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2
“이번에도 저쪽에서 아무 소리 안 났잖아·”
엘리시스의 말에 바이올렛과 직원의 눈동자가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안전장치의 제약을 받지 않은 마력탄의 속도는 어마어마하다· 충돌음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단 말이다·
세 여인의 고개가 동시에 플란을 향해서 돌아갔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은 단순하며 또한 충격적이었다·
분해되어 사방으로 흩날리는 마력탄과 태연자약한 태도의 소년· 그게 전부다·
플란의 손가락 끝은 척 보기에도 심하게 화상을 입은 상태다· 심지어 연기까지 피어오르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도 플란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지루하다는 듯 노려볼 뿐이었다·
바이올렛이 황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엘리시스· 저거····”
“맞아·”
엘리시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에도 해체한 것 같네·”
“잠깐 잠깐만· 말이 안 되는데· 이번 마력탄 3회차보다 더 빠르지 않았어요?”
“맞아· 아이반 로즈의 섬광과 같은 속도로 설정했어·”
그 말에 바이올렛이 헛숨을 들이켰다·
“핵심 회로의 이해· 오차 없는 간섭과 해체· 이 모든걸 그 짧은 시간 내에····”
“전부 했다는거지· 뭐하는 놈이야 저거·”
플란을 3회차에 걸쳐 평가했을 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를 단순히 쓸만한 녀석 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의심은 여전했다·
그러나 4회차를 거친 지금 엘리시스의 생각은 바뀌었다·
‘재미있는 녀석이네·’
플란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분명 ‘원석’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을 터· 그러나·
···그는 이상하리만치 세공을 마친 보석처럼 행동하는 구석이 있었다·
엘리시스가 아랫입술을 핥았다·
그녀는 마법사의 기량보다도 내면적인 것을 더 중요시했다·
뛰어난 기교로 잠시 빛나는 마법사는 많지만 진정 훌륭한 마법사라면 어떤 것으로부터도 물러나지 않을 압도적인 기개가 있어야 한다·
저 유별난 소년에게 그 정도의 능력이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 그랬었는데····
엘리시스는 다시 한 번 플란의 얼굴을 살폈다·
소년의 얼굴에서는 엘리시스가 찾던 압도적인 기개가 얼핏 엿보인다·
욕심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따위 테스트장이 아니라 실제 전투 현장에 그를 세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한 걸음 두걸음·
플란이 못마땅한 얼굴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내 그가 검은 결계를 세 번 노크하며 입을 열었다·
“뭐가 더 필요하십니까?”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을 텐데도 그는 바이올렛의 눈을 마주 보고 있었다·
“야 너 말이야·”
엘리시스가 검은 결계를 해제했다· 그녀는 플란을 향해서 대뜸 물었다·
“왜 굳이 손을 대서 간섭했어?”
말투가 워낙 거칠어서였을까 시비라고 생각했는지 플란이 미간을 좁혔다·
“이해 능력이 뛰어나다면 그냥 눈으로 살피고 간섭할 수도 있었잖아· 왜 굳이 손을 댔냐고·”
“아·”
그게 궁금했냐는 듯 플란이 표정을 풀면서 입을 열었다· 세 여인은 플란의 입만 쳐다보았다·
“육안으로 살필 마나가 없었습니다·”
플란을 제외한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엘리시스가 재차 물었다·
“그럼 똑같은 질문을 한 번 더 하는 수밖에 없겠는데? 도대체 왜 피하지 않고 손을 댄 거야· 안 무서웠어?”
“저도 이해가 안 가네요· 플란 학생 말대로라면 이해와 간섭 둘 중 하나만 늦었더라도 손을 아주 크게 다쳤을 텐데요·”
옆에서 바이올렛이 거들었다·
터무니없이 위험한 일이다·
플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마력탄이 손끝에 닿는 순간 핵심 회로를 전부 읽어내는 ‘이해’뿐만 아니라 해체를 위한 ‘간섭’까지도 해냈다는 소리 아닌가·
마나의 잔량이 없는 마법사라면 누구라도 피하려 들었을 테다·
“제가 묻겠습니다·”
플란이 역으로 엘리시스를 향해 묻는다·
“본인이라면 피하셨을겁니까·”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엘리시스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마나의 전량을 소모한 상황 상대방이 쇄도해온다면 피하시겠습니까·”
“상황과 상대에 따라서 다르겠지?”
