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1
규칙은 간단하다·
직사각형 모양을 띤 평가장 내에서 우리를 향해 쇄도하는 마법을 상대해내면 그걸로 끝이다·
단지 마법을 발현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력을 다해 날아드는 그것을 개인의 마법으로 제압해야만 진정한 성공이라고 볼 수 있겠다·
ㅡ트릭시 폰 프리츠와 루이스 로제발트의 평가가 끝났습니다· 현재 1등은 루이스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현 트릭시와 루이스의 평가를 지켜보고 있다· 마탑 직원이 친절한 목소리로 상황을 안내했다·
마탑 직원과 바이올렛은 건너편 검은 결계 내부에서 우리를 관찰했다·
단방향 거울이다· 저들만 우리를 볼 수 있다·
트릭시와 루이스 모두 원석이라는 점은 인정해줄 수 있었다·
루이스는 본인의 빛 원소를 잘 활용했고 트릭시는 화염 원소를 잘 활용했다· 둘 다 신속하게 마법을 발현하는 데에도성공했다·
다만 발현에서 그쳤고 위력이 엄청나지는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원석들은 아직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았으니까·
아직 원석 상태인 마법사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결국 두 명이 대표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지금부터 보여주는 것이 나의 몫이겠지·
평가가 끝난 후 트릭시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서 곧장 떠나버렸고 루이스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가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름대로 최선 다하긴 했는데 역시 아쉽네·”
“반성해라·”
그럼 훗날에는 분명 쓸만한 마법사가 될 테니까· 내 말을 들은 루이스는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플란 너는 긴장 안 되나 봐?”
긴장이라·
이 세계에서 긴장했던 순간 난 없다·
말 대신 표정으로 대답했다· 태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루이스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혹시라도 오해하지 마· 다른 의도로 이런 말 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마음에 들어서· 바이올렛 교수님한테 대표가 되겠다고 이야기했던 거 개인적으로 멋있다고 느꼈거든·”
ㅡ마지막· 플란 학생 나와주세요·
때마침 마탑의 직원이 나를 호명했다·
“잘하고 와 플란· 맞다· 나 구경해도 되지?”
루이스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준 후 평가장의 중앙을 향해 나아갔다·
◈
빠른 마법 발현 일격 제압·
내가 대표의 자격이라며 내걸었던 두 가지 조건이다· 본인 입으로 쏟은 말이니만큼 직접 주워 담을 생각이다·
반드시 그리한다· 마법사가 무시당하는 기간을 1초라도 줄이고 싶으니·
ㅡ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짤막한 안내와 함께 평가가 시작되었다·
꾸준히 반복했던 훈련은 나를 배신하지 못했다· 정신을 집중하자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정순해진 마나가 온몸을 휘감는다·
ㅡ1회차·
나는 저 멀리 건너편에 응집되기 시작한 마력을 육안으로 살폈다·
남들의 생각을 한차원 뛰어넘고자 한다·
단순히 속도에서 승리한다는 생각을 버린다· 나는 녀석으로부터 ‘속도’라는 존재를 빼앗을 것이다·
휘이이잉····
기이한 소리를 내며 휘몰아치는 마력을 찬찬히 뜯어 살폈다·
체내의 정순한 마나가 사고를 가속하고 연산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동시에 온 세상이 색을 잃는다·
흑백으로만 구분되는 세상·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이 새하얘지는 가운데 오로지 건너편의 마력만이 검게 보인다·
ㅡ발사합니다·
마력탄이 막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검게 물든 녀석의 몸에서 하얀 선들이 맥동하기 시작했다· 저것들 하나하나가 전부 핵심 회로다·
중요한 것은 보였다는 점이다·
이미 육안으로 확인했으면 간섭하여 해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픽·
마력은 얼마 비행하지도 못한 채 사그라들었다· 한동안 평가장 내부에 정적이 흘렀다·
‘앞으로 두 번 정도인가·’
같은 위력으로 발사한다고 가정했을 때 앞으로 두 번 정도 완벽하게 해체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총량 부문의 한계다·
그러나 문제없다·
트릭시와 루이스 둘 다 3회차를 마지막으로 평가를 마무리했다· 나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는 않을 터·
ㅡ2회차 발사합니다·
마력탄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핵심 회로의 구성이 바뀌었고 속도 역시 1회차보다 증가했다·
그러나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1회차와 마찬가지로 내게 닿기도 전에 자취를 감추었다·
ㅡ3회차 발사합니다·
마침내 3번째 마력이 날아왔고 또 한 번 해체했다·
‘겨우?’
