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6
1년 후·
프리츠 가문의 정원
꽃내음이 코 끝을 간지럽히는 그곳에서 트릭시는 이제 한 명의 가주로서 풍경을 찬찬히 살피었다·
“돌고 돌아 겨울이네·”
어느덧 눈이 사그락 사그락 내릴 계절이 돌아왔다·
프리츠 정원의 꽃들은 마나를 양분삼아 자라는데 이런 추운 날씨에도 정원의 꽃들이 만개할 수 있도록 트릭시가 얼마나 힘썼던가·
날이 추워지더라도 프리츠 가문의 사람들이 얼어붙는 일은 없었다· 도리어 그들은 눈 밭을 뛰는 강아지처럼 더더욱 활기를 가지고 일한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활기·
소소하지만 또 너무나도 거대한 것· 행복·
“프리츠도 이제 꽤 행복해졌을까·”
행복의 더미에 파묻힌채로 트릭시는 과거를 회상한다· 날짜로 치면 대략 3년 전쯤이다·
“어렸지·”
그때는 정말 자신이 다 컸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렸던 것 같다· 어린 주제에 본인이 참 어른스럽다고 믿었던 애늙은이·
뭐···· 그래도 본인을 늘 어른스럽다는 틀에 가두려하고 또 어른을 목표했기에 지금 이렇겠지만·
“사실 아카데미를 더 다니고 싶었는데·”
아카데미의 졸업·
트릭시는 사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싶지 않았다· 그녀가 살았던 생을 돌이켜보면 아카데미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카데미에 남아있었더라면 그 사내와도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었을 텐데· 현재 아카데미의 총장이 된 바로 그 사내말이다·
그나저나 하녀들은 다 어디에 있는건지·
하인들이 일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하녀장들을 비롯해서 주요 하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트릭시는 저택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에도 없고 저기에도 없다·
그리고 마침내 탕비실·
“···?”
“엇 아가씨다!”
트릭시가 나타날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건지 모여서 수군거리고있던 하녀들이 하나같이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트릭시의 시선을 마주할 수 있는 하녀가 한 명도 없어서 트릭시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야 무슨 일인데·”
“아 안녕하세요· 가주님·”
“무슨 일로 모여있는거야·”
하녀장이 어쩔 줄을 몰라한다·
요즘 들어 하녀장이···· 아니지· 하녀장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하녀들이 트릭시를 피하는 느낌이다·
하녀장이 어쩔 줄 몰라하며 입을 열었다·
“놀래라···· 타 탕비실에 볼일이 있으세요?”
하지만 트릭시의 시선을 마주한 이후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지 하녀장이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네· 그야 당연히···· 저희는 나름대로 중요한 안건이 있어서 회의중이었어요·”
“그 회의에 며칠이나 투자하는거야·”
프리츠 영지에서 회의하는 안건중 보통 이틀을 넘어가는 건 없었다· 여기있는 모두가 가문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아할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릭시는 한동안 하녀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상대를 찾고있었다고? 어떤 상대?”
워낙 예상 밖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바람에 트릭시는 저도 모르는 사이 고개를 기울였다·
가문의 재산을 굴려본다든가 아니면 어느 토지를 어떻게 활용한다든가를 이야기하는 줄 알았더니···· 하녀들의 주제는 영 생뚱맞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상대요·”
하녀장이 조심스럽게 돌돌 말린 무언가를 펼쳐보였다· 트릭시는 그것을 들어올리면서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혼인 계약서?”
“네· 혼인 계약서에요·”
트릭시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하녀장을 바라보자 하녀장은 변명을 하듯 말을 바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 가주님!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뭘·”
“결국 영생을 가능케하는 마법은 없는 거잖아요? 하지만 사람은 죽어도 프리츠의 의지는 계속 이어져야하는 것이고요! 그렇지 않나요?”