“다르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마법사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이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플란이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간다·
그리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피할 이유가 없다 라고 말입니다·”
바이올렛과 엘리시스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둘은 동시에 생각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오늘의 평가가 이 작은 날갯짓이 크나큰 태풍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
ㅡ평가가 종료되었습니다· 곧 결과 발표가 있을 테니 학생 여러분들은 대기실을 떠나지 말아주세요·
나는 대기실의 의자 중 하나를 골라 착석했다·
“루이스 잘 하고 왔니? 내가 열심히 기도했어·”
“당연히 잘했겠지· 루이스인데·”
사교성을 챙기고픈 녀석들은 이미 루이스 근처에 붙어있다· 다들 루이스가 대표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눈치였다·
“글쎄 내가 아닐 것 같은데·”
루이스는 옅게 미소 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의 시선이 조용히 내 쪽을 향했다·
“에이~ 루이스 너무 겸손한 거 아니니?”
옆에 앉은 헤일리가 손가락으로 루이스의 머리카락을 빗겨주면서 생글생글 웃었다·
“야 플란·”
물론 내게 다가오는 바보도 없지는 않았다·
“···잘하고 왔어? 나 응원했는데·”
베키였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응원받아도 저주받아도 딱히 별다른 감상이 없다· 어차피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을 터·
그 순간 바이올렛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주목· 우선 평가 치르느라 고생 많았어요·”
바이올렛의 옆에는 엘리시스가 섰다·
엘리시스의 키가 워낙 크기도 하고 바이올렛의 키가 작기도 해서 둘의 차이는 특히나 뚜렷하게 보였다· 바이올렛이 꼬마 마녀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
“서론은 됐고 우선은 결과 발표부터·”
결과 발표라는 말에 여기저기서 숨을 죽였다·
바이올렛은 손가락을 튕겨서 허공에 이름 하나를 띄웠다·
[ 플란 ]
“루이스가···· 대표가 아니야?”
헤일리가 잔뜩 충격받은 표정으로 활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입이 슬그머니 벌어지는 사이 여기저기 다른 곳에서도 의문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플란?”
“잘못 발표하신 거 아니야?”
“대체 왜····”
학생들이 받은 충격은 생각 이상으로 큰 모양이다·
“말이 안 되는데? 탐험 평가 때도 트릭시한테 완전 업혀 갔던 녀석이 어떻게 대표가 돼?”
마틴의 한 마디가 도화선에 붙은 불이 되어 논란을 터뜨리려는 찰나 엘리시스가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하는데 이번 평가는 공정했다·”
그 말에 웅성거림이 되레 커졌다·
대기실 내부가 온통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 와중 엘리시스는 말을 이었다·
“우리의 상대는 기사 학부의 초신성이라 불리우는 아이반 로즈다·”
엘리시스가 학생들을 전체적으로 한 번 훑었다·
“아이반의 고유 능력이 섬광이다보니 빠른 속도로 발사된 마력탄에 대처하는 모습을 기준삼아 너희를 평가했지·”
학생들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 녀석은 없을 테니까·
“참고로···· 설비에는 안전 장치가 부착되어 있었다· 아주 자애로운 바이올렛 교수가 너희들을 무척이나 아끼시는 바람에 말이지·”
거기까지 이야기한 엘리시스가 레버 하나를 들어올린다· 레버에는 부러진 흔적이 있었다·
“플란의 기량을 명확히 측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내가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그리고 플란은 4번째 발사에도 아주 훌륭하게 대처해냈어·”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듯 엘리시스가 검지 하나를 펴보였다·
“마지막으로 너희들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 하나 있는데·”
학생들이 저마다 마른침을 삼켰다· 모두들 엘리시스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채였다·
“4번째로 발사된 마력탄이 아이반 로즈의 섬광과 엇비슷한 속도의 마력탄이었다· 너희들이 상대했던 건 훨씬 느렸던 거라고· 알았냐?”
