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5
“다음 대기자·”
···들어가기 전에 노크해야하나?
머릿속으로 그러한 생각이나 하던 와중 문이 염동을 통해 저절로 열렸다· 베키는 이미 들어올린 한 손을 슬그머니 내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이 건물의 외양은 별로 변화하지 않았으나 총장실 내부는 꽤 크게 달라져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총장이 바뀌었고 총장실 내부의 인테리어를 어떻게 장식하는가는 새로운 총장이 행동하기 나름이니까·
이전의 총장실이 차분했다면 지금의 총장실은 꽤 세련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게 다른 곳에 비해서 평균 기온이 3도 정도 낮은 느낌·
총장 플란 유디트·
보란듯이 새겨진 명패 뒤로 플란이 앉아있었다· 베키는 슬그머니 눈치를 보다가 조용히 건너편의 의자 위로 앉는다·
플란이 시선조차 주지 않으면서 말했다·
“너인가 베키· 용케도 지원을 했어·”
“응· 아니 네·”
베키는 곧바로 대답했다·
대답을 하는 데에 있어서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소녀는 플란이 새로운 총장이 될것이라는걸 알고있었고 또한 그때부터 전담 비서의 자리를 꿈꾸게 되었으니까·
“선택에 후회는 없나·”
“총장님의 전담 비서가 되고싶습니다·”
따라서 베키는 아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플란의 대답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아서 한동안 머쓱해하며 기다렸다·
“····”
하지만 플란이 살짝 침묵하는 바람에 베키는 살짝 마음이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렇다고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 발 끝을 꼼지락거리며 필사적으로 자리에서 버티고 섰다·
“음·”
한참 뒤 플란은 고작 그 정도의 반응을 했다· 허공에서 둘의 시선이 마주쳤는데 플란의 눈은 여전히 무표정이라서 베키는 살짝 헷갈렸다·
‘그래도 나 정도면 괜찮지 않나?’
다른 대기자들의 얼굴을 스윽 훑어보았지만 자신의 기량이 가장 훌륭했다· 친함과 정의 정도를 떠나서 순수 마법의 능력 척도만 보고 따지더라도 자신이 뽑힐 확률이 가장 우세하다는 소리다·
어쩌면 플란은 내심 놀랐을지도 모른다·
베키는 전담 비서로 준비하는 과정을 꽁꽁 숨겼었다· 아마 플란조차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고급 인력이 비서가 된다면 누구라도 반기지 않을까·
베키는 차분하게 긍정적인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왜일까· ‘누구라도’라는 말에 플란은 늘 포함되지 않았던 탓일까·
“너는 비서에 어울리지 않는다·”
플란은 보란듯이 베키를 밀어냈다·
“····”
베키는 세 번정도 눈을 깜빡였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직 불합격을 통보받은 건 아니니까· 이게 말로만 듣던 압박면접이라는 거 아닐까·
하지만 플란의 말이 이어진다·
“역시 너를 선발하는 건 옳지 않은 선택이야·”
대못에 쐐기를 박듯 당당한 탈락 통보· 아무리 마인트 컨트롤을 해둔 베키라 하더라도 이번에는 크게 당황하는 수밖에 없었다·
“왜? 아니 왜요? 마법적으로는 문제 없는데·”
“마법적으로는 문제가 없겠지·”
마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도대체 탈락시키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베키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손을 들어 얼굴을 쓰다듬었다· 고작 통보 하나를 들었을 뿐인데도 순간 늙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뭐가···· 문제야?”
“ 아카데미에 얽매여있지 마라· 네겐 모험이 필요하고 엘프들의 대수림도 훌륭한 경험이 될 테지·”
플란의 말에서 악의적인 의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플란은 어떠한 나쁜 의도도 없이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베키의 앞날을 걱정해주고 있었다·
···플란이 나의 앞날을 걱정해준다라·
더할나위 없이 기쁜 일이다· 하지만 베키는 현재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비서를 하지 않는다면 본인에게 남는 선택지는 졸업 뿐이니까·
“그럼····”
“탈락이다·”
쐐기였다·
비서가 되기 위해서 준비해온 자료들을 펼쳐놓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탈락 통보를 들었다·
“이만 나가보도록·”
그 말을 끝으로 총장실은 굉장히 고요해졌다· 그러나 베키는 발걸음을 뗄 수 없었고 플란은 용건이 끝났다는 듯 신문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베키에게 있어서는 영겁이라 느껴질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플란이었다·
“결과를 듣지 못했나·”
“똑똑히 들었어·”
두 대화 사이에 어떠한 간격도 생겨나지 않을 정도로 베키는 빠르게 답했다· 소녀는 어느샌가 조금 더 각오에 찬 얼굴을 하고있었다·
“우선 고마워 내 앞날을 걱정해줘서·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서도 알려줘서·”
베키의 두 손은 어느샌가 주먹을 꼭 쥐고있었다·
“하지만 아직 면접은 끝나지 않았어·”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다·”
“아니 나는 할 말이 남았어·”
베키는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늘 덜렁대던 베키였지만 오늘은 고깔모자를 비스듬하게 잘못 쓰지도 않았고 옷매무새도 단정했다· 그리고 몸의 떨림도 점차 잦아든다·
“돌아보면 내 할 일을 늘 남이 정해줬던 것 같아· 당연하지· 첫 번째로 나 스스로부터가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고 두 번째로 나는 능력도 없었으니까·”
“한데?”
