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
“흐음?”
세피아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진다· 그녀는 상황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테이블 위로 자신의 명함을 한 개 더 올려놓았다·
“제 명함 제대로 보신 거 맞죠?”
[ 세피아 위스퍼 – 메르헨일보 마법부 부장 ]
“봤습니다·”
“응? 놀라질 않으시네요? 겁이라도 잔뜩 먹을 줄 알았는데!”
나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가 물음표로 가득 차있었다·
“저 몰라요? 제 이름 들어 보신 적 없으세요? 아니 하다못해 마법학부 기자팀에 관해서라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이름을 들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설령 이미 알던 인물이었어도 내가 놀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모릅니다·”
그 짧은 대답을 끝으로 내가 입을 다물자 그녀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엑? 다음주부터 아카데미 신문이 발간된다구요! 그 기자팀 부장이 당신의 위장 신분을 눈치채고 있다니까요?”
“예·”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이럴 줄 알았다는 건지······ 어느 쪽이에요? 난 모르겠네·”
세피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테이블 위로 명함이 아닌 다른 것을 올렸다· 웬 신문이었다·
“작년에 발간된 것중 하나인데· 한 번 보세요!”
[부원들 노력에 감사··· 동아리 수익 후배들에게 지원]
*프로즌 동아리장 케네스
*결산 10위 지키기 위해 만반의 준비-운영
[판정으로 ‘기사 勝 결정’ 불합리]
*마법학부 형평성 문제 등 체전 규칙 변경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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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면을 대충 살핀 후 다시 내려놓았다·
살펴보니 마법학부의 일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내부의 여러 사건을 전부 다루었다· 또한 특정 학부를 지지하는 듯한 뉘앙스도 없다·
세피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를 비로소 이해했다· 마법학부 기자팀의 입지가 제법 견고하다는 것이지·
‘마법도 다루는 건가·’
어린 말괄량이처럼 굴어서 그렇지 느껴지는 기감은 꽤 훌륭한 편에 속했다· 적어도 교수들보다는 경지가 높다·
하긴 강함의 근거가 뒷받침되니 원하는대로 취재도 하고다니겠지· 약한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받아적는 것 뿐이다·
아무래도 좀 귀찮은 군상의 인간에게 붙잡힌 것 같다만 우선 차분하게 대답했다·
“놀랄 이유라도·”
“물론 있죠! 기사를 어떤 식으로 내보낼지는 전부 제가 결정한다구요!”
세피아가 생긋 웃더니 손을 들어 점원을 불렀다·
“커피 한잔 하실까요?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은데 커피 좋아하세요?”
딱히 커피의 각성 효과가 고프지는 않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세피아는 기어코 두 잔을 주문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본론이 뭡니까·”
“우리 기자라는 인간들은 말이죠~ 세가지에 엄청 집착한다구요?”
“특종 특보 속보·”
내 말에 세피아의 입꼬리가 휙 올라갔다·
“정답! 세상에 어떻게 알았어요?”
모를 수가 없다· 이전 세계에서도 기자들은 그 세가지에 목숨을 걸었고 그것들을 치워내는 것이 참으로 귀찮았으니·
“지금은 말이죠 제 기자로서의 감이······ 특보라고 말해주고 있답니다!”
“특보?”
“그래요· 특보! 마법 미궁 내부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건 아주 평범한 기사에요· 그냥 그랬나보구나~ 하고 좀 지나면 잊힐 일·”
세피아가 의미심장한 눈동자로 말을 잇는다·
“그런데 온 지반이 무너진 미궁 내부에서 3분을 버텨낸 학생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런것도 좀 지나면 잊힐 일일까요?”
“예·”
그게 뭐 대수라고· 자면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나 세피아는 펄쩍 뛰었다·
“아니죠 아니죠! 그걸 어떻게 잊어요? 지반이 무너진 미궁 내부는 마나 흐름이 장난 아니게 복잡해져요! 그 상태에서 3분을 버티는건 교수도 어려운 일이라구요!”
“주문하신 커피 두 잔 나왔습니다·”
때마침 커피 두 잔이 테이블 위로 올려졌다· 세피아가 그것을 곧바로 들어 한 모금 했다·
“우린 그런 걸 특보(特報)라고 불러요! 모두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파격적인 보도!”
세피아의 미소가 점점 커진다·
“상상해보세요~ 난리가 난 미궁 안에서 무려 3분을 버티는 학생이 나타났어· 심지어 나이도 어려· 새내기래!”
이야기를 이어가는 세피아의 표정은 즐거워보였다·
“아카데미에서는 온갖 지원을 해서라도 잘 성장시키려고 하겠죠? 길드에서는 앞다투어 데려가려고 할 거고 성공할 미래가 아주 훤히 보이는걸요?”
