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8
“메르헨 아카데미의 학생 여러분· 환영합니다·”
마차에서 내리니 이미 저녁이었다· 회색 로브 차림의 마법사 한 명이 우리를 반긴다·
자연을 머금은 연둣빛 머리카락과 뾰족한 귀· 정순함이 담긴 금빛 눈동자까지 그녀는 누가 봐도 엘프다·
“여러분의 중간 평가와 사포어 관람을 일임받았습니다· 세레나입니다·”
그녀가 손끝으로 로브 가슴팍에 꽂혀있는 황금색 핀 하나를 가리켰다· 아마 사포어 관계자라는 의미일 터·
“다들 잘 다녀와요· 절대 사고치지말고·”
바이올렛은 이 배웅 하나를 위해 구태여 여기까지 함께했다·
덕분에 바이올렛의 우려섞인 경고를 세 번 정도 더 듣고서 우리는 세레나의 뒤를 쫓아 거대한 입구 안으로 향했다·
“와···· 이렇게 넓어?”
옆에서 나란히 걷던 베키가 감탄을 흘렸다·
흘릴만 하다· 육안으로 직접 살펴보니 사포어를 ‘지역’이라 칭하는 이들이 왜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미술품 전시 박람 호텔 잡화점 마법도구 상점···· 다양한 것들이 각기의 커다란 구역을 가진채로 이곳에 존재한다·
겉보기에는 정말로 하나의 마을 수준이었다·
이것저것 살피는 사이 우리는 넓은 광장에 도착했다·
세레나가 학생들에게 명찰을 하나씩 배부했다·
[ ]
명찰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다· 흰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유시아는 자신의 것과 내 것을 몇 번이나 살핀 뒤 고개를 갸웃거렸다·
“엇 플란 경! 저희 명찰에 아무것도 안 적혀있습니다!”
그러나 명찰이 공백 상태인 것은 우리 뿐만이 아니었다· A등급 학생 모두가 똑같은 형태의 명찰을 지급받은 채였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아 아얏!”
파지직 하고 스파크가 튀더니 여학생 한 명이 의자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얘가 왜 이래? 저 저기요!”
“뭐야? 가만히 앉아있던 애가 갑자기?”
다른 여학생 두 명이 곧바로 쓰러진 학생을 부축하려했다· 정작 당사자는 미동조차 않는다·
그런데 나는 저 학생이 기절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나도모르게 쯧 소리를 내며 혀를 찼다·
“그러게 왜 함부로 손을 대서·”
“···?”
곁에 있던 트릭시가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큰일입니다···· 기절을 해버리다니·”
“다행인 거다· 원래라면 기절로 안 끝날 일이니까·”
접촉하면 안 되는 물건에 접촉했고 그래서 기절하여 쓰러졌다· 단순하고도 명료한 이유다·
“다들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세레나가 입을 열었다· 동시에 쓰러져있던 의자가 세레나를 향해 휙 비행한다·
“우선 명찰을 달아주세요· 문제 없이 배부되었다면 여러분은 백색의 명찰을 받으셨을 겁니다·”
허공으로 떠오른 의자가 회전한다· 안장 부분이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각도에서 행동을 멈추었다·
엉덩이가 닿는 부분에는 붉은 명찰이 붙어있었다·
“마탑에서 신체 검사를 받으셨었죠· 여러분 중 최소치의 마력을 기준 삼아 박람회 내부의 물건들을 전부 분류해둔 상태입니다·”
몇 번을 강조해도 아깝지 않은 이야기라는 듯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의자를 두드렸다·
“색이 다른 명찰이 붙어있는 물건에는 절대로 접촉하시면 안 됩니다· 기절은 운이 좋은 편이라는 걸 명심하십시오· 만약 운이 나쁘면····”
세레나의 시선이 기절하여 쓰러진 여학생을 향했다·
그러자 주변 녀석들 몇 명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운이 좋은 수준이 이 정도면 운이 나빠졌을 때는 무슨 일이 생기는걸까· 이 판단이 어려운 학생은 없었으리라·
그때쯤 유시아가 내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플란 경! 역시 플란 경입니다! 전부 알고 계셨습니까?”
