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9
“····”
짝끼리 모이게 된 다음 트릭시와 나 사이에서는 묘하게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정확히는 트릭시가 나를 조금 어색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우리는 ‘대결’을 앞둔 상황이고 심지어 마지막 대화도 그다지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진 않았으니까·
“조식·”
마침내 트릭시가 정적을 깼다· 그게 첫 마디였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홀로 돌아다니고 싶다· 내게는 나만의 계획이 있고 그녀에게는 그녀만의 계획이 있으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개인행동이 불가능하다·
◎ 짝이 15분 이상 보이지 않다가 나타나면 무시하셔야 합니다· 그건 당신의 짝이 아닙니다·
위 조항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 우리는 15분 이상 떨어져 있을 수가 없다·
고작 이상 현상 따위가 두렵지는 않다만···· 내가 아닌 트릭시가 문제다· 그녀는 휩쓸리고 말 테지·
‘뭐 이번만큼은·’
트릭시 폰 프리츠·
나는 그녀를 토벌제 후보로 점찍어 놓은 채다· 하여 위 조항에 어쩔 수 없이 어울려 줄 생각이다·
“조식 먹자고·”
그녀가 재촉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어차피 조식을 거를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출발하지·”
사포어의 지리 정도는 어젯밤 책자를 살피며 전부 파악해두었다· 이제 이 박람회장에서 내가 모르는 공간은 없다·
“잠깐만·”
트릭시가 나를 불러세우려 했다·
“레스토랑은 그쪽이 아니야·”
“따라와라·”
“안 돼·”
그러나 나는 트릭시를 무시하고서 내가 마음먹었던 방향을 쫓아 걷기 시작했다·
“···어디가·”
결국 트릭시가 내게 따라붙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재차 말했다·
“뭐 해· 그쪽은 초행 구역이 아니야·”
그건 내가 더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초행 구역밖에 더 질 좋은 식당이 있는 것을 어쩌겠는가·
나는 꿋꿋이 걷고· 트릭시는 못마땅한 얼굴로 나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간판에는 음표 하나가 적혀있는 것이 전부다· 이것이 내가 생각해두었던 식당 ‘하모니’다·
“···여기서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오늘 조식은 여기서 먹을 테니 그리 알아라·”
그때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웨이터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평범해 보이지만 가슴팍에는 황금 핀이 꽂혀있다·
“좋은 아침입니다· 신사분· 혹시 예약하셨다면 존함을 여쭈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안 했어요· 그냥 지나갈게요·”
트릭시가 나서서 대답했다· 웨이터의 시선이 자연스레 우리의 가슴팍에 붙은 흰색 명찰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의 얼굴 위로 곤란하다는 듯한 미소가 떠오른다·
“하얀 명찰은···· 죄송합니다· 유감스럽지만 손님들의 안전을 위해서 하모니 이용은 힘드실 것 같습니다·”
“아니 얼마든지 가능하다·”
웨이터의 얼굴에 곤란한 기색이 조금 더 짙어졌다· 그가 예의 바른 손짓으로 표지판 형식의 명단부를 가리킨다·
“보시다시피 명단을 작성하는 펜조차도 노란 명찰이 붙은 채라서····”
“뭐해 가자· 수칙은 준수해야지·”
트릭시가 재촉했지만 나는 말없이 손을 뻗었다·
제복 위로 붙어있는 하얀 명찰이 나를 대변하지는 못한다· 속박할 수도 없을 것이다·
손아귀에 잡힌 펜이 표지판 위에서 부드럽게 움직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트릭시와 내 이름이 적혔다·
“흠·”
[ Kaplan ]
습관적으로 움직인 손이 내 본명을 적어버렸다· 영혼에 새겨진 수준이라 이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위로 몇 줄을 그어버릴까 하다가 그냥 놔두었다· 읽기 쉬운 필기체가 아닐뿐더러 애초에 누가 보아도 상관없다·
“···!”
