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1
*나 좀 꺼내줘· 나 좀 꺼내줘· 나 좀 꺼내줘·
작품 설명은 지금도 끝도 없이 늘어나는 중이다· 광장의 하얀 바닥을 도화지 삼아 번져나간다·
─·
정적·
세레나는 지금도 미친 듯이 액자 면을 두드리고 있다·
[ 평가 시작! ]
작품의 제목은 다소 뜬금없다·
“펴 펴 펴 평가···? 이게?”
베키는 다리를 후들후들 떨기 시작했다·
“이게···· 평가란 말이야? 마수는?”
“이걸로 도대체 뭘 평가할 수 있는 건데?”
마법 도구 체험은 이미 뒷전이 되어버렸고 학생들은 서서히 혼란에 젖어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초행’ 구역의 관계자들이 도착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들 진정해주세요·”
“괜찮을 겁니다·”
관계자들의 회색 로브와 가슴팍에 황금 핀을 꽂은 외양· 그것이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더없이 든든하다·
그들은 빠르게 그림으로 변해버린 세레나의 모습을 살폈다·
액자면을 두드리는 주먹의 움직임 그녀의 입 모양을 따라 적히는 작품의 설명·
어떻게 보아도 세레나는 살아있다·
그러나 또한 생명체가 아닌 그림에 불과하다·
기이하다라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이건···· 마법이랑은 좀 다르네·”
“흑마법? 흑마법 아니에요 이거?”
관계자들이 저들끼리 속삭였다·
*나 좀 꺼내줘· 나 좀 꺼내줘· 나 좀 꺼내줘· 나 좀 꺼내줘· 나 좀 꺼내줘·
바닥은 이미 시꺼멓다· 이제는 아예 벽면에도 글자가 번지기 시작한 형국이었다·
루이스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혹시···· 이 글자가 퍼져나가는 걸 막을 수 있을까요? 이것때문에 친구들이 더 불안해하는 것 같아요·”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흑마법과 마법 사이의 격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만 그 정도 조치는 충분히 취할 수 있다·
관계자 중 한 명이 세레나 그림에 손을 대는 순간·
“···!”
그 또한 우뚝 굳어버렸다·
부드러운 살갗이 점점 광택을 띠며 단단해지더니 결국 하나의 마네킹이 되어버렸다·
가슴팍에 작품명이 적힌다· [ 오만함의 대가 ]
“마···· 마네킹?”
“이번에는 그림이 아니라 마네킹이야?”
지켜보던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루이스가 조심스레 마네킹의 코앞으로 손을 댄다·
“숨은···· 쉬고 있어· 살아있는 거야·”
그 말에 학생들을 비롯해 관계자들까지도 놀랐다·
하지만 그들은 역시 노련했다· 당황을 내색하지 않으며 학생들을 통솔하려 했다·
“다들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아주십시오! 지금 즉시 호텔로 이동하겠습니다!”
관계자 중 한 명이 스태프로 허공에 원을 그렸다· 단거리 워프 게이트를 만들어내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호텔로 복귀한 후에는 절대로 객실 밖으로 나오시면 안 됩니다! 차후 일정은 따로 공지하겠····”
파지직─!
그러나 스파크가 튈 뿐 게이트가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관계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이게 무슨····”
당혹스러워하는 그에게 다른 관계자가 급히 속삭인다·
“초행 구역이 통째로 봉쇄되었습니다·”
“봉쇄···? 언제 어느 틈에?”
“지금 막이요· 밖으로의 이동이 불가능해요·”
“그럼 우린 어떡하라고···!”
당황해하는 그의 이마에는 핏줄이 섰다·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대화했지만 관계자들끼리 심각한 표정으로 수군거린다는 것 자체가 학생들 입장에서는 불안 요소였다·
“진짜로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인데····”
“우리 어떡해?”
학생들이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새하얬던 바닥 면은 활자로 뒤덮여서 시꺼멓게 변한 지 오래였다·
관계자가 학생들을 둘러보며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호텔까지 걸어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저희가 보호해드릴 테니····”
그러나 그때·
“···!”
