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6
스칼렛이 말을 마친 직후 경기장이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잘 이해했기 때문에 그래서 받은 충격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고요해진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스칼렛은 이렇다 할 소리도 내지 않으며 쓰러졌다·
“스칼렛!”
“스 스칼렛!”
기사측 진영에서 급하게 기사 여러 명이 올라와서 스칼렛의 몸을 거두었다· 눈 하나를 잃고 팔 하나까지도 잃은 그녀의 모습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커헉─·”
스칼렛이 피를 토해낸다·
“기····”
그녀가 무언가를 말하려 시도하기 시작했다· 다들 숨 쉬는 소리조차 죽이고 그녀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기사답게···· 하자· 기사답게····”
다른 기사들이 고개를 연거푸 끄덕였다· 스칼렛은 그것을 확인한 뒤 천천히 눈꺼풀을 닫았다·
“스칼렛님! 스칼렛님!”
“호들갑 떨지마·”
비올라가 이 상황이 불편하다는 듯 말을 툭 잘랐다·
“그냥 잠든 것뿐이야· 눈을 잃은 것도 팔을 잃은 것도 자기 실책이니까 걱정해 줄 필요도 없어·”
그리고 호위 기사들을 향해 무감하게 턱짓 했다· 호위 기사들이 그녀를 치료소로 바쁘게 호송했다·
‘결국 또 졌잖아·’
비올라는 승패에 관한 생각을 하기 바빴다·
기사들의 기득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분위기는 절대로 좋지 않았다·
설령 자신이 영웅이 되어 기사의 훌륭함을 설파하려고 든다 하더라도 오늘 경기를 맨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이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혹은 보란 듯이 거짓말을 하는 영웅이 되어 버릴 터·
“···망할!”
비올라가 괜히 지면에 한 번 발을 굴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짜증이 난다· 스칼렛에 관해서 말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스칼렛은 자기 몸까지 희생해가면서 플란을 띄워주었다· 그녀가 품은 기사도를 비올라는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비올라의 시선이 플란에게로 향했다·
‘플란····’
비올라가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이유가 있긴 있었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유례가 없었던 마법사라고 했다·
한 번의 패배조차 겪지 않은 이· 그리고 마법 학부의 위상을 여기까지 끌어올려 낸 장본인·
그리고 그 뜻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나이가 몇이지?’
마법 학부 대표들의 나이와 동일하다고 생각하면···· 한창 아카데미에서 출석 일수나 채우고 있을 나이다· 바꾸어 말해 나이에 비해 상상조차 어려운 업적이다·
저런 마법사가 현재 수도 기사들의 나이쯤 차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비올라는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꽤 불쾌한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비올라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영웅이 되면 그리되면 그만이야·’
영웅에 도달하는 것을 제외한 다른 목표들을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비올라가 죽어서 눈을 감기 전까지 그녀가 패배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제아무리 플란이라 하더라도 이제 알게 될 것이다·
넘을 수 있는 벽이 있다면 세상에는 넘을 수 없는 벽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플란에게 있어서는 그 벽이 비올라가 될 거라는 것을 말이다·
‘수도 기사의 전력을 보여 주지·’
비올라가 매서운 눈으로 마법 학부 진영을 바라보았다·
그저 시선이 닿았을 뿐인데 마법 학부의 대표들은 저마다 흠칫 놀라며 반응했다·
‘저게 비올라구나·’
‘눈을 마주 보는 것도 쉽지 않아·’
이곳에서 이미 호위 기사들과 수도 기사들을 목격하고 또 맞상대도 해 본 마법 학부의 대표들이었지만 비올라의 기운은 정말 남달랐다·
‘너무 다른 데? 다른 기사들이랑은?’
트릭시 베키 루이스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린 그때였다·
“네가 비올라인가·”
낮은음색이 바닥으로 짙게 깔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당연히 플란이었는데 놀라운 일은 그때 발생했다· 플란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마법 학부 대표들의 떨리던 몸이 안정된 것이다·
“질질 끌 것 없다· 바로 다음 경기를 진행시켜라·”
“····”
“결과가 뻔하지만 그래도 해야지· 그렇지 않나·”
플란이 비올라더러 경기장으로 올라오라는 듯 턱짓 했다· 숨길 수가 없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 버린 비올라의 표정을 보고도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확정타를 꽂아 넣기까지했다·
“왜· 망설여지나?”
