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
“······”
트릭시가 아까부터 줄곧 미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다·
나를 스카우터라고 거의 확신하는 단계에 이른 것 같다만 지금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 뿐이었다·
“우선 탐험 평가에 집중하지·”
평가 도중에는 평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트릭시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들린 모양이다·
예를들면 이번 탐험 평가를 통해 증명하라는 식의 의미 말이다·
“좋아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트릭시에게 추가로 자세히 덧붙여서 설명하려다 역시 그만두었다·
애초에 스카우터가 아니라고 말해서 풀릴 오해도 아닌 것 같고 트릭시가 큰 의지를 보일 수록 탐험 평가가 수월해지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해· 우회 없이 정면 돌파하는 전략으로 가는거지? 맞냐?”
마틴이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트릭시가 내 쪽으로 붙어서인지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새 묘하게 날카로워져있었다·
“응·”
트릭시가 짧고 차갑게 대답했다·
“화염 내성 없잖아· 쟤네·”
그녀는 굳이 길을 우회할 생각이 없었다· 본인을 향한 확신이 있으니·
트릭시가 턱으로 저편의 마수를 가리켰다· 반투명하게 떠다니는 유령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바 레이스라는 녀석들이다·
이 세계에서도 유령은 퇴마 속성과 결이 비슷한 화염 원소에 약하다· 트릭시의 자기확신은 그로부터 기인하기도 했다·
“레이스는 문제 없어· 가는 방향만 맞으면 돼·”
“아 그거라면 걱정마·”
마틴이 씨익 웃으며 품속으로부터 스크롤 하나를 꺼내들었다·
“길 잃을 염려는 없어· 이거 위치 스크롤이거든· 구하느라 애 좀 먹었지·”
마틴이 그걸 내게 휙 던졌다·
“길 확인은 네가 해라· 어차피 업혀가는 입장이라 딱히 할 것도 없잖냐·”
차라리 잘 됐다· 마틴에게 길 안내를 맡기기는 이쪽에서도 못미더웠으니·
마틴은 칭찬을 기대하는 표정으로 트릭시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한글자 내뱉는 것이 고작이었다·
“가·”
“응?”
“가·”
“아 그래·”
대충 앞장서라는 트릭시의 말뜻을 뒤늦게 이해한 마틴이 몸에 바람원소를 휘감고서 내달렸다·
평화를 방해당한 레이스들이 기세좋게 그의 뒤를 쫓는다·
그러나 트릭시의 푸른 화염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탁·
트릭시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키에엑 소리를 내면서 레이스들이 푸른 화염에 뒤덮여 불타오른다·
훌륭하지만 레이스의 수가 엄청나다는 것이 문제였다·
“우왓!”
문득 뒤를 돌아본 마틴은 엄청난 수의 레이스를 확인하고서 화들짝 놀랐다·
트릭시는 계속해서 그것들을 불태웠지만 도무지 수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조용히 마나를 끌어모았다·
마틴처럼 직접 뛰어 미끼 역할을 할 필요도 트릭시처럼 원소 마법을 직접 발현시킬 필요도 없다·
보조로 충분하다·
나는 트릭시가 발현하는 화염의 출력을 조정했다· 보조를 받은 원소의 성능이 증폭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덩어리에 불과했던 화염이 산불처럼 번지고 레이스의 무리는 이내 싸그리 궤멸되었다·
“······”
트릭시가 조금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화염을 발현한 장본인이니 눈치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본인은 분명 덩어리 화력의 화염밖에 출력하지 않았는데 다른 마력이 개입하여 그 출력값을 증폭시켰으니 말이다·
“한 번에 다 태워버리는 편이 편하지·”
“감점인가요·”
그녀는 그저 그렇게 물었다· 어째 평가가 진행되면 될수록 나를 향한 오해가 커지는 것 같다만·
“평가가 끝나면 이야기하지·”
해명은 평가가 끝난 후 천천히 해줘도 늦지 않다·
지도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마틴의 위치 스크롤을 살피며 우리는 나아갔다·
그 뒤로도 두어번정도 레이스의 무리를 마주쳤으나 트릭시의 화염을 보조하여 싸그리 청소해버렸다·
“후~ 다 치웠네! 플란 얼마나 더 가야하냐?”
