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1
메르헨 아카데미의 치료소·
고작 학생 한 명이 있기에는 너무나도 넓은 그곳에 트릭시는 홀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다행히 주말이다· 따라서 강의는 없다만 지금은 토벌제 예선이 걱정이다· 겨우 삼 일이 남은 시점이니까·
“으····”
트릭시가 격통에 이를 악물었다· 몸을 그 정도로 혹사했으니 이건 당연한 결과였다·
치료소 직원이 화내듯이 몇 번이고 강조했다· 다시는 그런 무모한 마법 사용을 하지 말라고·
지금쯤 다른 학생들에게는 전부 소문이 났을 거다·
트릭시가 기절해버렸다는 단순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푸른 화염이 별것 없다는 말이 돌아다닐지도 모르지·
그러나 지금 가장 신경 쓰이는 건 그깟 소문 따위가 아니라 플란 그 자체였다·
“···기권했다고·”
이것 역시 치료소의 직원을 통해서 듣게 된 사실이다· 소녀는 플란과의 대결을 기억나는 대로 되짚었다·
대결 도중 플란은 트릭시에게 질문을 던졌다·
처음에는 그저 심기를 건드려서 우위를 잡을 치사한 속셈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천재 마법사 진정한 우아함···· 이것들 전부가 트릭시의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트릭시가 무언가를 깨달았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든· 그건 승패와는 전혀 무관한 거다·
플란이 굳이 기권할 이유는 없었다· 트릭시를 이길 수 있다면 그냥 이기면 됐을 텐데·
그는 굳이 기권했다· 마치 그 대결에 승패가 아닌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처럼·
“후우·”
복잡한 마음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으로서는 짐작 가는 목적과 이유가 전혀 없다· 다만 확실한 것 하나는 플란이 실력에서 밀려 기권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 *가르침 경매 ]
[ ▷ 트릭시 폰 프리츠· ]
[ ▷ 내 제자가 된 걸 축하한다· ]
어쨌든 남은 결과는 승리였다· 그 증거는 이렇듯 트리비아에도 남아있었다·
가르침 씨의 제자가 될 수 있다니 그토록 염원했던 일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내가 진정 승리한 것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자꾸만 손을 멈칫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겼다는 결과에 기뻐해야 하는 걸까·
그러나 이걸 진정으로 이겼다고 할 수 있을까·
플란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길을 잃어버린 생각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자꾸만 제자리를 맴돌았다·
그런데·
몸도 생각도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이 순간에도 트릭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후련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녀는 자신이 후련한 이유를 안다·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는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남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망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해진 틀에 자신을 가두지도 않을 것이며 무언가에 질질 끌려다닐 생각도 없다·
진정한 불꽃이란 그런 것일 테지·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냈다·
우선은 그것만 느껴도 충분하다· 가르침 씨에 관한 의문도 플란에 관한 의문도 전부 직접 만나서 물어보면 될 일이다·
트릭시는 트리비아를 덮었다· 고급스러운 가죽 표지에는 프리츠 가의 상징인 재스민이 그려져 있었다·
소녀는 그것을 손으로 조용히 매만졌다·
어머니에 관한 기억 차기 가주의 책임감···· 수없이 많은 감상이 마음을 스쳐 기분이 오묘해진다·
“나·”
입술을 달싹이며 조용히 눈꺼풀을 덮었다·
어차피 오늘은 침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눈을 감고서 생각을 정리하면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
프리츠의 차기 가주로서 가르침 씨의 제자로서 그리고 토벌제 대표로서·
한 마법사가 뱉은 첫 각오였다·
◈
메르힌 일보 편집부 일라이자의 사무실·
저승사자 사신 미친 개···· 그러한 별명을 지닌 그녀는 메르헨 일보의 기사 학부 출신 기자다·
그리고 이번에 막 부장으로 발령이 난 참이다·
오직 그녀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 일라이자는 일렬로 도열해있는 직원들 앞에 앉아있다·
똑 단발의 머리카락 셔츠 치마 구두···· 검은색으로 통일된 색은 자연스레 사신을 연상케 했지만 현재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낫이 아닌 종이 뭉치였다·
“하아·”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많은 양의 서류들이 전부 플란에 관한 내용이다·
“이게 끝이야? 진짜로?”
