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1
휘이익ㅡ
아이반의 전투 불능에 따른 기권 심판이 곧바로 호각을 불어 경기의 끝을 알렸다·
소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대표 중 어느 쪽이 치료소로 송환되는 일 역시 없었다· 그러나 과정은 무엇보다도 격렬했기에 관객석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와····”
그 적막을 누군가의 작은 탄성이 깨트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마법 학부 측에서 한 명 두 명···· 일어서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파도의 물결처럼 퍼져나가 이내 거대한 해일을 만들어낸다·
와아아아─!
뒤늦게 함성의 해일이 플란을 덮친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경기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플란 플란 학생!”
세피아· 그녀가 다수의 기자를 동반하고서 경기장 내부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스 스 스 승리!”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플란의 지척까지 도달했다·
“승리했네요! 지 진짜로 승리했어요!”
“····”
가까운 거리에서 소리를 쳐대니 자연스레 플란의 표정이 굳었다· 세피아가 가방으로부터 종이 뭉치를 한가득 꺼냈다·
“검마태제의 1종목에서 마법 학부가 승리했네요! 어떡하지 물어볼 게 너무 많아! 아 그래· 이것부터···· 소환 마법은 언제 익혔던 건가요?”
“몇십년은 된 것 같은데·”
세피아가 화들짝 고개를 뒤로 젖혔다·
플란은 내뱉은 뒤에야 본인이 말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며 몇십년이요? 태어남과 동시에 소환 계열을 깨우쳤다· 그런 뜻이에요?”
“농담입니다·”
그녀가 끓는 솥에 들어간 개구리처럼 펄쩍 뛰었다·
“아 정말! 놀랐잖아요! 나도 모르게 믿을 뻔했어!”
“가보겠습니다·”
플란은 생각할 것이 많았고 생각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은 더더욱 많았다·
우선 첫 번째로 아이반의 마지막 일격에 담겨있는 회로는 처음 보는 형태였다·
그것이 과연 고유한지 아닌지· 그건 연구해보아야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진정으로 고유한 것이라면···· 여러 마법을 활용함으로써 그것과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을까·
낼 수 있다면 어떻게· 탐구해볼 것이 많았다·
그런데 세피아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잠깐만 잠깐만요 플란 학생! 전통은 따라야죠!”
“···전통?”
“네· 전통!”
세피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플란에게 막대 하나를 내밀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가득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소감 한 말씀 하셔야죠· 이것보다 더 유구한 전통이 있을까?”
플란은 막대를 물끄러미 살폈다·
구조 자체는 단순하다· 소리를 증폭시키는 효과를 가진 것이 전부인 듯한데·
세피아가 신나서 입을 열었다·
“어서 한 말씀 해주세요· 모두가 플란 학생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걸요? 저도 포함이에요·”
“소감이라····”
관중석을 새삼 빙 둘러보았다·
여전히 마법 학부 학생들은 기쁨을 토해내는 중이다·
심지어 서로 부둥켜안은 학생들도 몇몇 보일 정도로 경기장 내부의 환호성은 도무지 줄어들지를 않는다·
저 멀리서 잔불의 기사 스칼렛 역시 플란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꼴을 보고 있노라면 없던 소감도 생겨난다·
플란이 옷 소매에 대고 막대를 거칠게 긁었다·
지지지지직ㅡ!
즉시 경기장 내부에 거친 소음이 일었다· 관중석의 학생들이 저마다 표정을 찡그리며 귀를 막는다·
다시 적막을 되찾은 경기장의 한가운데에서 플란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뭐가 그리 기쁘지·”
모두의 얼굴에 의아함이 번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손뼉을 치고 저녁에 달이 뜨면 환호성을 지르나·”
경기장이 조용해졌다· 플란의 목소리는 묵직하게 울려퍼진다·
“어린 아이도 그러지는 않을 텐데 하물며 마법사가·”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관중석을 주욱 훑었다·
“그냥 고개 한 번 끄덕이고 그걸로 끝내라·”
담담하게 내뱉으며 플란은 유디트 가문의 스칼렛쪽으로 시선을 돌다·
스칼렛은 스스로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플란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아직 알 수가 없었다·
잔불처럼 일렁이는 스칼렛의 눈동자를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똑똑히 마주 보았다·
“마법사가 기사를 이기는 건 딱 그 정도 일이니·”
거기까지만 말하고 플란은 돌아섰다·
스칼렛이 얼마나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을지는···· 나중에 만나 직접 물을 생각이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
와아아아아악─!
공허에 가깝던 적막이 산산이 조각나며 배로 커진 환호성이 경기장을 덮쳤다·
“···?”
플란은 뒤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넋이 나간 기사 학부 학생들 더 넋이 나가서 날뛰는 마법 학부 학생들 순수한 기쁨만이 가득한 환성과 박수····
그 엄청난 파장이 오로지 플란만을 향하고 있었다·
“이해를 못 해주겠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플란은 발걸음을 떼었다·
그렇게 자리를 떠나는 와중 뒤로 기자들이 잔뜩 따라붙기 시작했다·
“자 잠깐! 플란 학생!”
