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3
“오!”
“역시 트릭시는 다르네·”
푸른 화염을 펼쳐 내는 트릭시를 바라보며 마법 학부의 대표들은 감탄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지금까지 펼쳐졌던 경기는 대부분 기사 쪽에서 압도하면 마법 학부 쪽에서 가까스로 받아치는 양상이었다만 이번에는 다르다·
트릭시가 경기장의 주도권을 꽉 쥔 채 경기하고 있었고 건너편의 호위 기사는 공격받아내는 데에 완전히 정신을 쏟고 있었다·
“호위 기사도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그러게 분명 그랬었는데·”
관중석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다· 마법 학부를 향한 인식이 불과 이틀 만에 하늘로 치솟는 중이었다·
심지어 치사한 방법을 동원하여 승리를 거머쥐는 것도 아니었다· 트릭시는 현재 순순히 자기 불꽃만으로 상대를 찍어누르고 있었으니까·
카앙─!
놀랍게도 이게 검과 화염이 부딪치는 소리였다· 소녀는 자기 화염에 강철보다도 단단한 ‘강도’를 부여한 것이다·
“베키·”
루이스가 베키를 문득 불렀다·
“네 얼음 강도랑 비교했을 땐 어때?”
“솔직히 말하자면 더 단단해 보이는데···· 그것보다 원소에 강도를 부여한다는 게 가능한 접근이었어?”
“안 될 것 없지·”
플란이 무심한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강도를 비롯해 성질을 부여할 수 없다는 건 편협한 생각이다·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어·”
“나는 아직 왜 못했지?”
“트릭시가 더 열심히 했을 뿐·”
“···아냐· 나도 열심히 했어·”
베키는 나름대로 열심히 항변했다· 정말 진심으로 자신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플란이 무덤덤한 말투로 말을 이어간다·
“너 또한 마찬가지로 얼음을 다루면서도 얼음이 아니라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느 것에도 속해 있지 않아야 무엇이든 흉내 낼 수 있는 법이니·”
“아····”
베키는 그때쯤에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무심한 태도는 태도지만 플란이 와중에 자신에게 가르쳐 주려고 한다는 의도를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너라면 얼음을 흐르게 만드는 시도를 해볼 것 같군 완전히 물처럼 흐르지는 않을 것이나 또 완전한 물이 아니므로 가치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응· 고마워·”
대답하고 한 박자 뒤 베키는 화들짝 놀랐다·
“어? 잠시만 그럼 지금 트릭시가 다루고 있는 건···· 엄밀히 따지자면 화염도 아니라는 소리야?”
“화염이라고 할 수 없지·”
“와····”
베키는 입을 떠억 벌리며 경기장 위의 트릭시를 바라보았다·
화염의 긍지를 위해 화염 이외에 배우지 않던 트릭시가 이제는 더 강한 화염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른 속성마저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뜻 아닌가?
인간 마법사는 한 속성을 전공으로 정하여 사용하면 체질도 그에 맞게 변화한다· 그렇다면 과연 트릭시는 체질을 변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한 걸까?
‘대단해·’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만약 노력이나 재능이 어중간했더라면 화염도 다른 속성도 쓰지 못하게 된 애매한 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트릭시는 자신을 끝없이 연마한 것이다· 표현 그대로 끝없이·
플란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트릭시에게는 늘 각오가 있었던 것이지·”
성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성공하는 건 이상하다·
목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루는 건 이상하다·
그러니까 트릭시에게는 있었다·
자신이 머릿속 한 켠에 확실히 그려 두었던 미래가 있었고 반드시 이루겠다고 결심한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조차도 있었다·
그러한 감정을 어렴풋이 느끼자 베키는 어깨가 살짝 떨리는 것을 느꼈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트릭시가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트릭시의 경지가 너무나도 멀어보여 마음이 착잡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베키는 그런데도 트릭시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았다·
···똑똑히 보고 자신도 뒤쫓기 위함이었다·
◈
카가가각─!