“하····”
비올라는 나름 평정을 유지했지만 정작 그녀의 곁에 선 호위 기사들의 눈이 뒤흔들렸다·
안 그래도 연패를 겪고 있는 기사 진영인데 비올라가 이런 도발까지 받아버리면 자신들에게 어떤 불똥이 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불똥이 아니라 화산 폭발 수준일지도 모른다·
“저 비올라님····”
호위 기사들이 우려 섞인 목소리로 비올라의 눈치를 살필까 했지만 비올라가 태연하게 한 손을 살짝 들어 그들을 제지시켰다·
“이봐 플란·”
“듣고 있다·”
“네가 뱉은 말 책임질 수 있겠어?”
플란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뱉은 말은 반드시 책임진다· 늘·”
“····”
비올라는 플란의 말에 굳이 소리내어 답하지 않았다·
다만 발걸음을 경기장 위로 향했다·
◈
“후우····”
마법 학부의 총장 코네트는 심호흡했다·
단순하고 평범한 경기라고 칭할 수 없다· 플란과 비올라의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지 코네트는 이해하고 있었기에 마음이 떨려왔다·
‘마치 이전 경기들은 서막에 불과했다는 것 같아·’
마법 학부가 지금 이 자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 장본인인 플란 그리고 건너편에는 영웅 후보 중에서 가장 유력하다고 알려진 비올라·
누구라도 기대할 만한 승부였으며 또한 동시에 가장 중요한 경기라고 할 수 있었다·
어느 쪽이 승리하든 간에····
‘이 승부에 관한 이야기는 대륙 전역으로 퍼져·’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총장님·”
바이올렛이 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플란이···· 해낼 수 있을까요?”
“아하·”
코네트는 예상했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올렛이 그런 말을 할 것이라고는 알고 있었고 여기 있는 모든 마법사들이 그런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비올라가 이기는 게 기본값이긴 하지요·”
“아···· 역시 그렇죠?”
코네트가 생각할 때 비올라는 정말 벽이었다·
수도 기사와 영웅 사이에 어떠한 계급도 없어서 그렇지· 만약 그사이가 세분화된다면 비올라는 그 계급들 사이에서도 가장 높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상식적으로는 플란이 비올라를 상대로 이긴다는 건 참 어려운 현실이다·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하죠· 스칼렛을 상대로도 완승을 거두었고 다른 대표들도 너무 잘해 줘서···· 이대로 복귀해도 마법 학부의 위상이 엄청나긴 할 거예요·”
“하지만·”
“예?”
바이올렛의 중얼거림을 코네트가 툭 끊었다·
“플란이 상식대로 했던 적이 있어야 말이지요·”
코네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제야 곁에 앉은 마법사들도 환히 웃었다·
“맞아요· 플란은 상식같은 게 전혀 안 통하죠·”
“상대가 누구든 이상하게 질 것 같지가 않구요·”
마법사들이 그렇게 하나둘 떠들기 시작하자 앞에 앉아 있던 이들이 하나둘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대부분 상회를 쥐락펴락하는 인물들이었다·
상회 인물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어째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서 이런 말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다들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요?”
“예· 진심입니다·”
코네트가 평이한 얼굴로 대답합니다·
“상회 여러분들이 모쪼록 이해 하시지요·”
심호흡하며 긴장을 누그러뜨리던 모습은 어느샌가 온데간데없어진 뒤다· 코네트는 평소의 여유를 장착한 뒤 슬그머니 웃으면서 말했다·
“저희는 어쩌면 이미 플란의 광신도니까요·”
◈
마침내 마지막 경기·
비올라의 눈이 더없이 진중했다·
인사를 위해 마주서서 가까이 다가오는 플란을 바라보며 비올라는 기분이 묘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래 살고 볼일이야· 내가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한창 아카데미에 다닐 나이의 마법사와 전력으로 겨룬다는 일이 성사될 것이라고 도대체 누가 예상했겠는가? 비올라조차도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만으로도 꽤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감수해야 하는 법·
‘나중을 위해서라면 지금 끊는 것이 옳다·’
플란을 향한 악감정은 사실 그리 크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비올라의 악감정은 나약한 기사들을 향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 크다· 그냥 마법사 중에서 난 놈으로 태어난 플란을 어찌 원망하겠는가·
하지만 악감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기사들의 앞일을 위해서라면 또 영웅이 될 자신을 위해서라면 플란을 지금 베어놓는 것이 옳다·
스륵─·
비올라가 천천히 검을 뽑았다·
“플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히는 그 순간·
승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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