“플란 학생!”
“괜찮으시다면 한 가지만 물을게요!”
어쩐지 이전 세계 생각이 나서 플란은 내딛는 발걸음에 속도를 올렸다·
◈
“····”
오드리 교수는 이 놀라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겼네요····”
그렇게 중얼거린 뒤 오드리의 시선이 총장을 향했다·
“총장님 저희가···· 이겼어요!”
“예· 똑똑히 보았습니다·”
코네트는 흡족한 표정을 짓고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말이···· 말이 안 돼요· 총장님 플란 학생의 마법 보셨나요?”
“마법적인 이야기는 아껴두었다 회의 때 하지요· 우선은····”
코네트가 눈빛으로 다른 교수들을 가리켰다· 오드리의 시선이 급하게 그것을 쫓는다·
“···저것부터 보십시오·”
그 시선의 끝에는 브로디를 비롯해 이번 일을 격렬하게 반대했던 교수들이 있었다·
전부 똑같은 표정이었다·
어처구니없어서 할 말을 잃은 표정·
“다들 완전히 넋이 나갔네요· 하긴 그럴 만도 하죠·”
“이 모든 풍경을 온전히 감상하지요· 이 자리에서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이 순간 자체를 더 깊게 느끼려는 듯 코네트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오늘 회의 때는 바이올렛 교수가 할 말이 참 많겠습니다· 벌써부터 기다려지는군요· 어라 그런데····”
코네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교수석 자리 하나가 비어있는 채였다·
“···바이올렛 교수는 왜 자리에 없지요?”
“아 그거라면···· 저기····”
오드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끝으로 관중석 앞쪽을 가리켰다·
저 멀리 관중석 맨 앞줄·
“····”
벗은 고깔모자를 손으로 꼭 쥔 채 바이올렛은 더없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저녁 시간 마법 학부의 1학년 전용 식당·
쾅!
학생 한 명이 식당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 소리가 워낙 컸기에 수다 소리가 일시에 잦아들며 온 시선이 그를 향했다·
“후우 후우우····”
소년은 숨을 헐떡거렸다·
얼굴이 온통 땀범벅이었지만 그것을 닦을 생각조차 안 한다· 양쪽 볼이 붉어져 있는 것을 보아하니 꽤 취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씨익·
소년이 이를 환하게 드러내며 웃는다· 빛나는 미소로 주변을 둘러본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검마 태제 1종목 전투에서····”
살짝 뜸을 들인 그가 품속에서 여러 번 접혀있는 종이를 꺼낸다·
그것을 염동으로 한 번에 확 펼치며 선언한다·
[ 전투 종목 대승 거둔 마법 학부 20년 만에 승리 ]
“마법 학부가 승리했습니다!”
동시에 폭발과도 같은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이야아아아아아아앗!”
베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만세를 불렀다· 덕분에 옆에 있던 루이스는 엎어진 식판을 모자처럼 뒤집어썼다·
루이스는 베키를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다·
늘상 다른 학생들 눈치를 살피는 녀석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렇게까지 기뻐하는 모습은 또 처음 본다·
“하하하····”
하지만 음식을 뒤집어써도 웃음이 먼저 난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화를 낼까·
마법사로 태어나는 순간 기사에게 꿇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으며 자란다·
이 길을 평생 걸어도 어떤 이들을 넘을 수 없다는 건 얼마나 막막한 감정인가·
그러나 마법 학부가 승리했다· 어둡고 좁았던 공간이 순간적으로 탁 트이면서 밝아진 것이다·
처음으로 느껴본 빛이란 더없이 밝고 따스했다· 이 감상이 다른 학생들이라고 해서 다를까·
플란·
이 모든 것이 순전히 그 녀석 하나 때문에 일어났다·
‘아이반의 검술이었지· 그건·’
마법사는 마법 기사는 검술·
이는 그동안 마법사와 기사의 차이를 가장 뚜렷하게 설명할 수 있는 요소였다·
서로의 차이점이 명확하기에 기사와 마법사는 다른 길을 걷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데····
‘기사 학부 쪽도 완전히 뒤집어졌을 테고·’
플란이 이번에 보여준 것·
아이반의 검술을 똑같이 복제해낸 것은 마법뿐만 아니라 검술의 근간까지도 뒤흔드는 불씨가 될 것이다·
도화선에 불을 붙여버린 플란이 루이스는 더없이 신기하고 흥미롭다·
어떤 폭발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규모가 거대할 것이라는 것 하나 정도는 확실했다·
“만세! 그 근데· 우리 어떻게 이긴 거야? 사실 지금도 어떻게 이겼는지 모르겠어·”
“검술···· 복제한거지? 그런게 돼? 아티팩트나 스크롤도 없었는데·”
“심지어 상대는 아이반이었잖아· 1학년의 불세출 아이반!”