이건 이거대로 실망스럽다·
분명 고유 능력의 명칭이 섬광(閃光)이라고 했었지· 이름값을 전혀 못 하는 속도와 위력 아닌가·
마탑의 설비가 하찮은 것인지 고유 능력이라는 것이 사실은 별거 아닌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아무튼 3회에 걸친 평가를 마쳤다· 나 아닌 인물을 대표로 선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대기실로 돌아갈 채비를 하던 그때·
ㅡ4회차 발사합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기세 좋게 4회차의 시작을 알렸다·
“···하여튼·”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마력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나가 없어도 내게는 방법이 있다·
“건방진 것들·”
◈
엘리시스는 루이스를 제외 학생들에게 그다지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
훌륭한 마법사는 떡잎부터 알아보는 법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제 막 아카데미에 입학한 1학년들에 불과하다·
또한 마법사들의 삶에는 ‘특이점’이라는 각성 순간이 불시에 찾아온다· 고작 평가 하나만 가지고 마법사의 질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는 소리다·
“루이스는 뭐···· 역시 잘하네·”
다룰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간혹 세간의 부러움을 사는 빛 원소· 루이스는 그것을 타고났다·
그는 당연히 신비의 협곡 스카우트 후보로도 이름이 올려져있다·
아쉽게도 아직 마력탄을 받아치지는 못했지만 분명 앞으로 미친듯이 성장하겠지·
“프리츠 가문은 역시 프리츠 가문이고·”
프리츠· 그 가문명 하나로 이 소녀의 설명은 충분하다·
트릭시 역시 푸른 화염을 다루며 최선의 기량을 선보였다·
엘리시스는 트릭시의 이름 역시 메모했다· 이 소녀의 성장도 앞으로 주목할만 하리라·
루이스와 트릭시 모두 또래 마법사들 사이에서 천재로 통용될만한 근거는 있었다·
다만 이들이 초신성이라 불리우는 아이반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가· 엘리시스는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바이올렛이 입을 열었다·
“엘리시스 그쪽이 보기에는 어때요· 그래도 아직은 이 둘이 가장 훌륭한데·”
“잘하는건 맞는데· 글쎄·”
“너무 길드 기준으로만 보지 마시라니깐·”
“굳이 길드 기준이 아니어도 인마 제대로 이기는 게 목표라며· 이래서 기사 학부 상대로 어떻게 이기냐?”
엘리시스가 손끝으로 아이반의 정보가 적힌 종이 뭉치를 두드렸다·
나이 신장 고유 능력···· 아이반 로즈에 관한 정보가 될 수 있는 한 상세하게 적힌 종이였다·
“애초에 마력탄 속도가 너무 느려· 이게 뭐하자는거야? 섬광이랑 똑같은 속도로 해야지·”
엘리시스의 말에 바이올렛이 미간을 좁혔다·
“속도를 더 높이면 애들 다친다니까요· 그리고 경기장은 여기보다 훨씬 더 넓어요· 이 정도 속도로 조정해도 문제없어요·”
“경기 때 크게 다치면 그건 괜찮냐? 평가 때 다치는 게 뭐 어때서· 차라리 그게 낫지·”
“그러다 출전도 못 하면요? 괜히 불렀다니까 진짜·”
엘리시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이런 말 들을 때마다 진짜 모르겠다니까· 학생들 사이에서 바이올렛 무섭다는 이야기는 도대체 왜 도는거야?”
“시끄럽고요· 평가나 마저 진행하자고요·”
곁에서 엘리시스와 바이올렛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탑의 직원이 다음 학생을 호명했다·
ㅡ마지막· 플란 학생 나와주세요·
엘리시스가 미간을 좁혔다·
바이올렛과의 대화에서 불쾌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둘은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이런 식으로 대화했었으니까·
다만 정중앙으로 걸어오는 학생의 모습이 신경 쓰여서였다· 엘리시스는 명단에 적혀있는 이름을 소리 내 읽었다·
“플란·”
저 소년과 눈이 마주친 것을 기점으로 시계가 먹통이다·
엘리시스의 손목에 붙어있는 것은 결코 평범한 시계가 아니다· 금화 몇백개의 값을 호가하는 상대방의 마력을 읽어내는 효과를 지닌 첨단 발명품이었다·
우연이라기에는 조금 이상하다· 어딘가 모르게 묘하다·
표정 그리고 정중앙으로 걸어 나오는 걸음걸이부터가 그렇다· 그의 기품은 이미 학생의 것이라 보 힘들었다·
바이올렛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 녀석 때문에 이번 평가를 이렇게 바꾼 거에요·”
“평가를 바꿔?”
