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8
모두가 잠들었을 늦은 시각·
베키와 루이스는 훈련장에서 마주쳤다· 서로 간에 짤막한 인사가 오간다·
“예상은 했지만 베키 너도 불려왔구나·”
“으응·”
루이스의 말에 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다급하게 몇 가지 질문을 덧붙였다·
“저기 루이스· 혹시 오는 길에 선배들 마주쳤어?”
“아니· 시간이 시간이라서·”
“나 나 나 오는 길에 선배들이 이야기하는 걸 우연히 들었거든? 들었는데····”
베키가 말을 이으며 다리를 후들거렸다·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라도 되새기는 듯 했다·
“2학년 선배들···· 어 엄청 화나있던데· 토벌제 대표가 1학년으로만 뽑혀가지고···· 나 여기까지 얼굴 가리고 뛰어왔잖아·”
소녀의 말에 루이스가 작게 미소지었다·
“그렇게까지? 하긴 구성이 워낙 의외긴 했지·”
“의외? 워낙 의외인 정도는 진작에 벗어났잖아!”
흐아악 그런 소리를 내면서 베키가 양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붙잡았다·
“도대체···· 도대체 왜 내가 대표일까? 저 저기· 루이스· 혹시 너는 알아? 나 왜 선발된 거야?”
“글쎄· 내가 왜 선발됐는지도 아직 몰라서·”
둘 다 마법 학부의 대표가 되었음을 방금 막 확인한 참이고 왜 선발되었는지는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2학년으로 네 명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아니 정석일 텐데· 어떻게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모르겠네···· 진짜로 모르겠어····”
베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소녀에게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미 플란에 대해 많은 경험을 한 베키다· 그가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인다는 것쯤이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이야기가 다르다·
아무리 기상천외하고 대단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게 직접적으로 베키까지 덮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란 말이다·
“다들 도착했나·”
그때 플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트러짐 없는 옷매무새 평소와 같은 모습· 새벽 공기처럼 서늘한 눈빛을 하고서 그는 등장했다·
“프 플란! 토벌제 대표 네가 정한 거지? 1학년으로만 뽑았던데···!”
베키가 곧장 플란에게 달라붙었다· 머릿속에 담겨있던 온갖 질문을 와르르 쏟아내기 시작했다·
“2학년은 왜 안 뽑았어· 한 명은 왜 해당 없음이고? 아니 아니지· 다른 것들은 우선 전부 제쳐두고···· 나는 왜 선발한 거야? 응?”
그러나 플란의 시선이 베키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그는 대신 루이스를 불렀다·
“루이스·”
“응?”
“지금 당장 베키와 마법으로 겨루어라·”
“···?”
베키와 루이스의 고개가 동시에 모로 기울어진다·
대표 선발에 대한 의문도 아직 해소하지 못한 채다· 그런데 대뜸 마법으로 겨루라니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너희들의 생각 정도는 이미 안다·”
플란은 덤덤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정말로 토벌제에 나가는 걸까 왜 대표로 선출되었을까···· 그 모든 답을 한 번에 내려주지· 겨루도록·”
그가 다시 한 번 베키와 루이스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았다·
“당장·”
루이스의 시선이 베키를 향했다· 정작 시선을 받은 당사자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미 미 미친 거 아니야?”
베키가 턱을 덜덜 떨면서 중얼거렸다· 물론 턱만 떨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랑 루이스랑은 급이 다른데···· 마법으로 겨루라고? 마 마 말이 돼? 지금 나더러 죽으라고?”
“같은 급이지· 너희 둘 다 대표임을 명심해라·”
플란의 붉은 눈동자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베키는 여전히 안절부절못하고 루이스가 차분히 되묻는다·
“마법 대결을 하면···· 토벌제 대표로 왜 우리가 선발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는 거야?”
“그래· 장담하지·”
“으음·”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베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루이스 저기 루이스? 너···· 아니지? 응?”
“한 번 해보자· 플란에게는 늘 이유가 있었잖아· 그게 옳았음을 직접 증명했고·”
“····”
소녀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새하얗게 질렸다· 베키가 훈련장 입구를 향해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나는···· 나는· 이해했어· 납득도 했어~ 굳이 마법 대결 안 해도 될 것 같아! 응!”
쐐애액─
그 순간 빛의 창날이 베키의 귀 밑을 스쳤다·
“흐 흐엑!”
