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7
바이올렛이 떠나기 직전 한 마디 덧붙였다·
“출세했네요· 보면서도 신기해· 벌써 총장실을 들락거리는 1학년이라니····”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더니 작게 조언했다·
“그리고 하나 더 안에 총장님만 있지는 않아요· 아마 수석 교수님도 계실 테니 적당히 신경 쓰고요·”
“예·”
수석 교수라· 어차피 누가 있더라도 내가 긴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바이올렛이 떠나자 거대한 목제 문이 저절로 열렸다·
들은 대로 안에는 총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코네트는 상석에 앉아있고 좌우에 각각 남자와 여자가 한 명씩 앉아있었다·
“여긴 수석 교수입니다· 여긴 제 비서고·”
코네트가 남자와 여자를 차례대로 소개했다·
‘제법 격이 있군·’
총장실 내부의 마나 흐름이 차분하다·
일정 이상의 능력을 갖춘 마법사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갖추어지는 마나의 격(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세 명의 시선이 제각각이다·
코네트는 나를 반기고 비서는 무표정 수석 교수는 나를 고깝다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는 중이었다·
“앉으시지요· 언제 오나 기다렸습니다·”
총장이 생긋 웃으며 의자를 하나 놓아준다· 나는 말없이 착석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니까···· 아고라 체스 이후로 처음이지요?”
코네트가 불쑥 내뱉은 말에 양측에 앉아있던 이들의 얼굴에 살짝 놀람이 번졌다·
아고라 체스를 했다는 점에서 놀라는 건지 이전에 독대했던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놀란 건지··· 어느 이유든 상관없긴 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받은 백지도 잘 보관하는 중이다· 잉크가 이제야 막 떠오르기 시작한 수준이긴 하다만·
“취재 이후 쏟아진 기사들은 좀 보셨는지요·”
“적당히 살폈습니다·”
“반응이 아주 뜨겁던데요· 참고로 저는 이런 난장판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조용히 웃음을 흘리던 코네트가 대뜸 묻는다·
“완드는 있으십니까·”
“예·”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는데 코네트의 고개가 미묘하게 기울어진다· 좌우의 두 명에게도 놀람이 번졌다·
그제야 내가 잘못 대답했음을 깨달았다·
내 애장 완드 그건 이전 세계에 있다· 나는 말을 바꾸었다·
“없습니다·”
“아하· 관심은 있으신지요?”
“예·”
마법사가 완드에 관심을 갖는 것은 필연이다·
마법적인 능력을 보조해주는 부분 때문만은 아니다· 완드에는 묘하게 수집욕을 자극하는 구석도 있기 때문이다·
“외형 정도는 생각해두세요· 토벌제가 잘 마무리되면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
귀를 의심했다·
이쪽 세계라고 해서 완드가 저렴할 리는 없다· 아니나다를까 나머지 둘의 표정에 경악이 어려있었다·
마나 회로 계열···· 사용자의 모든 점에 맞춤으로 제작하는 것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총장 비서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학생 반응 정도는 보여주세요·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완드를 해주신다는데·”
“예산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됩니까·”
“···?”
비서의 고개가 슬그머니 기울어진다· ‘감사합니다·’같은 반응을 예상했었나보다·
그 때· 옆의 수석 교수가 입술을 떼어 한마디 거들었다· 그의 명찰에는 ‘아론’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총장님···· 완드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철없이 무형 완드라도 덥석 고르면 어떡합니까·”
“그러네요· 그땐 아카데미 부지라도 팔아야 할까·”
그 농담에 총장실의 분위기가 살짝 풀렸다· 여태 무표정이던 비서도 코네트의 말에는 곧잘 웃는다·
“그럼 이제 본론을 이야기해보지요·”
코네트가 다시 입술을 떼었다·
체스 기물을 만지작거리는 그녀의 역안이 기묘하게 번뜩이는 채였다·
“그간 마법 학부의 토벌제 성적은 형편없었습니다· 아니 형편없다는 말도 칭찬에 속할까요· 예선조차도 통과하는 일이 드물었으니·”
굳이 완드까지 보상으로 내거는 이유란 역시 이것 때문이었다·
마법 학부의 토벌제 성적은 형편없다· 이 표현도 많이 순화된 거고 사실상 구제 불능 수준·
“예· 형편없는 성적입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이번에도 플란 학생이 무언가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코네트의 기묘한 역안이 수석 교수에게 향했다·
“어디까지나 내 바람이 그렇다는 거고 나머지는···· 수석 교수?”