그녀 또한 눈을 부릅떴다·
“으···· 으···?”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육신이 인형으로 변해버렸다· 바닥에 떨어지자 폭 하고 폭신한 소리가 났다·
작품명은 [ 보호 쿠션 ]
“과 관계자님들도 당하고 있잖아····”
“어떻게 봐도 평가가 아니야!”
그림 인형 마네킹····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든 관계자가 미술품으로 변해버렸다·
학생 중 한 명이 결국 공포에 못 이겨 소리쳤다·
“이런 미친! 대체 이게 뭐 하자는 거야!”
그 동시에 그 또한 액자에 갇혀버렸다·
“그 그만!”
그림의 절반이 푸른색으로 칠해지고 갇힌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미친 듯이 허우적댄다·
*차가워· 살려줘· 이러다 얼어 죽겠어·
작품명은 [ 고운 말 ]·
이곳의 모든 이야기를 상대방은 듣고 있다·
저항하는 순간 박제된다·
그것을 깨달은 학생들이 전부 입을 꾹 다물었다·
새포얗던 사포어의 초행 구역에는 지금도 검은 활자들이 증식하는 중이다·
◈
중간 평가 시작 15분 경과·
플란은 사포어 2층에 위치한 칵테일 바에 도착했다· 저항하는 트릭시를 억지로 호텔 안으로 밀어 넣은 뒤다·
[ ▶ 2층 칵테일 바가 저희 아지트입니다· ]
트리비아에 와있는 테레사의 보고를 확인해 도착했고 칵테일 바 내부에는 이미 혈귀들이 가득했다·‘
흠잡을 곳 없는 옷매무새 모닥불처럼 차분하게 일렁이는 붉은 눈동자 영혼이 발휘하는 위압·
플란을 발견하자마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난다· 테레사가 대표로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오셨습니까·”
플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대답할 뿐이다
혈귀의 대부분이 플란을 경탄 어린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중에서도 가장 노골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한 혈귀를 향해 플란이 말했다·
“뭘 뚫어져라 쳐다보나·”
“죄 죄송합니다· 위장술이 상상 이상으로 대단하여···· 정말 인간 같습니다!”
녀석이 곧바로 허리를 접는다· 테레사가 그 녀석의 뒤통수를 탁 때려서 눈치를 주었다·
잠시 후 칵테일 바의 가구들이 위치를 달리한다·
길게 쭉 뻗는 테이블· 그리고 플란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단 하나의 상석·
플란만이 자리에 앉고 나머지가 간격을 지켜 자리에 섰다· 테레사가 입을 열었다·
“···예· 그럼 마이에브님께서도 오셨으니 다시 한번 작전을 점검하도록 하겠습니다·”
테레사가 새삼 플란을 힐끔거렸다· 한 글자 한 글자 뱉을 때마다 눈치가 보였다·
“아시다시피 저희의 최종목표는 공주님께서 만족하실만한 전시회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녀가 손뼉을 두 번 두드렸다· 그러자 허공에 커다란 종이 한 장이 펼쳐진다·
마네킹 32
인형 25
그림 64
동화책 20
·
·
·
종이에는 각 품목에 상응하는 상세한 수량이 적혀있었다· 테레사가 말을 이어간다·
“위 발주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마이에브님께서 수량에 맞추어 손수 박제해주실 테니까요·”
그녀의 검지가 보다 아래로 향한다·
푸른 화염 1
“그러니 저희는 푸른 화염 수집에 집중합니다· 이번 전시회는 ‘살아있는 것’만 취급한다는 점에 유념하면서 다들 움직여주시길 바랍니다·”
테레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또한 초행 구역은 현재 봉쇄되어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저희 행동이 들킬 염려는 없습니다·”
플란은 조용히 턱을 문질렀다·
산 채로 마법사를 박제하는 것도 트릭시를 수집하는 것도···· 결국 ‘공주’를 만족시키기 위함이란 것인가·
그렇다면 이는 필히 희소식이다· 바꾸어 말해 학생들의 목숨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셈이 되니·
“이봐·”
플란이 내뱉은 단 두 글자에 테레사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마법 도구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아선 안 되지·”
“아 예· 지금부터 설명할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이 대답은 절대로 토를 다는 게 아닙니다·”