“그러니까····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지금부터 내가 결정해·”
“떼를 쓰는 것처럼 보인다만·”
플란의 태도는 단호했다·
솔직히 그 입장에서는 굳이 베키를 비서로 들일 이유가 없었다· 원석을 다듬는 과정은 이제 끝을 맞이했고 곁에 두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으니까·
그러나 베키의 마음은 너무나도 달랐다·
“몇 번이고 생각했지만 나는 비서가 되고싶어· 네 곁에 오래 남을 수 있는 걸 하고싶다고·”
“비상식적인 결정에 다다른 이유가 궁금하군·”
“이유? 그야····”
베키가 주먹을 더더욱 꽉 쥐었다·
호흡을 깊게 들이마신 뒤 외쳤다·
“···널 좋아하니까!”
◈
마이에브는 실로 오랜만에 아카데미를 찾았다·
세계를 얼마나 유랑했던가? 뭐 사실 기간으로만 보면 2년 정도이므로 그렇게 긴 기간은 아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다양한 경험의 수집이었다·
혈귀로서 긴 삶을 살았다고는 하더라도 아직 인간으로서의 면모가 부족한 마이에브다· ‘인간 흉내’가 아닌 ‘인간’을 위해 무려 2년을 떠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카데미에 도착한 오늘·
‘10분정도 늦은 것 같은데 괜찮나?’
그러한 생각을 하는 사이 총장실 문 앞에 도달했고 문에 노크를 하려던 마이에브는 멈칫했다·
문이 저절로 열렸기 때문이다· 염동에 의해 열린 움직임이 아니다· 안에 있는 누군가가 문을 당기고 지금 나오고 있었다·
“···베키?”
마이에브가 먼저 상대방의 정체를 알아보았지만 안타깝게도 대답까지 들을 수는 없었다·
“····”
베키는 마이에브를 휙 바라보더니 시선을 피했다·
굳이 자신이 마이에브라서 시선을 피하는 것은 아닌 듯 했다· 뭐랄까 애초에 베키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어져있었다·
마이에브가 말했다·
“어디 아파요?”
“음···· 아 으음····”
상태를 보아하니 진짜로 어디가 아픈 것 같았지만·
“헤헤·”
베키가 별안간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마이에브가 보기에는 정신 공격에라도 당했나 싶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후히히····”
베키는 계속해서 웃으며 자리를 떠나버렸다·
“왜 저래?”
2년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베키의 정신 상태가 저렇게 이상해져버린걸까· 마이에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무엇이지·”
실로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
그토록 듣고 싶었던 목소리·
마이에브는 나름대로 2년이나 준비를 하고 온 것인데 플란은 1시간만에 만난듯 자연스러웠다·
“할 이야기가 많은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그럼 서서해라·”
“좋아요·”
마이에브가 선 채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뒤에 있던 배낭이 열리며 서류들이 하나 둘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2년간 인간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조사했어요· 뭐 직접 체감한 것도 많고요·”
“비서 선발이라면 이미 마쳤다·”
“끝까지 들어주세요· 비서 면접은 아니니까·”
마이에브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플란은 일단 들어보겠다는 듯 무심한 눈을 향했다·
“저는 그냥 앞으로도 꾸준히 마법을 하고싶어요· 그걸 조금 도와달라는 말이에요·”
“지원이라면 어렵지 않지·”
“네· 그러니까요·”
마이에브가 플란의 책상 위로 무언가를 슥 내밀었다·
“인간으로 쭉 살아가려면 이게 필요하네요·”
마이에브가 플란의 책상 위에 올린 것·
다름아닌 혼인신고서였다·
플란의 눈썹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마이에브를 향해서 그가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한 박자 빠르게 마이에브가 말했다·
“이미 말씀하셨어요· 도와주신다고·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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