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5
“이건 검증이 안 된 내용인데? 폐기해요·”
메르헨일보의 편집부· 아침이 밝아도 세피아의 잔소리는 계속되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침부터 이게 웬 소란이야?”
정장 차림의 사내가 미간을 좁히고서 등장했다·
커다란 체구 번듯하게 넘긴 올백 머리 묘하게 건들거리는 태도· 취재 기자가 급하게 인사를 했다·
“아 빈센트 부장님 오셨어요·”
빈센트 그는 메르헨일보의 기사부 부장이었다·
세피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빈센트가 취재 기자를 향해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침부터·”
취재 기자는 세피아의 눈치를 흘끗 살피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체전 전투 종목 관련해서요· 기사 학부 아이반이 승리했다는 내용으로 미리 몇 개 써뒀거든요· 근데 그게 세피아 부장님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
“그게 뭐가 문제야?”
빈센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시선이 세피아를 향했다·
“세피아 부장· 우리한테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거 몰라? 이런 건 미리미리 준비해둬야지·”
그러자 세피아의 눈이 더없이 날카로워졌다·
“시간은 진실을 다룬다는 전제하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거죠· 이건 시간을 거짓으로 메꾸는 짓이에요·”
“아이고 또 시작이네·”
빈센트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이게 진실을 다룬 내용이 아니면 뭔데 지나가던 개미 새끼들 생태나 관찰하자고? 우리 쉽게 좀 가자 쉽게 으응? 마법 학부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기사 학부를 상대로 이겼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요· 결과를 확인하고 작성해도 안 늦을 텐데요?”
“늦어 이 사람아· 이 바닥에 몇 년을 몸담았으면서 아직도 뭘 모르겠어?”
“그쪽보단 제가 더 잘 알 걸요·”
“그래? 그럼 이건 뭐야·”
빈센트가 세피아의 책상 위에 신경질적으로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 아고라 보드에 붙은 화제의 대자보· ]
*메르헨 아카데미 마법학부 교수 일동에 고함
플란의 대자보를 토대로 작성한 호외였다·
“나 출근하는 길에 확인한 건데· 그렇게 잘 안다면서 이런 찌라시는 왜 뿌려?”
“뿌릴 만 하니까 뿌리죠· 내용 안 읽어보셨나 봐?”
“하···· 나 진짜·”
빈센트가 답답하다는 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세피아 부장· 이번에 체전 끝나면 편집국장님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는 건 알고 있지?”
“모를 리가 있나요?”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지금? 세피아 부장· 그분 기사 출신이야!”
빈센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마법사는 굽히지 않는다 저항한다 세계를 부정한다···· 이따위 내용을 호외로 돌려? 위에서 뭐라고 하겠어!”
“빈센트 부장·”
세피아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일 계속 그렇게 하실 거예요?”
“그럼 뭐 어떡할까· 좀 특이하게 해봐?”
“이미 충분히 특이하게 하고 계세요· 위에서 시키는 대로 받아적기만 하는 기자라니 애완동물도 그렇게는 못 할걸요? ”
초록빛 눈동자를 이글거리며 세피아는 말을 이어갔다·
“기자로서의 본분 기자로서의 윤리 우리 이런 건 좀 잊지 말자구요? 같은 부장인 제가 다 부끄럽답니다·”
하 어이가 없다는 듯 빈센트가 코웃음을 쳤다·
다른 이들은 소리를 죽인 채로 묵묵히 자신들의 일을 했다·
다른 기자들에게 있어서 둘의 다툼은 이제 그다지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 한 번 두고 보자고·”
결국 빈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피아 부장은 그쪽 하고 싶은 대로 해· 이쪽은 이쪽 하고 싶은 대로 할 테니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네요· 빈센트 부장처럼은 하라고 해도 못 해요·”
“그래그래· 그런데 세피아 부장·”
빈센트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서 한마디 덧붙였다·
“책상은 미리부터 좀 깔끔하게 써· 편집국장님 바뀐 뒤로도 우리가 여기서 볼 일이 있을까? 한번 잘 생각해봐·”
빈센트는 그 말을 끝으로 다른 기자들의 자리로 향했다·
“어어 그래· 이건 무슨 기사야?”
