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
당혹감 묻은 시선으로 나는 상황을 살폈다·
깔끔한 코튼 향이 코를 간질인다·
말 그대로 천사 비스무리한 것· 주변을 화사하게 밝히는 하얀 소녀가 내 품에 안겨있었다·
우선 곧바로 밀어냈다· 누가 보면 오랜 연인의 재회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 광경이었으니까·
그녀는 내게 관심이 굉장히 많은 듯 했다· 그녀가 내 제복을 살피더니 눈을 휘둥그레떴다·
“플란 경 플란 경도 마법학부십니까?”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조그만 입이 벌어진다·
“어···· 아 그! 어어···!”
그러나 입을 뻐끔거릴뿐 성공적으로 단어를 내뱉지는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혀라도 씹을까봐 나는 한 마디 덧붙였다·
“차분하게·”
“아 예! 가 감사합니다!”
하아 후우 소녀가 심호흡을 하더니 주먹을 불끈 쥐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플란 경! 방금 하신 말씀 정말입니까? 왜입니까? 검은 놓으신겁니까?”
순식간에 질문 세 개가 나를 향한다·
아무래도 몸의 주인과 원래 알던 사이인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인물은 그녀가 처음이다·
입고있는 아카데미 제복은 마법학부의 것이다· 명찰에는 유시아라고 적혀있는 세글자가 고작·
‘평민인가·’
소녀의 외양은 흠 잡을 곳 없이 고결하지만 성이 없는 것으로 보아 평민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것이다·
유시아가 내 손을 붙잡고 마구 흔든다·
“아아 이유까지는 굳이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반가워서 그랬습니다~ 저도 이제 마법학부생입니다!”
“마법학부생?”
“예· 편입했으니 우선은 그렇습니다!”
바이올렛 교수가 편입생과 관련하여 나눌 말이 있다며 레너드 교수를 데리고 나갔던 일이 기억났다·
그 편입생이 눈 앞의 소녀인 모양이다·
“플란 경! 아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이야기 나누시겠습니까? 세워두는 것 같아 죄송해서!”
“바쁘다·”
“아~ 그럼 오늘은 간단하게 인사만 나누겠습니다· 혹시 예전 일은 기억하십니까?”
여전히 황금같은 눈동자를 반짝이는 유시아· 나는 그녀가 이쪽을 향해 순수한 호의를 보이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러나 이 몸에 무슨 일이 생겼고 무슨 사정이 있는지를 그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대충 말을 바꾸었다·
“기억이 잘 안 나는군·”
“······아 앗!”
유시아가 화들짝 놀라하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녀와 내 눈이 마주쳤다· 황금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거울처럼 내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중요한 일을 잊어버렸다는 원망 섭섭함···· 그러한 감정을 느껴 풀죽어할 줄 알았는데·
“플란 경!”
와락 그녀는 오히려 다시 한 번 나를 끌어안았다·
“죄송합니다! 저때문에 크게 다치셔서···· 전부 제 탓입니다! 기억을 되찾으시도록 제가 물심양면으로 돕겠습니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더욱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대하고있다·
과거 원래 몸의 주인에게 큰 은혜를 입은 적이 있다는 것인가· 나는 차분하게 되물었다·
“······나를 도와?”
“예! 제가 보좌하겠습니다!”
유시아가 자신있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부피감 있는 가슴이 주먹과 닿을때마다 팡 팡 하는 소리를 냈다·
“안 그래도 마법학부에 마수와 계약한 가문이 있다는 이야기가 돌아 제가 편입한 것입니다! 이제는 제가 플란 경을 지키겠습니다!”
“조용·”
“으븝?!”
그 이야기를 들은 직후 나도 모르게 유시아의 입술을 검지로 꾸욱 눌렀다· 동시에 주변을 살핀다·
아무리 맥락을 모르는 나라도 이러한 이야기가 결코 남들 듣는 앞에서 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다행스럽게도 주변은 한적했다· 내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마수?”