트릭시와 웨이터의 얼굴 위로 동시에 놀라움이 번졌다· 나는 웨이터를 향해 태연하게 되물었다·
“됐나·”
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침착하게 안내를 시작했다·
“화 확인했습니다· 입장하시죠·”
“····”
트릭시가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유유히 안으로 걸었다·
영업을 개시한 직후에 도착해서인지 우리가 거의 첫 손님이었다· 창가 쪽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레스토랑 내부를 살피며 나는 내 선택이 옳았음을 새삼 느낀다·
주인 없는 현악기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선율을 자아내고 식당의 섬세한 장식들도 하나하나 전부 고풍스럽다·
“앉지·”
“····”
자리에 앉은 나를 트릭시가 뚫어져라 바라본다·
이유야 뻔했다· 식당 테이블부터 시작해서 의자 그리고 포크 나이프 스푼···· 그 모든 것에 노란 명찰이 붙어있었으니·
따악─!
나는 손가락질을 한 번 튕겼다·
트릭시의 외부에 얇은 막을 두름으로써 그녀의 부담을 내가 받아낼 수 있도록 조치했다· 헤라가 있기에 이 정도의 마나 사용은 여유롭다·
“이제 앉아라· 괜찮으니까·”
트릭시가 수상쩍다는 눈빛을 내게 향한다· 그러나 나는 태연한 눈빛을 돌려줄 뿐이다·
이내 트릭시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아주아주 소심하게 손끝으로 의자를 콕 찌른다·
콕 콕 콕·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세 번이나 확인한 후 트릭시가 잽싸게 의자 위로 앉는다·
“···어때·”
그녀가 아주 살짝 턱을 쳐들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자기 능력 덕택에 버틴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웨이터가 메뉴판을 들고서 다가왔다·
“두 분 모두 반갑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에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나는 트릭시에게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트릭시가 샐러드만 세 개 정도 주문하기 시작했는데·
“잠깐·”
보다못해 내가 끼어들었다· 이러다간 아침 식사가 다 망쳐지게 생겼다· 내가 웨이터에게 말했다·
“일단 샐러드를 세 개 준비해라· 각기 다른 양념으로·”
나는 메뉴판에 적혀있는 양념 세 개를 정확히 짚어주었다·
“한 번에 가져오지는 말고 정확히 6분 14초 간격으로 가져오도록 해· 이해했나·”
“예· 그거면 되겠습니까?”
“그럴 리가 있나· 마지막에는 스테이크 두 개· 부위는 지금부터 짚어주겠다· 둘 다 완전히 익히도록·”
나는 고기의 부위와 양념을 천천히 짚어주었다·
“알겠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첫 손님을 모시게 되다니 하모니가 오늘은 운이 좋군요·”
미소를 머금은 웨이터가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간다·
“····”
트릭시는 조금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웨이터가 사라지자 내려앉는 침묵 트릭시가 한마디 했다·
“많이 와봤나 봐·”
“누굴 거지로 아는 건가·”
“거지잖아·”
그녀의 눈이 살짝 가늘어진다· 그러고 보니 트릭시는 나를 평민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셈 치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전 생에 비하면 지금은 거지라는 게 또 틀린 말도 아니다·
이번에는 내가 한마디 했다·
“너는 귀족의 여식이···· 주문을 그따위로 했나·”
“난 샐러드만 먹어·”
전체적인 주문 방식을 지적한 것인데 샐러드만 주문한 점을 지적당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샐러드만 주야장천 먹는 것도 이해는 어렵다· 마법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균형 잡힌 식사가 아니니까·
“다른 것도 먹지 그래·”
“안 돼· 발레를 하려면·”
“···네가?”
대결을 앞두고서 발레를 할 시간이 있나?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자포자기한 건지·
그러나 트릭시는 말뜻을 또 한 번 조금 다르게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슬그머니 붉어진다·
“왜·”
트릭시의 시선이 자신의 폭력적인 흉부로 옮겨진다· 자연스레 내 시선도 그쪽으로 옮겨졌다·
지금 보니 발레를 하기에는 다른 문제도 있었다·
“뭘 그리 무식하게 달고 다니는 건지·”
표현 그대로다· 이전 세계의 그녀도 자기 흉부에 자부심을 가졌었지만···· 저 정도로 커다랗지는 않았다·
트릭시의 얼굴이 붉어졌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무 무식? 이건 안 빠지는 살이야· 네가 뭘 알아·”
“알 필요가 없다·”
“그리고 커도 발레는 할 수 있어·”
남의 가슴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 다만 마법을 운용하는 측면에 있어서 불편하긴 할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조언했다·
“거기 마법진이라도 새겨라· 그럼 쓸모가 생기겠지·”
“너 미쳤어? 남의 가슴에 대고···!”