일라이자가 종이 뭉치를 펄럭거리면서 물었다·
플란·
돌연히 나타나서 검마태제 1종목에서 승리를 거둔 마법 학부의 혜성이자 일라이자의 이목을 잡아끈 학생· 그녀는 요즘 플란에 대해 알기 위해서 안달이었다·
“예· 중요하다 생각되는 것들만 추렸습니다·”
“···와· 정말 중요하네· 영양가가 있네· 기사 학부가 통째로 뒤집어질 만한 내용이네· 아카데미는 뭐하나? 이런 거 교재로 사용 안 하고·”
“····”
노골적인 비아냥에 팀장의 어깨가 움츠러든다·
하지만 일라이자 입장에서는 화날 만도 했다· 이렇게나 많은 서류가 모였는데 새로운 정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성적 추이 발언 일과 패턴···· 이따위 것들은 이미 전부 아는 것이란 말이다·
“일과가 끝나면 기숙사에 박혀서 나와버리질 않아요· 그렇다 보니 저희도 마땅히 취재할 만한 게····”
“심지어 그것도 아는 내용이야· 됐어·”
일라이자가 손을 훠이 내저었다·
커다란 화제가 될만한 기사만 쓰자· 세피아와 정반대되는 신념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그녀였다·
“뭐 그나저나·”
일라이자의 마음 한편에는 아직 의문 하나가 남아있는 채다· 그녀가 나란히 선 직원들을 둘러보았다·
“얘 진짜로 토벌제에 세 명이 나갈 생각인 건가?”
“예?”
“토벌제는 네 명이 한 조잖아· 마법 학부에서 정말 세 명으로 출전할 것 같냐고·”
세 명이서 나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고작 삼 일 남은 이 시점에 한 명을 추가로 선발해서 호흡을 맞추는 것도 가능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직원들이 고개를 저었다·
“어느 쪽이든···· 좀 터무니없는 것 같아요·”
“애초에 1학년이 세 명인 것부터가 객기죠·”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일라이자의 마음 어딘가에 턱 걸리는 것이 있었다·
“신경 쓰이는 건 플란이란 말이지···· 슬슬 기사도 내보내야 하는데····”
이것저것 자극적인 내용들을 구성하던 중 문득 일라이자의 생각을 한 곳에 닿았다·
대결을 앞둔 관중이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너무나도 쉽고 원초적인 주제·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토벌제 예선은 마수를 잡아 점수를 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경기장에는 두 조씩만 올라가지만 최종적으로는 기산된 점수대로 줄을 세워 본선에 진출하게된다·
마법 학부와 함께 경기장에 올라가는 이들은 절대로 만만한 이들이 아니다· 네 남매를 견제하며 마수를 잡는다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
일라이자는 직원들에게 물었다·
“마법 학부가 과연 얼마만큼 보여줄 수 있을까?”
“또 어려운 질문을···· 아 아니· 제가 멍청해서····”
“그러니까 기사 학부의 네 남매를 상대로 마법 학부가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예측을 해보라고·”
그 말에 직원들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론을 내리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얼마나 순화해서 말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서·
“···일단 절대 못 이기죠? 네 남매를 어떻게 이겨요·”
막내 기자가 용기 내 침묵을 깼다·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일단 전제로 깔고 가야 하는 사실이다·
일라이자가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마법 학부가 이길 가능성이 아예 없나?”
“일라이자님 걔네는 사고방식부터가 달라요·”
“이제 겨우 중간평가 끝났는데 징계 위원회가 6번이나 열렸잖아요·”
기사 학부 2학년의 네 남매·
이 네 명의 남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늘 붙어 다니는 데다가 각각 사용하는 검이 달라서 자연스레 네 남매라 불리게 되었다·
대검 도 레이피어 바늘을 닮은 기형검 그에 더해진 검술 실력과 고유능력까지···· 확실히 마법 학부의 1학년이 상대하기에는 버거울 것이다·
“그럼 플란만 놓고 보면?”
