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3
와─!
우레와 같은 환성과 박수가 쏟아진다· 물론 그것들은 전부 마법사들을 향한 것이었다· 기사들은 숫제 굉장히 어색해하며 자리를 지켰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기억을 베는 자 리브라·
“갑시다·”
리브라가 삿갓을 고쳐쓰며 말했지만 다들 어쩔 줄 몰라하며 쉽사리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리브라의 태도가 퍽 단호하다·
“떠나는게 맞소· 우린 더이상 주인공이 아니니까·”
“예·”
대답이 터져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시원치 않은 수준이다· 리브라는 결국 한숨을 한 차례 푹 내쉰뒤 이야기했다·
“그대들은 이러한 광경이 어색하기만 하겠지·”
“····”
“그러나 많은 이들의 기억을 살펴온 나는 알고 있었소· 기사들에게도 분명 이런 순간이 있었음을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고 대륙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는 순간이 있었음을····”
“예·”
“그러니까·”
리브라가 감상에 젖은 눈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 순간이 다시 올 수 있도록 앞으로는 죽도록 검을 휘둘러야 할 거요· 그대들은 너무 편안하고 빛나는 시대만을 살았어·”
“····”
“선대들이 쌓은 명성까지도 우리가 쌓은 명성으로 착각했다는 말이오· 그래선 안 되는데·”
침울한 표정으로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기사들이 하나 둘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리브라의 말은 구구절절 틀린 부분이 없었던 것이다·
“돌아가서 검을 쥡시다·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니·”
“그리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리브라님·”
“예·”
한 명도 빠짐없이 대답하자 리브라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은 효과가 제법 있었어서 망설이던 기사들도 이제는 모두 움직였다·
하지만 왜일까 사실 리브라의 마음은 더 무겁다·
방금 리브라의 발언에 감명받은 이들은 전부 호위기사였다· 그들은 리브라보다 배분이 낮고 실력도 떨어지기에 이렇듯 말을 잘 듣지만····
“흐음·”
리브라의 시선이 치료소쪽으로 향했다·
비올라를 비롯한 수도 기사들· 그들이 이번 일을 어떤 식으로 생각할지는 모를 일이다· 아니 사실 알 것 같다· 그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리브라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지만·
“플란·”
그라면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리브라가 아는 선에서 플란은 ‘불가능’이라는걸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번에도 바꾸는 것은 그의 몫이겠지·
후훗 리브라는 웃음을 터뜨린 뒤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왜인지 모를 홀가분함을 느끼며·
◈
“야 플란!”
“플란!”
“프 프 플란!”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받아낸 뒤 경기장을 내려온 직후 다음과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어디를 보더라도 휘둥그레진 눈 뿐이고 어디로 귀를 기울이더라도 내 이름을 불러대는 소리 뿐이었다·
트릭시가 슬그머니 내 곁에 다가와서 말했다·
“대단하네·”
“그래·”
“···정말 대단하다고· 반응이 그게 끝이야?”
“안다·”
“나름 아주 과격하게 칭찬한건데·”
트릭시가 좀 어색했냐는 듯한 얼굴로 제 혼자 팔짱을 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지?”
나는 굳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역시 대단하네· 처음부터 이런 환상에 가까운 목표를 그리고 그걸 또 현실로 만든다는게·”
“너도 곧 그리 될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네· 너랑 있으면 있을 수록···· 뭔가 마나를 다루는 것만이 마법이 아님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 세상에 마법이라는 건 참 많네·”
나는 조용히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 거의 다 왔군·’
내가 영웅의 자리에 선다는 것이 내게 있어 가장 대단한 업적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마법사들의 입지가 올라가는 것은 맞겠지·
바꾸어 말해 이번 경기에서 원하는 건 다 얻었다·
그때 루이스가 슬그머니 웃으며 끼어들었다·
“아하하 둘이서 뭐해? 고백이라도 하고 있었어?”
“뭐 뭐래·”
트릭시가 루이스의 말을 빠르게 잘라낸 뒤 자신의 얼굴에 손으로 부채질을 한다· 얼굴이 어느샌가 새빨갛게 익어있었다·
루이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야 진짜였어?”
