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4
8월 10일·
경기에서 마법 학부가 승리하였고 플란은 공식적으로 영웅이 되었다·
기사 출신 영웅의 별호는 ‘검성’이었던 것에 반해 마법사 출신 영웅의 별호는 딱히 존재하지 않았는데 플란은 이를 ‘메르헨’으로 지정했다·
11월 15일·
루이스 마이에브 베키 트릭시···· 마법 학부 인물들의 조기 진급과 조기 졸업을 고려하게 되었다·
그들은 마법 학부에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던 기념비적인 인물들이 되었고 그들의 새로운 행보를 응원한다며 총장 코네트는 말했다·
2년후 1월 7일·
마이에브와 트릭시는 졸업을 결정했다·
마이에브는 무엇을 준비하겠다는 것인지 딱히 알리지 않았고 트릭시는 이제 명실상부 프리츠 가문의 가주가 되었기 때문에 가문일로 바빴다·
루이스는 곱상하게 생겨서인지 여전히 인기가 많다· 플란 다음으로는 가장 인기가 많은 듯 하다·
2년후 3월 9일·
“으흠·”
베키는 트리비아를 덮었다·
플란이 영웅이 되어버린 후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들의 나날을 기록했었는데 그것을 이제와서 다시 살펴보니 뭉클하기도 했고 간지럽기도 했다·
“3월 9일···· 3월 9일····”
베키가 같은 말을 두어번 중얼거렸다·
오늘은 3월 9일 오전 6시· 그리고 베키가 열심히 트리비아를 살핀 이곳은 마탑의 객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이기 때문에 절대로 늦잠을 자서는 안 됐다· 아니 애초에 잠도 오지 않아서 밤을 꼬박 새야만 했다·
“후우···· 뭐 놓친 건 없겠지·”
베키는 허공에 종이를 여러장 띄워놓고 꼼꼼히 살폈다· 사실 이건 플란의 습관인데 어느새부턴가 자신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 지원대학원생 서약서 ]
“···내 선택이 옳을지는 모르겠지만·”
새삼 신기하다· 처음 입학했을 때만 하더라도 아카데미를 의무감으로 다녔던 것 같은데 되도록이면 빨리 졸업하고 싶었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은 이런 서류나 살펴보고 있다니· 어른들 말이 틀린 게 없다더니 뭐든지 일단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게 정말이었다·
이것저것 살피다보니 알람이 따르릉─ 소리를 내며 정해진 시간이 되었음을 알린다· 베키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벌써 9시라고?!”
이제는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
오전 10시·
한 시간만에 후다닥 준비를 마친 베키는 아카데미 내부를 거닐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뭘 입어도 저학년인 티가 났는데 이제는 아카데미 정복을 갖추어 입어도 노련한 티가 제법 나는 것 같다·
자신을 알아보는 마법사들은 오늘도 엄청 많았다·
“와! 베키님이다!”
“나중에 얼음 한 번 보여주세요! 아니 가르쳐주세요!”
베키는 그냥 미소지으며 고개를 몇 번 끄덕여주었다· 2년 전이었다면 정말 상상도 못했을 광경이다·
아카데미는 북적거린다·
마법사들의 인구 수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는 것도 놀랍지만 건물들이 변화했다는 점이 베키 입장에서는 더 신기했다·
자신이 처음 입학했을 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해진 건물들 세련된 외벽 정말 많은 건물들이 새로 지어졌고 편의시설도 확충되었다·
베키는 심호흡을 한 뒤 총장실 건물로 향했다·
다른 건물은 다 화려해지고 세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총장실은 예전의 그리운 모습 그대로였다· 베키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 대기실 ]
그렇게 적혀있는 곳을 베키는 자신있게 들어갔다·
들어가니 꽤 많은 마법사들이 무릎 위에 손을 얹은 채 정자세로 앉아있었다· 얼굴 위로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베키?”
그러던 와중 한 명이 베키에게 말을 붙였다·
“어 안녕·”
인사는 했지만 사실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 들어 부쩍 그녀에게 아는 체를 하는 인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베키 너는 감독관으로 온거야?”
“아니 면접보러왔어·”
“뭐어?”
베키에게 신나게 말을 붙였던 여학생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잠시 후 그녀가 살짝 풀 죽은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아···· 베키 너랑 경쟁해야한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데· 미리 알았더라면 다른거 준비했지· 시간 낭비했잖아 완전히·”
“너무 띄워주는 거 아니야?”
