찾으려했지만 쉽지 않았다· 쓰러질 것 같지만 쓰러지지 않고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는데 어찌 당황하지 않는단 말인가?
셀펜은 빠르게 고유 능력을 발동했다·
‘이번에도 주도권을 빼앗으면 그만이야·’
어차피 저게 마이에브의 마지막 발악이겠지· 이것마저 압수한다면 비로소 승리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주도권 강탈을····
허나 그 순간이었다·
여러마리의 용처럼 꿈틀거리던 푸른 물결이 갑자기 셀펜을 향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주도권을 뺏었는데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뭐야?’
의문보다는 손이 먼저 반응한다·
콰아아아아앙─!
셀펜의 검과 푸른 용이 격돌한다·
마이에브는 만신창이인데 놀랍게도 그녀가 지금껏 발현했던 마법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손으로 조금만 건드려도 번져버릴 듯 하고 물 앞에서 지워지고 가만히 놔두면 점점 옅어질 것 같은 푸른 색·
그러나 그것이 덧칠된다·
셀펜이 한 마리 한 마리의 용을 벨 때마다 잘린 부분이 또 하나의 용이 되어 셀펜을 덮친다·
셀펜이 경악해서 말했다·
“뭐 뭐야! 왜 나를 공격하는···!”
“내가 말했잖아·”
그때 눈을 제대로 뜨고있는지도 알 수 없는 마이에브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꽂혔다·
“이해가 없고 고민도 없는 건 불쌍하다고· 분명 그렇게 말했었잖아·”
그리고 보이는 것은 마이에브의 선명한 미소·
‘인간’ 마법사가 딱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네가 가져간 그거· 자살 마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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