식당은 아까부터 줄곧 이 분위기다·
승리에 대한 기쁨과 플란을 향한 의문이 뒤섞여 태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교수들은 교수들 나름대로 난리가 나서 오늘만큼은 학생들을 진정시킬 만한 인물도 없었다·
그런 요소들이 하나하나 갖춰진 덕분에 식사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한 명 배를 채우고 있는 학생이 없었다·
베키는 플란 생각을 하다가 문득 숟가락을 쥐었다·
그걸 입에 가까이 대고서 한 손을 허리춤에 얹었다· 아까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냥 고개 한 번 끄덕이고 그걸로 끝내랏·”
나름 혼잣말이라고 조용히 말한 건데 그게 주변에 들릴 정도는 되었던 모양이다·
옆 여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베키! 하나도 안 똑같아!”
“와~ 방금 그거 설마 플란 따라 한 거야?”
베키의 어설픈 성대모사에도 모두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뭐 뭐야· 들렸어?”
소녀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평민 여학생들 몇 명은 아예 인형을 붙잡듯 베키를 움켜쥐었다·
“얘 얘들아···· 사 살살····”
“이겼어! 마법 학부가 이겼다고! 어떻게 이겼는지는 진짜 하나도 모르겠는데! 이겼어!”
“케···· 케엑····”
베키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지만 여학생들의 포옹은 오히려 격렬해져만 갔다·
그러나 모두가 기뻐하는 이 순간에도 하나 되지 못하고 표정을 구긴 인물이 있었다·
묵묵히 음식만 깨작거리는 소녀 헤일리였다·
“헤일리· 괜찮아?”
루이스가 제복에 묻은 음식을 닦아내며 말을 붙여온다· 헤일리가 그제야 급하게 표정을 폈다·
“아 응?”
“어디 아픈가 해서· 아까부터 표정이 너무 안 좋고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있는 것 같길래·”
“아아····”
헤일리가 젓가락을 내려놓고서 손으로 자기 가슴을 꾹 눌렀다·
뭐라 형용할 수 없다·
단어를 조합해서 말할 수 없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이 그녀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속이 좀 안 좋네·”
“이런 하필 이런 때에 아파? 아쉽겠다· 이렇게 좋은 날에·”
“···좋은 날?”
“응· 좋은 날이지· 플란이 아이반을 상대로 이겼잖아·”
루이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순수하게 이 상황을 기뻐하고 있었다·
플란이 아이반을 상대로 이겼다라·
속으로 소리 없이 되뇌면서도 헤일리는 그 사실이 믿기질 않는다· 직접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도 말이다·
“저기 루이스·”
답답한 속을 어찌하지도 못한 채 헤일리가 입을 열었다·
“루이스는 괜찮아? 원래라면 루이스가 대표였잖아·”
“응· 괜찮은데?”
루이스가 너무나도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경기까지 보니까 확실히 알겠더라· 대표에는 플란이 적격이었어·”
그 말이 헤일리의 머리를 강타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대단한 것 같아· 대표 선출 기준을 바꿔보자고 제안한 것도 본인이고 마지막에는 결과로 증명까지 했잖아·”
“····”
“안 그래도 나중에 시간 되면 마법 좀 알려달라고 부탁하려고· 대단한 녀석 옆에서 이것저것 부지런히 배워야지·”
헤일리는 어느샌가 넋 놓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언가를 버리고 루이스에게 다가갔는데 그 무언가가 루이스보다 대단한 것이었다니·
ㅡ너 역시 그래야 할 것이다·
문득 플란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 말의 의미가 이제서야 서서히 이해된다·
플란을 떠올리면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하지 마주치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지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갑자기 그 모든 것이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 먼저 일어날게·”
“아 그래· 속 안 좋다며· 얼른 쉬어·”
루이스에게 인사조차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헤일리는 도망치듯 식당을 벗어났다·
걷고· 또 걷다가·
마침내 도서관 앞을 지나치는 그 순간·
“···!”
헤일리는 저도 모르게 손끝을 떨었다· 마법 학부를 뒤집어놓은 장본인이 눈에 띄었기 때문에·
플란·
가만히 선 채로 그는 서적을 살피는 중이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책을 훑는 것이 고작이다만 그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심지어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는 작고 단순한 행동 하나하나에도 기품과 격조가 가득했다·
붉은 눈동자 역시 더없이 진중하고 깊다·
검마 태제의 태풍이 마법 학부를 온통 휩쓸어버리는 중이지만 정작 원인이 된 그는 태연하고 고고하다·
마치 태풍의 눈처럼·
아니 아니야·
이럴 리가 없다·
이게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거다·
‘넌 플란이잖아·’
헤일리가 아는 플란은 이렇지 못했다·
이럴 수가 없었다·
플란이 책장을 한 번 넘길 때마다 혹시 이쪽을 보려는건가 싶어서 헤일리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다·
차라리 이쪽에서 먼저 인사할까 가벼운 축하의 말이라도 건넬까 일단 다가가서 말 한 번 걸어보는 정도는····
헤일리의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 같은 와중에도·
“····”
묵묵히 플란은 책장만 넘길 뿐이다·
헤일리를 향해 오는 관심은 없었다· 아주 조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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