총장의 부름에 수석 교수가 염동을 부렸다· 나를 향해 수없이 많은 종이가 날아들었다·
“플란 학생이라고 했던가? 상황을 무를 수도 없을 지경으로 만들어놨던데·”
그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불만과 원망이 조금씩 섞여 있었다·
“그걸 바랐으니까·”
“덕분에 우리까지 낙장불입이네· 넘겨준 종이들이나 한번 살펴봐· 일단 조는 짜야 할 거 아니야·”
염동으로 종이들을 차례차례 허공에 걸어보니 이 문서들 전부가 학생들의 정보를 담은 것이었다·
내가 그것들을 한 장 한 장 확인하는 사이 수석 교수가 말을 덧붙였다·
“지금 아카데미 전체가 눈에 불 켜고 있는 거 알지? 나름 천재 소리 듣는 애들로만 추렸어·”
2학년 2학년 2학년 2학년···· 그런데 온통 2학년들뿐이다· 1학년은 단 한 명도 포함되어 있질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다음 종목이나 준비하자고 하고 싶은데···· 하필 취재에서 말을 그렇게 해서···· 하·”
그때 비서가 수석 교수를 향해서 입을 열었다·
“말씀을 좀 곱게 하세요· 토벌제에 전력을 다해보자는 건 총장님의 의견이기도 하니까요·”
“나 참 또 이렇게 답답한 소리를 한다니까·”
수석교수가 제 가슴팍을 두드렸다·
“전력은 뒤에서 조용히 다할 수도 있는 거야· 꼭 이렇게 동네방네 소문내면서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도 싸움이에요· 여론전도 엄연히 종목 중 하나로 보셔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 눈에는 지금 이 여론이 유리해?”
하나는 확실해졌다· 마법 학부 높은 직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분분하게 갈린다는 점·
이 또한 의도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학생 앞에서···· 둘 다 모범을 보이시길·”
탁 소리가 나게 코네트가 책상 위로 기물을 두었다· 그러자 총장실 내부가 금세 조용해졌다·
고요를 되찾은 이곳에서 조용히 입술을 떼었다·
“이 목록은 누가 추린겁니까·”
“2학년 교수들이 추렸지· 내가 검수했고·”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수석 교수를 향해 한 마디 했다·
“이게···· 최선입니까·”
“···뭐?”
나는 허공에 펼쳐진 종이들을 염동으로 갈무리했다· 그것들이 바닥에 조금의 오차도 없이 차곡차곡 쌓인다·
“우선 유감입니다만·”
그런데 이번에도 수석교수가 못 참고 끼어들었다·
“유감이기에는 늦었지· 스스로 뱉은 말에는 직접 책임져· 조원 뽑아서 어떻게든 성적 내와·”
“아뇨·”
수석 교수를 향해서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한 점에서 유감이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 중에는 제가 뽑을 조원이 없습니다·”
공허에 가까운 정적이 내려앉는다·
한참 후 수석 교수가 어깨를 긁적이며 되묻는다·
“그게 무슨 말이지? 설마 이걸로도 양에 안 찬다고?”
“이미 내정해두었습니다· 전원 1학년으로·”
“···!”
