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0
병실은 더없이 깔끔한 모습이었다·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인지 차분한 코튼 향이 코 끝을 간질인다·
“···이겼나요·”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마이에브였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얼마나 노력했건간에 거짓을 고할 수는 없었다·
마이에브가 흑마법을 사용하면서 결투에 임했더라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푸른 마나만을 활용해서 임했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대신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패배하지도 않았지·”
“패배하지 않았다라····”
마이에브는 내 손바닥 위에 올려진 편지 형태의 대진표를 받아갔다· ‘무승부’라고 적혀있는 글자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 위로 복잡한 표정이 여럿 스친다·
“잘했다·”
나는 그녀를 칭찬했다·
혹시 마이에브가 패배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같은 말을 내뱉었을 것이다· 그녀가 혈귀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걸 육안으로 명백히 관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승부까지 얻어냈으니 참 잘 된 일이지·
“잘했다고요····”
마이에브가 얼떨떨한 얼굴로 내 말을 반복했다·
인형이 어색하게 움직이듯 그녀가 눈을 가만히 깜빡였다· 눈꺼풀이 내려졌다 위로 올라가는 것이 반복되는데 그때마다 푸른 눈동자가 드러난다는 것이 숫제 어색했다·
붉은 눈동자는 이제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이제 정말로 인간이었다·
그녀가 미소인지 무엇일지 모를 것을 머금었다·
“칭찬받은건가요· 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했다· 네 활약을 똑똑히 지켜보았어·”
“이상하다·”
마이에브의 입꼬리가 아주 희미하게 올라갔다·
“실감이 전혀 안 날줄 알았는데 실감이 나네요· 칭찬받으려고 한 일이 아닌데 막상 들으니까 또 좋고요·”
한 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볼을 천천히 매만지며 마이에브는 감상에 젖은 듯한 눈동자를 했다·
나 또한 실제로 그녀를 고평가했다·
무승부라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고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만한 고난이도의 마법을 선보였기때문에 감탄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녀가 보여준 태도가 실로 마법사스러웠을 뿐이다·
“몸은 좀 괜찮나·”
“혈귀로서는 최악의 몸상태일까요·”
마이에브가 자신을 보라는 듯 어깨를 아주 살짝 으쓱였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내 얼굴이 담겨있었다·
자조적인 말투로 가볍게 말하지만 마이에브는 분명 동요하고 있었다· 그럴만도 했다· 앞으로 다시는 흑마법에 손댈 수 없게 되었으니까·
“앞으로···· 평생 천재는 못되겠죠?”
마이에브가 제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자기 자신이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생명력이라는 개념을 잃은 그녀의 신체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꽤 연약한 몸에 속했으니까·
그러나·
“아니·”
나는 자신있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
잠시간 병실에서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마이에브가 다시 물었다·
“···아니라고요?”
“그래·”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굳이 마법의 기량으로만 천재를 일컫지는 않는다·”
“다른 기준이 있다는 말인가요·”
“너는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마법을 배울 것 아닌가·”
“그거야 그렇죠·”
마이에브가 고개를 끄덕인다·
“최선을 다해서 임하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뒤에도 자신의 한계가 명확함을 깨달은 뒤에도 계속 최선을 다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음·”
“나는 범부와 천재를 갈라놓는 기준이 그곳에 있다고 본다· 그러니 네가 앞으로도 최선을 다한다면 나는 기꺼이 너를 천재라고 불러줄 수 있다·”
“····”
내가 늘어놓은 이야기가 상당히 의외였는지 마이에브는 잠시간 석상처럼 굳었다·
그렇게 침묵이 삼 분 정도 이어졌을까· 마이에브가 아주 옅은 웃음을 터뜨렸다·
“의외네요· 쓴소리를 들을 각오까지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갑자기 할 말이 많아진 듯 했다·
“플란님에게 처음 패배했을 때도 처음으로 인간들이랑 연이 생겨서 대표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도 늘 오묘함을 느꼈지만 이번만큼 오묘하진 않았어요·”
“앞으로도 많이 느끼게 될 테지·”
“그러니까 저는 아····”
마이에브는 말을 하다가 멈춘다· 그 뒤로도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이면서 망설였다·
“하고싶은 말이 있나·”
되묻는 나의 얼굴을 마이에브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주 약간의 초조함이 담겨있는 얼굴이었다·
그녀가 빠르게 덧붙였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기절했다가 깨어나니까 언어 능력이 말이 아니네 금방 정돈할 테니까····”
“기다려주지·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해라·”
천천히 하라고 말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이에브는 눈동자를 빙글빙글 굴리며 조급한 기색을 보였다·
원래 허둥지둥대는 것은 질색이다만 무승부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가져왔으니 이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다· 그렇게 또 십 분 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아 그래·”
마이에브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대뜸 말했다·
“부탁···· 부탁이 있는데요·”
“부탁?”