트릭시 역시 나를 미묘한 눈빛으로 응시해온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여러분들이 지내실 곳은 ‘초행’ 구역에 불과합니다만···· 사포어의 이상 현상에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점은 책자를 참조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세레나는 학생들에게 책자를 배부했다·
염동의 보조를 받은 책자들이 학생들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날아든다·
◎ 미술품에 관해 질문하는 여성이 나타나면 절대로 대답해서는 안 됩니다· 사포어는 작품 설명을 하단에 자체적으로 첨부하고 있습니다·
◎ 바닥에 놓여있는 마법 도구에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 사포어는 물건을 바닥에 두지 않습니다·
◎ 마법 도구에 잘못 손을 대서 도움을 받을 일이 생겼다면 반드시 세 번 째로 나타난 인물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 문득 서 계신 곳이 사포어가 아닌 것 같다면 눈을 감고 귀를 막아주십시오· 누군가가 등을 네 번 두드릴 때까지 유지합니다·
◎ 짝이 15분 이상 보이지 않다가 나타나면 무시하셔야 합니다· 그건 당신의 짝이 아닙니다·
◎ 호텔은 예외 구역입니다· 이상 현상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무섭게·”
“호텔에만 있을까····”
그들에게는 생소할만도 하다·
···그러나 내게는 익숙한 조항들이다·
온갖 마법 도구들이 뒤섞여있는 공간에서는 위와 같은 ‘이상 현상’이 당연하다는 듯 발생한다· 물건들의 강한 마력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한편 세레나가 허공에 투명한 어항을 생성해냈다· 안에는 두 번 접힌 종이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수칙만 잘 준수하면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표정은 조금도 펴지지 않았다· 세레나가 말을 잇는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사포어 내에서는 2인 1조로 움직이게 될겁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조를 추첨하겠습니다·”
추첨은 염동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마무리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내일 하루는 자유 관람입니다· 지정된 짝과 함께 사포어를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세레나가 염동으로 호텔 열쇠를 배부했다· 나는 604호다·
누구와 짝이 되었는지는 굳이 확인하지도 않았다· 호텔로 향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린 순간·
불현듯 심상치 않은 기감이 느껴졌다·
“어맛!”
동시에 높고 가냘픈 비명이 귓전을 때렸다·
로브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나와 부딪혔고 심지어 그녀는 내 어깨를 장갑낀 손으로 꽉 쥐기까지 했다·
나는 어깨를 털어내며 드러난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은색으로 빛나는 머리칼과 뾰족한 귀 연분홍빛의 눈동자까지···· 그녀도 엘프인 듯 했다·
느껴지는 기운이 영 심상찮다·
“아야야····”
그녀는 미간을 좁힌 채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우와 당신 도대체 뭐에요?”
무엇에 관해서 묻는거지· 확실한 것은 그녀는 지금 내게 따져묻고 있지 않다·
오히려 기쁜듯한 반응· 내가 자신의 발등을 밟았다는 사실에 관한 반응치고는 위화감이 크다·
아니 아니지· 애초에 사과는 오히려 내가 받아야한다·
나는 그녀의 기척을 느꼈고 확실하게 몸을 비틀어 피했으나·
···그녀는 굳이 나와 몸을 부딪혔다· 다분한 의도를 담아서·
상대를 조금 더 자세히 살피려는데 세레나가 소리치며 다가왔다·
“학회장님!”
학회장이라는 말에 모두의 시선이 급속도로 몰렸다·
학회장이라는 말을 듣고나니 심상치 않았던 마력의 기감이 비로소 이해 된다· 밀도 높게 응축되어있는 마나가 제법 훌륭하다·
학회장의 눈꼬리가 짙고 매력적인 호선을 그린다·
“에고 멋지게 등장하는 데에는 완전히 실패해버렸네요· 다들 반갑습니다~”
“세상에 괜찮으세요?”
세레나가 급하게 학회장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었다·
학회장이 학생들을 지나치며 걷는 와중 세레나가 소리쳤다·
“여러분들· 이 분은 사포어의 ‘초행’구역을 담당하신 슈시아 학회장님 이십니다!”
하나 둘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학생들을 향해서 슈시아가 살갑게 웃어주었다·
“다들 좋은 관람 되세요~ 내일 하루는 자유죠? 즐겨!”
나는 티 없이 맑아보이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돌아섰다·
슈시아·
저건 그녀의 진정한 이름이 아닐 것이다·
◈
다음날 아침 나는 개운함을 느끼며 기상했다·
사포어의 호텔 시설은 그럭저럭 쓸만했다·
깔끔한 가구와 푹신한 침대 그리고 트리비아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 적어도 양질의 수면을 취할 정도는 되었다·
[ *가르침 경매 ]
[ ▶ 저는 사포어에 왔어용! ㅎㅅㅎ ]
[ ▶ 좋은 구경 많이 하고 갈게용! ]
[ *트릭시 폰 프리츠 ]
[ ▶ 우리 짝이던데· ]
[ ▶ 늦잠 자기만 해봐· ]
[ ▶ 난 말했어· ]
“···혼자서 뭐하나·”
트릭시를 멍청하다고 표현해서는 안 되겠지· 그녀는 내 정체를 모를 뿐이니까·
오늘 하루 동안은 사포어의 ‘자유 관람’이 가능하다· 따라서 마법 도구들을 가리지 않고 전부 살필 생각이다·
그런데 호텔 복도로 나와보니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았다·
학생들이 어수선한 분위기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그 얼굴들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것은 우려와 걱정이었다·
“아 플란 경! 좋은 아침입니다·”
와중에도 유시아만은 해맑다· 그녀가 루이스와 함께 나를 향해 다가왔다·
“저기···· 애들아·”
그리고 다음 순간 베키가 걱정에 가득 찬 얼굴로 다가왔다·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문을 연 그녀는 제 품으로부터 트리비아를 꺼냈다·
“혹시 너희들도 족보 봤어?”