“너무 띄워주긴! 무려 마법 학부의 전성기를 만들어낸 대표님이신데! 하아 나는 이제 망했어·”
여학생은 자신의 말이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다는 듯 턱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실제로 다른 면접 대기자들의 얼굴도 꽤 창백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잠시동안 내려앉는 침묵·
더이상 누군가가 베키에게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대신 면접 대기자들은 원래부터 알던 사이였는지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근데···· 플란 영웅 그만뒀다며?”
“응· 나도 그 신문 봤어· 이제 2년 살짝 넘었는데 불현듯 그만하겠다고 했대·”
“왜 그런거지? 영웅 일이 생각보다 힘들었나?”
“그럴 리가 없지· 소문만 듣지 말고 신문같은 것좀 읽어라 좀·”
“왜왜 어땠는데? 왜 그만둔건데?”
“그건 말이지····”
신문을 읽었다고 주장하는 대기자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2년만에 웬만한 일을 다 경험해봤대· 그리고 다 해냈대· 더 이상 영웅으로서는 할 일이 없다나 뭐래나·”
“···그게 정말이야?”
이야기를 듣던 베키는 괜히 흠흠 소리가 나게 헛기침을 했다· 반가운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저도 모르게 입이 근질거렸지만 끼어들어서 마구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대기자들은 긴장이 풀렸는지 점점 크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베키는 문득 이러한 분위기도 반갑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처음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듣던 시기의 일들이 하나둘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곧 총장의 비서가 등장하는 바람에 깨지게 되었다·
“결원없이 모두 모여주셨군요·”
총장 비서는 여전히 조금도 나이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트레이드 마크인 안경도 여전했고 말이다·
“아시다시피 메르헨 아카데미가 현재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코네트 총장님께서도 은퇴를 하셨고···· 저 또한 이제 은퇴를 할 차례가 되어····”
그녀의 발언을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마법 학부 총장으로서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던 코네트는 이제 은퇴하게 되었고 자신 또한 비서직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오늘 이 대기자들 사이에서는 비서를 선출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중 누가 비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상당히 부족한 비서였습니다· 아니 최악의 비서가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그만큼 훌륭한 비서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다들 비서를 따라 움직였다·
◈
“다음 대기자·”
“다음 대기자·”
“다음 대기자·”
하나 둘 줄어드는 대기열을 기다리며 베키는 커피를 홀짝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 게 있으니까 절대로 떨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순서가 가까워지니까 조금 떨리기는 했다·
망할·
그만 긴장하자· 그만 긴장하자· 그만 긴장하자···· 커피의 잔량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빨대를 흡입했다·
“다음 대기자·”
베키의 앞에 있던 사람까지 면접을 보러 들어가고 나니 이제 복도에 남아있는 것은 베키 혼자였다·
아니 총장실 문 앞에 서서 안내를 돕는 비서까지 합하면 두 명일까· 적막이 흐르는 복도 속에서 비서가 베키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그냥 참 묘하다 싶어서요·”
비서가 베키를 굉장히 흐뭇하다는 눈길로 바라보더니 말을 잇는다·
“다른 대표들과는 계속 연락하며 지내시나요?”
“뭐···· 그럭저럭이요·”
트리비아에 이제는 ‘단체방’기능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주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활자상으로 가장 활발하게 떠드는 건 역시 트릭시일까·
“베키 양이 비서가 되겠다는 목표를 품으셨다니 사실 저는 굉장히 뿌듯합니다· 계기가 있을까요?”
“계기라고 한다면····”
베키는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역시 이미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후후 맞아요· 역시 그 사람이겠죠·”
그 사람· 그 사람· 그 사람·
비서의 가벼운 말이 베키의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돈다· 이게 무슨 대단한 말이라고·
비서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을 잇는다·
“뭐···· 이제 곧 베키씨 차례가 다가오는데요· 극비라서 아직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새로 부임한 총장이 누구일 것 같아요?”
비서의 시선을 마주하며 베키도 웃었다·
비서의 말은 사실이었다· 코네트는 총장직에서 내려가며 누구를 총장으로 지목했는지 전혀 알리지 않았다·
아마 누가 총장이 되었는지 알고있는 사람도 극소수겠지만 그 정보가 퍼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현재 아카데미의 새로운 총장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베키는 그게 누구인지 알았다·
“그 사람이죠·”
늘 내 이유가 되어주는 사람·
플란·
오늘 그는 메르헨 아카데미의 총장이 된다·
그리고 베키는 그의 비서가 될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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