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6
“총장님? 그게 무슨····”
입을 연 것은 브로디 뿐이지만 다른 교수들의 얼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얼굴·
그러나 코네트의 태도는 여전히 차분했다·
“브로디 교수· 지금 전체적인 바깥 여론이 어떻습니까·”
“예 총장님· 제가 준비했습니다·”
브로디가 허공에 무언가를 펼치기 시작했다·
[ 아이반의 완벽한 서사··· ‘따놓은 승리’ ]
[ 역시 아이반··· 현재 성적 무 감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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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이 아이반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고 메르헨일보에서도 이런 기사만 우후죽순 쏟아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코네트는 느긋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에는 마법 학부 내부의 여론만을 묻겠습니다· 오드리 교수·”
“의외로 팽팽합니다· 일전에 붙었던 대자보의 영향이 워낙 커서 한번 전력을 다해보자고 목소리 높이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오드리가 대답한 후 바이올렛도 용기를 냈다·
“변화를 두려워 말라는 문구에 감화받은 학생들이 꽤 많습니다· 게다가 보셨다시피 플란 학생의 능력도 나름 출중····”
“그런데 총장님· 이건 학생들 여론이라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어리고 감정에 충실한 것들이 뭘 얼마나 알겠습니까?”
브로디가 끼어들어서 바이올렛의 말을 잘라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교차하는 사이 코네트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체전 경기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다들 아시겠지요·”
“이틀· 고작 이틀밖에 안 남았습니다·”
브로디의 말에 코네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예· 판을 키우기에는 충분합니다·”
“아니···· 총장님?”
“메르헨일보 측과 이야기해서 마법 학부 측의 기사도 내보내는 것으로 하지요· 플란 학생이 대표가 되었다는 것 승리를 자신한다는 것···· 그 전부를 내보낼 겁니다·”
서서히 풀려가던 교수들의 얼굴이 다시 한번 창백해졌다· 줄곧 구석에 있던 교수 한 명이 끼어들었다·
“마법 학부의 승리를 자신하는 내용을 내보내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자극적인 건 안 됩니다·”
“자극적이어야 더 많이들 관심을 갖겠지요?”
코네트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간다·
“불만이든 응원이든 그 모든 논란이 결국 관심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대표 학생이 기량을 보여준다면···· 얼마나 재미있겠습니까·”
“총장님· 절대로 안 됩니다!”
브로디가 외쳤다·
“도발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기사 학부 입장에서 전투 종목? 그냥 가볍게 스쳐 가는 경기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자극적인 기사가 나간 뒤에는 이를 악물고 이기려 할 겁니다!”
옆에 앉아있던 다른 교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입니까? 변화를 원한다던 학생들 입장에서도 경기가 패배하면 ‘그럼 그렇지· 우리는 안 돼·’ 하고 더더욱 좌절하게 됩니다· 이런 건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연성’ 담당 교수· 켈린 교수도 합세했다·
“판이 커지면 학생에게도 부담이 어마어마할 겁니다· 출중한 능력을 배로 발휘해도 이길까 말까인데 부담감에 짓눌린 채로 기량이 얼마나 나오겠습니까·”
“이런 제 눈에만 보였습니까?”
코네트가 시각적 자료로 시선을 던졌다· 그것만으로도 시각적 자료의 다양한 부분이 재생되었다·
플란이 손끝으로 마력탄을 해체하는 장면 그리고 엘리시스에게 당당하게 되묻는 장면·
그것들이 또 한 번 재생된 후 회의실의 무게는 한 층 더 무거워져 있었다·
“저는 이 학생에게서 진정한 마법사의 재능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것을 가장 먼저 깬 것은 브로디였다·
“···고작 마력탄 하나 해체했다고 아이반을 이길 수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비약입니다·”
“이봐요· 브로디 교수· 총장님께서는 재능을 확인하셨다고만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실제로 재능이 훌륭하죠· 도대체 어떤 1학년이 저렇게 할 수 있나요?”
이번에는 바이올렛이 브로디의 꼬리를 물었다·
브로디가 못마땅하다는 듯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 재능 높이 사서 판 키웠다고 칩시다· 만약에 그래서 지면 바이올렛 교수 당신이 책임질 거야?”
책임·
그 말에 다른 교수들의 시선이 하나둘 바이올렛을 향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모두의 시선이 단 한 명을 향해 고정되었을 때 바이올렛은 용기를 냈다·
“···좋아요· 애초에 제가 시작한 일이니 제가 책임지죠·”
바이올렛이 품속으로부터 종이봉투 한 장을 꺼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른 교수들은 그게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사직서?”
브로디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중얼거렸다· 바이올렛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네· 이번 일로 마법 학부가 피해를 보게 된다면 제가 전부 총대를 메겠습니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세태와 야합하며 펼치지 못했던 야망을 그간 의심했던 학생을 향한 속죄를 진정한 마법사가 되기 위한 첫걸음을····
그녀는 이런 식으로라도 시도하고 싶었다·
“이야 감동적이네· 감동적이야·”
브로디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감동적이긴 한데 바이올렛 교수· 자기 주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 아닌가?”
“···뭐라고요?”
“그쪽 하나가 총대를 멘다고 해서 어떻게 마법 학부를 향한 피해가 다 메꿔지겠어? 그거 자의식 과잉이야 이 사람아·”
그런데 그때·
“그럼 이렇게 해야겠습니다·”
코네트가 입을 열었다· 사뭇 서늘해진 그 목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쏠린다·
“코네트 에이버리· 마법 학부 총장인 제가 직접 총대를 메는 것으로 하지요·”
“···!”