“예· 10년 전에 날뛰었던 마수들 말입니다· 그들과 영혼을 매개삼아 계약한 가문이 있다고해서····”
직후 유시아가 평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일개 평민이 고민할만한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편입하는 과정에서 신분을 숨겼으리라· 낮게 잡아 귀족이고 높게 잡으면 그 이상일 터·
나는 은근히 답을 유도했다·
“함부로 할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 본인 입장을 생각해야지·”
그러나 유시아는 보석같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를 안은 팔에 더더욱 힘을 줄 뿐이다·
“아~ 괜찮습니다! 황실의 서열 경쟁에는 제가 관심이 없습니다· 애초에 10년이나 누워있었고 언니들께서 알아서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황실의 서열경쟁? 사실상 본인이 황녀라는 이야기 아닌가· 유시아는 여전히 밝은 태도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플란 경과 나누는 이야기이니 괜찮습니다! 플란 경에게만큼은 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단 둘이서 상세하게 이야기하지·”
“좋습니다~ 플란 경과 둘이라니! 좋습니다!”
그때였다·
툭 하고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유시아의 바로 옆이었다·
“어···· 아·”
지면에 떨어진 것은 베키의 트리비아였다·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는 크게 당황한 듯 보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그 증거였다·
나는 유시아를 밀어낸 다음 바닥에 떨어져 펼쳐진 베키의 트리비아를 눈대중으로 살폈다·
각기 회로를 달리한 매직 미사일의 술식이 메모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있는 채다· 베키가 왜 나를 찾았는지 곧바로 이해가 되었다·
실습 평가때 내가 활용했던 무속성 마법·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모양이다만·
어색한 정적을 유시아가 깼다·
“누구십니까? 아 플란 경 친구분이십니까?”
“플란 경···?”
베키는 그 호칭을 읊조리며 내쪽을 바라보았다· 사실 내쪽에서도 뭐라고 해줄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플란 경 친구분이시라면 저도 반갑습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어···· 아니 아뇨· 아 그게····”
베키는 고장난 것처럼 막 버벅거리더니 지면에 떨어진 트리비아를 잽싸게 주워들었다·
“바 바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갑자기 웬 구십도 인사를 하더니 베키는 그 짧은 말을 끝으로 부리나케 자리를 떠버렸다·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어쩐지 초라하다· 유난히 작아보여 조금 쓸쓸해보이기도 했다·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그 술식 그렇게 그리면 안 되는데·
◈
표기상으로는 ‘던전’이다만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대책없이 학생들을 각종 미지의 위험이 도사리는 던전으로 내몰지는 않는다·
보다 효율적인 훈련을 위해 메르헨 아카데미에는 그 수를 셀 수 없을정도로 다양한 시설을 보유하고 있고 던전을 훌륭하게 모방해낸 시설 역시 존재한다·
‘마법 미궁·’ 오늘 우리가 탐험 과제를 수행하게될 아카데미 시설의 명칭이다·
현재 집합한 장소는 마법 미궁의 입구로 커다랗고 검은 문 하나가 지면에 붙어있었다·
지하로 들어간다는건가· 인공적으로 조성했다는 것이 믿기 힘들정도로 풍겨져나오는 기운이 불길했다·
“어쩌지···· 막상 들어가려니까 무섭네·”
“마수들 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거잖아· 겁먹지마·”
“스크롤 빠진거 없지?”
주변 학생들도 꽤나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겠지·
그러나 그 두려움을 웃돌정도로 화제인 이야기가 있었으니·
“맞다· 아고라 보드 봤어?”
“당연히 봤지· 야 안 본 애가 없을걸·”
“난 설마 트릭시가 질까했는데···· 역시 풀어버리네·”
“트릭시네 조는 부럽네· 같은 조원이면 얼마나 든든하겠어·”
트릭시가 내기를 하자고 했던 기한의 마지막날인 어젯밤 결국 그녀는 문제를 풀어냈다·
[ ▶ 덕분에 풀었어용! ]
[ ▶ 더 배우고 싶어용 앙앙 ㅎㅅㅎ ]
덕분에 어젯밤부터 트리비아에 연락이 쇄도하는 중이다· 또한 동시에 트릭시가 고객이라는 것 역시 확실시 되었다·
나는 괜히 고개를 돌려서 트릭시를 한 번 쳐다보았다·
더없이 싸늘한 눈동자와 무표정· 그녀는 얼어붙은 대지 위를 거니는 고독한 늑대같다·
보고나니 트리비아에서의 말투가 더더욱 적응되지 않는다· 어느쪽이 본모습인건지·
[ ▶ 요청하신 책도 꼭 보내드릴게용! ]
가르침의 대가로는 『 치유 마법은 어떻게 논란의 중심에 섰는가 』를 요구했다·
그녀가 승낙했으니 전부터 원해왔던 마법 서적도 손에 넣게 될 예정이다· 벌써부터 마음 한 켠이 흡족했다·
“결원은 없겠죠·”
그러던 어느 순간 바이올렛이 나타났다·
그녀가 하품을 하면서 학생들을 살피기 시작하자 학생들의 수군거림은 금세 멎어들었다·
“예정대로 오늘은 탐험 평가를 실시할거에요· 총 15개의 조가 있지만 체크포인트는 10개 뿐· 뭐 다들 아는 내용이죠?”
