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9
화중세계의 집무실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밤을 지새웠지만 피로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
오히려 흡족함을 느끼느라 바쁘다·
무균실처럼 깔끔한 내부 이전 세계의 것을 본뜬 집무 책상과 명패 간단하고 세련된 장식품 몇 가지···· 드디어 이 세계에도 내 공간이 마련되었다·
“확인했다·”
마이에브에게 문서들을 돌려주었다· 프리츠 가문과 트릭시에 관한 자료였다·
“시키신 대로 대결하신다고 소문도 좀 냈습니다·”
“그래·”
혈귀들의 정보망은 기대 이상으로 유용했다· 마이에브가 정보를 가지고 복귀하기까지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트릭시의 대략적인 가정사 푸른 화염의 무게를 짊어졌다는 것···· 기타 여러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이에브가 떠나가지 않고 물었다·
“주인· 이 여자한테 관심이 있으십니까·”
“그런 건 왜 묻지·”
“제가 암살해버리면 좀 슬퍼하실까 궁금해서·”
나를 몇 번이고 시험해도 좋다고 말한 이후 마이에브는 내게 서슴없이 이런 이야기를 해온다·
적의를 숨기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모양인데· 나도 차라리 이게 편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 그랬나· 몸소 답을 알려주었을 텐데·”
“····”
마이에브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내 시선을 슬쩍 피했다·
“굳이 안 했습니다· 어차피 불쌍한 녀석 같았으니까·”
“남을 동정할 여유도 있나 보군·”
“어머니의 사고 가문의 이름이 가진 중압감···· 뭐 이래서 제가 인간을 싫어합니다· 가엾다기보다도·”
그녀의 말도 대강 이해는 되었다·
한 번도 웃어주지 않는 어머니 가문에서 푸른 화염을 다룰 수 있는 채로 유일하게 생존해있는 자신···· 트릭시는 많은 의무를 짊어지고 살았다·
아니 짊어지지 못했다· 짓눌리고 뭉개졌다·
그렇기에 지금 상태로 토벌제에 나가서는 안 된다·
“주인은 인간답지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말은 늘 구체적으로 해라·”
“정이 없고 잔혹하네요 대부분은 사연을 가진 인간을 선호하는데·”
마법사답다· 그렇게 표현하면 될 일이다·
허나 마이에브는 착각하고 있다· 나는 트릭시의 재능과 사연을 굉장히 높이 사고 있다·
즉 그녀를 버리기 위해 고민한 것이 아니라 세공하기 위해서 지금껏 고민했을 뿐이란 거다·
트릭시와는 트리비아를 통해 간단하게 몇 마디 정도만 나누었다·
[ * 가르침 경매 ]
[ ▶ 오늘 대결이 있어용· ]
[ ▶ 잘하고 올게용! ㅎㅅㅎ ]
[ ▷ 내일 직접 만나지· ]
[ ▶ ···직접 직접 만나용?! ]
[ ▷ 그래· ]
[ ▶ 내 내일! 정말용?! ]
잠시 고민한 뒤 다음 말을 보냈다·
[ ▷ 트릭시 ]
[ ▷ 너는 마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면 ]
[ ▷ 그래도 기꺼이 배우겠나· ]
[ ▶ 가르침 씨가 가르쳐주는 거라면용! ]
답장은 곧바로 왔다· 이거면 됐다·
옷깃을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흙에 뒤엉킨 원석을 훌륭하게 세공해낸다면 그것 역시 유의미한 일이리라·
내가 다듬은 보석의 행동 하나하나가 곧 동시에 나의 증명이 되어줄 테니·
‘···트릭시·’
그 이름을 속으로 되뇌며 화중세계를 벗어났다·
아니 벗어나려 했는데·
“저기 주인·”
마이에브가 나를 불렀다·
“내가 제가 당신이 무서워서 암살하지 않았다는 착각은 하지 마 마십쇼·”
“진심이길 바라지· 겁쟁이 노예는 나도 싫으니·”
“진심입니다· 저는 제 주인이든 뭐든 하나도 무섭지····”
그때쯤 나와 마이에브의 시선이 보기좋게 마주쳤다· 그녀의 눈이 곧바로 사선으로 돌아간다·
“···무섭지 않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화중세계를 벗어나려는데 마이에브가 다급하게 몇 마디를 덧붙였다·
“무섭지 않다는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저는 주인님의 눈을 마주 보아도 딱히 긴장한다든가 하지 않습니다· 아까 눈을 돌린 것은····”
쫑알쫑알·
시끄러워서 다 듣지도 않았다·
◈
대결을 위해 빌린 경기장·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려있었다· 1학년 학생들만 모이는 것 정도를 의도했으나···· 의외의 얼굴도 몇몇 보였다·
일라이자· 기사 학부의 기자가 그 일례였고 마이에브를 비롯한 혈귀도 몇몇 있었다· 다들 완벽하게 학생으로 위장한 모습이었다·
경기장의 한 가운데 트릭시와 나는 마주 보고 섰다·
“주제는 화염 원소· 승부는 ‘출력’으로· 맞지·”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굳이 출력이 아니라도 좋다·”
“그건 무슨 뜻이야·”
“어느 용도로 활용해도 좋으니 하나라도 이겨보도록·”
“····”
트릭시가 노골적으로 표정을 구겼다· 그녀가 도톰한 입술을 달싹였다·
“시작하기 전에 두 가지만 확실하게 해·”
말없이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다· 할 말이 있으면 얼마든지 하라는 뜻이었다·
“내가 이기면 가르침 씨의 제자로 넣어줘·”
“또·”
“그리고···· 토벌제 명단에 내 이름을 올려줘·”
“그리하지· 정정 기간은 넉넉하게 있으니·”
