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9
악보를 가득 메운 음표처럼 공연장을 가득 메운 음악처럼 온갖 검기가 플란을 향해 날아들렀다·
“조용·”
천천히 눈을 깜빡거린 플란은 허공에 선을 세 개 그었다· 여느 책의 마음에 드는 문구에 밑줄을 긋듯 정순하고 푸른 선이 악보 위에 새겨졌다·
“그럴 틈 없을 텐데!”
검을 높게 치켜든 비올라가 자신의 검을 있는 힘껏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두부가 잘리는 것처럼 여섯 개의 선이 여섯 개의 선으로 정확히 양단된다·
그러나 플란은 그것마저도 예상했다는 듯 처음부터 6개의 선이 필요했다는 듯 그것을 통째로 사용했다·
스스스─!
여섯 개의 선이 쐐기의 형상을 띈다·
파앙!
마나가 촘촘하게 엮인 쐐기가 무려 여섯 방향에서 비올라의 급소를 노린다· 군더더기 없는 일격이었지만 비올라는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 쐐기들이 막 살갗에 닿을때쯤의 순간 찰나의 순간을 뚫어내고 비올라의 검이 파동을 쏘아내서 그것들을 전부 밀어낸다·
“얕은 수를 쓰는구나· 플란·”
그리고 쐐기를 쳐내는 순간 다시 도돌이표· 수없이 많은 비올라의 검격이 플란을 몰아붙인다·
─!
─!
경기장이 통째로 흔들릴만한 충격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굉음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 공간의 청각적 요소는 이미 상식을 벗어난지 오래였으니까·
‘플란! 여기봐!’
‘플란·’
‘플란?’
‘플란~’
‘살려주세요!’
‘저 저건!’
·
·
·
플란이 청력을 일시적으로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많은 말소리가 끝없이 들려온다· 몸을 황홀경에 젖게하는 선율 연주 또한 계속되었다·
“애초에 이건 소리가 아니었군·”
“소리가 아니긴? 영혼까지 닿는 소리일 뿐이지·”
“하·”
‘무한’이라는 단어로 설명해도 어색하지 않을 일격들을 받아내며 플란은 웃음을 터뜨렸다·
안 그래도 경기에 집중하던 관중들이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비올라의 교향곡· 형체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사람을 짓뭉개버릴 연격이 이어지는데 플란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 셈이었으니 아주 찰나의 순간 선율이 끊기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이라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빈틈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플란은 그 자그마한 틈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슷!
몸을 허공으로 깃털처럼 부유시킨 플란이 공중에 새겨진 악보중 하나에 손을 얹었다·
“···!”
그건 흡사 피아니스트가 감정을 실어 피아노 위로 손을 얹는 깊은 감정이 가득 담겨있는 듯한 울림이 있어서 비올라가 저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뭐하는 거야?’
평범한 악보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덫이다· 하나하나가 정교한 검격이기 때문에 손을 올린다면 절단되어버리는 미래는 너무 뻔한 것이다·
비올라의 눈이 본능적으로 선율에 개입한 플란의 손을 바라보았다· 원래라면 손이 형체조차 없이 갈려야 정상이지만 비정상적인 일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팅─·
플란이 손가락을 댄 부분의 악보에서 새로운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비올라가 의도한 소리는 절대 아니었고 온 흐름을 망치는 불협화음이었다·
“이런···!”
비올라의 이마 위에 핏줄이 세로로 섰다·
플란이 자신의 검 궤적에 손을 올리고도 멀쩡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두 번째다· 그녀는 우선 플란이 자신의 선율에 개입했다는 것에 분노했다·
그런데 또 한 번·
팅─!
플란의 불협화음이 선율을 깨트린다·
일평생 사람을 황홀에 젖을 선율을 연구해온 비올라이기에 또한 좋은 소리만을 들으며 살아온 그녀이기에 이러한 요소가 치명적이게 거슬린다·
“으!”
결국 거슬림을 무시하지 못한 비올라가 뒤로 조금 물러났다·
비올라의 검격이 내는 소리는 엄밀히 말하자면 소리가 아니다· 뇌신경에 직격으로 전달하기에 청력을 포기해도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역이용당했기에 비올라도 보란듯이 불협화음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운이 좋네·”
비올라가 자세를 고쳐잡으며 중얼거렸다·
‘설마 그 짧은 순간에 의도했을까?’
비올라의 소리가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깨달은 순간 곧바로 역이용했을까? 유감스럽지만 그것까지도 생각할 겨를은 주어지지 않았다·
탕!