설명을 하다말고 바이올렛은 자신의 눈두덩이를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많이 피로한 모양이다·
“스크롤은 말했듯 중급 스크롤까지만 지참 가능하고 우선 조끼리 모여보세요·”
내가 움직이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트릭시와 마틴이 이쪽으로 왔다·
“아고라 보드 문제 푼거 봤어· 역시 대단하네~ 나 친구들이랑 하루종일 네 이야기만 했잖아·”
마틴이 쉴새없이 중얼대지만 트릭시의 시선은 나를 향해있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미묘한 시선이 내게 닿는다·
“자 순서대로 진입준비·”
바이올렛이 염동을 활용해서 문을 열자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 쪽 벽면은 횃불로 밝혀져있는 모습이 꼭 이전 세계의 던전 생김새와도 제법 흡사하다· 굳이 반갑다면 반가운 부분이다·
내려가다보니 무려 15개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각 조가 자신의 조에 맞는 갈래로 흩어지고 우리 조는 ‘11’이라고 적혀있는 쪽으로 향한다·
내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하자 트릭시와 마틴이 뒤로 따라붙었다·
정확히는 내 뒤로 따라붙는 트릭시에게 또 마틴이 따라붙은 행색이다·
“이번에 네가 아고라보드 푼거 엄청 화제야· 몇몇 길드에서 너 데려가려고 한다는 소문이 벌써 돌던데?”
“아니·”
“맞다· 밥 약속 있어? 탐험 평가는 활동량 많잖아· 끝나면 배고플텐데 같이 밥먹자·”
“아니·”
“단 둘이서 먹기 좀 그래? 그럼 내 친구들 조금 끼워서 같이 먹을까? 애들 다 사교성 좋아·”
하아 신경질적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트릭시가 돌아섰다·이 녀석들을 데리고가야하는 입장인 나도 자연스레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너·”
서릿발처럼 차고 날카로운 눈빛· 그 한기에 마틴이 눈에 띄게 당황스러워했다·
“응? 왜?”
화륵 트릭시의 손바닥 위로 푸른 화염이 피어올랐다·
엄청난 열기를 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늘해보이는 그 화염은 제 주인의 모습을 제법 닮았다·
“좀···· 꺼져·”
“·······”
마틴이 생각하는 11조의 최고 전력은 트릭시 폰 프리츠일 것이다·
트릭시의 푸른 화염을 감당해낼 자신은 역시 없었던건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틴의 입이 꽉 다물어졌다·
마틴이 떠들지 않자 남는 것은 정적이었다· 우리는 비로소 조용한 환경에서 걷게 되었다·
통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길었는데 별안간 트릭시가 내쪽으로 슬그머니 붙었다·
프리츠 가문의 문양은 재스민이었던가· 실제로 그녀가 가까워지자 재스민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흠흠·”
나와 나란히 걷게된 트릭시가 헛기침을 했다·
그러더니 내게만 들릴 정도로 조그만 목소리를 냈다·
“당신·”
그 서늘한 음색으로부터 나는 크나큰 위화감을 받았다·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너’라는 호칭이 ‘당신’으로 뒤바뀌어있었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도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인가· 채 추측하기도 전에 트릭시가 말을 덧붙였다·
“······스카우터· 맞죠·”
스카우터·
나는 스카우터라는 단어를 속으로 세 번 정도 되뇌었다·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스카우터라면 학생 신분으로 위장하여 활동하는 길드의 능력자들이지 않나·
“아니다·”
“다 알아요·”
아니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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