이유를 되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사정은 다 아니까·
트릭시는 내 깔끔한 수긍이 의문스러웠는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바닥에 박혀있던 철심 하나가 허공으로 떠오른다·
“화염심이야· 출력에 따라 녹아내리는 정도가 달라·”
화르륵─·
동시에 푸른 불꽃이 화염심을 집어삼켰다· 이내 그 무엇의 형체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 얇은 화염심 하나를 녹이는 데에···· 얼마나 강한 출력이 필요할 것 같아·”
몇몇 학생들의 탄성이 터졌다·
그럴 만하다· 가까이서 보니···· 과연 탐이 나는 재능이었다·
이번 가르침은 보다 세밀하게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네 차례야·”
고개를 끄덕인 뒤 나는 화염심의 개수를 고민했다· 트릭시가 한 차례 재촉했다·
“개수를 정해·”
이내 결정을 내렸다· 이번 가르침은 세밀할 필요성이 있었다·
“둘·”
그렇게 중얼거리자 바닥에서 화염심 두 개가 솟아올랐다· 척 보니 화염 내구성이 강한 물질이다·
한 개 두 개 세 개· 개수가 늘어날 때마다 화염 내구성은 제곱으로 강해지는 듯한데·
그래서 녹일 수 있겠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건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
딱─·
손가락을 튕겼다· 시뻘건 불꽃이 화염심을 물어뜯고 이내 허공에 남은 것은 없었다·
“···그래 너도 자신 있다는 거지·”
관중들이 내뱉은 탄성이 조금 더 커지고 이 정도까지는 예상했다는 듯 트릭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편이 더 증명하기 좋아·”
증명·
공교롭게도 그녀의 입술 사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나 역시 그녀가 증명하기를 바란다·
“다섯·”
그녀는 화염심의 개수를 단번에 다섯 개까지 늘렸다·
화아악─!
푸른 화염이 뭉치더니 맹수의 이빨 형상을 이룬다· 타오르는 송곳니 네 개가 철심을 단번에 짓이겨버렸다·
화염의 형태까지 조형하여 활용한 점· 나는 이를 높이 평가한다·
구경꾼들 눈에는 그것이 훨씬 대단해 보였는지 그들은 감탄을 연달아 내지르며 우리를 살폈다·
다섯 개 열 개 열한 개 열여섯 개 열 일곱개····
나는 한 개씩 차분히 올리고 트릭시는 개수를 한 번에 다섯 개씩 올렸다·
“스물둘·”
이때부터는 트릭시의 팔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점차 고화력을 내는 것은 상상 이상의 체력을 요구한다· 트릭시가 아무리 대단해도 예외는 아니다·
또한 정확히 열 일곱개가 이미 그녀의 한계치였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과거의 자신을 매초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대단한 일이다·
화아아악─!
푸른 송곳니가 화염심을 으스러뜨린다·
그러나 녹지 않은 채로 부러지기만 하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후·”
트릭시가 이마에 맺혀있는 땀을 훑어냈다· 시간이 지나자 어찌어찌 전부 녹기는 녹았다·
그러나·
그녀가 지금 과거의 자신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치 않다·
애초에 방향성부터가 잘못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내 역할일 것이다·
“스물일곱·”
이번에는 내 편에서 다섯 개를 올렸다·
내게는 개수의 제약이 없다·
트릭시는 순수히 화염의 ‘위력’으로만 화염심을 녹이지만 나는 화염심이 녹아내리는 회로를 교묘하게 찾아 파고든다·
애초에 난이도가 무(無)기에 몇 배를 제곱하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마나의 제약에 크게 얽매이지도 않는다·
트릭시의 노력이 ‘발악’에 가까운 이유다· 열심히하는 것과 힘들게하는 것은 다르니까·
“아니 서른둘·”
다섯개를 추가로 더 띄운 후 불꽃을 발현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기본에 충실하다· 서른 두 개의 화염심이 분해되듯 녹아내렸다·
“····”
트릭시가 충격을 집어먹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해라·”
그제야 트릭시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녀는 고개를 저어서 털더니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서른···· 셋·”
입장이 뒤바뀌었다· 이제는 내가 다섯 개를 올리면 그녀가 한 개를 올린다·
“한 개 올리는 건가·”
단순한 물음에 불과해도 지금의 트릭시는 그걸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그녀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서른넷·”
화염심의 개수를 억지로 하나 더 늘리는 그녀를 향해 조용히 입술을 떼었다·
“와중에 스스로를 향한 감탄도 하고 있겠지·”
그 한마디에 트릭시의 떨림이 우뚝 멎었다·
나는 무덤덤하게 말을 잇는다·
마나를 조금이라도 더 모으도록 트릭시를 배려하는 이유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쥐어짜내야 와닿는 가르침도 클 테니까·
“실시간으로 자신의 한계를 넘고 있으니까···· 그 의지가 그 노력이 역시 본인이 천재인 증거라고 생각하겠지·”
“···시끄러워·”
까드득 하고 트릭시가 이를 갈았다·
쾅─!
