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1
콰앙─!
비올라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경기장 벽면에 처박힌다· 벽은 거미줄처럼 금이 간 뒤 부서져버려서 이미 벽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모양새였다·
쿵!
물건이 쏟아지듯 바닥에 떨어진 비올라가 비틀거리면서 겨우겨우 몸을 세웠다· 정확히 십 초 정도 그녀는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눈을 깜빡였다·
순간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더라?’
어떠한 기억도 나질 않고 모든 감각이 차단당한 느낌· 그리고 주마등이 스쳐지나가듯 일시에 모든 것들이 되돌아온다·
“아 윽·”
허리를 펴고 자세를 바로하려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살짝만 힘을 주어도 참을 수 없을만큼의 고통이 되돌아오자 자신이 보기좋게 당했다는 사실을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힘이···· 안 들어가····’
손이 아직 검을 쥐고 있기는 하다만 심지어 이것도 자신이 의식해서 쥐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매 순간 검을 자신의 신체 일부처럼 여기는 강도의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본능이 쥐고있는 것일 뿐·
“하아····”
비올라가 가쁜 호흡을 내쉬었다·
몸 어느 부분에도 힘조차 줄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행색이 되어버렸지만 자신의 마음과 비교하자면 몸은 도리어 깨끗한 편이었다·
문득 주변 모습을 살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상황을 관중들은 어떤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을까· 지금의 나를 보며 어떻게 생각할까·
비올라는 여기저기 조종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움직였다· 삐걱거리고 이상한 행색으로 겨우겨우 허리를 펴고 자세를 바로했다·
삐이이이이─
귀에서는 이명이 들렸다·
플란은 현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여유로운 태도로 비올라를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그가 방금 들려주었던 선율이 자꾸만 귓가에 맴돈다·
그것을 하나하나 되짚고 있노라니 몸 위로 소름이 돋았다· 악곡의 컨셉 분위기 그에 상응하는 멜로디 악상···· 일련의 모든 것들을 단번에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을 뭐라고 칭하는지 그녀는 알았다·
“···천부적이구나·”
사람들이 무엇을 듣고싶어할까를 고민하는 여느 작곡가와 다르게 플란은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음표의 형태로 늘어놓았을 뿐이다·
자기 이야기만 막 늘어놓는다는 것· 어떻게 보면 참 쉬워보이는 일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최고라는 확신을 지니는 것· 또한 그것이 실제로 최고가 되는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연이라는 것이 없었구나·’
플란과 경기를 시작한 이래 자연스럽게 이어졌었다고 생각했던 흐름들· 그것들을 세세하게 하나하나 뜯어볼 수록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윽····”
위장이 뒤틀리는 듯 복부가 진동하며 핏물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팔이 잘 움직이지 않아서 소매로 입가를 닦을 수조차 없었다·
비올라의 고유 능력·
이건 실제 소리가 아니라 뇌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기에 상대방의 내상을 목표로 하는 공격이다·
한데 지금 비올라는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이었으니 플란의 공격이 그만큼 제대로 통했다는 뜻·
─♬
비올라는 머릿속으로 자신이 평소 좋아했던 선율들을 떠올렸다· 어느 상황에서도 그녀를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미소짓게 해주었던 그런 악장들·
‘···차분하게·’
그리고 그것들은 이번에도 효과가 있었다· 비올라는 자신의 심신이 점차 차분해지는 것을 체감했다·
한없이 좁아졌던 시야가 다시 넓어지던 와중 건너편에 멀쩡히 서있는 플란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공연을 마친 지휘자가 퇴장을 준비하는 것처럼 그는 악장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었다· 그 동작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이 악장은 이제 비올라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빌···· 어먹을 이런 빌어처먹을!”
씹어뱉듯 말하는 비올라의 목소리에는 꾹꾹 눌러담은 분노가 담겨있었다·
“네가 감히····”
치욕? 부끄러움? 수치? 이와 관련된 어떤 표현으로도 비올라의 현 상태를 아주 명확히 표현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현재에 비하면 약과다·
자신이 평생 몸바쳐 온 분야에서 막 들어선 이에게 패배한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뭐라고·
까드득·
이에서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비올라는 턱을 꽉 물었다· 플란의 표정은 여전히 태연한데 그녀의 얼굴은 점점 악귀처럼 변모했다·
“계속 할 것인가·”
“····”
플란의 물음에 비올라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빠르게 대답하지 않는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승부를 이어갈 것이냐고 물었다·”
“그 입 닥쳐!”