회의장 전체가 소리 없이 들썩였다·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지만 코네트의 얼굴에 장난기는 조금도 없었다·
“회의는 여기까지· 다들 그리 알고 돌아가십시오·”
◈
체전까지 고작 하루가 남은 오늘 나는 종일 훈련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오늘도 역시 미리 정해두었던 훈련 양을 소화해냈다·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거울에 비치는 나는 이미 땀범벅이었다·
그러나 뒤처리는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탁·
손가락을 튕기자 겉면에 흐르던 수분이 하나로 뭉쳐져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이는 원소 반응과 염 동의 동시 활용이다·
훈련마다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인 덕분일까 이제 효과가 제법 선명하다·
온몸의 근육 윤곽이 이제 본인인 내가 보기에도 차이를 갖추기 시작했다· 마나의 총량 역시 제법 실전성을 갖추게 된 참이다·
헤라도 슬슬 길들었으니 아티팩트까지 곁들이기 시작한다면 곧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을 듯하다·
훈련을 마무리하며 나는 메르헨 일보의 신문 몇 개를 집어 들었다·
[ 체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선다· ]
*코네트 마법 학부 총장 인터뷰
*코네트는 회의 결과 “기사 학부를 상대로 패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마법 학부 1학년 전투 종목 대표는 플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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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신문을 접으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런 기사들이 쏟아진 지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지만 마법 학부 내부에서의 반응은 굉장히 뜨겁다·
토론의 장이 되어버린 트리비아의 게시판만 보아도 그렇다·
[ 선전포고했는데 대표가 평민 학생···· 망신도 이런 망신이 있나? ]
[ 기사 학부에서 이미 종일 조롱 중 ]
[ 뭐라도 해보는 게 낫잖아 그래도 ]
[ 이거 대표 학생 의사는 반영 된 건가? 일부러 학생 엿먹이려고 이런 건가 싶은데 ]
원래 마법학부는 체전을 앞두었을 때마다 쥐 죽은 듯 고요했다고 하던데·
현재는 체전에 관해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졌고 온종일 그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학생들까지도 생겨났다·
마법 학부 전체의 피해로 번질까 봐 우려하는 마음 그래도 해보자는 용기 이변이 있기를 바라는 희망····
그 전부가 뒤섞인 혼란이 내게는 더없는 길조(吉兆)다·
“···바빠지겠군·”
의심을 해소하면 확신이 된다는 것이 명제고 나는 이번에 그 명제를 증명한다·
경기가 끝나면 모두가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훈련장을 나선 순간·
“아· 드디어 찾았네·”
자신감 넘치는 쾌활한 목소리가 뒤로부터 들려왔다·
이내 누군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신비의 협곡 단장 엘리시스였다·
“나 알지?”
대답 대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안다· 한 번 본 인물은 웬만하면 기억하니까·
“용건이 뭡니까·”
“줄 게 있어서·”
그녀는 내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
보석처럼 푸른 코팅이 되어있는 그 명함은 척 보기에도 절대 평범하지 않다·
[ ‘신비의 협곡’ 단장 엘리시스 ]
엘리시스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나중에 사적으로 한번 보고 싶은데· 괜찮지?”
나는 엘리시스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보라색의 눈동자는 답지 않게 차분하고 신비하다·
“거절합니다·”
“완전히 사적인 건 아닌가? 신비의 협곡에 관한 이야기도 조금···· 응?”
신비의 협곡에 대해서 따로 조사해보았고 그들이 이 세계에서는 나름 대단한 단체라는 것 역시 인지했다·
그러나·
평가 당일 엘리시스가 임의로 안전장치를 해제했던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좀 듣고 거절하지 그래? 다른 애들은 매일같이 꿈꾸는 상황이야 이거·”
엘리시스가 표정을 구겼다·
이 여자는 호기심이 생길 때마다 나를 증명시키려 들겠지·
수동적인 장난감으로 전락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증명은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서 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니까·
무엇보다도····
‘직접 만들 것이다·’
1위 길드에 가입하는 것은 관심이 없다· 직접 하나를 만들어서 키우는 것이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엘리시스가 재차 입을 열었다·
“플란 아마 스스로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네 재능이 좀 훌륭한 편이지·”
말을 이어가는 그녀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그럼 여기서 질문 천재라고 불리던 녀석들이 서서히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내가 몇 번이나 봤을 것 같냐?”
“얼마나 많이 보셨습니까·”
나보다 많이 봤을 것 같지는 않은데·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영광인 순간이라지만 내게는 썩 건방진 상황일 뿐이다·
“수도 없이 많이 봤지· 그냥 지금 받아둬· 너 같은 애들한테는 제대로 된 멘토가 필요한 법이니까·”
“필요 없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명함을 도로 내밀었다· 엘리시스의 눈이 가늘어진다·
“하···· 그래? 내일 경기 똑똑히 지켜볼게·”
엘리시스가 조금 화가 난 표정으로 자신의 명함을 받아들었다·
“만약 패배하면···· 후회하게 될 걸 · 네 몸값이 가장 높았던 순간이 바로 지금일 테니까·”
“무슨·”
엘리시스를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그녀가 당황했든 불쾌했든 신경 쓰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웃음이 새었다·
“···지금이 가장 헐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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