쯧 그냥 혀를 차고서 대화를 끝냈다·
개인적인 기호부터 시작해서 관심사까지···· 그녀와 나는 잡담조차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어떠한 대화도 없이 현악기의 선율만을 감상하던 그때 익숙한 여자가 내 눈에 띄었다·
황금빛 머리칼과 뾰족한 귀를 가진 엘프·
가슴팍에 황금 핀을 꽂고서 관계자의 모습으로 영락없이 위장해있지만 내게는 그녀의 정체가 훤히 보인다·
도서관에서 조우했던 혈귀· 그 녀석이 이곳 근방을 기웃거리는 채였다·
“아무래도 식사는 너 혼자 해야겠어·”
“···뭐?”
“신경쓰지 마라 15분 내로 올 테니·”
멍해진 트릭시를 남겨두고서 나는 레스토랑 밖으로 향했다·
혈귀 여성은 바쁘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그녀를 조용히 불러세웠다·
“이봐·”
“···!”
그녀가 소스라치게 놀라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아마 나 때문에 근방을 기웃거린 모양이다·
“잠입한 티를 못 내서 안달이구나·”
“죄 죄송합니다· 그저 마이에브님께 보고드릴 것이 있어····”
우리는 일단 후미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척 보기에도 외져서 다른 이의 발길이 닿자 않을만한 곳이었다·
“받아라·”
그녀에게 트리비아 하나를 건네주었다·
사포어에 오기 전 여분의 트리비아를 추가로 두 개 구비했다·
이 트리비아들은 순전히 혈귀들과 소통하는 용도로만 사용할 생각이다·
“앞으로는 이걸 통해서 내게 연락해라· 그 우둔한 꼬락서니를 육안으로는 도저히 못 봐주겠어·”
“그 그 그리하겠습니다····”
“이름·”
단 두 글자에 그녀의 얼굴이 한 층 더 시무룩해졌다·
“그게···· 스무 번 이상 말씀드렸는데····”
“내가 네 이름까지 일일이 기억해야 하나·”
“테 테레사입니다!”
테레사·
나는 그녀를 향해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서 보고하려던 건·”
“네· 지금부터 보고드리겠습니다·”
테레사가 침을 한 차례 꿀꺽 삼키더니 입을 열었다·
“우선 물건 위치가 확인되었습니다· ‘꿈’이라는 명칭의 미술품 자체가 하나의 마법 도구입니다·”
“또·”
“중간 평가가 개시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저희도 발맞추어 나설 예정입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중간 평가가 개시되었다니·
···실제 마이에브가 벌써 행동에 나섰다는 뜻일 터·
나는 넌지시 돌려서 이야기했다·
“아예 눈치가 없지는 않구나· 네가 하도 미개하여 확인조차 못 했을까 하는 우려가 컸다·”
“제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마이에브님의 마법 정도는 곧바로 알아볼 수 있단 말입니까·”
마이에브는 그만큼 특색있는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일까· 자연스레 흥미가 동한다·
“네게도 한 번 사용해줄까·”
“사 사 사양하겠습니다!”
테레사가 손을 양옆으로 휘젓는다·
“액자 안은 싫어요· 산 채로 박제 당하는 건 죽어도 싫습니다· 부 부디 선처해주셨으면 합니다!”