“아 그 녀석은···· 위험합니다·”
위험하다· 차장의 한마디에 모든 직원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그를 바라보았다·
차장이 급하게 손을 저었다·
“아 제가 말을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야· 계속해· 저것들 무시하고·”
일라이자는 직원들의 그 반응이 같잖았다· 일도 못 하는 주제에 눈치만 그렇게 살피고 있어·
결국 차장이 다시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예에· 일단 녀석의 화염 원소를 관찰한바····”
종이 뭉치를 허겁지겁 넘기던 차장이 문득 직원들의 눈치를 엄청나게 살피기 시작했다· 말할지 말지 천 번은 넘게 고민하는 눈빛이다·
“관찰한···· 바····”
“뭘 뜸을 들여· 눈치 보지 말라니까·”
“그게···· 잔불의 기사님이랑 불꽃이 비슷한데요····”
그 말에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잠시 후·
팀장이 차장의 머리통을 빡 소리가 나게 내리쳤다·
“아이고!”
차장이 곧바로 머리를 감싸쥔다·
“얀마· 너 미쳤어? 비교할 게 따로 있지· 어딜···!”
“그 근데 놀랍게도 진짜입니다· 이놈 진짜···· 이상한 놈이에요· 그래서 제가 위험하다고 한 겁니다·”
“둘 다 그만·”
일라이자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녀는 플란을 떠올렸다· 안 그래도 그 녀석이 자꾸만 마음에 걸리던 참이다·
아이반을 상대로 승리한 것도 그렇고 푸른 화염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 점도 그렇고····
‘전력을 있는 그대로 노출해도 괜찮나?’
정말로 토벌제에서 한 건 해낼 생각이라면 기자가 잔뜩 들러붙은 이 시기에 실력을 감추는게 무조건 이득일 텐데·
‘···아니면 이것조차도 전부 계산된 움직임일까?’
어느쪽이든 간에 흥미롭고 특이하다· ‘논외’로 두어야 하는 녀석임은 분명했다·
그러니 차장의 말에도 분명 일리는 있을 터·
“으음····”
잔불의 기사를 닮은 화염 원소· 마법 학부가 우승을 호언장담하고 나가는 토벌제· 상대는 논란 많은 사남매····
있는 그대로만 써도 화제성은 보장이다·
딱─!
기분 좋게 손가락을 튕긴 뒤 일라이자가 소리쳤다·
“좋아· 전부 퇴근해·”
“헐!”
“네엡!”
직원들이 삽시간에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일라이자는 바쁘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래서 기자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
“정말?”
“프 플란! 진짜? 한 명을 추가로 선발했다고?”
다음 날 아침 훈련장·
베키와 루이스가 플란을 향해 되묻는다· 토벌제 마지막 인원이 선발되었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
베키는 침을 꿀꺽 삼키고 플란만 바라보았다·
사실 요즘 가장 주변의 눈치를 많이 살피는 것은 베키다· 그녀가 대표로 선발되었다는 것에 의문을 품은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좀 모자란 녀석이지만 데려가기로 했다·”
그 순간 베키는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모 모자란 녀석! 정말?”
“그래·”
“흐 흐흥····”
베키는 이왕이면 모자란 녀석이 들어오는 편이 좋다는 마음이었다· 그럼 이 중압감도 둘이서 짊어질 수 있을 테니까·
플란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쓸데없이 자존심만 강하고 마법은 아직 허술하고 단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서로 챙겨주도록·”
“흐하핫·”
그 웃음에 플란이 베키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럼 그럼· 서로 친하게 지내고 의지하고· 당연히 그렇게 지내야지~”
즐거워하는 베키는 놔두고 플란은 푸른 불이 들어와 있는 트리비아를 설핏 살폈다·
[ ▶ 감사해용···! ]
[ ▶ 근데 드릴 말씀이 있어용! ]
[ ▶ 저 예선은 스스로 해보려구용! ]
[ ▶ 정말 멋지게 하구 갈 테니까· ]
[ ▶ 그때 꼭···· 저 만나주세용! ]
[ ▶ 꼭이용 ㅎㅅㅎ!! ]
그리고 그조차도 모르게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연락은 틀에 꽉 갇혀있던 꼬맹이 대신 각오가 제법 깃든 마법사로부터 온 것이었다·
성장했나· 그것이 아주 조금은 기특하다·
그리고 그때· 훈련장의 문이 열렸다·
“어 왔나 보다! 어서 와!”
거의 눈을 감은 것처럼 보이는 눈웃음까지 지어 보이면서 베키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푸른 소녀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엑·”
베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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