베키가 기겁하며 갈팡질팡했다· 반면 루이스는 차분하게 다음 술식을 전개해 나간다·
“사심은 없어 베키· 그냥 단지 플란을 한 번 믿어보자·”
“사심이 없는 게 이 정도라고? 야···!”
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릴 판국이었지만 루이스의 눈빛에 담긴 것은 진심이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후들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며 소녀는 급하게 얼음 원소를 발현했다· 일단은 생존이 우선이었으니까·
파앗─!
압축된 고화력의 광선·
루이스는 그것을 세네발 연달아 발사했다·
파칭─!
이어서 얼음 부서지는 소리가 훈련장 안을 가득 메운다· 베키의 얼음 방벽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위력이었다·
‘루이스를 내가 어떻게 이겨···!’
그러나 직선의 빛줄기는 맛보기에 불과했다는 듯 광선이 어지러이 꺾이기 시작했다·
굴절·
같은 1학년인데도 불구하고 루이스는 빛 원소를 능수능란하게 펼쳐 내고 있었다·
훈련장을 아름답게 수놓는 빛줄기는 방어에 집중해야 할 베키가 보기에도 화려하다· 저런 걸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아니 방어조차도 불가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응?’
불현듯 여러 생각이 불꽃처럼 튀었다·
어째서 이런 것들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녀도 모르는 사이 그것들을 실현하고 있었다·
‘잠깐만· 일단 일단은····’
베키가 회로를 엮어낸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길을 타고 정량의 마나가 흐르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얼음 방벽과 광선이 또 한 번 격돌하고 맹렬한 폭음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얼음 방벽은 공격을 버텨냈다· 설령 버텨내지 못하더라도 생성된 위치만큼은 정확했다·
“어라···”
루이스가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어가 견고해졌다·
갑자기 다른 사람과 전투하는 것만 같다· 나름대로 정성을 들인 공격인데 베키는 아무렇지도 않게 루이스의 공격을 피하고 방어해냈다·
“뭐야 베키·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 섭섭한데·”
“나도 몰라! 진짜로···!”
손가락 마디 하나 들어갈 정도·
정확히 그만큼 차이로 모든 공격이 빗나간다· 적중할 것 같으면 어김없이 방벽이 방어해냈다·
“내가 부족한 건가?”
루이스가 광선에 마나를 배로 불어넣었다· 과도한 힘을 담은 빛줄기는 괴생물처럼 꿈틀거렸다·
파앙─!
오차없는 궤도· 판화처럼 직선을 그어내는 섬광이 베키를 향해 쇄도했다· 다섯 개가 넘는 얼음 방벽이 한순간에 박살 난다·
그러나· 그 순간 루이스는 보았다·
방벽이 시야를 가려 확인하지 못했던 교묘하게 만들어진 얼음 송곳을·
쐐액─!
날카롭게 벼려진 얼음송곳이 루이스의 귀밑을 스쳤다·
“그만 거기까지·”
그리고 그 순간· 플란은 상황을 종료시켰다·
“····”
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누구랄 것 없이 베키와 루이스는 서로를 멍하니 마주보았다·
플란은 둘을 향해 물었다·
“둘 다 소감이 어떻지·”
“으음····”
루이스는 가만히 턱을 문지르다가 이내 베키쪽으로 시선을 보내면서 물었다·
“우선 베키에게 물을 게 있어· 방금은 도대체 뭐야?”
“방금···· 방금은···· 그러니까····”
베키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나중에는 아예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몰라· 나도 모르겠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거야···?”
둘의 고개가 자연스레 플란을 향해 돌아갔다· 이 상황의 정답은 오로지 그만 알고 있을 것이다·
“베키·”
“으 응?”
“너는 그동안 무엇을 했지·”
“나?”
베키는 눈동자를 위로 올리고서 본인의 행적을 차근차근 되짚기 시작했다·
“자고 밥 먹고 강의 듣고 과제하고····”
“내가 시킨 거 말이다·”
“아 미안·”
베키가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논문 요약했지· 그것도 엄청· 어어어엄청·”
‘엄청’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최근에는 약간이지만 다크 서클도 생겼을 정도니까·
논문 종류도 굉장히 다양했다· 마나를 다루는 방식 원소 간의 상호작용 효율성을 따지는 법····
그런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베키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눈빛으로 플란을 바라보자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플란 너· 처음부터 이런 생각으로···?”