세 명의 표정이 일시에 멍청해졌다· 비서가 난감한 표정으로 안경을 밀어 올린다·
“우정 의리···· 뭐 그런 건가요· 무리입니다· 토벌제는 2학년까지 참여가 가능한 종목이고 2학년 기사 생도를 1학년이 감당하기는 힘들죠·”
비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기사 학부에도 그런 조가 많다면 모를까 아마 모든 조가 2학년으로만 구성되어 있을 테니까요·”
뒤늦게 정신이 들었는지 수석 교수도 불쑥 끼어들었다·
“플란 학생· 우리랑 대화할 때는 그 장난기를 좀 빼· 진짜 하나도 재미없고 화만 나니까·”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무럭무럭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있어 1년의 격차는 매우 크다· 한데 2학년 기사 생도를 상대로 1학년 조를 꾸리겠다니 듣기에 허무맹랑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예쁘게 세공된 조약돌에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원한다·
그 원석이 이미 1학년에 셋이나 있다·
“푸흐흐····”
코네트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과연 다양한 부분에서 플란 학생은 제가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합니다·”
그녀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그럼 우리···· 생각할 시간을 조금 더 가져보는 것으로 마무리할까요·”
“아니 이건 아닙니다· 총장님·”
수석 교수가 책상을 탕 소리가 나게 쳤다·
“전투 종목은 그래도 1학년과 1학년의 승부였어요· 그런데 무슨 토벌제에서···· 딱 잘라서 말해야 합니다· 1학년 조원은 안 됩니다·”
비서도 안경을 조심스레 밀어 올리며 거들었다·
“자유는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보장되어야죠· 조원을 선택할 자유는 줬으니 학년은 2학년으로 못 박아야 합니다·”
나는 가만히 내가 다듬어낼 원석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최고 등위에 오르게 될 녀석들 그 뒤를 따라 걷게 될 많은 꿈나무들·
그 풍경이 실현되는 순간·
세상은 이미 바뀌어있을 테고 내가 없더라도 이 세계의 마법은 옳게 흘러가게 될 터·
“총장님·”
나는 나지막이 입술을 떼었다·
동시에 여섯 개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중에서도 코네트의 역안에 깃든 마나는 기묘하리만치 선명하고 기이하다·
“저 지금 이 자리에····”
고민 같은 게 내게는 필요 없다·
“협상하려고 앉아있는 거 아닙니다·”
또한 의견을 바꾸는 일도 없을 것이다·
◈
“후우····”
개인실 트릭시는 지금 막 발레를 마쳤다·
신발을 갈아신으려는데 문득 자신의 흉한 발이 눈에 띄었다·
발가락 마디가 기형적으로 돌출되어있는 이 몰골은 스스로가 보기에도 아름답지 못하다·
‘푸른 화염’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였다· 어릴 적 그녀는 본인조차 제어할 수 없는 화력에 온 발이 타버렸다·
다행히 프리츠 가문에서 엄청난 돈을 들여 발 구실은 할 수 있게 되었다만···· 외형만큼은 복원하지 못했다·
그게 발레를 시작한 이유였다· 어차피 흉한 발인데 그럴듯한 이유라도 붙여주면 어떨까 싶어서·
“····”
조용히 양말을 신는다·
프리츠 가문의 장녀는 그러한 사실에 아쉬워하거나 슬퍼 여유가 없다· 땀을 닦아내며 트리비아를 펼쳤다·
평소처럼 가르침 씨에게 연락을 보내려던 그때·
“···!”
트리비아의 자유 게시판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 와 미친 마법 학부 토벌제 대표 정해졌네 ]
[ 얼마나 할 짓이 없으면 저런 거짓말을 할까 ]
[ 진짜야 아고라 보드에 붙어있어 ]
‘대표가 정해졌다고?’
트릭시는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아고라 보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녀가 프리츠의 가문에서 태어난 순간 푸른 화염을 지니게 된 순간···· 그녀에게는 꼭 토벌제에 나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고라 보드 앞에는 이미 학생들이 잔뜩 몰려있었다· 트릭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틈을 비집었다·
“잠시만 비켜· 비켜주세요·”
제치고 또 제치다 보니 어느덧 맨 앞이었다·
“하아···· 하아····”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대표 명단을 살폈다·
[ 플란 ]
[ 베키 ]
[ 루이스 로제발트 ]
‘베키···?’
평범하기 그지없는 베키가 왜 뽑혔는지 의문이지만 일단 그 생각은 제쳐두기로 했다·
“하아···· 하····”
일단 일단은 그녀의 이름이 명단에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아래를 살폈다·
“하···· 아···?”
그리고 진실을 마주한 직후 트릭시는 얼어붙었다·
[ 해당 없음 ]
명단의 마지막 칸에는 그렇게만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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