비올라는 마치 발작하는 것처럼 대답했다· 그러나 그것은 겁에 질린 강아지의 위협처럼 소리만 클 뿐 그녀는 지금 행동에 나설 수 없었다·
플란은 목소리를 딱히 키우지 않는다· 그렇게 하더라도 비올라에게는 전부 들렸다·
“관객이 없는 음악에 무슨 소용이 있나· 그것이 네가 줄곧 생각해왔던 기사도인가·”
“뭐?”
“네 선율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숨통을 끊고 인정하는 자에게는 패배를 안겨주고· 그런식으로 명맥을 이어왔겠지· 그렇지 않나·”
“····”
플란을 바라보는 비올라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플란의 말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내려앉았다·
“네 음악은 한 번도 실제로 좋았던 적이 없다·”
플란의 얼굴 위로 어떠한 표정 하나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게 비웃음이라는 걸 비올라는 깨달았다·
“하물며 어떻게든 이기는 음악을 할 정도로 간절하지도 못하지· 그냥 멋대로 해온 것이다· 매번· 늘·”
비올라의 몸 떨림이 한층 더 심해졌다·
좋지도 않은 음악· 심지어 이기기 위해서 모든 수를 쓰는 것도 아닌 음악· 그저···· 주인이 제멋대로 자신의 흥에 취해 마구 자아내는 음악·
그게 비올라를 향한 플란의 평가였다·
“기초부터 다시 하도록·”
“기초부터 다시 하라고?”
“그래· 다시하라는 것은····”
충격적이고 또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비올라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나 플란은 조용히 입꼬리를 살짝 올릴 뿐이었다·
“···운 좋게도 네게 다음이 있다는 뜻이지·”
즉 목숨 정도는 붙여주겠다는 선언이었다·
플란의 손바닥에 새하얀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딱히 별다른 시각적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특출난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
그렇기에 넋을 놓고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던 관중석의 사람들도 하나 둘 정신을 차리고 놀라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이 맞다면 저건····
“매직 미사일?”
관중석의 누군가가 외쳤다·
매직 미사일· 마법사가 마법의 걸음마를 막 떼었을 때 가장 먼저 익힐 수 있는 기초 전투 마법·
배우기 쉽다는 것은 바꾸어 말해 위력이 그만큼 현저하게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때·
쿠구구구─!
매직 미사일이 모습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모두의 머릿속에 익히 ‘매직 미사일’이라고 알려져있었던 모습을 서서히 벗어난다· 그것이 천변만화하며 아주 거대하게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백색의 구체에 마나의 힘이 어린다·
가장 기초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새겨진다·
그것의 이름은 근본·
마침내 그것이 플란의 손을 떠났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 꽤 다른 모습으로 빚어진 매직 미사일은 격한 파도처럼 비올라를 향해 쏘아졌다·
“큭···!”
비올라의 본능이 먼저 빠르게 반응했다·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손이 움직여 검을 휘둘렀다·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회백색 구체를 검으로 막아내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그러나 비올라는 똑똑히 보았다·
자신의 검이 나뭇가지처럼 꺾이는 광경을 말이다·
빠득!
검이 초라한 소리와 함께 부러지고 시야가 새하얘진다· 기초적인 마법이라는 것은 바꾸어말해 가장 근원에 닿아있다는 말·
매직 미사일은 훌륭하게 비올라를 찍어눌렀다·
콰아아아아앙!
경기장에서 새하얀 폭발이 피어올랐다· 끊어질 것 같은 정신줄을 가까스로 붙잡았지만 오히려 기절하지 못해 더더욱 크나큰 고통의 연속이었다·
‘아····’
패배·
비올라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패배했음을·
쾅!
폭발 한 번에 손이 꺾였다·
쾅─! 쾅─!
이어지는 폭발에 비올라는 검을 결국 놓쳤다·
검을 놓친 비올라는 그냥 가녀린 여성에 불과했다· 매직 미사일의 여파가 허공에 떠오른 그녀의 육신을 무자비하게 헤쳐놓는다·
경기장의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섰다· 아무리 눈부시고 떨리더라도 이 순간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었다· 여기까지 왔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지금이 바로····
“커헉─!”
경기장의 승자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즉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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