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4
마침내 토벌제 예선의 아침이 밝았다·
악사들의 음악이 교정을 채우고 메르헨 아카데미는 온통 축제 분위기에 젖어있는 채다·
“플란 경···· 플란 경···· 오늘도 안 보입니다· 어디에 계십니까~ 플란 경~”
한편 유시아는 교정 내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중이다·
모험가 마탑의 마법사들 상인들 황실 관계자들···· 현재 아카데미에 모인 인간 군상은 다양하다·
이 모든 것들이 유시아의 눈에는 마냥 신기했다·
“벌써 술 마셔도 되나? 경기 때 자는 거 아니야?”
“그래도···· 어떻게 참아· 넌 참냐?”
“그건 그래· 못 참지·”
이제 막 해가 떴는데도 불구하고 먹고 마시는 소리로 왁자했다· 식욕을 자극하는 향도 유시아는 지나친다·
그녀의 현재 관심사는 일단 플란이었으니까·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황녀님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저희가 조달하는 방식이 좋겠습니다·”
유시아는 오늘 혼자 다니는 몸이 아니다· 황실 재무관이 평범한 관광객으로 위장하여 곁에 붙어있는 채다·
그러나 소녀는 제 가슴팍의 명찰을 두드린다·
“재무관님? 저도 아카데미 학생입니다·”
“예· 하지만 셋째 황녀임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안 잊지만 오늘은 학생으로 있을 겁니다~!”
아무리 재무관이어도 황녀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라 재무관은 결국 한숨을 내쉬고 유시아의 곁을 지켰다·
“신문이요~ 신문~”
누군가가 활보하는 학생들에게 신문을 건넨다· 유시아도 한 장 받아들었다·
[ 대책 없는 마법학부···· ‘플란 실종’ ]
“플란 경은 도대체 어디 계시려나····”
소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선이 시작하기 전 격려의 한 마디 정도는 직접 만나서 해주고 싶었다·
“재무관·”
“예 황녀님·”
“재무관도 저와 함께 플란 경을 찾는 겁니다·”
“예····”
재무관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플란 플란 플란···· 황실에서도 몇 번 정도는 언급되었던 이름· 이제는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그런데 그때·
“걸었어? 내가 말한 대로 걸었지?”
“야! 거는 김에 내 것도 걸어줘!”
유난히 북적거리는 상점 앞에서 유시아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간판에는 ‘예측’이라 적혀있었다·
“오····”
토벌제 기간에만 특설 되는 이 상점은 사실상 승패를 예측하는 합법 도박장이지만 셋째 황녀의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예측이라···· 무엇을 예측하는 겁니까····”
유시아가 고개를 빼꼼 내밀면서 중얼거리는데 웬 남학생 둘이 달라붙었다·
“1학년이면 모를 수도 있지~ 우리가 좀 알려줄까?”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돈 무조건 따는데· 들어볼래?”
그러나 둘의 사심 가득한 추근거림은 금세 제지당했다·
“····”
살기 어린 재무관의 눈빛에 둘은 땀을 삐질 거리며 빠르게 물러난다·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얼마나 재밌으면!”
재무관의 보조 덕분에 유시아는 사람들을 제치고 나아갈 수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맨 앞줄이다·
[ 토벌제 예선 최종등수 예측 ]
[ 토벌제 예선 세부결과 예측 ]
[ 토벌제 예선 사냥시 예측 ]
반짝이는 유시아의 눈이 활자들을 꼼꼼히 살핀다· 항목은 총 세 가지였다·
소녀가 상점 주인을 향해 물었다·
“저기 이건 어떻게 하는 겁니까?”
그러자 주변에서 유시아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규칙을 모르는 건 아마 유시아가 유일할 터였다·
상점 주인이 시큰둥하게 답했다·
“하나만 예측해도 되고 세 개 묶어서 전부 맞추면 추가로 배당이 붙고·”
“앗! 저는 그럼 세 개 묶어서 맞추겠습니다·”
동시에 재무관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유시아가 종이 세 장을 받아든 채였다·
재무관이 급하게 속삭였다·
“황녀님···· 직접 참여하실 생각이십니까···?”