내용은 몰라도 짚이는 것은 있었다· 나는 어제 아침 와있었던 익명의 연락을 떠올렸다·
루이스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안 봤지만 들은 건 있지· 다들 그 이야기 중이더라고·”
“저도 들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셋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대답을 대신했다·
“어···· 그래? 플란은 몰라? 자유 관람으로 방심을 유도한 다음 만들어진 마수를 푼다는 이야기가 돌아서·”
베키가 루이스와 유시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거 진짜일까?”
“선배 몇 명한테 물어봤는데 본인들도 그런 식으로 중간 평가를 치렀다고 하긴 하더라· 일리는 있어·”
“그래? 그럼 진짜 족보나 다름없네?”
루이스의 말에 베키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와···· 다행이다· 이거 몰랐으면 난 그자리에서 심장 마비야·”
“고의적으로 돌발 상황을 만든 다음 대처 능력을 평가하는건 나름 흔하지? 물론 난이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루이스와 베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유시아가 문득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런데 습격당하면 죽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에이···· 절대로 안 죽지·”
베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인조적으로 만들어진 마수들은 다 마법이 걸려있거든· 평가하다가 학생이 죽으면 큰일이잖아·”
“아하 그런 겁니까!”
그렇게 대화하는 셋의 얼굴에는 이렇다 할 부담이 그다지 없었다·
하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 평가 내용을 이미 아는데 무엇이 두려울까·
그렇게 느껴주기에 나는 오히려 즐겁다·
─그들의 중간 평가에 착안하여 스며들었습니다·
혈귀로부터 얻어낸 정보가 아직도 귓가에는 생생하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혈귀들이 어떤 식으로 스며들었을지도 퍼즐 조각처럼 자연스레 맞추어진다·
습격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카데미에서 만들어낸 마수가 등장하지는 않겠지·
그것 중 일부는 진짜 혈귀일 것이다· 혹은 전부가 그러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주 적절하다·
흡족스러움이 표정으로 드러난다·
무릇 마법사라면 이런 환경에서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도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되리라 보장한다·
‘겨우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이지·’
1학년인 아이반을 꺾어놓은 것만으로는 마법 학부와 기사 학부의 인식이 완전히 뒤집어지지 않는다·
아니 이 상태에서 멈춘다면 오히려 위험하다·
기사 학부 입장에서는 운이 안 좋았던 하루 마법 학부 입장에서는 운이 좋았던 하루·
고작 그 정도로 마무리된다· 이는 필연에 가깝다·
‘그러나·’
토벌제·
기사 학부의 전유물로 토해온 토벌제· 그곳에서 마법 학부가 승리를 거머쥔다면···· 그때는 기사들도 자신의 근간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으리라·
토벌제는 4명이서 한 조·
나를 제외한 세 명을 빠르게 성장시켜야하는 참이었는데 지금같은 상황은 내게 오히려 희소식이다·
인조적인 마물보단 혈귀가 성장에 낫다· 무조건·
유시아가 밝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플란 경~ 그나저나 오늘 관람이 기대됩니다· 야광 퍼즐보다 더 재미있는게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있다· 장담하지·”
밤에 야광보다 더 멋지게 빛나는 거· 그게 혈귀니까·
“허억 정말입니까!”
그때 루이스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응· 있을 거야· 사포어의 이름값이 있잖아·”
“이름값?”
“응·”
루이스가 책자 하나를 펼쳤다· 책자에는 흰색 명찰이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명단에 올라가 있는 학파만 보더라도 엄청 다양하고 마법 도구와 미술품의 수는 올해가 역대급으로 많대· 그러니 하나 정도는 있을 거야·”
“그렇군요· 기대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루이스가 검지를 척 폈다·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는 것처럼·
“아직 공개되지 않은 마법 도구가 하나 있대· 엄청난 거라던데·”
“와···· 혹시 야광인거 아닙니까?”
“응 유시아· 그건 아닐 거야·”
둘의 대화를 듣던 나는 조용히 턱을 문질렀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단 하나의 마법 도구· 현재로서는 그게 혈귀가 노리는 물건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바꾸어 말해 가장 재미있을 물건이다·
불현듯 제자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ㅡ무슨···· 향수로 떡칠했나·
ㅡ오늘 남자 소개받아요·
ㅡ그렇게 마음에 드는 상대였나·
ㅡ그건 아직 몰라요· 모르니까 이러지!