──턱·
이야기를 이어가던 세피아가 갑자기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그건 말 그대로 특보에요· 일어날 확률이 아주 극히 드문 일!”
우리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플란 학생!”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남에게 존댓말을 해야한다는 것이 이 와중에도 거슬려서·
“제가 처음에 뭐라고 했어요? 플란 학생이 유디트 가문의 사람인걸 알고 있다고 말했죠?”
그렇게 이야기하며 그녀는 또다른 신문 세 개를 테이블 위로 올렸다· 나는 조용히 그것을 살폈다·
[“타고났다”라던 키낵··· 알고보니 영혼 계약]
[ 죽음의 자리로 발을 딛는다]
*최근 많은 인간들이 영혼 계약 극단적 선택
*예외없이 처형하기로 결정
계약 처형 계약 처형·
세피아가 새로 건넨 세 신문의 공통점은 명확했다· ‘영혼 계약’을 주제로 다루고 있으며 그것을 발각당한 쪽은 예외없이 처형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의 핏줄을 타고 난 사람이 마법 학부에 입학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전례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선례입니다·”
그녀가 내게 은근히 속삭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다른 가능성을 그려보고 있는데· 기자의 직감? 뭐 그런?”
“영혼을 매개로 하는 계약은 또 뭡니까·”
“그건 말 그대로죠? 영혼을 매개로 악인이랑 계약! 세상에나 세상에나 영혼만 바치면 힘을 준다니!”
비로소 이해했다·
세피아는 고작 새내기인 내가 지반이 무너진 미궁에서 3분을 버틴 것이 의문스럽고 악인과의 계약을 통해 힘을 얻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것이다·
“하·”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두가지가 우스워서·
영혼을 매개로 계약하는 나약한 것들이 이 세계에도 있다는 점이 첫 번째·
세피아가 나를 그따위 족속으로 의심하고 있다는 점이 두 번째였다·
나는 그녀를 말없이 노려보았다· 그러자 세피아가 웃음을 터뜨리면서 손을 양옆으로 휘저었다·
“아이쿠 무서워라· 저는 다만 진실이 궁금할 뿐이랍니다· 거짓을 내보내는 기자는 자격이 없으니까요·”
세피아의 푸른 눈동자를 물끄러미 살폈다·
그 눈동자 안에는 정말로 호기심만 가득하다· 타인을 향한 악의가 없다·
‘진심이군·’
누구보다도 호기심이 많고 그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진실을 쫓아다니는 그녀의 행태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인간으로서는 괴짜일지 몰라도 기자로서는 아주 훌륭한 것이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호기심 많던 내 제자중 한 명을 닮았다· 그것도 엄청· 지금보니 생긴것도 조금·
괜히 흥미가 돋아서 세피아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네가 보기에는 어떻지·”
제자 녀석과 대화하는 느낌이라 그런지 도무지 존댓말이 나가지를 않았다·
세피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이 짧네······ 가 아니고! 기분 나쁘게 했다면 죄송해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거든요 헤헤· 사람이 계약자일 수도 있죠? 안 그래요? 사람이 아니고 악인인가? 아무튼요·”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두 번 묻기는 싫다만·”
“글쎄요? 계약을 했다면 한 거고 아니라면 그쪽이 상상 이상으로 마법을 잘 쓴다는 말 아닐까요? 어느 쪽이든 전 상관없거든요 기삿거리가 되니까·”
고개를 끄덕인 세피아가 내 쪽으로 의자를 조금 더 당겨 앉았다·
“그래서 플란 학생~ 진실은 뭔가요? 저 너무 궁금해요!”
세피아가 호기심에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정말로 내 제자를 닮았다·
잠시 과거 생각에 젖어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세피아가 지레짐작을 했다·
“······계약자 계약자 맞죠? 어떤 이유로 계약을 하게 되신 거예요? 아아 물어볼 게 산더미인데······! 무슨 능력을 얻게 되셨어요? 대가는 영혼 하나가 전부?”
세피아는 바쁘게 말을 이어가다말고 갑자기 헛기침을 했다·
“말이 새서 죄송해요· 일단 차근차근 경위부터 물어봐도 될까요? 역시 열등감 때문인가요? 누님께서 워낙 대단하신 분이잖아요! 그 유명한 잔불의 기사·”
그 유명한 잔불의 기사·
설마 스칼렛을 두고 말하는건가·
“그 칠칠찮은 여자 말인가·”
“충분히 이해해요! 악인들은 열등감이나 분노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파고들어서 계약을 유도······ 응?”
세피아의 이야기가 도중에 토막난다· 눈을 휘둥그레 뜬 그녀가 주변을 살폈다·
“방금 그 말······ 스칼렛 스칼렛 유디트를 보고 하신 말씀인가요? 내가 잘못 들었나?”