“예· 다른 누구도 아니고 플란 경 경기니까·”
“그냥 응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건 사행성이 짙습니다· 멀리하셔야죠·”
하지만 유시아는 꿋꿋하게 펜을 집어 들었다· 항목을 선택하는 움직임에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점 주인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어디 봅시다· 아니 뭐 이런 예측을····”
종이를 받아든 상점 주인이 미간을 좁혔다· 유시아를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마법 학부가 최종 1등으로 본선 진출 세부 결과는 네 남매를 상대로 승 또한 사냥 시간은 단계마다 10분 이내···· 정말 이렇게 할 거요?”
그 말에 소란스럽던 상점이 조금 조용해진다·
장난치냐는 듯한 눈빛 세상 물정 모른다는 듯한 눈빛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 그 모든 것이 유시아를 향했다·
재무관이 먼저 다급하게 물었다·
“이보게 이대로 하면 배당이 어떻게 되나?”
“배당이····”
상점 주인이 빠른 속도로 주판알을 튕겼다·
“1만 96배· 세 가지가 모두 적중하면 1만 96배요·”
1만 96배·
···바꾸어 말해 불가능이나 다름없다는 소리였다·
주변에서 한껏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돈이 그렇게 남아돌면 차라리 나 주라~”
“이야~ 금화 하나만 걸어도 만 개네· 만 개·”
남이 돈을 잃는 것만큼이나 재미있는 구경이 또 있을까· 그들의 얼굴에는 슬슬 기대감이 어렸다·
유시아가 얼마나 돈을 잃어줄까─ 하는 기대감이·
소란의 당사자는 태연하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여기 금화입니다·”
단순히 금화 몇 닢이 아니라 아예 꾸러미였다· 1학년이 제시했다고 생각하기 힘든 큰 액수에 구경꾼들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저 저렇게나 많이 건다고···?”
“얼마나 진심인 거야?”
“나중에 울고불고 떼써도 소용 없는데·”
가게 안이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진다· 놀란 건 상점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금화 꾸러미를····”
놀란 건 상점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금화 꾸러미를 되돌려준다·
“그렇게 큰 배당금은 이쪽에서 여건이 안 돼·”
그리 대답하는 상점 주인의 태도 그새 조금 예의발라져 있었다·
“그럼 몇 개까지 걸 수 있는겁니까?”
“1만 96배면···· 한 개· 딱 한 개·”
그러자 유시아는 꾸러미에서 금화 한 닢을 꺼냈다·
“여깄습니다!”
그 황금빛 눈동자에서는 진심이 반짝였다·
◈
화중세계 1시 59분·
“아으···· 아····”
베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아이고오···· 나 죽어어어····”
“물이라도 좀 드시겠소?”