트릭시가 이렇다할 대답을 늘어놓지 못해서 하는 수 없이 내가 입을 열었다·
“아니다· 용건이 무엇인가·”
“그냥 축하도 해주고 싶고 감탄도 해야하니까 이렇게 왔지· 플란 넌 정말 항상 상식을 너무나도 쉽게 뛰어넘는 것 같아·”
“별 것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지척까지 단걸음에 뛰어온 마법 학부의 대표들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너희들 또한 전부 고생했다·”
“···?”
“너희들의 출전 순서에 관여하지 않았던 이유는 너희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도 실제로 너희들은 해냈다· 그래서 고생했다는 말이다·”
“····”
대표들이 얼어붙어버렸다· 엄청난 일격에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지면에 발을 굳건히 붙인 채로 두 눈만을 깜빡거린다·
“···!”
그리고 한 박자 늦게 크게 놀란다·
대표들은 자기들끼리 바쁘게 시선을 교환한다· 그리고 어느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플란이 우릴 칭찬한 거야?”
“그런 것 같은데?”
“말이 돼?”
나는 그들의 반응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이걸로 만족한다·
기사들은 오늘 뼈아프게 패배했으니 더이상 마법사들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경기 내용은 관중들의 입을 통해서 바쁘게 퍼지겠지·
그 성과만으로도 우선 충분했다·
그때였다·
“기사님!”
“아직 안 됩니다!”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는 바람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나도 고개를 돌려보니 호위 기사의 부축을 받아 나타난 여기사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잔불의 기사 스칼렛이었다·
“····”
공간에서 한동안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마법사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고 기사들은 아직 걸어다니는 스칼렛이 걱정스러운 듯 했다·
대표들도 몸에 마나를 두르며 내 앞을 방파제처럼 가로막았지만 내가 그것들을 치웠다·
“괜찮다·”
다들 내 눈치를 보며 주변으로 슬금슬금 물러나자 스칼렛이 내 지척까지 걸어왔다· 커다란 부상 탓인지 아직은 조금 이상한 걸음걸이였다·
◈
스칼렛의 몰골이 확실히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외투의 팔 한 쪽은 채워지지 못해 펄럭거렸고 눈 한쪽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으니까·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플란이었다·
“좀 누워서 쉬지 그래· 몸도 안 좋아보이는데·”
스칼렛이 그 말을 듣고는 엷게 웃었다·
“네가 우승했다는데 얼굴 정도는 보여야지·”
“딱히 대단한 일도 아니다·”
“대단한 일이 아니다라····”
스칼렛의 입가에 어려있던 미소가 살짝 커진다·
대단한 일을 대단하지 않은 평범한 일처럼 해내는 것· 그게 가장 유디트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스칼렛조차도 이제는 그리 생각했다·
그래 가주는 응당 어울리는 사람이 해야겠지·
그러니까·
스칼렛은 잘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움직였다·
“동생아·”
“···?”
플란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처럼 잠시 스칼렛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플란의 눈을 마주한 스칼렛은 뭔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계속해서 달싹였다· 할 말이 많았지만 큰 용기가 필요했고 눈을 마주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꼭 해야 할 말이 있었으니·
“고생 많았다·”
고작 그러한 한마디로 끝이었다·
한 때 자신의 약혼자였던 이를 떠나보내며 또 축하하며 자신이 못살게 굴었던 삶을 참회하고 가주로써 인정해주며···· 수없이 복잡한 감정을 느꼈지만 스칼렛은 이 한 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
스칼렛이 그러한 말을 내뱉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주변에서도 잠시 정적이 흘렀다· 스칼렛이 먼저 돌아섰다·
“이만 간다· 우승자의 발목을 오래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 몸도 별로 좋지 않으니····”
“스칼렛·”
그런데 돌아선 스칼렛을 붙잡은 것은 다름아닌 플란이었다· 낮게 깔리는 플란의 목소리에 묵묵히 자리를 벗어나던 스칼렛이 한 번 멈추어선다·
스칼렛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본다·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닮은 붉은 눈동자가 허공에서 맞닿는다·
“너도 고생했다·”
“····”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군·”
스칼렛은 픽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날씨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한동안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들을 수 있는 말도 그게 전부야·”
그 말을 끝으로 스칼렛은 몸을 돌렸다·
차이가 생겼다면 그녀는 더이상 호위 기사들의 부축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건강해진 듯 했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이거면···· 충분해·’
쓸쓸히 퇴장하는 스칼렛의 입가에·
어느때보다도 환한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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