“또 누가 있겠나· 식사 예절조차 제대로 못지키는 여자인데·”
“저기 저기요? 플란 학생!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왜 그렇게 촐싹거리지· 금기어라도 들은 것처럼·”
세피아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금기어라고 할 수도 있고······· 기사 그것도 위상 높은 기사를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마법사가 얼마나 되겠어요·”
이번에는 내 고개가 기울었다·
남동생이 가질만한 예의가 아니라고 나를 지적하지 않은 점이 의문이다· 마법사로서의 태도를 왜 지적하는가·
“마법사에 비하면 기사따위는 하찮지·”
“플란 학생 그게 무슨 소리···· 아니 혹시 안에 들어있는 악인이 말하는건가요?”
그녀가 내 얼굴 여기저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눈 앞으로 손을 흔들어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마법사에 비하면 기사따위는 하찮지 않나·”
“아뇨? 태생적으로 기사가 마법사보다 훨씬 유리하지 않던가요? 기사 가문에서 이렇게 겸손을 가르칠 리가······ 아 실례 헤헤· 방금건 잊어 주세요·”
다른 직종간의 갈등이야 이전 세계에서도 흔히 있었다· 원래 남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니까·
다만 이 세계에서는 기사가 마법사보다 우위의 세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곧 학부끼리 다투는 체전(體典)이 열리는 건 아시죠? 전투 종목 승률만 봐도 기사가 압도적 우위인건 자명한 사실인걸요·”
그런 모양이다·
기사가 우위라는 사실 자체는 너그러이 봐줄 수 있다· 이 세계에 나같은 마법사가 없었을 수 있고 원래 내가 살아가던 세계도 아니니·
그러나 내가 중요시 여기는 것은 마법사들의 태도다· 나는 세피아에게 설마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아카데미 마탑의 마법사들은 어떻지·”
“무슨 말이에요?”
“이러한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냔 말이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요? 문명의 바퀴를 굴리는 건 마법사지만 마수나 악인을 처치하고 평화를 수호하는 이들은 주로 기사니까요·”
······뭐라·
대답을 들은 직후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머리가 너무 지끈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세계는 도대체 얼마나 잘못되어있는걸까· 쉬이 감조차 잡히질 않는다·
마법사는 직관으로 사는 존재·
노력과 자기확신이 받쳐주지 않는 직관은 길을 잃기 마련이다·
남에게 굽히는 것을 당연스레 여기는 직관 따위로 어떻게 마법을 바라보고 어떻게 진리를 걷겠다는 것인가·
“하아·”
한숨을 푹 내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카데미의 근간을 뜯어고쳐야한다· 아니 뜯어고칠 것이다·
학생 교수 마탑의 학자···· 지위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마법사라면 표현 그대로 모조리 바꿀 것이다·
아니 바뀔 수 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다· 감화시켜서·
마법사들이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확신을 잃지 않게 만들고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도록 만들 것이며 강자의 여유를 갖게끔 그 근거를 마련해야겠다·
“곧 체전이 있다고 했나·”
“금방이에요! 2주일 뒤니까요!”
“전투 종목에서 마법사가 승리하면 어떤가· 그것도 특보겠지·”
“세부 종목과 출전 상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압도적인 승리라면 엄청난 특보죠!”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증명할 것 하나가 새로 추가된 셈이다·
망설임없이 발걸음을 떼었다· 할 일이 정해졌다면 아깝게 지체할 시간 따위 없었다·
“어 저기? 플란 학생! 잠시만요! 어디 어디가요!”
그러나 세피아가 다급하게 외치며 따라붙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바꿔야겠다·”
“무엇을? 아 커피가 입에 맞지 않으셨나요? 그렇다기엔 손도 대지도 않았는데······ 그럼 술? 진득하게 이야기하긴 술이 최고죠! 좋아요 술집으로 가죠! 제가 삽니다!”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들의 사고방식과 세력 구조· 그 전부·”
“어···· 계약자가 그렇게 말하니까 무서운데요?”
“계약자가 아니다·”
“엇 정말요? 어린 마법 천재가 그런 말을 하니까······ 응? 그것도 조금 무섭네요· 잠깐 그럼 미궁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세피아를 향해 일축했다· 슬슬 동아리 장소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에·
의외로 세피아도 이번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저도 바쁘거든요· 트릭시 양과 아고라보드에서 경쟁하는 괴물의 정체를 알아봐야해서······ 근데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방금 약속한거죠? 분명히 했죠? 그럼 이만!”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그녀가 쌩 사라져버렸다·
‘2주일 뒤 체전이라·’
종목은 어떤 것들이 존재하는가 출전 요건은 어떻게 되는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동아리의 약속 장소가 코앞이다·
저 멀리 모여있는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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