“그거야 그렇지·”
트릭시의 말에 하녀들이 흐뭇하게 웃었다·
“네· 그러니까요· 혼인이 꼭 필요하다니까요·”
하녀들은 예전과 다를 바 없이 부지런하고 또 친절하다· 그런데 왜일까 요즘들어서 부쩍 친해진 것 같은···· 트릭시를 딸처럼 생각하며 행동한달까·
“아무튼 가주님도 슬슬 의식하셔야해요·”
“나도 의식하고는 있어·”
트릭시는 대충대충 대답하며 하녀들을 물려보냈다· 하녀들은 왜인지 모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벗어난다·
“에휴·”
한숨을 푹 내쉬고 혼인신고서를 어느 서랍장에 처박아두려던 트릭시는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이 혼인을 한다면 누구와 해야할지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뒤 멍하니 벽면을 바라보니 장갑 하나가 걸려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훗·”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흐뭇한 미소·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추억들·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자신을 이곳까지 ‘가르침씨’가 이끌어주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 바로 플란이었다·
트릭시는 마음 속 한 켠에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불꽃에는 다른것을 집어삼키는 자신의 푸른 불꽃과는 다소 양상이 다른 자신을 따뜻하게 데우는 은은함이 있었다·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혼인한다면 할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
메르헨 아카데미의 총장실·
이전 세계에서는 가장 높은 마법사의 등위를 ‘메르헨’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무슨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현재 메르헨 아카데미의 총장·
지극히 내 취향대로 꾸며져있는 이 공간 속에서 나는 어느때보다도 편안하게 탐독중이었다·
읽을 거리는 늘 다양하다· 신문 도서 편지 다른 이들로부터 향해온 선물····
차르륵─ 차르륵─
공간 어느 한 켠에서는 서류들이 알아서 몸에 잉크를 새기고 또 스스로 정돈된다· 과로에 사망하기 직전 베키가 고안해낸 ‘자동화’란 것이다·
[ 스칼렛 유디트· ]
[플란 잘 지내고 있는가·
네 덕분에 나 또한 잘 지내고 있다·
검을 휘두르는 매 순간 생각한다·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이 소소함이야말로 내게는 가장 큰 행복이고 이 커다란 행복을 배울 수 있게 된것은 오롯이 네 덕분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행복하다·
네 덕분에·]
“기사라는 녀석이 글 솜씨가 늘었어·”
다른 편지들은 읽지 않거나 늦게 읽는 편이다만 스칼렛의 편지는 그래도 종종 읽는 편이다·
한쪽 팔이 없지만 검술 실력은 도리어 늘어서 그리고 새로운 고유 능력을 깨운 모양이라 세간에서는 다음 영웅으로 스칼렛이 지목되는 모양이다·
[유력한 영웅 후보 스칼렛 유디트· 과연 다음 영웅도 유디트 가문에서 배출할까─ ]
덕분에 요즘 나오는 신문 기사들은 헤들아니이 죄다 이 모양이다· 뭐 나쁠 것 없는 이야기니까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겠지·
나는 외투를 걸쳐입고 총장실을 나섰다·
쌀쌀하지만 좋은 날이다· 기온은 낮지만 바람이 크게 불지 않아 상관 없었고 하늘에서는 이따금씩 새하얀 눈송이가 떨어져 내렸다·
지극히 아름다운 날이었다·
우우우웅─!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트리비아가 크게 진동한다· 보나마나 베키의 재촉일 것이다· 그녀는 이렇듯 비서로서의 업무에 열심이다·
어쨌든 오늘은 1년만에 모두가 만나 식사를 하기로 약속이 잡혀있다·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마탑의 꼭대기 층·
누군가에게는 드나드는 것조차 꿈으로 이야기되는 선망의 공간에 나는 들어선다·
루이스 아이반 트릭시 코네트 마이에브 바이올렛 베키···· 반가운 얼굴들이 굉장히 많았다·
“야! 플란! 얼른 와!”
베키가 손을 번쩍 들고서 소리쳤다· 보아하니 내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케이크에 손을 대지 못한 판국이었다·
내가 케이크 앞에 서자 베키가 외쳤다·
“자자~ 오늘은! 새 총장님이 부임하신지 1주년입니다! 다들 드세요!”
바로 그때였다·
세상이 흑백으로 물든다·
세상의 시간이 정지한다·
멈춘 세상속에서 갑자기 어떤 존재가 불현듯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의외로 익숙한 녀석이었다·
“플란·”
정장을 입었지만 얼굴이 비어있는 자·
“너는····”
“예· 맞습니다· 정말 오랜만이군요·”
나를 이 세계로 보냈던 그 자였다·
녀석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감탄했고 또 감동받았습니다· 당신은 진정 이 세계에서도 본인의 능력을 증명해내셨군요!”
내가 무언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는 바쁘게 말을 이었다· 이전의 차분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고 그는 굉장히 흥분해있었다·
“소원 대가로 소원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어떤 소원이든 괜찮습니다! 세계를 창조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
나는 눈을 두어번 깜빡이며 생각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을 되짚었다·
모두가 웃음기를 가득 품고 있었으니 평온했다· 그들의 미소 하나하나가 눈꽃처럼 내려앉는다·
“흐음·”
어느때보다도 행복해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저들이 행복했으면 한다·”
“정말 그게 끝인가요?”
“그래·”
“접수 완료했습니다· 하지만····”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세상에 색감이 돌아온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향한다·
그들이 동시에 외친다·
“플란─!”
그리고 어느샌가 모습을 감춘 녀석의 속삭임이 들렸다·
“···그 소원은 이미 이뤄졌습니다·”
이것은 나의 짧은 증명을 담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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