“아 빈센트 부장님· 이번에 마법 학부 학생이랑 기사 학부 학생이 만취한 채로 빗자루 비행을····”
쯧 빈센트가 혀를 찼다·
“하필 기사 학부가 끼어있네· 보류해·”
“알겠습니다· 이건 어떡할까요? 이번에 기사 학부 2학년들이 던전 토벌을 나가는데 아직 성공한 건 아니에요·”
“얀마 당연히 써야지·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그러한 광경을 보면서 세피아는 이마를 짚었다·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레 테이블 위로 향했다·
[ 아이반 완벽한 압승· ‘기사도’의 위대함 ]
[ 메르헨 아카데미 마법학부 교수 일동에 고함 ]
이 기사와 호외는 서로 완벽히 대조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실 빈센트와 취재 기자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마법 학부가 기사 학부를 상대로 승리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고 굳이 따지자면 모험을 하는 쪽은 세피아다·
그러나·
그런데도·
‘플란·’
세피아는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질 것 같지가 않았으니까·
◈
“하아···· 스트레스받아· 일은 좋은데 사람이 싫어·”
바이올렛이 탕 소리가 나게 찻잔을 내려뒀다· 아니 그건 내리치는 것에 가까웠다·
점심시간 바이올렛은 모처럼 카페테리아에서 세피아와 쉬는 시간을 갖는 중이었다·
“왜 그래 언니· 또 다른 교수들이 뭐라 그랬어?”
“난리야· 체전에 힘줘서 뭐 하냐고 여기서 난리· 끝나면 또 저기서 난리····”
바이올렛은 떠올리기도 싫은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 세피아를 향해 물었다·
“세피아· 기자들 쪽 분위기는 좀 어때· 체전까지 이제 이틀밖에 안 남았잖아·”
“우리라고 뭐 얼마나 다르겠어? 교수들 분위기랑 별로 다를 거 없어·”
“세피아 너도 힘들겠네· 불만 있으면 털어놔· 오늘은 다 들어줄 테니까·”
“불만? 흠 불만이라···· 글쎄?”
“뭐야· 아니 아니 잠깐만· 너·”
바이올렛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진다·
“···지금 보니까· 왜 이렇게 얼굴색이 좋아?”
그러고 보니 그랬다·
대화를 나눈 건 잠깐이었지만 세피아의 태도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고 바이올렛은 생각했다·
세피아는 체전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있다· 아까부터 모든 일을 그냥 그런가 보구나 하고 넘기고 있을 뿐이다·
와중에 세피아가 입을 열었다· 그것도 아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평가하면서 플란 실력 좀 봤겠네? 어때?”
“대표로 뽑힐만하니까 뽑혔지· 대단했어·”
“감상이 그것 뿐이야? 막 체전에서 이길 것 같다· 질 것 같다· 이런 거 모르겠어? 좀 자세히 말해봐 봐·”
“자세히····”
바이올렛의 눈동자가 천장을 향해 올라간다· 그러다 갑자기 묻는다·
“···이거 혹시 인터뷰야? 기사 나가고 그러는 거 아니지?”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거든요? 동생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언니는·”
“흐음·”
바이올렛은 잠시 고민한 후 입을 열었다·
“사실···· 마력탄을 해체한 정도로는 아이반을 이길 수 있다고 확언할 수 없거든·”
“응응· 그렇지· 그런데?”
세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올렛은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어간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 플란이라면 이길 것만 같은 느낌이 자꾸 들어·”
“오~ 그래? 처음에는 막 의심하지 않았어?”
“그건 내가 멋대로 속단한 거지· 안 그래도 반성중이야·”
언니의 말에 세피아가 빙글빙글 웃었다· 그녀는 바이올렛의 믿음이 흥미롭다·
“그런데 언니 있잖아·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뭔데·”
“다른 교수들한테 치이느라 스트레스도 잔뜩 받는 상황이고 플란이 체전에서 이길지도 확신할 수는 없잖아· 그런데도 포기는 안 하네?”