테레사가 손뼉을 두 번 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종이가 두 개로 나뉜다·
왼쪽 종이에 먼저 드러나는 것은 사포 어의 약도· 그중에서도 가장 넓은 공간이 붉은색으로 칠해진 채다·
안 봐도 ‘꿈’이라는 마법 도구가 있는 공간일 터·
그리고 다른 종이에는 다시 수량이 적힌다·
기쁨 11
절망 22
후회 33
분노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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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특이하게도 이번에 수량이 붙어있는 것들은 물건이 아닌 ‘감정’이다· 테레사가 입술을 달싹인다·
“전시회의 질을 높이기 위해 ‘꿈’을 이용하여 작품들의 감정을 조절할 예정입니다·”
“···재미있군·”
플란의 흥미가 동한다·
‘꿈’이라는 마법 도구는 환혹 계열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최소 감정을 개변시켜버릴 정도의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지·
이들은 단순히 살아있는 것을 박제하는 선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감정마저도 조종하여 공주가 완전히 만족할만한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 마법사를 말 그대로 ‘재료’로만 본다는 말인데·
그 발상이 오만함이 플란에게는 조금 우습다·
“테레사· 시각 기록을 만드는 법은 아나·”
“예···· 제가 그 정도로 못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이 대답은 말대꾸가 아닙니다· 제가 원래 말투가 좀 무뚝뚝한 편이라서····”
“됐고· 그렇다면·”
테레사의 말을 토막 내며 플란은 이들의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철저히 그의 입맛에 맞추어서·
“너희들은 학생들이 박제되는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라· 푸른 화염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것 없다·”
“어···· 저희는 푸른 화염을 최우선으로 신경 쓰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혈귀 한 명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플란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등장한 그 혈귀는 이내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다들 저건 마이에브님이 아니다·”
모두의 시선이 일시에 그편으로 돌아간다·
“박제는 이미 시작됐어· 저건 가짜야· 실제 마이에브님께서는 이미 행동에 나서셨다고·”
“····”
칵테일 바 내부의 모든 혈귀가 나와 그 녀석을 번갈아 가며 한 번씩 쳐다본다·
고발자가 플란을 바라보며 표정을 구겼다·
“즉···· 저건 사지를 찢어죽일 인간놈이라는 거지·”
놈이 난리를 치는 와중에도 플란의 시선은 태연하게 테레사를 향한다·
“테레사·”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목소리가 한층 더 서늘해진 채로 그녀를 다시 한번 부른다·
“테레사·”
“예 예····”
테레사는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혈귀와 플란 모두의 눈치를 한 번에 살피는 채였다·
“저놈 이름이 뭐지·”
“나? 게이브다 왜·”
대답은 본인의 입으로부터 직접 흘러나왔다·
딱─!
플란이 손가락질을 한 번 튕기자 그것만으로도 칵테일 바의 구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출입문부터 시작해서 창문까지 모든 ‘문’이 한순간에 자취를 감춘다· 덕분에 내부에는 어둠이 자리 잡았다·
“···!”
몇몇 혈귀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저기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 붉은 색의 안광 그 사이에서도 플란의 눈동자는 유난히 빛났기 때문이다·
인간· 혈귀·
종 따위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무언가다·
플란은 녀석의 이름을 조용히 읊조린다·
“게이브·”
“···뭐 이 새끼야·”
방금 그게 마지막 기회였다·
딱─!
딱─!