“부탁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나? 그렇게까지 어려운 건 아니에요· 아니다· 좀 어렵고 귀찮은건가· 으음·”
“무엇이지·”
“그게····”
마이에브의 얼굴이 아주 살짝 붉어졌다·
“좋은 말 해줘서 고마워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최선 다해 노력하고 싶은데 좀 도와줬으면 해서요·”
“그건 어떤 방면의 도움인가·”
“그러니까···· 저한테도 노력하기 위한 동기가 필요해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원동력이요· 그런 부분을 도와달라고 말하고 있는거에요 저는·”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학습 부분에 있어서는 염려할 것 없다· 누구도 아닌 내가 전력으로 가르치겠다고 약속하지·”
“가르침이요? 아니 배우는 것 자체는 독학이어도 상관없어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건데·”
“하잘 것 없는 소리라면 이쯤에서 집어치우지·”
“아니 하찮은 소리가 절대로 아니에요···!”
마이에브의 얼굴이 아주 살짝 더 붉어진다· 그녀가 아까보다 큰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제 말은요 제 옆에 있어달라는거에요!”
나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 몇 가지를 되물으려 했으나 그녀가 말을 잇는 것이 더욱 빨랐다·
“저는 이제 평범하고 나약한 인간이니까요· 혈귀의 태생도 버렸으니까요· 흑마법도 포기했으니까요·”
“책임을 내게로 돌리는군 선택은 네가 한 것인데·”
“그 선택을 내린 이유가 그 쪽 때문이라서요? 앗···!”
마이에브는 말한 뒤 아차 싶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를 악물었다· 방금까지는 굉장히 분하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더니 이제는 또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다·
오늘따라 병실에 정적이 내려앉는 순간이 많았다·
결국 다시 침묵을 깬 것은 마이에브였다· 여전히 붉은 상태의 얼굴로 그녀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냥 못들은 셈 치세요· 됐어요·”
“곁에 있도록 하지·”
“네· 그렇게 못들은 셈 쳐주시면···· 아니 네?”
나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던 마이에브가 고개를 휙 돌려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이 평소보다 두배는 더 큰 크기로 커져있었다·
그녀가 다소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멍청한 반응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게 그토록 신기한 말일까·
그녀는 몸소 마법사로서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으니 마이에브를 원석처럼 다듬겠다는 것은 내게 너무나도 당연하고 합당한 일이었다·
“어···· 아니 이렇게 쉽게? 정말?”
하지만 마이에브는 도통 내 말도 의미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라 나는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녀의 마음을 똑같이 느낄 수는 없으나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간다·
자신을 이루고있는 모든 것을 버렸는데 앞 길이 막막할 것이다· 애써 괜찮은 척 유쾌한 척 내 앞에서 이야기를 하지만 실은 누구보다도 불안할 것이다·
그러니 도와주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너는 염려말고 앞으로도 마법에 집중해라·”
“마법에만 집중하면····”
“그래·”
나는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마법을 놓지 않는 한 나 또한 너를 놓지 않아·”
마이에브가 한동안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말했다· 아니 무언가를 말하려 한 것 같다· 혈귀어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려고 했던 것 같지만 웅얼거리기만 할 뿐 끝끝내 뱉지 못했다·
“····”
한참 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하신 거에요·”
“그래·”
“제가 처참한 수준의 마법을 선보여도 보잘 것 없이 늙는 순간이 오더라도 제가 마법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꼭····”
그녀가 내게 손 하나를 내밀었다· 아주 조심스레·
“···곁에 있어주셔야해요?”
나는 조용히 그 손을 잡아주었다·
남은 경기가 몇 되지 않는 시점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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