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
플란의 행동에는 언제나 ‘낭비’라는 것이 없다·
아마 생각이나 사고과정에도 없을 것이다· 두려움 공포 긴장···· 인간의 행동 효율을 급격히 떨어트리는 요소들이 소년에게는 없다·
적어도 베키가 느끼기에는 그러했다·
위기 상황조차 위기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결코 오만이 아니었다· 플란의 행동엔 늘 그럴만한 근거가 따라붙었으니·
······그래 아고라 보드 앞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특히 이 부분에 주목해라· 네 수준에서는····”
하나 둘· 베키가 엉망으로 작성했던 술식들이 각기 모습을 달리하며 정답으로 변모해간다·
베키가 이해하지 못했던 어려운 난제들은 플란의 손길을 거치며 한낱 쉬운 난이도로 바뀌어간다·
경이로울 정도로 대단한 일이나···· 베키는 그 술식을 여전히 모른다·
설명이 마무리되는 순간까지도 소녀는 소년의 옆모습만 바라보았을 뿐이다·
은은하게 빛나는 그 옆모습이 조금 묘했다·
마법사의 표본·
흔들림 없이 직관을 관철하며 논리를 탐구하고 진리의 길이 눈 앞에 있다면 온 몸이 불타오르더라도 직행하는 독종·
스스로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며 누군가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력으로 고유한 영역을 개척해 내는 괴짜·
“······”
그 모든 것이 담긴 소년의 옆모습은 유려하다·
동시에 베키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바로 옆에 있는 플란이 너무나도 멀게 느껴진 탓이었다·
그 조각같은 옆모습에 소녀의 손바닥이 닿으려는 찰나·
“이해했나·”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그 그게····”
손을 주머니로 휙 집어넣은 뒤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하는 대상을 앞두고 베키는 여전히 멍했다·
“미안····”
“도대체 뭐가 어렵다는거지·”
한숨을 푹 내쉰 후 플란이 베키의 손목을 붙잡았다·
“으···· 으엣?”
베키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러나 플란의 시선은 여전히 트리비아의 메모 페이지에 머물러 있었다·
“이해가 안 가면 직접 그려보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플란이 손을 움직이자 자연스레 베키의 손도 움직인다· 이번에는 베키도 술식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우선 틀을 잡고·”
베키의 손끝을 따라 그어진 회로들이 푸른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동자도 자연스레 빛난다·
“그 다음은 골자를 추린다·”
“와아아····”
따분하던 술식이 이렇게 그려질 수도 있나· 메모지 위로 밤하늘을 수놓는 듯한 풍경에 베키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세부 작업에서는 밀도를 신경써야겠지·”
그때쯤 베키는 플란의 가르침을 이해했다·
동시에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자신의 학구열을 느꼈다·
“불가능은···· 없다····”
베키는 멍하니 플란의 말을 되뇌었다·
북받치기 시작한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다·
플란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입술을 달싹이려는 그 순간 둘은 하얀 빛무리에 휩싸였다·
저 멀리 암석에 걸려있던 헤일리 역시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베키는 그제서야 헤일리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기억해냈다·
‘괘씸해 죽겠네·’
플란은 베키에게 있어 그저 고마운 존재였다· 헤일리는 도대체 뭐가 문제라서 자꾸 사사건건 비아냥대는걸까·
베키는 손에 무속성 구체 하나를 생성해냈다·
방금 배운대로 형태를 포기하고 출력을 최대로 키워서 사출하면····
빠악ㅡ!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이마를 직격당한 헤일리의 고개가 크게 꺾였다·
“흐엑?!”
······어쩌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강하게 맞춰버렸다·
◈
송환된 직후 주변을 살폈다·
“이번 평가 일단 보류래·”
“마틴이 자기말로는 스켈레톤을 봤다던데·”
“스켈레톤? 또 여자 꼬시려고 허세부리네· 그건 너무 급이 다르잖아· 인조 미궁에서 그게 왜 나와·”
바이올렛의 말마따나 나와 베키가 마지막 순서였는지 근처에는 이미 웅성거리는 학생들이 가득했다·
“꺄아아아아아악ㅡ!”
헤일리의 비명소리가 날카롭게 울려퍼졌다·
“내 얼굴 내 얼굴이 왜 이래ㅡ!”
혹이 잔뜩 부풀어오른 자신의 얼굴을 양 손으로 다급하게 가리고는 헤일리가 주저앉았다·
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사이 바이올렛은 바쁘게 결원을 세었다·
인위적이지 않은 실제 마수와 변수가 등장했다만 다행히 사고도 결원도 없었다·
내부 관측이 불안정하기도 했고 결국 탐험 평가의 점수 산정은 보류되었다·
괜히 아티팩트만 아깝게 되었나· 한숨을 푹 내쉬는데 돌연 베키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저기 야· 플란·”
“뭐지·”
“그···· 고마워·”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사실 감사 인사를 받을 입장도 아니었다·
온전히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그런짓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광범위 마법이었기에 베키도 살았을 뿐이니까·
그러나 베키는 아직 할 말이 남은 모양이었다· 이쪽으로 자신의 트리비아를 내밀었다·
“설명은 충분히 해줬을 텐데·”
“아니 그 그거 말고····”
베키의 시선이 슬그머니 사선으로 향했다·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길래 뜸을 들이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트리비아 코드· 나랑도 교환할래?”
“코드?”