“당연히 안 하지·”
바이올렛이 머리를 헝클고는 한숨을 뱉었다·
“내가 지향하는 마법사의 태도···· 그걸 가진 건 얘가 유일해·”
“그래? 하긴 플란 보고 있으면 언니 학생 때랑 좀 비슷해·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네·”
“나 학생 때 응원해주던 교수 한 명도 없었어· 그게 지금 생각해도 서럽다· 그러니까 나라도····”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바이올렛과 세피아의 곁에 와서 섰다· 자매의 고개가 자연스레 그쪽을 향했다·
눈을 가린 검은색 앞머리· 조용히 서있는 이 여자의 정체를 자매는 잘 알고 있었다·
“미친 이거 총장님 비서잖아·”
“세피아 너 미쳤어? 당사자 앞에서·”
세피아와 바이올렛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총장 비서는 말없이 투명한 수정구 하나를 건넸다·
이 수정구의 용도는 총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 오직 하나 뿐이다· 바이올렛이 그것을 양 손으로 공손히 받아들었다·
“예 총장님· 바이올렛입니다·”
“좀 물을 게 있네요·”
그런데 세피아가 옆에서 입모양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언니 잘 대답해야 돼? 알지?’
‘가만히 있어· 정신 사나우니까·’
바이올렛도 입모양으로만 대답했다· 머리를 때릴 것처럼 한 손을 확 들어올리면서·
“슬슬 대표가 정해졌을 텐데·”
“예 총장님· 그렇습니다·”
“이기겠는지요·”
바이올렛이 제 머리를 미친 듯이 헝클었다·
마음 같아선 이길 거라고 말해버리고 싶다·
그러나 이건 자신의 믿음에 불과하다· 총장을 상대로 쉽게 할 만한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었다·
고민하는 와중 총장 코네트의 목소리가 추가로 들려왔다·
“생각·”
“예?”
“그저 생각을 들려주시지요·”
바이올렛이 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이라·
바이올렛이 하는 생각이라면 하나 뿐이다· 이내 소신을 담아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학생은 틀림없는 마법사입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무언가를 바꾸리라 봅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옆에서 지켜보던 세피아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으로 떠오른 메모지에 글자가 적힌다·
[이길지 질지 물어보면 이길지 질지로 대답을 딱 해줘야지· 무슨 대답을 그렇게 해?]
바이올렛도 손가락을 움직였다·
[몰라· 나도 정신 없었어·]
[아무 대답 없으시잖아· 이제 어떡할래?]
[모른다고·]
그런데 그 순간 코네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가 때 상황 기록하셨겠지요·”
바이올렛의 대답이 거의 동시에 튀어나갔다·
“물론입니다· 시각적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참하시고 회의실에서 뵙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수정구의 빛이 사라졌다·
◈
바이올렛은 조심스레 눈동자를 굴렸다·
코네트를 필두로 해서 마법 학부의 교수들이 플란의 평가를 지켜보고 있다·
“····”
코네트가 다시 한번 시각적 기록을 재생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회의 분위기는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소환 계열 교수 브로디가 결사반대했던 그날의 회의처럼 모두가 바이올렛을 향해 고까운 시선을 보내는 채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각적 기록의 재생이 끝났다·
코네트는 턱을 괴고서 고민한다· 도무지 속을 읽어낼 수가 없는 무표정으로·
바이올렛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도 부족한가?
양에 안 차셨나? 분노하셨나?
그렇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실제로 아까 코네트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었다·
탁·
탁· 탁· 탁·
탁· 탁· 탁· 탁· 탁····
코네트가 계속해서 손가락을 튕겼다· 플란이 엘리시스에게 되묻는 장면이 반복해서 재생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코네트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동시에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판을 좀 키워볼까요·”
별안간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니 아니지·”
마지막에는 코네트가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아주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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