마틴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쳐내며 말했다·
그는 트릭시의 화염에 휘말려서 완전히 숯검댕이가 되어있었는데 정작 본인은 그 꼴을 모르는 듯 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복귀하면 최고점은 확정이네· 우리보다 마수 많이 처치한 조는 하나도 없을걸· 생각보다 너무 쉬운데?”
숯검댕이가 흡족한 얼굴로 위치 스크롤을 살피는 그 순간· 나는 더 없이 불길하게 격동하는 기운을 느꼈다·
시선이 본능적으로 근원지를 쫓는다·
트릭시의 발 밑이 문제다· 아니 우리가 앞으로 가려는 길 전체가 문제였다·
무너진다· 반드시· 지반이 통째로 붕괴하는 수준일 것이다·
당장 떠오르는 활용은 염동·
염동을 사용해서 있는 힘껏 트릭시를 끌어당겼다·
“엇 읏?”
당겨진 트릭시가 내 품에 딱 달라붙었다· 밀치면 떨어져 죽을 테니 당기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당신· 뭐 뭐해· 뭐해요·”
트릭시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번졌다· 내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쿠구구구ㅡ!
그러나 직후 트릭시가 방금까지 밟고있었던 지면이 통째로 가라앉았다· 눈대중으로는 그 깊이를 짐작할 수가 없을 정도다·
커다란 정적이 우리를 맞이했다·
잠시후 침묵을 가장 먼저 깬 것은 마틴이었다·
“함정치고는 너무 심한데 이거 떨어졌으면····”
최소 사망이었겠지·
품에 안겨있던 트릭시가 눈동자를 흘끗 굴려서 아래를 바라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내게서 벗어났다·
“이상해· 인위적이지 않아·”
트릭시도 한 마디 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방금 일어난 지반 붕괴의 진정한 문제점은 인위적인 요소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야···· 뭔가 들리는데? 이거 나만 들리냐?”
이번만큼은 허세를 부리기 힘든지 마틴의 목소리가 떨렸다· 까마득한 낭떠러지로부터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키이이이이익ㅡ!
우리는 낭떠러지 밑을 바라보았다· 무언가가 미친듯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한 스켈레톤의 상반신이라는 것을 눈치채기까지는 채 2초도 걸리지 않았다·
스켈레톤은 본래 성대가 없기에 어떠한 소리도 낼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소리를 낸다면 그 자체가 상위급 개체라는 방증이다·
“야 야 야· 이거· 이거 뭐냐? 저거 우리 쪽으로 오는데? 어떠 어떻게 해야되냐 이거?”
마틴이 고장난 듯 버벅거렸다·
당황스럽지만 침착하려했다· 저 거체가 전부 올라오고나면 주변 일대를 완전히 다 가라앉힐 것이다·
올라오기 전에 처리해야했다· 반드시·
트릭시가 푸른 화염으로 주변 벽면에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벽이 무너져내리면 무수히 많은 흙과 돌이 거대 스켈레톤을 뒤덮었으나 그 뿐이다· 놈의 상승 자체를 저지하지는 못했다·
“안 통해· 너무 커·”
“스크롤 전부 꺼내·”
그러자 마틴이 스크롤 두개를 다급하게 내놓았다· 트릭시는 자기 확신때문인지 챙겨온 스크롤이 없었다·
『 긴급 탈출 』『 석화 』·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석화 스크롤을 집었다·
효율에 극도로 치중한다면 충분히 타개 가능하다·
스크롤을 펼쳤다·
거대 스켈레톤의 흰 표면이 회색빛으로 슬그머니 물들지만 그 뿐이다· 움직임을 더디게 만들 뿐 완전히 석화시키지는 못했다·
‘개조·’
스크롤에 담겨있던 술식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온갖 마법 적용 기하학적인 무늬들이 뇌리를 스친다·
석화의 ‘범위’를 축소시키는 대신 그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보조의 범위를 넘어서서 개조에 가까웠다·
콰드득 스켈레톤의 거대한 팔이 회색빛으로 굳는다·
키에에에에에엑ㅡ!