자신의 연주에 집중하라는 듯 여전히 허공을 부유하는 플란이 악보 위로 양 손을 얹었다·
잠시후 선율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
비올라는 살면서 전투를 수도 없이 경험했다· 바꾸어말해 자신의 고유 능력을 아주 많이 사용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선율을 상대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고유 능력이 왜 고유 능력이겠는가? 표현 그대로 고유하기에 고유 능력인 것이다· 겹치기는 커녕 유사성을 띈 공격조차도 맞이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이 많아진 비올라의 속내를 플란은 이번에도 읽어낸 것 같았다·
쾅···· 쾅─ 쾅─!
점점 거세지는 불협화음·
소음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의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불쾌한 소리가 비올라의 머릿속에 박혀들었다·
그 충격파를 이겨내지 못한 경기장 지면에도 곧이곧대로 거미줄처럼 생긴 금이 쩍쩍 갈 정도였다·
“····”
첫 번째로는 자신의 선율에 멋대로 개입했다는 분노가 샘솟고 두 번째로는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 없었던 격통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덮친다·
“내 선율이야!”
비올라는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플란의 소리를 자신의 소리로 덧씌워버릴 셈이었다·
그러나·
티이이잉─
비올라가 자아내는 선율이 아무리 많아지더라도 플란의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고 명확히 비올라의 뇌리에 박혀 들었다·
“끼어들지 마 감히· 감히···!”
비올라가 이를 악문 채로 검을 휘둘렀다· 자신의 선율을 통째로 부숴버림으로써 아직까지 허공에 존재하던 모든 악보를 부숴버린다·
콰드득!
검을 휘두를때마다 생성된 파동으로 인해 지면은 이미 여기저기 금이가고 파편이 튀어오르는 상태였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비올라가 다시 한 땀 한 땀 선율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아까는 듣는 이를 황홀경에 젖게 하는 악보였다면 이번에는 양상이 달랐다·
관중들이 저마다 소리를 터뜨렸다·
“악보가 이상해···!”
“아니 저걸 악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음악을 전혀 전공하지 않은 이들조차도 저 악보는 위험하다고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악보에 그냥 음표가 아무런 규칙도 없이 빼곡하게 들어차있었기 때문이다·
“하아···· 하아···· 하하하····”
비올라는 숨을 몰아쉬며 문득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공격 하나 허용하지 않았기에 몸의 모든 부분이 멀쩡했지만 이상하게 검을 쥔 손목은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팔과 손은 검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검끝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자 가장 중요한 것인데····
무언가 결단을 내린듯 비올라는 다시 고개를 들어 플란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설마했던 모습 그대로 플란은 처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뚝·
비올라의 턱을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곳에 있는 두 명 중 한 명에게 ‘발악’이라는 표현을 써야만 한다면 사람들 눈에 어느 쪽이 발악하는 것으로 보일지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그러나 비올라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 비하면 마나가 많이 옅어졌는데?’
사람들의 눈에 여유로운 것처럼 보일지라도 비올라의 눈까지 속일 수는 없다· 적어도 비올라가 느끼기에 플란은 분명 처음의 기량이 아니었다·
‘혹시 겉모습만을 신경쓰는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고나니 갑자기 플란이 우스워졌다· 비올라는 어디선가 기운이 샘솟는 듯 했다·
“이렇게까지 해본 적은 없었는데····”
비올라가 악에 받친 얼굴로 슬쩍 웃었다·
“이건 오직 너한테만 들릴 거야· 영광으로 알아·”
그런데 그때였다·
툭! 투둑! 투두둑!
허공에서 마나가 어떠한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비올라의 머리 위에 잔혹한 악보가 떠있었다면 그건 푸른 색을 띈 채 플란의 머리 위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악보인가? 아니 아니야·’
설마 악보를 복제하는 것일까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플란의 머리 위에 그려진 것은 조그만 봉이었다·
심지어 마법봉도 아니고 그냥 지휘봉·
다소 어이없는 행색이었기에 비올라는 관찰을 이어갔다·
하나 둘···· 머리 위에 추가로 무언가가 떠오른다·
비올라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내 이해했다·
‘악기?’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오보에 호른 콘트라베이스 튜바···· 악기들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심지어 부채꼴의 형태를 이루며 비올라를 앞에 두고서 흡사 오케스트라같은 모양새를 갖춘다·
스윽·
“이건 꽤 재미가 있겠어·”
조용히 중얼거리며 플란은 조용히 지휘봉을 집었다·
천천히 손을 들어올리는 그 동작은···· 아름답다·
“이런 곡 연주는 별로 취향에 맞지 않는다만···· 어쩔 수 없지·”
비올라는 그때까지도 플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연주한다고? 무엇을? 연주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것을?
“1악장·”
플란이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바밤─·
비올라의 악보가 플란의 손으로 연주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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