동시에 푸른 화염이 폭발했다·
살아있는 듯한 화마는 이내 맹수의 형태를 갖추었으니 타오르는 늑대였다·
화르륵─! 화륵─!
맹렬히 타오르는 불의 기세가 마치 늑대의 울음소리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강한 위력이었다·
“세상에···!”
“역시 프리츠야!”
관중석에서 터져 나온 탄성이 대단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도 훌륭한 편에 속했으니·
와그작─!
늑대는 서른네 개의 화염심을 사납게 씹었다· 아슬아슬한 성공이었다·
“서른아홉·”
나는 간격 없이 서른아홉 개의 화염심을 녹여버렸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도 않았다· 트릭시의 푸른 늑대를 붉은 화염으로 뒤덮어버렸다·
“···!”
트릭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본인의 화염처럼·
늑대를 없애버리고 나는 입을 열었다·
“너는 천재가 아니며 이대로면 가문의 이름은 바닥에 처박힐 거다·”
“···아직 아직 안 끝났잖아· 마흔넷·”
온몸이 땀으로 뒤덮인 트릭시가 팔을 들어 올렸다· 희고 가녀린 팔은 미친 듯이 뒤흔들렸다·
허공에 떠오른 화염심들은 어느덧 피아노 건반처럼 많고 또 두껍다·
트릭시는 이미 마나의 전량을 소모했다·
그렇기에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네 화염은 푸르다는 특징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만·”
픽·
트릭시가 불꽃을 발현하는 데에 실패했다· 푸른 화염이 아무것도 태우지 못한 채 사그라든다·
“네 화염에 특별하다고 암시를 걸면 도대체 무엇이 달라지지· 원소를 상대로 환혹을 걸 셈인가·”
“···입 입! 그 입 좀 다물어─!”
콰앙─!
그녀의 분노를 머금은 화염이 폭발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실패·
폭발한 것은 화염뿐 화염심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하아···· 하····”
트릭시의 손이 바닥으로 떨구어졌다· 이제는 팔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을 것이다·
“아···· 아아아····”
그녀는 패배했다·
내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그녀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한 느낌일 거다·
아니 실제로 부정당했다·
“묻지 남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취미가 있나·”
“····”
그녀가 말없이 자기 얼굴을 움켜쥐었다·
“역시 없던 걸로 하지· 가르침 경매도 토벌제도·”
“기다려· 나는 아직····”
나는 혀를 쯧 차고서 숫자를 중얼거렸다·
“백·”
백 개의 화염심이 지면으로부터 부유한다·
워낙 많은 수라서 마치 검은 구름의 형세를 보는 듯했다·
“···!”
트릭시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러나 그것을 녹이는 일은 없었다· 잠시 후 나는 그것들을 다시 지면으로 떨구었다·
“네 생각은 어떻지·”
“····”
“시도했다면 나는 성공했을까·”
우리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맞닿았다· 트릭시의 남색 빛 눈동자에는 쉴 새 없이 파도가 치는 중이었다·
“사실 그런 건 전혀 중요치 않다· 트릭시·”
“····”
트릭시는 가쁜 호흡을 고를 뿐 어떠한 단어도 조립해내지 못한다·
용은 알을 깨고 탄생한다·
그 존재에게 알은 하나의 세계이며 그 비범한 태생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며 시작되는 것이다·
비범한 마법사의 탄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가문 의무 재능···· 이들의 ‘알’은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한다·
공통점은 하나· 부수고 자신을 해방할 것·
그녀가 자기 세계를 스스로 깨고 나오지 못한다면 밖에서 두드려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일 터·
“중요한 건·”
세상을 깨부수고 빛을 맞이하는 그 순간·
그녀도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태생을 알 테니·
“너였다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거다·”
나는 또 한 번 그녀를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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