“왜· 시 싫어? 아니···· 싫음 말고· 그냥 한 번씩 연락하려고 했지· 서로 시험 정보같은것도 공유하고 좋잖아·”
순수히 궁금해서 물었을 뿐이지만 베키는 다급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우리 친구···· 친구 아니야? 야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친구끼리는 워 원래 교환하는거야· 이게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는건지· 나는 그녀의 말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했다·
“나와 주기적으로 연락하고싶다· 그런거로군·”
“그런···· 그런거지· 응· 친구잖아·”
“우리가 친구는 아니지·”
베키의 말을 가볍게 잘라냈다·
우선 첫째로 그녀와 나에게는 나이차이가 존재하고 두 번째로 나는 친구를 만들만한 성격이 아니다·
“······엥?”
베키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가득 물든다·
“응? 어라?”
베키가 고개를 양 옆으로 한 번씩 기울였다· 그리고 눈동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고민하더니·
“어?!”
갑자기 그 조그만 얼굴이 제 머리카락만큼 붉어졌다·
“아 그러면···· 아 그 그런가? 우리 손도 잡았으니까? 아~ 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 그럼· 다음에 나랑 같이 향수 사러 갈래?”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하길래 어쩔 수 없이 베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관계라 그런 관계를 하나 알고있기는 했다·
“너는 나와 연락하고싶나·”
“으응?”
베키는 여전히 나를 마주보지 못했다·
한참이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싶으니까 코드 교환하자고 하지·”
“좋다·”
그녀의 학구열을 높게 사주기로 했다·
나는 트리비아의 메모 페이지를 하나 뜯어냈다· 염동을 활용해 그것을 허공에 걸어두고서 메모를 시작했다·
『 치유 마법은 어떻게 논란의 중심에 섰는가· 』
그 서적이 곧 내 손에 들어온다·
마침 누군가의 보조가 있다면 그것을 낱낱이 파헤치는 연구가 훨씬 수월할 것이라 생각하던 참이었다·
『 마법과 치유 』 『 마법치유학 』 『 치유윤리법총론 』 『 치유윤리학 』···· 전부 메모하고 나니 대충 8권 정도였다· 다행히 이 정도면 적다·
메모를 마친 후 그것을 베키에게 건넸다· 그녀가 동그란 눈을 끔뻑였다·
“이게 뭐야?”
“위 서적들의 핵심 내용을 요약해보도록·”
“요약?”
베키의 고개가 기울어진다·
“어···· 내 공부 생각해주는건 고마운데· 갑자기?”
“나와 연락하고 싶다지 않았나·”
갑자기는 뭐가 갑자기인가·
하루에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관계· 조수 관계보다 더 들어맞는 관계는 없을 터·
“아니···· 그건 맞는데····”
베키가 메모와 내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이거···· 내용이 너무 많지 않아? 핵심을 추려내려면 결국 모든 내용을 살펴야한다는 소리잖아·”
“애초에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베키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의존하겠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그 자체만으로도 이득이 되기에 맡기는 것일 뿐·
그저 그 뿐이다·
“만약 한다면 언제까지···?”
“내일·”
“내일?!”
베키가 놀라서 펄쩍 뛰었다·
이 정도도 많이 양보한 것이다· 당장 오늘밤 트릭시의 서적이 손에 들어오니·
“싫으면 됐다·”
“아니 아니야! 하면 되잖아!”
메모지를 다시 집어가려는데 베키가 메모지를 쥔 손을 슬그머니 내뺀다· 강제로 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다만·
“야 플란····”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인채로 베키가 말을 이었다·
“이거 하면 연락도하고 향수도 사러 가는거다···?”
뭐 그 정도 보상은 해줄 수 있겠지·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하이씨····”
베키는 울먹거리면서 도서관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름 영양가가 있어보이는 도서들만 추렸다· 그렇기에 이 과정은 분명 베키에게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감사 인사는 애초에 바라지도 않는다·
머지않아 나도 단련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늦은 밤에도 기숙사 옆에 위치한 프리츠 가문의 개인 단련실의 불은 밝다·
트릭시는 방금 막 발레를 마친 참이다·
평소라면 마치자마자 욕조에 몸을 뉘였을 테지만 현재 그녀는 트리비아를 살피는데 여념이 없다·
[ ▶ 아고라 보드에 다음 출제할 문제에용· ]
[ ▶ 한 번만 봐주세용! ]
[ ▷ 술식이 적힌 페이지를 가지고있나· ]
[ ▶ 넹! ㅎㅅㅎ ]
[ ▷ 찢어서 버려라· ]
다른 누군가가 이랬더라면 불같이 화를 냈겠지만 가르침씨의 말에 트릭시는 곧바로 그렇게했다·
참고로 ‘가르침씨’는 가르침 경매를 향한 애칭이다· 이번에 트릭시가 멋대로 붙였다·
[ ▶ 저녁은 드셨나용? ]
[ ▷ 이것도 가르침인가· ]
[ ▶ 금화 한 개 드릴게용 !ㅅ! ]
금화라면 어차피 트릭시에게 차고 넘치는 것이다·
느릿느릿하게 오는 답장에 칼같이 답장을 반복하던 와중 가르침씨가 트릭시에게 물었다·
[ ▷ 도서는 언제쯤 보내는거지· ]
[ ▶ 지금 보낼게용 ]
트릭시는 답장을 보낸 후 곧바로 『 치유 마법은 어떻게 논란의 중심에 섰는가 』의 상태를 살폈다·
새 책 그대로인 상태로 매우 깔끔하고 리본으로 예쁘게 포장까지 해둔 상태다· 분명 마음에 드리라·
“······흠·”
무슨 충동인지 트릭시는 갑자기 홀린 듯 화염으로 조그만 개미 몇 마리를 만들어냈다·
화염 원소를 다루는 그녀의 능력은 출중하고 화염을 ‘소환’으로 응용시키는 것 역시 어렵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개미 다섯 마리가 페이지 곳곳으로 숨어든다· 이것들은 트릭시에게 실시간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보고해줄 것이다·
가르침씨는 과연 누구일지·
트릭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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