플란은 손가락을 딱 두 번 튕겼다·
콰가가각─ 허공에 떠오른 의자 네 개가 순식간에 깎여나간다·
정신을 차려보니 액자의 틀 모양으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머릿속에 조용히 술식을 그린다·
굳이 머릿속에서 보이지 않게 하는 이유는 흑마법의 술식과 일반 술식의 색이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머릿속 한편에『연성』의 술식을 그려 액자의 틀을 갖추고 다른 한편에는『조작』의 술식을 그린다·
게이브를 하나의 ‘재료’로 조작할 것이다·
콰악─!
네 개의 틀이 각각 게이브의 동서남북으로 각각 붙는다·
게이브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도 못했다· 연산부터 마법의 발현까지 그 속도가 벼락과도 같다·
『환혹』을 동시에 두 개 펼친다·
이중 발동의 묘리· 관중들이 게이브를 ‘작품’이라 인식하게 할 것· 게이브조차 본인을 ‘작품’이라 인지하게 할 것·
“···!”
게이브와 혈귀들이 비로소 상황을 눈치챘다·
액자에 갇힌 녀석이 있는 힘껏 우짖지만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하나의 그림이었으니·
검은 캔버스 위에서 발악하는 게이브· 짧은 작품명이 붙는다·
[ 실패작 ] ─ 인물화
모두의 눈이 멍해졌다·
아주 잠시지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고 플란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린다·
그 얼굴은 이리 말하는 듯했다·
너 따위는 실패작이다—라고·
“···!”
안 좋은 상황을 직감한 게이브가 액자면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 그러나 플란은 멈추지 않는다·
환혹의 캔버스에 풍경을 연성해낸다·
검은색의 배경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수없이 많은 조각칼이 들어선다·
딱─!
칼날들이 게이브의 육신으로 서슴없이 꽂혀 들어간다·
“···!”
피가 튀기고 살이 도려내지고 뼈가 깎이고 게이브가 고함을 토해내지만 이 과정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는다·
몸 군데군데가 형편없이 파인 게이브에게도 이름은 붙는다·
[ 주제 파악 ] – 조각·
···잠시 침묵이었다·
혈귀들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이기에 다들 머리가 멍했다·
콰직─!
마지막으로 책상 하나가 통째로 액자를 으깨버렸다·
[ 우둔함의 말로 ] ─ 판화
이 모든 과정이 고작 2초·
혈귀들은 멍하니 상황 바라보았다· 세 박자 늦게 상황을 인지한다·
마이에브님의 흑마법· ‘박제’와는 조금 다르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무언가다·
‘박제’ ‘작품명’ ‘설명’· 그 모든 요소가 똑같이 갖추어져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단 말이다·
흑마법이었나? 아니 그냥 마법인가? 하지만 그냥 마법으로도 저런 것을 구현할 수 있단 말인가?
몸은 완전히 얼어붙은 채로 혈귀들이 바쁘게 시선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총대를 멜 혈귀가 필요했고 그럴만한 인물은 한 명밖에 없었다· 이내 모두의 시선이 테레사에게 집중된다·
테레사가 고개를 부들부들 떨었지만 소용없다·
그녀가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고작 몇 글자를 내뱉기 위해서 폐부를 쥐어짜내야만 했다·
“저 저기····”
플란의 서늘한 시선이 그녀에게 닿는다· 테레사는 허겁지겁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조금이라도 더 예의 바르게 보이기 위해서·
“지 진짜로 마이에브님···· 이신···· 가요? 아하하····”
플란은 툭 툭 툭· 손끝으로 의자 팔걸이를 몇 번 두드리다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네가 재료인가·”
“죄 죄 죄 죄송합니다!”
테레사가 곧바로 허리를 접었다·
“저도 의심하고 막 그런게 아니고! 그냥 이번 박제도 워낙 훌륭하셔서! 예!”
메다 꽂힌 책상 밑에서 혈액이 새어 나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이 온통 유혈로 낭자해진다·
그것이 플란의 발끝에 막 닿은 순간·
“회의나 계속하지·”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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