“괜찮 괜찮아요···· 물 마실 힘도 없으어····”
아이반이 물을 내밀었지만 베키는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는 아예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로써 베키도 플란이 지시한 ‘마법 천 번 발현하기’를 마쳤다·
“짜증 나·”
“아하하···· 결국 세 명 전부 해냈네· 무려 천 번 씩을·”
트릭시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내뱉고 루이스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마법사들도 훈련 강도가 어마어마하구려·”
아이반이 작게 중얼거렸다· 플란이 곧바로 대답했다·
“배로 어렵지· 기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나도 이제서야 알았소· 또 한 번 이렇게 반성하오·”
아이반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오늘 플란의 부름을 받아 화중세계에 방문하게 되었다·
본인을 수양할 마음으로 오게 된 거지만 얼떨결에 다른 마법사 학생들의 훈련도 지켜보게 되었다·
플란은 주저앉은 세 명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발현에 대해서는 이제 좀 감이 오나·”
평소와 같은 서늘한 음색· 세 학생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1시 58분부터 줄곧 플란이 필기해주었던 이론을 암기했다·
실제 인간처럼 행동하는 소환수 덕분에 이 과정은 나름 수월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세계가 1시 59분까지 도달케 하는 데에는 어찌저찌 성공했는데····
다음 일정이 ‘천 번 발현하기’일 줄이야 이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근데 그걸 또 했다·
천 번이다· 열 번도 백 번도 아니고 무려 천 번· 감이 안 올래야 안 올 수가 없었다·
베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기 손바닥을 보았다·
“천 번이 정말 엄청나긴 하구나···· 이런 발현 속도는 평생 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이론 그것을 바탕으로 그리는 술식 발현·
이 세 가지를 마치 한 동작처럼 할 수 있게 되었다· 상상조차 못 했던 성과다·
루이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플란 네가 무엇을 알려주고 싶은지는 잘 알았어· 압도적인 속도의 발현으로 우위를 점해라· 그런 거지?”
“그 위로 정순함을 더해야지·”
플란이 덧붙였다·
“매우 빠른 속도로 발현되는 정순한 원소· 이것 하나만 있으면 후속타는 딱히 필요하지 않다·”
“으음····”
루이스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플란의 말은 이번에도 지극히 옳았고 간결하게 핵심만을 짚고 있었다·
매우 빠르게 강력한 한 방을 먹일 수 있다면 후속타가 왜 필요하겠는가· 이미 승리해있을 텐데·
“좋아 플란·”
그러나 루이스에게는 아직 의문이 남아있었다·
“네가 하라는 대로 할 거야· 하지만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궁금해· 지금도 바깥 세계의 시간은 흐르고 있을 거 아니야·”
그는 말을 잇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질문을 바꿔야겠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느냐···· 뭐 그런 것보다도·”
루이스의 표정은 진지했다·
“우리가 토벌제 예선 전까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살면서 이토록 효율적으로 학습해본 적도 최선을 다해본 적도 없지만···· 토벌제의 예선이 코앞이라는 사실은 또 별개였다·
얼마나 잘 성장하든 간에 기한에 맞추지 못하면 결국 탈락이란 말이다·
“···너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나·”
“음?”
플란이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오늘 훈련은 두 시까지 번복은 없다·”
“두 시는 언제 되는데? 이 세계의 시간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아직 모르겠어서·”
“최대한 쉽게 설명해주면 되겠나·”
플란이 아이반에게 턱짓했다·
“너희가 아이반을 상대로 최소 무승부를 낼 때·”
“아이반?”
“두 시는 그때 찾아온다·”
베키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저건 아이반이랑 대련을 시키겠다는 말 아닌가?
섬광 기사라 불리는 아이반을 상대로 무승부? 전신에서 땀이 분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기·”
이번에는 트릭시가 끼어들었다·
“근데 왜 도와주는 거야·”
그녀의 시선은 아이반을 향해있었다· 짧은 질문이었지만 의도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기사 학부인 아이반이 왜 자신들을 돕는가· 그러한 뜻이었고 모두 그것을 이해했다·
민감하고 무례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또 어려운 질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강해지고 싶을 뿐이오·”
옅은 미소와 함께 아이반은 그렇게만 대답했다·
그 짧은 한마디에서도 큰 의지가 느껴져서 세 마법사의 표정도 조금 결연해졌다·
자신들 역시 최선을 다해야만 예의일 것이다·
“지금부터는 마지막 훈련에 들어간다·”
모두의 눈빛을 확인한 후 플란이 입을 열었다·
“한데 마지막인만큼 대충 할 수는 없지·”
그의 붉은 눈동자가 아이반을 향한다·
“아이반 혹시 사람을 죽여본 적 있나·”
◈
마법 학부 기숙사의 내부 복도 마법사 출신 기자들은 여기서 밤을 꼬박 지새운 참이다·
이유는 당연히 플란 단 한 명 때문이었다·
그나마 건물 내부라서 이렇지 밖의 상황은 더더욱 살벌하다·
건물 밖이 온통 기사 출신 기자들로 가득한 상황이다· 흡사 맹수들이 토끼 굴 앞에서 진을 친 모양새였다·
“····”
세피아의 이마에 땀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옆에 있던 차장이 입술을 떼었다·
“저기 부장님·”
“왜요·”
“토벌제는 전투 종목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거죠?”