얼굴 부분이 석화되지 않아 괴상한 소리를 냈지만 팔이 굳어버린 녀석이 이 절벽을 올라올 방법은 전무하다·
녀석은 괴성을 지르며 그대로 떨어져버렸다·
“······와· 스크롤 성능 제대로네·”
마틴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소리를 질렀다·
“생각해보니까 이상하잖아! 마법 미궁 내부에서 땅이 무너진다는 것도 저렇게 큰 스켈레톤이 있다는 것도 들어본 적이 없어!”
확실히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사전조사가 부족했다’ 따위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아까부터 주변에서 인위적인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불길한 기운만이 가득했다·
마틴의 분노가 난데없이 나를 향했다·
“너 길 안내 똑바로 한거 맞냐? 잘못온거 아니야?”
“이 쪽이 맞다·”
확실한 대답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마틴은 스크롤을 휙 낚아채서 직접 살폈다·
그러나 말했듯 길 안내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도움이 안 되네···· 아까부터 트릭시는 토벌하고 나는 유인하고· 이것저것 다 하는데 편하게 업혀가니까 좋냐?”
“너·”
그러나 트릭시가 마틴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숨 쉬지마· 입 다물어·”
“아니 해도해도 너무하잖아! 방금도 내 스크롤 없었으면 진짜 큰일날 뻔 했는데····”
화륵 트릭시의 팔이 푸른 화염에 휘감겼다· 그제서야 마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다른 길로 가·”
트릭시의 침착한 반응에 마틴은 무어라 중얼거리며 그렇게했다·
왔던길을 되돌아가는데 트릭시가 또 한 번 내쪽으로 슬그머니 붙었다·
그리고 한 마디·
“잘 봤어요·”
◈
뒤따라 걸으며 트릭시는 눈 앞의 사내를 살폈다·
소년의 등은 듬직할 정도로 넓지는 못하다· 허나 지금은 제법 넓어보였다·
걷고 또 걸으며 방금까지 있었던 일을 되짚었다·
그는 트릭시의 푸른 화염을 훌륭하게 보조했다· 말이 보조지 사실상 간섭하여 자기가 직접 다룬 수준이다·
같은 학생이 그랬더라면 마땅히 화를 낼 일이지만····
‘같은 학생이 아니니까·’
그래 플란이 같은 학생이 아니라 스카우터라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평민이라는 것도 실력을 숨기는 것도· 그 모든 퍼즐 조각이 스카우터라는 그림으로 맞아 떨어진다·
무엇보다도 아까 보여주었던 석화 스크롤의 강화는 결정적이었다·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 침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골라내고 극한까지 효과를 끌어올리는 것·
······그는 이미 학생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저 정도는 하라는거겠지·’
분명 그는 힘을 아끼고있다·
미개한 마틴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트릭시는 충분히 그것을 눈치챘다· 아마 트릭시에게 은근슬쩍 힌트를 제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는 보여야 네가 원하는 길드에 가입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 가깝겠지· 그렇게 이야기해오는 듯 했다·
‘자신있어·’
마도 길드로 위명을 떨치는 신비의 협곡은 어릴적부터 그녀가 꿈꾸었던 길드이며 그녀의 어머니가 몸담았던 길드이기도 했다·
그녀는 이제 고작 1학년이고 스스로의 재능이 출중하다는 것 역시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인정받아 반드시 가입할 것이다·
“뭐해? 가만히 서서·”
갑자기 마틴이 트릭시에게 말을 붙였다·
저도 모르는 새에 멈춰 서있었던 것이다· 트릭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입 열지마·”
트릭시는 앞서 걷는 플란의 뒤를 쫓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나서 트리비아를 펼쳤다·
[ ▶ 저 평가받는 중이에용! ]
[ ▶ 힘드러용···· 아앙···· ㅠㅅㅠ ]
이 연락도 슬슬 습관이 될 것 같았다·
쿠구구구구ㅡ!
그런데 연락을 보낸 직후· 양 옆의 벽면이 모조리 붕괴하기 시작했다·
양 옆의 벽이 허물어지자 자연스레 다른 통로를 걷던 다른 조의 모습들이 차례차례 드러났다·
우선은 두 조 정도였다·
“어 야· 플란····”
왼쪽 통로에는 베키의 5조·
“흐음·”
그리고 오른쪽 통로에는 헤일리의 1조가 있었다·
두 소녀의 시선이 동시에 플란에게 꽂히는 모습을 지켜보며 트릭시는 조용히 생각했다·
‘······이 녀석들도 눈치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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