화염으로 인해 칼날의 이가 다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호위 기사의 얼굴 위로 복잡한 감정이 드러났다·
분하다는 감정은 들지도 않았다·
무엇인지 완벽히 이해하지도 못 할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당황스러운 머리를 굴리며 이해하려 애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
말이 나오질 않는다·
인간이 지닌 본능이라는 것은 굉장히 냉정해서 생각보다도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는 법이다·
그래 호위 기사가 무언가를 차분히 생각하기도 전에 본능의 경종이 울렸다· 자신이 지금 상대하는 푸른 소녀는 굉장히 강하다면서 말이다·
“피하지 마세요·”
트릭시의 한 마디가 무게추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녀의 올곧은 시선이 호위 기사의 몸을 꿰뚫어버릴 듯했다· 아직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호위 기사의 검 끝은 점점 떨리는데 트릭시의 푸른 불꽃은 호수를 이루듯 점점 고요함을 찾아가고 있었다·
트릭시가 내뱉었던 말이 괜히 다시 떠오른다·
─오래 걸릴 경기는 아니잖아요·
일종의 허세일 것이라 생각했거늘 트릭시의 말이 허세가 아니었음이 점점 증명되어가고 있는 꼴이었다· 호위 기사는 그것이 못내 분했다·
“누가 피한다는 거요!”
애초부터 트릭시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마법사를 얕보지 않았으나 기대했던 것 이상의 기량을 보여주길래 꽤 놀랐을 뿐이다·
“···이쪽에서도 전력으로 가겠소·”
호위 기사가 씹어뱉듯 말하자 트릭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에서 더 이상 대화는 필요 없었다·
‘이겼어·’
그리고 이를 악문 호위 기사의 얼굴을 보자마자 트릭시는 승리를 확신했다·
호위 기사는 방심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반대로 말하자면 집중해서 트릭시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간절히 믿고 있었다·
굽히지 않겠다면 꺾는 수밖에·
쿵! 쿵! 쿵!
지면 전체가 뒤흔들리며 푸른 불기둥들이 여기저기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호위 기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이 순간 트릭시가 또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
“으···!”
호위 기사는 그 기둥들을 피하거나 베어내면서 한 발자국씩 앞으로 전진했다· 잘 숙련된 검술이 이어지자 강철 같은 화염 기둥들이 하나둘 베여나갔다·
그러나·
파앙─!
이제는 하늘에서도 화살 같은 화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이로 보이는 트릭시의 표정은 여유로웠으니 호위 기사의 접근조차 허용치 않겠다는 듯했다·
“···!”
그 의도를 알아차린 호위 기사가 이를 더더욱 악물었다· 기사로 태어나 마법사에게 접근조차 해 보지 못하고 패배한다니 그보다 큰 굴욕이 있을 리 없다·
‘어차피 마나는 유한한 힘이지·’
촤악─!
호위 기사는 한 번 두 번 검격을 늘려 나갔다· 이만한 출력이라면 마나가 바닥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겠지·
마나를 전부 소모하는 그 순간 덮쳐 버리면 끝이다·
촤악! 촤악! 촤악····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러서 마침내 몸이 땀 범벅이 되었을 때 호위 기사의 얼굴 위로는 당혹감이 서서히 번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화륵!
“크악!”
그렇게 의문을 품은 순간 그의 발 하나가 화염에 휘말렸다· 용광로에 발을 담근 듯한 충격이 호위 기사의 뇌를 강타했다·
“말도 안 돼····”
‘강력한 출력’ 자체는 사실 따지고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비장의 수가 하나씩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르르르륵!
트릭시의 화염에는 끝이라고 칭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근원의 끝을 알 수 없는 폭포가 흐르듯 무한하다는 착각이 생길 정도로 호위 기사를 향해 내리꽂힌다·
‘이건 안 되겠다·’
호위 기사가 그렇게 생각한순간·
콰앙!
발밑에서 일어나는 폭발을 호위 기사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발목이 다 낫지 않은 탓이다·
“커헉!”
그는 결국 추한 꼴로 바닥을 몇 바퀴나 굴렀다· 검을 지면에 꽂아 넣은 뒤에야 그것을 멈출 수 있었다·
“으으으····”
이제 한쪽 발에는 아예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감각도 없다· 트릭시의 화염은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간단한 이야기잖아요·”
트릭시가 무감히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들보단 우리가 더 간절했을 뿐이야·”
“····”
호위 기사는 그런 트릭시를 올려다 보면서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자기 상황이 불리해서가 아니라 트릭시의 화염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순전히 그녀의 눈동자에 깃들어 있는 어떠한 열망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어떤 보석보다도 투명하게 반짝이는 듯한 무언가· 소녀의 눈동자에는 그러한 것이 담겨 있었다·
저도 모르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다음 순간 기사의 시야가 온통 푸르게 물들었다·
승패가 명확하게 갈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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