4번째 마력탄이 섬광과 비슷한 속도다· 엘리시스의 그 말에 학생들은 경악했다·
“우리는 그럼···· 훨씬 느린 것도 못쳐낸거야?”
“플란은 그걸 해냈다고?”
온 학생들이 화들짝 놀라하는 가운데 나를 향하는 강렬한 시선이 있었다·
트릭시였다· 그녀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다른 상념에 잠기기 시작했다·
‘얼마 만이지·’
물끄러미 왼손의 상태를 살폈다· 화상을 입은 손가락에 눈에 띈다·
기숙사로 돌아가서 치유 마법을 사용하면 그만이라 수습이 어렵지는 않다만····
다친다는 개념 자체가 내게는 너무나도 생소하게 다가온다· 따끔한 손가락이 생소하고 하찮고····
몸에 상처가 난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부러질지언정 결코 굽히지 않는다· 자존(自存)을 잃지 않은 채로 더더욱 나아갈 뿐이다·
‘헤라·’
심지어 내게는 영령 아티팩트도 있다·
아티팩트와 함께 성장한다면 고지는 멀지 않으리라· 우선은 그렇게만 생각을 정리했다·
“대표 선출이 공정했다는 건 신비의 협곡에서 보증한다· 이래도 의문이 남는 녀석들은 따로 찾아와·”
엘리시스는 그 정도로 본인의 발언을 마무리했다·
신비의 협곡이라는 말에 다들 입을 꾹 다문다· 이름값이 꽤 드높긴 한 모양이다·
다시 바이올렛이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다들 평가 치르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 마탑 내부의 호텔로 이동할게요·”
남학생들은 24층 여학생들은 23층···· 바이올렛의 설명이 한동안 이어졌고 마침내 우리는 포탈을 향해 이동했다·
그러나 포탈 앞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별안간 유시아가 소리를 질렀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충 살펴보니 포탈 앞 직원을 바라보는 유시아의 황금빛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채였다·
“야광 퍼즐 반입이 안 됩니까? 정말?”
“마탑 내부는 보안 때문에 개인 짐을 지참하는 행위가 불가합니다· 건물 밖 맞은편의 보관소에 맡겨주십시오·”
“그럴 수가···!”
유시아의 얼굴에 절망이 번졌다·
그런데 짐이라면 나도 있다· 나는 내가 챙겨온 것들을 살폈다·
『 소환 계열의 간섭 충돌 현상에 대하여 』
『 연성 체계에 대한 원소 학적인 연구 』
『 대륙별 방언에 따른 요정어 발음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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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엄선하고 또 엄선한 8개가량의 논문이다·
저녁 식사 이후 줄곧 도서관에 있었던 나는 바이올렛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이 논문들을 지참한 채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학생· 이것도 개인짐에 포함되어 지참 불가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챙기고 있던 논문들도 지적받았다·
온 학생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바이올렛이 내게 말했다·
“플란 학생· 그거 보관소에 맡겨요·”
나는 고민했고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바에올렛에게 다가갔다· 그녀에게 내가 엄선한 논문 8개를 건네주었다·
“부탁드립니다·”
바이올렛의 눈썹이 한 번 꿈틀거렸다·
“플란 학생· 지금 교수한테 심부름시키는 거에요?”
“아닙니다· 이 논문들 제 객실에 넣어주세요·”
“이제 두 번째 이야기하는 거지만 짐은 건물 밖···· 아니 뭐라고요?”
“제가 짐입니다·”
그녀의 손에 반강제적으로 논문을 들려준 다음 나는 돌아섰다·
노숙도 해봤는데 보관소에서 자는 게 어려울까·
“뭐···· 뭐라고요? 저기요· 플란 학생!”
무시하고 재빠르게 포탈에 올라탔다·
내 논문들이 추운 곳에서 자는 거 난 못 본다·
“····”
보관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와중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았다·
하얗고 부드러운 깃털뭉치 같은 것이 나를 졸졸 뒤쫓아오다가 자신도 멈춰선다·
자연스레 우리의 눈이 마주친다·
무엇이 그렇게 신나는지 생글생글 웃는 유시아를 향해 내가 물었다·
“뭐하자는 거지·”
“아! 플란 경!”
유시아가 상자를 들어올리며 외쳤다·
“야광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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