요란을 떨며 들뜬 표정을 짓던 그 녀석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상대의 정보는 아직 없고 나는 지금 분명 설레하고 있으니···· 사실 제자가 표현했던 맞선과 별다른 바 없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버리든 마음에 들어서 취하든· 육안으로 직접 확인한 후 결정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지금 내가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보다 더 중한 것은 없다·
그 때 루이스가 입을 열었다·
“아무튼 플란은 좀 어때?”
“질문은 구체적으로 해라·”
“박람회든 평가든···· 긴장된다든가 그런거 없나 해서·”
그런 뜻의 질문이라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착실하게 준비될 토벌제 붉은 마나를 토대로 마법을 다루는 악인의 존재 나를 기대하게 만드는 마법 도구····
한 마디로밖에 표현되지 않는다·
“···설레는데·”
그러자 모두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심지어 베키는 혀까지 깨물었는지 제 턱을 붙잡았다·
“플란도 설렘을 느끼는구나·”
“플란 너 감정이 있었어?”
“플란 경 놀랍습니다····”
그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나는 조용히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마이에브’
···우리는 이제 만나게 될 것이다·
◈
사포어의 어느 구역 벽면 하나를 통째로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미술품이 걸려있다·
[ 혈귀 ]
작품명은 고작 두글자·
검은색의 컨버스 위로 붉은 선이 마구잡이로 그어진 그 작품을 슈시아는 가만히 올려다보는 중이다·
사포어의 천장은 유리로 되어있다· 따사로운 햇빛이 육각형 모양으로 쪼개지며 그녀를 비춘다·
훌륭한 미술품과 그것을 마주보는 우아한 엘프· 그 풍경 또한 하나의 예술이 된다· 그녀의 표정은 현재 더없이 자비로웠다·
그러다 문득 나비 한 마리가 그녀의 코 앞을 날았다·
슈시아의 시선이 나비에게 닿는다·
그 즉시 나비가 ‘틀’에 갇혔다·
사각형의 틀이 액자의 형태를 띄더니 나비를 조그만 미술품으로 바꾸어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나비는 살아있다·
열심히 날갯짓을 하고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그저 움직이는 그림으로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비는 살아있다·
아예 산 채로 박제된 것이다·
“아 학회장님· 여기에 계셨습니까?”
관계자 한 명이 슈시아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네~ 무슨 일인가요?”
“방금 막 학생들이 자유 관람에 들어갔습니다·”
“아하· 우리도 슬슬 움직여야겠네요? 중간 평가는 해야지~”
“네 그런데····”
관계자가 갑자기 말 끝을 흐렸다· 동시에 옅은 미소를 슬그머니 머금었다·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문득 학생 시절 생각이 나서요· 저도 흰색 명찰이던 시기가 있었는데···· 저렇게 풋풋하고 귀여웠을까 싶네요·”
그의 가슴팍에 달려있는 명찰은 황금 빛이다·
확실히 괄목할만한 성장이기는 했다· 슈시아가 빙그레 미소짓는다·
“풋풋하고 또 귀여웠을거에요· 분명히·”
“하하···· 감사합니다· 사설이 길었네요· 가시죠 학회장님·”
“네~”
나란히 걷기 시작한 두사람·
어느 순간 슈시아가 다시 멈추어 섰다· 그러더니 관계자를 향해 손을 내민다·
“···?”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관계자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슈시아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악수 한 번 할까요?”
“악수요? 갑자기·”
둘의 손이 맞잡아지려는 그 찰나의 순간·
파지지직─!
“악!”
엄청난 스파크가 튀며 관계자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간다·
바닥을 몇 바퀴나 구른 뒤 그가 옷매무새조차 가다듬지 않은 채로 소리쳤다·
“아이고 학회장님! 이런 장난은 좀 그만 두십시오!”
관계자는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마법 도구로 장난치실 때마다 진짜 심장이 철렁 한다니까요! 제 회로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이상하네?”
슈시아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물건에는 이상이 없는데· 하나도·”
그녀의 눈동자가 관계자를 향했다· 슈시아가 난데없이 묻는다·
“이거 학생한테 닿으면 어떻게 될까요?”
“예?”
“말한 그대로에요· 학생한테 닿았으면···· 어땠을까?”
관계자의 얼굴이 삽시간에 창백해진다·
“학회장님 학생한테는 절대 장난치시면 안 됩니다· 마나 회로가 통째로 망가질거에요·”
“그렇죠?”
슈시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그래야 정상인데·”
장갑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이 의미심장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zakuti님 항상 고맙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연참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합본으로 올립니다·
모쪼록 좋은 하루 보내시고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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