엘리시스가 되물었다· 그러고 보면 그랬다·
분명 바이올렛한테 처음 연락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단순히 아이반과 역상성을 지닌 학생을 찾아낼 계획인 듯했었다·
“섬광의 속도를 상회할 마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일격으로 상대방을 제압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저 학생이 그렇게 말했거든요·”
“의미를 갖는다라····”
의미·
그 두글자를 엘리시스가 소리 없이 되뇌었다· 고작 1학년이 마법의 의미를 되새기고 위한다니 솔직히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의미를 챙길 수야 있지·
하지만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마법의 진가를 관철하는 것은 보통의 발상이 아니다·
바이올렛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본인은 대표가 될 거래요· 자신있대·”
“정말로 그렇게 말했어?”
“그렇다니까요·”
졸음이 지루함 따위가 일시에 달아난다·
신비의 협곡·
악인을 절멸하는 목적의 마도 길드· 이 길드에는 다양한 인재가 있고 또 더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인재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믿는 이·’
악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간의 삶을 망쳐놓는다·
그들은 단순히 힘으로만 꺾으려 들지 않는다· 소중한 사람으로 위장할 수도 있고 달콤한 유혹을 건네올 수도 있고····
그러나 누구보다도 자신을 믿는다면 그따위 유혹에 쉽사리 휘둘리지 않는다·
인정해야 했다·
엘리시스는 고작 몇 번의 대화만으로 플란을 향해 엄청난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얼떨떨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엘리시스가 입을 열었다·
“일단 한번 보자·”
그 말을 들은 마탑의 직원이 평가를 속행했다·
ㅡ1회차 발사합니다·
“어라?”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력탄이 제대로 날아가지도 못한 채 소멸하였기 때문이다·
“오류인가?”
“아뇨·”
엘리시스가 칼같이 대답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바이올렛을 바라보았다·
“바이올렛· 방금 봤어?”
“···봤어요·”
바이올렛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이해하고 있었다· 이건 설비의 오류가 아니라 완벽한 간섭이 만들어낸 ‘해체’라는 것을·
그러나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엘리시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간섭이 몇 학년 교육 과정이지?”
“2학년 과정이에요·”
“흐응~”
“아 그러고보니· 오리엔테이션 날에도····”
“오리엔테이션 날? 그 날은 왜?”
바이올렛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평가 속행할게요·”
바이올렛이 플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중얼거렸다· 직원은 그렇게 했다·
ㅡ2회차 발사합니다·
ㅡ3회차 발사합니다·
두 번 더 진행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어떠한 어려움도 겪지 않는다·
그저 평온하게 조금의 낭비도 없는 움직임으로 태연하게 마력탄을 해체할 뿐이었다·
세 번의 평가 내내 그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아하기까지 했다·
‘저놈은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
마법으로 맞선다는 생각 따위를 이미 아득하게 뛰어넘었다· 상대가 애초에 속도를 내지도 못하게끔 하려는 것이다·
흥미가 솟아오른다· 아니 솟아오르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다·
검은 결계 내부가 정적에 휩싸였다·
먼저 침묵 깬 것은 바이올렛이었다·
“이거···· 이러면 정말로 플란 학생이 대표인데·”
엘리시스는 아무런 말도 없이 턱을 문질렀다· 바이올렛이 재차 입을 열었다·
“엘리시스· 어떻게 생각해요? 그쪽이 보기에도 플란이죠?”
“지금 그딴게 중요하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엘리시스는 곧바로 마탑의 직원을 밀어내고 설비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에 엘리시스님?”
직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과연 너는 스스로를 얼마나 믿을까?’
말도 안 되는 힘 앞에서도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을까?
정말?
진심으로?
호기심에 휘말린 엘리시스는 이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무아지경이었다·
엘리시스가 장비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이런 미친 지금 뭐하는 거에요?”
“엘리시스님! 장비에는 함부로 손대시면 안 됩니다!”
직원과 바이올렛이 곧바로 엘리시스를 붙잡았다·
하지만 엘리시스는 막무가내였다· 그녀가 장비에 마력을 있는 힘껏 밀어넣은 다음 마이크에 대고서 외쳤다·
“4회차 발사합니다!”
가장 빠르고 강력한 마력탄·
아이반 로즈의 고유능력 섬광과 같은 속도를 가진 마탄이 플란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바이올렛이 버럭버럭 소리를 쳤다·
“진짜 미쳐버리겠네· 길드장이면 앞뒤 안 가리고 이래도 되는거에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바이올렛이 한 번 더 소리쳤다·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봐요! 이래도 되는거냐고요!”
“···소리가 안 나네·”
엘리시스는 그리 중얼거릴 뿐이었다· 바이올렛이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생뚱맞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진짜 정신 나갔어요?”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이 못난아·”
엘리시스는 입꼬리를 씨익 말아올리면서 턱으로 저편을 가리킬 뿐이다·
“이번에도 저쪽에서 아무 소리가 안 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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