“지금 그걸 말이라고····”
세피아가 차장에게 눈빛으로 욕을 했다·
전투 종목에서 마법 학부가 승리한 것도 분명 기념비적인 일이기는 했다· 길고 길었던 암흑기 그곳에 갑자기 한 줄기의 빛이 떨어진 거니까·
‘하지만 아직 부족해·’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한 줄기의 빛을 광명(光明)으로 키워야만 한다·
아카데미 온갖 상권 황실···· 온갖 것이 엮이는 이 커다란 행사에서 성과를 낸다면 커다란 한 걸음일 터·
그래서 중요하다·
엄청나게 중요한 건데····
당당하게 우승 선언까지 해버렸는데····
‘플란·’
세피아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에 관한 생각뿐이다·
“3일을···· 방에서 안 나온다고····”
세피아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마법 학부 대표들은 3일간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훈련장은커녕 식사하는 모습조차 없었다·
차장은 이미 해탈한 듯했다·
“부장님 저희 망한 거 같은데요·”
“쉿! 그런 소리 하지 말라니깐···!”
“상황이 그래요· 아니 무슨 3일 내내····”
“그만· 알겠으니까 그만 이야기해요·”
세피아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대표 전원이 플란의 방에 있다· 심지어 기사 학부생인 아이반도 그곳에 있고·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런데 그때·
“문 문 열렸다!”
기자 중 한 명이 소리쳤다· 그 외침에 쓰러진 잡초처럼 대기하던 인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플란! 플란만 찾아!”
“질문지 어떻게 했어· 안 챙겼어?”
“플란 학생! 저기 플란 학생!”
그런데 잠시 후·
“뭐 뭐야 미친····”
“쟤네 왜 저래?”
세피아 앞으로 달려갔었던 기자들이 전부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
세피아는 뒤로 물러나는 기자들을 제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비슷한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미친·”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지옥도였다·
“토 토할 것 같아···· 우 우욱····”
“아하하···· 나도 그래· 아침은 못 먹겠다·”
“···머리 아파·”
세피아는 저도 모르게 눈을 깜빡였다·
아직 토벌제 예선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한데 이미 경기를 마친 듯 탈진한 이 모습들은 뭐란 말인가?
“어으으····”
베키가 복도 벽에 등을 기대고 털썩 주저앉는다· 벌어진 입과 초점 풀린 동공은 보기에 오싹할 정도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세피아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마지막으로 플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
동시에 기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플란만큼은 평소의 모습과 같았기 때문이다·
무심한 눈빛 잘 다듬어진 옷매무새 그만의 여유· 플란은 여전히 그런 채였다·
살아있는 것인지 시체인지 모를 것들은 일단 뒤로 하고 모두 빠르게 플란에게 향했다·
질문 세례가 쏟아진다·
“플란 학생! 질문 좀 받아주세요!”
“오늘 예선 당일입니다· 알고 계십니까?”
숱한 질문들 사이에서 세피아도 한마디 했다·
“플란 학생 3일간 뭘 했길래 꼴이 이래요?”
무심하던 플란이 세피아의 질문에는 반응했다· 그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세피아를 향한다·
“보고도 모르시겠습니까·”
이걸 보고 뭘 알아 세피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네· 전혀 모르겠는데요?”
그러자 플란의 입꼬리가 살짝 호선을 그렸다·
“···뭐 이제 알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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