“의미 없는 일을 시키는 취미는 없다·”
“아니 헐 세상에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베키의 입이 떠억 벌어진다· 곁에서 지켜보던 루이스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리는 것은 덤이었다·
“플란의 논문 요약을 보조했을 뿐인데···· 실력이 늘었다는 건가·”
그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린다·
루이스 역시 플란의 마법 실력이 범상치 않은 수준이라는 것은 잘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본인이 입에 담으면서도 다소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논문 요약을 보조한 것만으로 이 정도 성장이라니·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플란 그 논문들이라는 거· 앞으로는 나도 좀 봐도 돼?”
두 사내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는다· 루이스는 플란의 붉은 눈동자에 담긴 자신의 의욕 넘치는 모습을 보았다·
플란은 말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수는 많을 수록 좋지·
◈
새벽은 빠르게 지나가고 마침내 아침이 밝는다·
오늘은 플란과 대결을 하자고 약속했던 날· 트릭시는 ‘푸른 화염’의 위엄을 반드시 증명할 것이며 가르침 씨의 제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토벌제의 마지막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까지가 목표다· 대결에서 승리한다면 플란도 자신을 못 본 체할 수 없겠지·
그녀는 훈련장에서 밤을 새운 참이다· 하도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아카데미도 아니고 프리츠 저택 내부의 훈련장을 굳이 찾았다·
슬슬 나갈 채비를 해야했다·
저 멀리서 하녀들이 하나 둘 다가오는데 그들 뒤로 의외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딸아·”
트릭시를 닮은 남색 빛 눈동자· 현재 화염 원소 명문가 프리츠의 실질적인 가주 또한 트릭시의 아버지·
아이작 폰 프리츠·
“소식은 전해 들었다·”
“····”
그 말에는 쉽사리 반응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소식을 어디까지 접했는지는 아직 모르니까·
“마법 학부에서 토벌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데···· 대표 명단에는 우리 딸 이름이 없었다고·”
전부 알고 있구나· 트릭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잘됐다·”
“잘됐다니·”
“마법 학부의 포부는 좋지만 구태여 네가 나갈 필요 없다·”
아이작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문득 자신의 아내를 떠올렸다·
이십 년도 더 된 일이다· 마법 학부의 전성기라고 평가받던 시기 마법사 조가 토벌제에서 2등을 거머쥐었던 그때·
마법사라면 누구나 환호를 부르짖을 시점이었으나 정작 주역인 벨라 폰 프리츠의 앞길은 암담했다·
그녀는 토벌제 이후 마법을 다루지 못하게 되었다·
아이작과 혼인할 때도 트릭시를 낳을 때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절 함구했고 두번 다시 웃는 일은 없었다·
아이작은 조용히 말했다·
“딸아 가훈을 기억하고 있겠지·”
“무언가를 불태우려면···· 자신부터 지펴라·”
“그래· 바로 그거지·”
아버지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나는 고작 토벌제가 내 딸아이를 지필 무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단다· 이대로만 하면 나중에 더 큰 기회가 있지 않겠니·”
고작 토벌제가 무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니·
트릭시에게는 그 말이 토벌제에 나간다면 그곳이 네 마지막 무대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아이작은 염려하는 것이다· 트릭시가 제 어머니처럼 될까봐·
“나가야 돼· 알잖아·”
“···허허 피는 못 속이겠구나· 어미를 똑 닮았단 말이지·”
어색한 웃음을 터뜨리긴 했지만 아이작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트릭시는 아버지를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하녀들이 급하게 소녀의 뒤로 따라붙는다· 아이작의 음성이 바닥 낮게 깔렸다·
“딸아·”
트릭시는 멈추어 섰다·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푸른 화염을 지닌 것은 이제 네가 유일해·”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똑 닮은 아버지의 남색 빛 눈동자· 그곳에 비추어지는 자신은 일렁이는 푸른 화염이었다·
“네가 곧 프리츠고 프리츠는 곧 너임을· 늘 명심하려무나·”
트릭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한동안 눈을 내리깔고서 생각에 잠겨있다가 마침내 발걸음을 떼었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음이 더해질 때마다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 의무감이 어깨를 짓눌러서일지도 모르겠다·
“프리츠·”
소녀는 제 가문을 낮게 읊조렸다·
그녀가 곧 프리츠고 프리츠가 곧 그녀이기에·
···역시 그녀는 토벌제에 나가야만 했다·
가르침 경매로부터 연락이 온 것도 바로 그 때였다·
[ ▷ 내일 너를 직접 만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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