산 채로 박제···· ‘연성’과 ‘조화’가 합쳐진 느낌으로 접근하면 될 듯하다·
마이에브의 고유 능력은 확인했다· 이제 이에 맞춰서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될 터·
테레사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 두 시간 뒤에 뵙겠습니다· 일족의 자랑이시어·”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혈귀들의 ‘중간 평가’가 두 시간 뒤에 이루어진다는 점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시간이라·
계획 하나 만들기에는 차고도 넘치는 시간이었다·
◈
“···뭐야·”
트릭시는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러나 플란을 붙잡을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가 트릭시 이상으로 제멋대로 행동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주문이 굉장히 능숙했지·’
웨이터를 대할 때 긴장하지도 않고 메뉴를 고를 때는 헷갈려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고급스러운 요리를 자주 접해본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일 텐데···· 트릭시에게 있어서 플란은 늘 새롭다·
때마침 음식들이 테이블 위로 올려진다· 혼자 남겨진 소녀는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노란 명찰이 붙어있는 레스토랑은 다르다는 걸까·
···5분도 되지 않아서 식사를 마쳐버렸다· 심지어 플란 것까지 전부 먹어버렸고·
“흠흠·”
트릭시는 헛기침하면서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플란이 슬슬 와야하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식당 앞에서 기다릴까·’
당장으로서는 그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트릭시까지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엇갈릴 위험이 크니까·
그런데 문득 표지판의 명단이 눈에 들어왔다·
[ Kaplan ]
워낙 물 흐르듯 적힌 글씨라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트릭시는 분명히 이 형상을 본 적이 있었다·
또한 알아보지 못해도 필체가 대단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는 법 아닌가·
프리츠 가문 내에서도 이 정도로 훌륭한 필기체는 드물었다·
우선 트리비아의 메모 페이지에 그것을 따라 그렸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어디서 봤었는지도 떠오를 것 같다·
“···?”
그러던 어느 순간 트릭시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완전히 플란 생각만 하고 있잖아·’
이 내가? 다른 남자 생각을?
이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짝으로 지정됐는데 상대편이 사라져버렸으니까·
“···어딜 간 거야·”
15분까지 앞으로 몇 분이나 남았지· 이상 현상에 휘말리기는 싫었다·
그런데 그때·
“···읏·”
불현듯 머리가 어지럽다· 동시에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트릭시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머리칼이 미친 듯이 흩날렸다·
잠시 후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공간이 눈앞에 있었다·
그저 하얀 방·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위에도 심지어 바닥에도···· 액자 형식의 거울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트릭시는 우연히 그중 하나를 살피었다·
“···?”
그리고 의아해하며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거울은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반사하지 않았다·
‘뭐야·’
거울 안의 트릭시는 묘비 앞에 서 있었다· 트릭시는 저 날을 확실하게 기억한다·
어머니를 여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즉 과거의 날이다·
트릭시는 거울 안의 모습이 ‘현실’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다른 거울들의 내부도 살피기 시작했다·
“기사 학부의 경기장?”
외형을 보아하니 확실하다· 관중석이 가득 메워져 있는 경기장· 그 한가운데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푸른 머리카락 일렁이는 푸른 화염···· 그게 자신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것도 나잖아·’
온몸이 만신창이인데도 불구하고 비처럼 쏟아지는 환호성을 받아내며 자신은 당당하게 서 있었다·
‘···이건 기억에 없는데·’
저런 일을 겪은 기억은 없다· 꿈에서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거울 속의 상황이 현실처럼 생생하게 펼쳐지는 중이다·
파칭─!
조금 더 가까이서 살피려는 순간 거울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더니 박살 나버렸다·
“····”
트릭시는 마른침을 삼켰다· 하는 수 없이 다른 거울을 향해서 다가갔다·
이번에는 가장 큰 거울이었다·
황혼이 내려앉아 세상은 온통 주황빛이다· 어딘지 모를 장소에서 거울 안 트릭시는 무릎 꿇고 있었다·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설마 우는 거야?’
거울 안 트릭시의 어깨가 미친 듯이 떨린다· 턱 밑으로는 투명하고 반짝이는 무언가가 쉴 새 없이 떨어진다·
‘···정말 울고 있잖아·’
거울 속의 자신은 분명히 오열하고 있었다·
그것도 쓰러져있는 누군가를 끌어안은 채로 말이다·
쓰러진 이의 손을 자신의 볼에 붙이고서 그녀는 미친 듯이 울고 있었다·
애절하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감정이 닿을 정도다·
‘왜 저래·’
트릭시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 다른 누군가를 끌어안는다는 것 온몸을 떨어가면서 운다는 것···· 이 전부가 그녀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본인은 타인을 저렇게 신경 쓸 만한 성미를 지니지 않았다는 것 그러한 점은 스스로가 제일 잘 알았다·
거울 안의 트릭시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것은 그때쯤이었다·
동시에·
트릭시의 품에 안겨 쓰러져있던 이의 얼굴이 설핏 보였다·
그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
너무 놀란 트릭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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